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Contanitinople, 현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동로마 제국 시대의 성당.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527~565)의 지휘로 건축되었으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스어 '하기아 소피아' (ἁγία σοφία)는 '거룩한 지혜' 라는 의미이다.
〔약 사〕 390년 바실리카 양식으로 된 나무 지붕의 작은 성당으로 지어졌던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아르카디우스 황제(395~408) 때인 404년에 화재로 전소되었다. 이후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408~450)가 성서에 나오는 '지혜' 를 의인화하여 415년에 두 번째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완공하였으나, 532년 1월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게 반기를 든 세력이 폭동을 일으켜 성당을 불태웠다. 당시 전차 경주 단체이면서 정치적 · 사회적 성격을 갖춘 청색당과 녹색당이 있었는데,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황제로 즉위하기 전에는 자신의 정책을 지지하는 청색당을 비호하고 반대파인 녹색당과 대립하였다. 그러나 황제가 된 후에 분란의 원인이 되고 민중적 · 정치적 압력 단체가 되기 쉽다는 이유로 두 당파를 모두 탄압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두 당이 세력을 규합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 때 폭도들이 승리의 여신 니케를 외쳤다고 해서 '니카 반란' (Nika insurrection)이라고도 한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반란을 진압한 후 밀레도스 출신의 이시도로스(Isidoros)와 트랄레스(Tralles) 출신인 안테미오스(Anthemios)를 시켜 532년 2월 23일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신축하기 시작하였다. 황제는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가장 훌륭한 성당을 건축하고 싶었기 때문에, 귀한 건축 자재를 제국 각지에서 운반하여 왔다. 당시의 역사가인 프로코피오스(Prokopios, ?~565?)에 따르면 제단(sanctuarium)을 장식하기 위해 4만 파운드의 은(銀)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당시 최대의 성당을 건축하는 이 사업에는 5년 10개월 동안 1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동원되었다. 537년 12월 27일 봉헌식을 거행하고자 성당에 입장하던 황제는 너무나도 감격한 나머지 "솔로몬 대왕이시여, 내가 당신을 이겼소"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임금이었던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보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이 더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한편 553 · 557 · 559년의 연속된 지진으로 중앙 돔의 좌우 대칭이 무너지자, 황제는 그것을 2.65m나 더 높여 563년 현재와 같이 다시 만들었다. 동로마 제국 시대에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황제의 대관식과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그리고 정교회의 대축일에는 총대주교가 주례하는 전례에 황제가 참석하였다. 하지만 그 영광만큼 이 성당은 많은 고난을 겪었다. 8~9세 기경 성화상 파괴 운동이 일어나자 많은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들이 손실되었으며, 1204년에 일어난 제4차 십자군 전쟁 때에는 십자군 병사들의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술탄 메흐메트 2세(Mehmet II, 1444~1446, 1451~1481)는 이곳을 모스크로 만들었다. 그리고 성당의 수많은 인물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가 이슬람의 계율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두께 5cm 이상의 회색 횟가루로 덮어 버렸다. 그러나 1935년 2월 1일 터키의 초대 대통령인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 1881~1938)는 이곳을 박물관으로 바꾸면서 복원 공사를 시작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모자이크를 파내지 않았었기 때문에 미국 고고학 팀의 복원 작업을 통해 마침내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모자이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모스크로 사용하던 기간 중에 성당 주변에 4개의 이슬람 첨탑이 더해졌고, 성당의 중심은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 방향으로 변경되었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완공 후 천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으나 지금은 로마의 베드로 대성전, 런던의 바오로 주교좌 성당, 세비야의 주교좌 성당, 밀라노의 주교좌 성당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성당이다. 이 성당에서는 553년에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개최되어 삼장서(三章書, Tria Capitula)에 대한 단죄가 이루어졌으며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681)와 제4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869~870)도 개최되었다. 그리고 1054년에 동방 교회의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황 대사인 훔베르트(Humbert a Silva Candida, 1000?~1061) 추기경이 성당 제대 위에 체룰라리우스(M. Cerularius, 1000?~1059) 총대주교를 파문한다는 문서를 두고 떠난 것으로 시작된 동방 이교(東方離敎, Schisma Orientale)사건도 이 성당에서 일어난 일이다.
〔내 부〕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삼랑식(三廊式) 바실리카 양식에 거대한 돔을 올린 원개식(圓蓋式) 성당이다. 중앙 돔의 직경은 30m, 높이는 55.60m, 너비는 31.36㎡이며, 황제만이 드나들던 중앙 출입문에서 제대 뒷벽까지의 길이는 79.30m, 성당 전체의 길이는 약 100m이고 성당의 총면적은 7,570㎡이다. 중앙의 큰 돔을 중심으로 작은 돔들이 서로 크기와 높이를 달리하며 구성된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인 건물로, 그후 이슬람 건축 양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성당 1층에는 107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그중 성당의 2층 갤러리를 받치고 있는 1층의 갈색 기둥 8개는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에페소(Ephesus)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옮겨온 것이고, 붉은 대리석 기둥 8개는 로마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 밖에 이집트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태양 신전, 레바논 바알베크(Baalbek)의 여러 신전에서 가져온 돌기둥들도 있다. 입구를 통해 바깥 복도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중앙에 있는 <황제의 문>과 마주치는데, 전설에 의하면 노아의 방주에서 가져온 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성당의 입구에 서서 천장을 올려다 보면 성모 마리아와 그 품에 앉아 있는 아기 예수 그리고 그 오른쪽에 가브리엘 천사가 그려진 모자이크를 볼 수 있는데, 모두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2층 갤러리에는 <천국과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그 문을 통과하면 중앙에 예수 그리스도, 왼쪽에 성모 마리아, 오른쪽에는 세례자 요한을 묘사한 커다란 모자이크가 있다. 이 모자이크는 성모 마리아와 요한 세례자가 신자들을 위해서 '간구' (Deesis)하는 모습이다. 이 모자이크의 맞은 편에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십자군의 사령관이자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1192~1205)였던 단돌로(E. Dandolo, 1107~1205)의 무덤이 있다. 북쪽 방향의 벽에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였던 요한 그리소스토모(Johanness Chrisostomus, 344/354?~407)와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Ignatius Antiochenus, 35?~107) 등 초대 교회 교부들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성화상 파괴 논쟁(726~843) 이후에 만들어진 모자이크 중에서는 황제 콘스탄티누스 9세(1042~1055)와 예수그리스도, 조에(Zoe, 978?~1050) 황후를 그린 모자이크도 있다. 이 모자이크에서 예수는 왼손에 성서를 들고 오른손을 들어 강복하고 있으며, 콘스탄티누스 9세는 예수에게 돈주머니를 바친다. 조에 황후는 동로마 제국의 역사상 가장 악한 황후로 평가되는데, 그래서인지 예수의 눈동자를 자세히 보면 황후를 노려보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자이크를 담당하였던 예술가는 이런 식으로 조에 황후를 단죄한 듯하다.
한편 황제 요한 2세(1118~1143)와 성모자, 황후 이레네(Irene)를 나란히 묘사하고 황태자인 알렉시오를 따로 그린 12세기의 모자이크도 일품이다. 황제와 헝가리의 왕 라디슬라오(Ladislaus, 1077~1095)의 딸인 이레네 황후는 둘 다 신심이 깊었고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성당의 전실(前室) 옆문으로 나오다가 뒤돌아보면 박공에 매우 아름다운 10세기 모자이크가 있는데, 여기에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의 모형을 들고 있고, 가운데 성모 마리아는 예수 아기를 안고 어좌에 앉아 있으며,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306~337)는 콘스탄티노플의 모형을 들고 있다. (→ 가톨릭 건축 ; 동방 이교 ; 체룰라리우스, 미카엘 ; 콘스탄티노플 ;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 참고문헌 Sabahattin Turkoglu, Hagia Sophia, Istanbul, 1983/ L.Jones, 《NCE》6 2003, pp. 611~612/ 정양모, 《위대한 여행 -사도 바울로의 발자취를 따라》, 생활성서사, 1997. 〔鄭良謨〕
하기아 소피아 성당
— 聖堂
[영]The Church of Hagia So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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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기아 소피아 성당 전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