플뢰칭거, 일데폰스 Flotzinger, 1ldefos(1878~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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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수도명은 일데폰소(lldefonsus). 세례명은 안드레아. 한국성 은 부(富).
1878년 7월 20일 독일 뭔헨 대교구에 속한 키엠가우(Chiemgau)의 타이딩(Taiding)에서 태어난 플뢰칭거는 숙련된 소목장(小木匠)으로서 1906년 성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2년간의 청원 시기를 거친 후 법정 수련을 받고, 1909년 10월 10일 유기 서약을 하였다. 그리고 그해 11월 7일 2명의 신부와 4명의 수사로 구성된 한국 진출 제 1진에 속하여 서울 백동 성 베네딕도 수도원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서울 수도원에서 운영하던 승공학교
의 목공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면서 청도(靑島)로 징집되었으나, 사우어(B. Sauer, 辛上院) 아빠스가 청도의 독일군 사령관에게 전보를 보내 징집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이후 그는 덕원과 원산 대목구의 많은 성당과 사제관, 학교의 건축 때 목공 부분을 맡아 봉사하였다. 그리고 연길 지목구의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이 담당하고 있던 의란(依蘭) 지목구가 1935년 티롤의 카푸친 작은 형제회로 이양되자 그곳 성당과 사제관을 건축하는 데 참여하였다. 그로 인해 후에 카푸친 작은 형제회 명예 회원이 되었다.
1949년 5월 11일 북한 공산당에 체포되어 평양 인민교화소에 수감되었다가 8월 5일 옥사독 수용소로 옮겨졌다. 이곳에 수용되어 있다가 만포(滿浦)로 이송되어 가던 중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나 병고를 이겨내고 회복하였다. 그러나 수용소로 돌아온 후 영양 실조로 1952년 3월 20일 옥사독에서 선종하여 그곳에 묻혔다. (→ 베네덕도회 ; 덕원 성 베네덕도 수도원)

※ 참고문헌  A. Kasper · P. Berger, HWAN GAB(還甲), Miinster-schwarzach, 1973/ Erzabtei St. Ottilien, Schematismus 1909~1946, St. Ottilien/ Todesanzeige von Abtei Schweiklberg, 1952/ D. Drexl OSB, Necrologium congregationis Ottiliensis 1888~2000, St. Ottilien/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81/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편, 《원산 수녀원사》, 왜관 분도인쇄소, 1988. 〔宣智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