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론, 알렉산드리아의 (기원전 20?~서기 50?)

Philon Alexandri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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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
유대교 신앙과 그리스 철학의 종합을 시도한 최초의 인물로, 플라톤주의를 교부들과 연결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유대인 필론' (Philon Judaeus)이라고도 하며, 영어로 더 유명한 그의 이름은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Philo of Alexandria)이다.
〔생 애〕 필론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팔레스티나에서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의 유대인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하였으며, 필론의 형제인 알렉산드로스는 알렉산드리아의 관세 담당관으로서 로마 제국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다. 서기 39년 이집트인들이 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하자, 필론은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공동체의 사절단을 이끌고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칼리굴라(37~41)를 찾아가 이집트인들과 동등한 시민권을 유대인들에게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황제의 윤허를 받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이 일이 그의 생애에서 유일하게 확인 가능한 역사적 사실이다.
〔저 술〕 예수 및 바오로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필론의 저서들은 교회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구약성서의 유대교적 세계와 헬레니즘적 철학에 관한 저술을 모두 남겼는데, 전자의 세계를 후자의 세계에 적용시키는 데 전 생애를 바쳤다. 또한 우화적 주석을 통해 모세 오경을 플라톤의 철학과 스토아 철학에 접목시켰다. 신약성서에서는 요한 복음서, 특히 1장 1-18절이 필론의 사상과 가장 근접해 있어서 교부들은 그를 그리스도교 신학의 선구자로 여겼다.
그의 작품은 주로 그리스어 원문이며 일부는 아르메니아 역문으로 전해지는데, 다음의 세 부류로 나뉜 다. 우선 필자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저작들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을 박해한 이집트 총독 《플라쿠스에 관하여》(In Flaccum), 필론이 사절단을 이끌고 칼리굴라 황제를 찾아간 이야기를 적은 《가이우스 사절단》(Legatio ad Gaium),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일대에서 금욕 생활을 하는 유대인 수도자들의 삶을 기술한 《명상 생활》(De Vita Contemplativa), 《유대 민족 변론》(Hypothetica), 《모세의 생애》(De Vita Mosis) 등이 있다.
둘째는 철학적 논술들로 다음 4편을 꼽는다. 《세계의 영원성》(De Aeternitate mundi), 하느님의 섭리를 주장하는 필론과 그의 조카로 여겨지지만 섭리를 의심하는 티베리오스 율리우스 알렉산드로스(Tiberius Julius Alexandros) 사이의 대화집인 《섭리론》(De Providentia, 아르메니아 역), 동물의 비이성적 영혼에 관해서 논하는 《동물론》(De Animalibus, 아르메니아어 역), 현자만이 자유롭다는 스토아 철학의 명제를 반대하며 선한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다고 주장하는 《선한 인간은 모두 자유롭다》(Quod Omnis Probus Liber sit) 등이다.
셋째는 모세 오경의 주석들로, 창세기와 출애굽기 문답 6편(Quaestioness et solutiones in Genesim et Exodum, 아르메니아어 역)과, 창세기 2-41장 주석 문집 18편이 있다. 그리고 모세 오경의 주제별 연구 7편이 있는데, 《천지창조》(De Opificio Mundi), 아브라함은 현자의 모범이라고 설명하는 《아브라함》(De Abraham), 정치인의 모범으로 설명되는 《요셉》(De Josepho), 그 자체가 기본법이라는 《십계명》(De Decalogo), 《율법 세칙》(De Specialibus Legibus), 《덕행》(De Virtutibus), 《보상과 처벌》(De Praemiis et Poenis) 등이다.
〔사상〕 필론의 신론을 집약하면,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지만 그 본질은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초월적이지만, 아울러 당신의 섭리로 세상과 인간을 다스리기에 내재적이라고 하였다. 그는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의 이데아론과 이스라엘의 신관(神觀)을 결합하여, 이데아는 하느님의 사유로서 천지 창조 이전에 맨 먼저 창조되었다고 하였다. 로고스는 이데아 중의 이데아 또는 이데아 전체로서, 천지 창조에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로고스에 힘입어 인간이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필론은 로고스를 신의 맏아들 · 신의 종 · 신의 모상이라고 불렀다. 한편 구약성서를 풀이할 때 이른바 우의적(寓意的) 해석 방법을 사용하여, 구약성서에서 그리스 철학 사상을 찾아내기도 하고 자신의 신비주의적 사상을 뒷받침하기도 하였다. 우의적 해석 방법은 성서 본문에 문자적 의미를 뛰어넘는 심오한 뜻, 즉 상징적인 뜻이 함축되어 있다는 견해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신화나 우화를 풀이할 때 이 방법을 즐겨 사용하였고, 필론을 비롯한 알렉산드리아의 유대계 학자들도 이 방법을 애용하였다.
[영 향] 필론의 영향으로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 150?~215?), 오리제네스(Ongenes, 185~253) 등의 교부들도 우의적 해석 방법으로 성서를 풀이하였다. 특히 글레멘스는 그노시스주의(Gnosicismus)에 대해 설명하는 저서 《양탄자》(Stoomacis)의 이론과 주석 방법에서 필론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들과 니사의 그레고리오(Gregorius Nyssenus, 335?~395?), 암브로시오(Ambrosius, 339~397), 예로니모(Hieronymus, 347~419)는 필론의 작품들을 원본으로 갖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저술에서 활용하였다. 암브로시오는 '그리스도교의 필로' (Philo Christianus)라고 불릴 정도였다.
필론의 작품들은 많은 교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Eusebius Caesariensis, 260/265?~339)와 예로니모는 그리스도교를 위한 필론의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하여 그를 그리스도인처럼 생각하였다. 헬레니즘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필론은 유대교의 신학을 그리스도교에 넘겨주는 데 뛰어난 모범이 되었다. (→ 로고스 ; 알렉산드리아 학파)
※ 참고문헌  정 양모, 《위대한 여행, 사도 바울로의 발자취를 따라》, 생활성서, 2000, pp. 322~3251 M. Mach, 《TRE》26, pp. 523~531. 〔鄭良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