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della Francesca(1416/1420?~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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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마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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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마돈나>. .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에 크게 이바지한 화가. 이론가.
피에로는 피렌체 공화국에 속한 작은 도시인 산세폴크로(Sansepolcro, Borgo San Sepolcro)에서 태어났다. 그가 받은 초기 교육에 대하여 분명하게 전해 주는 자료는 없다. 다만 1439년에 피렌체에서 공부하며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때 도메니코(Domenico Veneziano, ?~1461)의 지도를 받으며 마사초(Masaccio, 1401~1428)를 비롯한 유명한 화가들의 조상과 건축, 그림들을 연구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르네상스 양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회화의 구성 요소로서 색채와 빛을 강조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견고하고 둥글게 표현된 인물들은 마사초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도메니코로부터는 미묘한 색감과 차갑고 청명한 대기가 녹아 있는 풍경을 즐겨 취하였다. 1442년경 피에로는 산세폴크로로 돌아온 뒤 시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3년 뒤 이 도시에 있는 성당의 제단화 <자비의 성모>(Madonna della Misericordia)의 중심 부분을 맡았다. 이 제단화는 1462년에 완성되었는데,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와 마사초의 영향 및 기하학적인 형태를 선호하며 신중한 묘사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습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1448년경에는 페라라(Ferara)에서 일하였는데, 이때 북부 이탈리아 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의 대표작 중 하나는 <예수 세례>(1444~1450)라는 패널화이다. 그리고 1451년부터 리미니(Rimini)에서 화려한 프레스코화를 제작하였다.
1452~1466년까지 아레초(Arezzo)에 있는 산 프란체스코 성당의 성가대석에 그린 프레스코화에는 피에로의 성숙한 양식이 나타나 있다. <성 십자가의 전설>(Leggenda della vera Croce)을 이야기체로 묘사하고 있는 이 연작은 비치 디 로렌초(Bicci di Lorenzo)의 사망으로 피에로가 맡게 된 것인데, 1466년에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맑고 청명한 대기 속에 고요하고도 위엄 있는 인물이 혼합되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이러한 프레스코화는 주제와 기법에서 강한 대조로 특징지어지며, 매우 웅장해 보이는 효과를 지닌다. 예를 들어 <아담의 죽음>(La morte di Adamo)에서의 누드와 <솔로몬과 시바>에서의 호사스럽게 차려입은 인물, 그리고 <콘스탄티누스의 승리>에서의 밝게 빛나는 대기와 <콘스탄티누스의 꿈>에서의 어둠 등은 강한 대조를 이룬다. 이 시기에 그는 아레초 주교좌 성당의 프레스코화 <막달라 마리아>(Magdalen)와 산세폴크로 시청에 있는 <부활>(La Resurrezione, 1463~1465)도 그렸다. 1459년 교황 비오 2세(1458~1464)의 요청을 받고 로마로 가서 그린 우르비노 주교좌 성당 제의실의 <예수의 책형>(La Flagellation du Christ, 1455)과 고귀하고 우아한 부부의 초상화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Federico da Montefeltro, 1422~1482) 및 <바티스타 스포르차>(Battista Sforza, 1446~1472)는 그의 유명한 작품에 속한다.
피에로는 생애 마지막 20년을 산세폴크로로 돌아와서 보냈다. 이 시기의 그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플랑드르 회화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기념비적인 양식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화롭게 융화시켰다. 세니갈리아(Senigallia) 근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 성당의 <마돈나>(Madonna)와 같은 작품에서는 정물을 섬세하고 정밀하게 다루는 플랑드르 회화의 특징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적용하였다. 페루자(Perugia)에 있는 제단화 <성인들과 함께 있는 성모자>와 <주님 탄생 예고>(Annunciazione)는 피에로가 원근법에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는 1474~1482년에 <회화의 원근법에 관하여》(De prospectiva pingendi)라는 논문을 집필하였는데, 이 논문에는 기하학과 균형, 원근법의 문제들에 관한 그림들이 들어 있다. 1482년 이후에는 《5개의 정다면체에 관하여》(De quinque corporibus regularibus)를 집필하면서 완전한 비례에 관한 개념을 다루었다. 그가 이런 논문들을 집필한 것은, 입체적인 인물과 대상을 우아하고 추상적이며, 정밀하고 기하학적인 드로잉(drawing)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들로 보아 당연한 결과였다. 피에로는 1492년 7월 5일 산세폴크로에서 생을 마쳤다.
피에로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 이후에 라파엘로(S. Raphaello, 1483~1520)는 물론 만테냐(A. Mantegna, 1431?~1506)와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와 같은 북부 이탈리아 화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의 예술은 대체로 너무나 독특하고 자족적이어서 피렌체 예술의 강력한 주류가 되지는 못하였다.
※ 참고문헌  Frederick Hartt, History of Italian Renaissance art : painting, sculpture, architecture, Englewood Cliffs, Prentice-Hall, 1979/ Marilyn Aronberg Lavin, Piero Della Francesca's Baptism of Christ, New Haven, Yale Univ. Press, 1981/ Maurizio Calvesi, Piero della Francesca, New York, Rizzoli, 1998. 〔鄭恩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