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하우스, 카에탄 (1868~1936)

Vierhaus, Caje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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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신부. 수도명은 가예타노. 세례명은 글레멘스(Klemens). 한국 성은 하(河)
1868년 12월 1일 독일 오스나부르크(0snaburg) 교구의 헤르츠포르트(Herzfort)에서 태어 난 피어 하우스는 1906년 9월 8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고 1907년 9월 8일 유기 서약을 하였으며, 1912년 7월 22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해 9월 1일 한국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이듬해인 1913년 가을에 4명의 수사들과 함께 서울 백동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그는 본당 사목은 전혀 하지 않고 건축가로서 또 수도원 재무 담당으로 일하며, 서울 수
도원과 승공학교(崇工學校)를 위시하여 덕원 수도원 그리고 원산교구 내 수녀원, 본당, 학교 등 100여 채 이상의 건축물을 설계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대, 세례대, 성당 실내 장식 일체를 도안하였다. 특히 탁월한 토목가로서 측량 능력이 탁월한 그가 설계한 덕원 수도원은 중세 독일의 히르사우(Hirsau) 수도원을 모범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축하여, 웅장하고 장엄한 기품을 보여 준다. 이 수도원의 건축을 위하여 피어하우스는 1923년부터 원산을 자주 오가며 정지 작업과 건축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1929년 사우어(B. Sauer, 辛上院, 1877~1950) 아빠스의 사제 서품 은경축을 기념해 수도원 내에 마련한 개인 경당에 제대, 기도대, 주수상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1929년경부터 육체적 ·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기 시작한 피어하우스는 말라리아에 걸려 원산 본당에서 휴양을 하였으며, 1929년에는 수도원 재무 담당도 그만두었다. 그러나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계속 쇠약해져서 1936년 5월 26일 저녁, 동료 수도자들이 옆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위장병으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는 자신이 설계한 덕원 수도원 묘지에 네 번째로 묻혔다. (→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

※ 참고문헌  A. Kasper · P. Berger, HWAN GAB(還甲), Münsterschwarzach, 1973/ D. Drexl, Necrologium, St. Ottilien, 2000/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81/ Schematismus Monachorum Et Fratrum Congregationis Ottiliensis O.S.B 1913~1936/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편, <원산 수녀원사》, 분도인쇄소, 1987/ Missionsbliter 1936, pp. 262~265. [宣智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