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갈

〔히〕הָגָר · 〔그〕Aγαρ · 〔라〕Agar · 〔영〕Hag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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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몸종으로, 아브라함의 첩이 되어 이스마엘을 낳은 여인.
하갈에 관한 자료는 창세기 16장과 21장에 설화 형식으로 언급된다. 이 두 설화는 아브라함의 본 혈통에서 곁가지인 하갈과 이스마엘을 제명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이야기로 본래부터 병행되어 내려왔으리라고 생각된다. 하느님이 약속해 준 후손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데서 생겨나는 갈등과 해소 방식을 잘 보여 준다.
처음 설화(16, 1-6)에서 하갈은 아브람에게 아이를 낳아 주지 못하는 사래의 이집트인 하녀로 등장한다(12, 1 이하). 아브람에게 후손을 주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아이가 들어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 때문에 사래는 자신의 몸종 하갈을 통해 후손을 보려고 한다. 이러한 관습은 고대 근동의 누지 문서를 비롯하여 창세기의 여러 구절에서도 입증된다(창세 30, 3. 9). 하갈은 태기가 있자 자기의 여주인 사래의 눈 밖에 날만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사래는 아브람의 허락을 받아 하갈을 거칠게 대하였으므로, 하갈은 브엘세바와 이집트의 중간에 있는 수르(Shur) 광야로 도망쳤다. 결국 뒷수습은 하느님께 맡겨진다. 샘터에서 만난 야훼의 천사는 아브람에게 해 준 약속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전망을 열어 준다. 지금은 고
통스럽겠지만 그 고통을 다 겪고 난 뒤에는 아들을 볼 것이며, 그로부터 많은 후손들이 나올 것이라고 하갈에 게 약속해 준 것이다. 아울러 하느님이 그녀의 고통스러운 외침을 들었기 때문에 그 아들의 이름은 "이스마엘" (יִשְׁמָעֵאל), 하느님께서 들으셨다)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 이 예고대로 이스마엘은 '들나귀 같은 사람 , 즉 격
렬하고 호전적인 사람이 되었다. 하갈은 그 샘을 '브엘-라하이-로이' (בְּאֵ֥ר לַחַ֖י רֹאִ֑י, 나를 보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샘)라고 명명한다. 이로써 하갈도 아브람의 씨받이 여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자신을 늘 지켜 보시 고 계심을 체험한 여인이 되었다.
두 번째 설화(21, 8-21)는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나서 몇 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보인다. 본문상에는 분명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하갈이 하느님을 체험한 후 다시 아브람에게 돌아왔음이 전제되어 있다. 그동안 아브람과 사래도 하느님 체험을 통해 아브라함과 사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연회에서 사라는 이스마엘이 젖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아들 이사악과 놀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하갈의 아들이 자신의 아들을 물리치고 상속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낼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하갈은 아들과 함께 브엘세바의 광야로 내쫓겼다. 가문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광야에 홀로 내쫓기는 것은 생존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음을 뜻하며, 실제로 하느님의 천사가 그녀를 우물가로 안내할 때까지 이스마엘의죽음은 거의 확실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에 하갈은 하느님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외침만이 아니라 이스마엘의 자지러지는 울음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천사는 하갈에게, 하느님이 이스마엘의 울음 소리를 들었으므로 그는 죽지 않을 것이며 강대한국가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을 열어 주었다. 그 전망대로 이스마엘은 자라나 바란(Paran) 광야에 살게 되었고 뛰어난 궁수가 되었으며, 이집트 여인과 결혼하였다.
이러한 하갈 전승은 하그리인들이 팔레스티나 남쪽에 거주하는 거칠고 호전적인 베두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유 대인들의 생각을 반영해 준다(1역대 5, 10. 19-20 ; 시편 83, 6). 사도 바오로는,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은 옛 언약의 노예를 상징하고 사라와 그 아들 이사악은 새 언약의 자유를 상징한다는 식으로 하갈 설화를 우의적으로 풀었다(갈라 4, 21-31). (→ 아브라함 ; 창세기)
※ 참고문헌  E.A. Knauf, 《ABD》 3, pp. 18~19/ 《성서백과대사전》 12, 성서교재간행사, 1982, pp. 25~28. 〔李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