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레몬에게 보낸 편지

便紙

〔그〕Προς Φιλήμονα · 〔라〕Epistola ad Philemonem · 〔영〕Letter to Phile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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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 때 베드로의 집(그림)이 가정 교회 역할을 하였듯이 필레몬의 집도 그러하였다. 끌려가는 여자 노예(오른쪽). 노예 제도는 로마 제국의 공인된 사회 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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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교회 때 베드로의 집(그림)이 가정 교회 역할을 하였듯이 필레몬의 집도 그러하였다. 끌려가는 여자 노예(오른쪽). 노예 제도는 로마 제국의 공인된 사회 제도였다.

신약성서의 서간 중 하나로 내용이 가장 짧으며, 바오로 서간에 속하는 편지 중 하나.
이 서간은 필레몬이라는 개인에게 보내는 '개인 편지'로 알려졌으나, 이 서간의 1-2절에 나타나듯이 필레몬과 압피아(Apphias) 아르킵보(Archippus) 그리고 필레몬의 집에 모이는 교회 앞으로 보내는 '공동 편지' 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내용을 보더라도 필레몬이 홀로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생각해야 하는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바오로는 공동체의 회중 앞에서 이 편지가 읽혀지기를 바란 듯하다. 이 서간은 옥중에서 작성되었다고 해서 필립비서와 골로사이서 그리고 에페소서와 함께 '옥중 서간' 이라고도 한다.
〔저술 시기 및 장소〕 몇몇 학자들이 필레몬서의 친저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오늘날에는 바오로가 쓴 편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바오로를 이 편지의 저자로 보는 확실한 증거로 어휘, 문체, 구조뿐 아니라 논증 방식 등을 들 수 있다. 필레몬서는 바오로가 필사가나 비서에게 받아쓰게 하지 않고 손수 쓴 것으로 여겨진다.
필레몬서의 저술 시기는 저술 장소에 따라 달리 추정된다. 바오로는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몸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음을 몇몇 구절(1. 9-10. 13. 22-23)에서 암시하면서도, 어느 곳에서 수인 생활을 하는지는 분명히 밝히지않았다. 하지만 그 장소에 따라 이 편지의 저술 시기가 결정된다. 첫째, 전통적인 견해로 바오로가 로마에서 가택 구금 상태에 있었다면(사도 28, 16. 30), 필레몬서의 저술 시기는 서기 61~63년이 된다. 하지만 노예 오네시모(Onesimus)가 주인 필레몬의 집에서 도망쳐 왔다는 상황으로 볼 때, 골로사이에서 힘든 육로 여행을 거쳐 장거리 항해까지 해야 하는 로마까지 갔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하다. 둘째, 당시 로마 총독이 머물던 가이사리아(Caesarea)에서 수인 생활을 하였다면(사도 23, 35 ; 24, 26-27), 저술 시기는 서기 58~60년이다. 로마보다는 가이사리아가 가깝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나왔지만,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셋째, 에페소로 볼 경우(1고린 15, 32 ; 16, 9 ; 2고린 1, 8-9 ; 6, 5 ; 11, 23-24 ; 로마 16, 7), 저술 시기는 서기 55~57년이다. 에페소는 오네시모가 1주일 정도 걸어서 가기에는 충분한 거리(약 168km)에 있으며, 바오로 또한 언젠가 자신이 풀려나면 필레몬을 방문하리라고(22절) 마음먹을 수 있는 적당한 거리에 있다. 이 세 곳 중 가장 유력한 장소로 에페소를 꼽는다면, 필레몬서는 에페소 주둔 로마군 부대에 갇혀있던 바오로가 서기 55~57년에 썼다고 할 수 있다.
〔저술 의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인 필레몬에게로부터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주인에게 돌려보내면서, 오네시모 편에 편지를 써 보냈다. 편지에 적힌 내용을 보면, 필레몬이 오네시모를 해방시켜 자신에게 되돌려 보내 주기를 바란 것인지, 아니면 오네시모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그를 바라보라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바오로가 사용한 수사학적 표현들을 통해, 어떤 의도로 필레몬서를 썼는지 추측해 볼 수는 있다.
바오로는 내심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자신의 곁에 두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쓸모 있게- '오네시모' 라는 이름 자체가 '쓸모 있는 자' 라는 뜻이다-쓰고 싶어하였지만(13절), 오네시모의 법적 권리가 필레몬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그를 돌려보내기로 마음먹는다(14. 16절). 오네시모를 돌려보내지 않을 경우 언젠가 당국에 붙잡힐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바오로 또한 그의 도주를 방조하였다는 혐의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필레몬에게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앞세우기보다는, 그가 자신을 받아들인 것처럼 오네시모도 "이제는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사랑스러운 형제로"(16절) 받아들이기를 호소하고 있다. 오네시모가 옥중에 있는 바오로에게서 복음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10절의 "나의 자식"), 노예라는 사회적 신분을 떠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오네시모가 형벌을 받지 않게 해 달라는 바오로의 부탁이 은연중에 담겨있다. 더욱이 바오로는 오네시모가 손해를 끼친 몫까지도 자신이 갚겠다고 약속하고, 더 나아가 "나는 주님 안에서 그대로 인하여 기쁨을 얻고자 합니다" (20절)라는 말로, 오네시모가 자신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비치고 있다. 그는 필레몬이 오네시모를 해방시켜야 된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며, 그저 필레몬의 결정이 사랑에서 나오기를 바라면서 오로지 필레몬의 몫으로 남겨 둔다. 골로사이서를 보면, 필레몬서의 의도가 이루어진 듯하다. 왜냐하면 바오로가 "내가 말한 것 이상"(21절)이라는 말로 암시한 내용으로 미루어 바오로의 뜻대로 필레몬이 행하였다는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필레몬은 오네시모가 바오로의 협력자가 되도록 그를 노예에서 해방시켜 준 것이다.
〔구 성〕 필레몬서는 바오로의 다른 친서들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
1. 인사(1-3절)
2. 감사와 기도 : 필레몬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4-7절)
3. 구체적 사연 : 돌아온 오네시모를 환영하라고 필레몬의 자비에 호소하고 오네시모가 바오로에게 쓸모 있는 이가 되게 하라는 암시(8-20절)
4. 끝인사 : 마지막 당부와 인사 그리고 축복(21-25절)짧은 지면 안에서도 다른 친서들과 거의 같은 형식의 문안 인사로 끝맺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곧 여행 계획과 개인 인사 그리고 끝기도(축복) 순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바오로 교회 공동체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이 필레몬이 옳은 일을 하도록 확신을 주려는 바오로의 수사학적 전략이라는 사실도 알게해 준다.
〔가정 교회〕 바오로의 편지에는 '누구의 집에 모이는 교회' (τὴν κατ’ οἶκον ἐκκλησία )라는 표현, 즉 '가정 교회' 를 일컫는 정식(formula)이 네 군데(로마 16, 5 : 1고린 16, 19 : 필레 2절 ; 골로 4, 15)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필레몬서이다. 필레몬서를 통해 초기 그리스도교 가정 교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가정 교회는 말 그대로 집(οἶκος)에서 모임(ἐκκλησία)을 가지는 그리스도교 운동의 최소단위였다. 따라서 집회만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었던 게 아니라, 어느 부유한 교우의 살림집이 바로 모임 장소였다. 이런 까닭에 사적 영역이었던 집안이 공적 영역의 기능을 하게 되었으며, 여성들 또한 성 역할이라는 고정 관념을 뛰어넘어 카리스마적 교회 안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비록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 교회 질서와 남성을 우위에 두는 사회 질서가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해도 말이다. 필레몬의 아내였을 압피아(2절)에 대한 정보는 이곳 말고 성서 어디에서도 알려주는 곳이 없지만, 필레몬과 함께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골로사이 교회의 충실한 구성원이었으며 가정 교회의 주관자로서 지도력을 발휘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가정 교회는 선교의 거점 내지 기반 역할을 하였으며, 복음 전도사들을 환대하였고, 교리 수업 장소로 쓰였으며(사도 5, 42), 세례, 안수, 성만찬, 예배 등 모임의 장소가 되었다. 또한 자선(구제)과 친교의 장소이기도 하였다(사도 9, 36-43). 가정 교회가 이러한 역할을 하다 보니, 가정 교회 주관자는 경제적 재원뿐 아니라 사회적 신분도 있어야 하였다. 집은 일반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방 하나의 오두막집 같은 형태가 아니라 손님 방(22절)을 갖춘 크고 넓은 형태였다. 더 중요한 것은 교우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예배를 드릴 만큼 큰 집이어야 했다는 점이다. 한 번에 30~4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고 보면 되겠다. "그대의 집에 있는 교회" (2절)는 가정 교회로서 초기 그리스도교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노예 제도〕 노예 제도는 로마 제국에서 공인된 사회 제도였다. 주인집(houehold)에서 도망친 노예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도적 떼가 되기도 하고, 주인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아주 멀리 도망치든지 아니면 은신처로 성전이나 신전을 찾았다. 도망친 노예를 추적하고 그들을 생포하거나 생포하는 데 도움을 준 이들에게 포상금을 주는 것은 관례였다.
고대의 집안은 기본적으로 가족, 친척, 고용인 그리고 함께 사는 노예까지 포함하는 사회 단위이자 경제 단위였다. 따라서 고대에서 경제라 함은 집안 경제를 뜻하였으며, 이런 의미에서 필레몬이 손해 본 것에는 오네시모의 몸값과 그가 훔쳐 간 것(18절)뿐 아니라 그 노동력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도망친 노예에게는 낙인을 찍는다든지 철로 수갑을 채우거나 사슬로 묶었고, 심지어 광산으로 보내기까지 하는 엄중한 처벌이 내려졌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던 바오로는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주인 필레몬에게 돌려보내지 않을 수 없었으며, 로마법에 따라 그래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는 오네시모를 주인 필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그를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함으로써(18-19절), 자신이 노예 주인의 권리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음을 암암리에 시인하고 있다. 즉 바오로는 노예 제도를 기정 사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1고린 7, 20-24). 이러한 태도는 갈라디아서 3장 26-28절에서 주장하였던 파격적인 동등성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는 노예 제도가 존재하는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동등성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자유인이나 노예나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히려 부르심 받았을 때의 처지에 머물러, 부름받았을 때 종이었으면 종으로서 최선을 다하라고 할 뿐이다(1고린 7, 21). 왜냐하면 주님 안에서 부름받은 종은 이미 주님에 의해 해방된 몸이기 때문이다(1고린 7, 22).
〔신학적 가르침 및 중요성〕 필레몬서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내용이 부족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실천 신학으로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신학적 가르침으로서, 그리스도교적 믿음은 사랑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전하고 있다. 사랑을 실천한 이로 이미 이름이 나 있던(5. 7절) 필레몬은 오네시모를 "사랑스러운"(16절) 형제로 받아들이기를 요청받는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종도 자유인도 없는"(갈라 3, 28), '새로운 창조' 로 부름받은 바오로와 필레몬처럼 오네시모도 그들과 동등한 관계에 있으므로, 필레몬은 하느님 보시기에 자신과 동등한 이로 노예 오네시모를 받아들이라는 부탁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필레몬서가 전하는 실제 가르침은 그리스도안에 계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근본적으로 동등하고 하나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문제는 그들의 인종에 따른 역사나 사회 · 경제적 신분, 혹은 성(性, gender)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백성으로서 우리가 보다 근본적인 존엄성을 갖는다는 사실에 있다. → 노예 제도 ; 신약성서 ; 옥중 서간 ; 필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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