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디스(Sardis, 현 Sart)에서 동남쪽으로 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터키 서부의 도시. 현재는 알라세히르(Alasehir)라고 불린다. 이 도시 이름은 '형제애' 라는 의미이다.
이 지역에 처음으로 도시가 세워진 것은 리디아(Lydia)왕국 시대로 칼라테부스(Callatebus)라고 불렸다. 그리고 기원전 159 ~ 138년에 페르가뭄(Pergamum, 현 Bergama)의 왕이었던 필라델푸스(Philadelphus)에 의해 코가무스(Cogamus) 강의 서쪽 편에 세워졌다. 이 도시는 지정학적 · 상업적 ·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기원전 133년에 필라델피아는 로마의 영토가 되었으나, 서기 17년과 23년에 일어난 큰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하였다. 그러나 신속하게 복구되어 동로마 제국 시대에는 중요한 상업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필라델피아에서 사용되던 동전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풍작과 식물의 성장을 담당하는 신인 디오니소스(Dionysos, Bacchus)나이 신의 여사제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필라델피아는 비옥한 토양으로 농업과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는데, 이 곳에서 재배된 포도는 소아시아 지역 내 300여 성당에 서 성찬 전례 중 사용되는 포도주로 무료 공급되었다고한다.
요한의 묵시록 3장 7-13절에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중 필라델피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기록되어 있다. 이 교회는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칭찬을 받았는데, 요한의 묵시록 저자는 필라델피아 공동체가 매우 작지만(3, 8), 유대인들의 방해에 용감하게 저항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3, 9). 필라델피아에 그리스도교가 전해진 것은 사도 시대였다. 《사도 헌장》(Constitutiones Apostolicae)에 의하면, 사도 요한에 의해 이 도시의 초대 주교로 데메트리오(Demetius)가 임명되었다고 한다. 로마로 압송 중이던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Ignatius Antiochenus, 35?~107)는 알렉산드리아의 트로아스(Troas) 항구에서 필라델피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인들을 경고하는 편지를 보냈다.
14세기에 주변의 다른 주요 도시들이 오스만 제국에게 점령된 후에도 필라델피아는 그리스도교 도시로 자체 방어를 계속하다가 1379년 동로마 제국의 황제 요한 5세(1341~1376, 1379~1391)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트 1세(1362~1389) 사이의 정치적 거래로 오스만 제국에 편입되었다. 17세기에는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0여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1919~1922년에 터키 독립 전쟁을 치르면서 시가지 일부가 불타 폐허가 되었다.
현재는 동로마 제국 시대에 건축한 사도 요한 성당의 거대한 붉은 벽돌 기둥들만 베쉬 에일륄(Bes Eylül) 지구장터에 유적으로 남아 있다. 성당 터에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의 19세기 묘비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1923년 까지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이 제법 많이 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 요한의 묵시록)
※ 참고문헌 W.W. Gasque, 《ABD》 V, pp. 304~305/ W.M. Galder, Philadelphia and Montanism, 《BJBL》7, 1923, pp. 309~354. 〔金永珍〕
필라델피아
〔그〕Φιλαδέλφεια · 〔라 · 영〕Philadelphia
글자 크기
12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