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깨서

— 書

〔히〕 חגי · 〔그〕Αγγαιος · 〔라〕Prophetia Aggaei · 〔영〕Hagg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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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에서 발견된 하깨서 일부(왼쪽). 하깨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대사제 예수아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성전 재건을 촉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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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에서 발견된 하깨서 일부(왼쪽). 하깨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대사제 예수아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성전 재건을 촉구하였다.

구약성서의 열두 소예언서 중 하나. 두 장, 서른여덟절로 짧게 구성되어 있지만, 이 예언서는 구세사에서 큰역할을 하였다.
〔예언자 하깨〕 하깨는 즈가리야 예언자와 함께, 폐허로 방치된 성전을 복구해야 한다고 당시의 유다 총독 즈루빠벨과 대사제 예수아와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역설하였다(에즈 4, 24-5, 1 ; 6, 14 ; 즈가 1, 16). 하깨서가 전하듯이, 그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성전 재건의 필요성을 호소하자 바로 공사가 시작되어 4년 만에 끝난 것으로 보아, 성전에 대한 열정만이 아니라 그의 권위도 매우 컸던 것 같다.
예언서에서는 통상 첫머리에 예언자의 가문이나(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호세아, 요엘, 요나, 스바니야, 즈가리야) 출신지를 밝히는데(미가, 나훔), 열두 소예언자 가운데에서 열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하깨는 그러한 소개 없이 '예언자' 로만 불린다. 에즈라서에서도 하깨가 두 번 언급되는데(5, 1 ; 6, 14)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이는 그 신상을 알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예언자의 개인사는 추측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깨(חַגַּי)라는 이름은 '(순례) 축제' 를 뜻하는 '하그'(חַג) 또는 '(순례) 축제를 지내다' 를 뜻하는 '하가그'(חָגַג)과 관련되어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축제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지냈기 때문에, 예루살렘 밖에 사는 이들에게 축제는 항상 순례까지 포함된 의미였다. 그래서 하깨가 성전 복구를 외칠 때 사람들은 그 이름의 의미도 함께 생각하였을 것이다.
하깨를 '예언자' 로만 부르는 것은 당시 즈가리야 외에 다른 예언자가 거의 없었음을, 또는 하깨가 이미 예언자 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또한 예언자 개인이 아니라 그가 선포한 말씀에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편집자의 의도가 담긴 것인지도 모른다. 하깨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기원전 520년 8월 말까지(1, 1)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또 같은 해 12월 중순(2, 10. 20)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사제들에게 정(淨)과 부정(不淨)에 관하여 문의하는 것으로 보아 사제 집안 출신은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성전과 전례 복구에 대한 열의를 생각해 보면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역사적 배경〕 기원전 587년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임금인 느부갓네살(기원전 605~562)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파괴한 뒤 임금과 왕족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을 사로잡아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그로부터 거의 50년뒤인 기원전 539년에 근동 전체의 정세를 뒤바꾸는 일대사건이 일어났다. 페르시아의 고레스(기원전 559~529)가 바빌론에 무혈 입성하여 신바빌로니아 제국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고레스는 기원전 538년에 칙령을 내려 그동안 바빌론에 잡혀와 살던 소수 민족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길을 열어 주었으며 종교의 자유까지 보장해 주었다. 이에 따라 마침내 일부 유대인들이 기원전 537년에 다시 고국 땅을 밟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 작업을 시작하지만(에즈 5, 16), 여러 가지 여건으로 기초 공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아무튼 성전은 기원전 520년까지 계속 폐허 상태로 방치되었다.
당시 유다 지방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다. 외국의 침략을 받고 나라가 멸망하여 기반 시설은 대부분 파괴된 채였고, 신바빌로니아 군대와 함께 또는 그들의 침략을 틈타 노략질을 자행한 주변 민족들의 해도 적지 않았다. 또한 기원전 525년에는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2세(기원전 529~522)가 대군을 이끌고 이집트를 원정하면서 많은 물품을 징발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잇달아 기근까지 들어(1, 11) 어려운 살림은 더욱 궁색해졌고, 유다 땅의 잔류민들은 성전이 파괴된채 방치된 모습을 이미 50년이나 보아 왔기 때문에 경비가 많이드는 성전 복구를 서두를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였다. 유배지에서 돌아온 이들도 경제적 여건 탓에 선뜻 성전 복구에 손을 대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상황도 좋지 않았다. 유배 이전 예루살렘 거리에서는 이슈타르(Ishtar) 같은 이방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고(예레 7, 17-19), 성전 경내에서는 담무즈(Tammuz) 신이나 태양신도 섬겼다(에제 8, 9-18). 하느님의 성소가 파괴되고 성직계급도 와해된 이러한 상태는, 유배 중과 유배 이후에 오히려 더 악화되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와중에 국제 정치에서는 근동을 다시 혼란으로 몰아넣는 사건이 벌어졌다. 절대 군주제 아래에서는 군주가 바뀔 때 정세가 특히 불안해지며 약소 국가들을 많이 거느린 제국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캄비세스 2세가 기원전 522년 이집트 원정을 마치고 귀국하다가 갑자기 죽은것이다. 캄비세스 2세의 군대는 왕족 출신으로 함께 출전한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2~486)를 황제로 추대하였지만, 페르시아 전역에서는 계속 반란이 일어나 기원전 520년에야 왕권을 온전히 다지게 된다.
그때 유다의 한 예언자가 이러한 사건을 하느님의 결정적 개입을 알리는 '시대의 표징' 으로 이해하였다. 정치적 변란은 이교도 통치의 종말과 메시아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며, 다윗의 자손으로서 유다 총독인 즈루빠벨(1역대 3, 17-19)을 머리로 하여 '다윗의 집안', 곧 메시아의 나라가 다시 일어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느님의 집' 이 먼저 복구되어야 한다. 에제키엘과 제2 이사야가 예고한 대로, 예루살렘을 떠났던 야훼 하느님(에제 10, 18-22)이 마침내 당신 백성에게로 돌아와 시온에 있는 당신 어좌에 좌정하실 때가 된 것이다(이사 52, 7-10 ; 에제 43, 4-5). 무기력과 절망의 땅에 생기와 희망이 돋아난다. 하느님의 백성이 50년 동안의 어둠과 침묵을 떨치고 다시 재생의 길을 걷게 된다. 하느님이 하깨를 통하여 "모든 백성의 영을 일으키신" (1, 14) 것이다. 축제가 없어진 땅에 축제 준비가 시작된다. 이러한 전환에는 '축제' 의 의미를 지닌 하깨 예언자가 결정적구실을 한다.
〔구성과 내용〕 하깨서는 다리우스 1세 재위 2년 곧 기원전 520년 8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선포된 예언자의 말씀과 백성의 반응을 담고 있다. 이 예언서가 짧기도 하지만 이렇게 단기간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예언서에서 유례가 없는 현상이다.
하깨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구성 요소는 다섯 번에 걸친 시점 제시이다. 항상 문단 첫머리에서 연월일을 밝히는데(1, 1 ; 2, 1 ; 2. 10 ; 2, 20), 두 번째에서만은 단락 끝에 나타난다(1, 15). 이 시점은 하느님의 말씀이 예언자에게 내려 그가 그 말씀을 선포한 때이다. 여기에서도 둘째 단락이 다른 단락들과 구분된다. 말씀의 내림과 선포가 아니라 그 말씀에 대한 순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구분이 쉽지는 않지만, 하깨서에서는 산문과 운문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운문으로 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전에 그 정황을 먼저 산문으로 밝히는 것이다(1, 1-3과 1, 4-11 ; 2, 1-2와 2, 3-9 ; 2, 10-13과 14-19 ; 2, 20과 2, 21-23). 산문으로만 되어 있는 둘째 문단(2, 12-15)은 예외를 이룬다. 이로써 하깨서는 다음과 같이 다섯 단락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 성전 복구의 촉구 : 1, 1-11(6월 1일)
나. 성전 복구의 시작 : 1, 12-15(6월 24일)
다. 새 성전의 영광 : 2, 1-9(7월 21일)
라. 부정과 성전 복구 : 2, 10-19(9월 24일)
마. 메시아 시대 : 2, 20-23(9월 24일)
예언자는 먼저(1, 1-11) '주님의 집을 지을 때가 되지않았다' 고 여기는 백성들에게 자신과 자기의 삶을 돌아보라고 촉구한다. 자신들은 제대로 된 집에 살면서 주님의 집은 무너진 채 있어도 괜찮은지, 빈곤한 생활과 가뭄의 이유가 무엇인지 반성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자 놀라운 반응이 일어난다(1, 12-15). 즈루빠벨 총독과 예수아대사제를 비롯하여 온 백성이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성전 재건을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열정은 일깨워졌지만 재정적 여건 때문에, 특히 옛 성전을 기억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복구하기 시작한 성전이 너무나 초라하게 보여 용기를 잃고 만다(2, 1-9). 이들에게 예언자는 당신 백성 가운데에 현존하겠다는 하느님의 언약을 상기시킨다. 그 하느님이 '새 역사' 를 시작하여 새 성전이 옛 것보다 더 영광스러우리라는 말로 백성을 격려하고 독려한다.
넷째 단락(2, 10-19)에서도 성전 복구 작업의 촉구가 계속된다. 지금까지 성전 재건축을 소홀히 한 것 때문에 백성 전체가 부정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하느님에게 합당한 제물을 바칠 수 없었다. 경제 활동도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전 재건에 착수한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진다. 성전 복구는 단순한 공사가 아니다. 백성이 하느님에게로 돌아섰다는 가시적 증거이다. 이제 하느님도 당신 백성을 돌아보고 그들에게 '복' 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로써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다(2, 20-23). 하느님이 이제 결정적으로 개입하여 이교도 통치를 끝내고 다윗의 자손 즈루빠벨을 메시아로 선택하여 새 시대를 열게 된다는 것이다.
〔의 의〕 여러 예언자들이 겉모습에만 치우친 제사를 비판하고 참 경신례(敬神禮)의 의미를 밝혔다. 미가와 예례미야는 허울뿐인 제사가 이루어지는 성전이 파괴되리라는, 당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사실을 예고하였다(미가 3, 12 ; 예레 26, 6). 이러한 예언서들에 비추어 볼 때, 성전 재건축과 제의(祭儀) 복구를 역설하며 모든 민족의 보화가 유다 땅 예루살렘으로 모아 들여지리라는 하깨 예언자의 말은 상당히 국수주의적이고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예언자는 본래 특정 시대의 구체적인 사람들에게 파견되어 바로 그때, 그곳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바를 선포하는 존재이다. 기원전 520년대의 유대인들은 광복의 희망마저 없었고, 경제적으로는 기근까지 들어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들었다. 종교적으로는 성전이라는 유일한 중심지가 파괴되어 경신례를 제대로 거행하지 못하는 데다, 민족 정체성의 바탕이 되는 야훼 하느님에 대한 신앙마저 혼합 종교와 우상 숭배로 생명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하느님 백성으로서, 한 민족으로서의 생존 자체를 위협받았다.
하깨는 이러한 위급 상황에 처한 유다인들에게 보내진 예언자이다. 그는 동포들에게 동물적 생존만 생각하지말고 자신을 돌아볼 것을, 삶의 바탕이 무엇인지 반성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당장 필요한 것은 신앙 공동체로서 행동하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이것은 곧 그들 사이에 부서진 채 방치된 성전의 복구를 의미하였다. 곤궁속에서도 성전 재건이 그들에게 힘을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이었으며, 복구된 성전과 전례는 하느님에게 선택된 민족으로서 새 삶을 살아가게 해 주는 생명력의 원천이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예언자는 동포들을 독려해 마지않았던 것이다.
하깨서는 넉 달이라는 시간의 한계가 설정되어 있다. 이 기간에 필요한 것은 성전 복구를 시작하고 바로 대두되는 어려움을 극복하며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하깨는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그리고 하깨서는 이 사실만 우리에게 전해 준다. 이것이 하깨 예언서의 목적이다. 다른 예언서들과 비교하면서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성전이 끝내 복구되지 못하여 유대인들이 계속 성전 없이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해볼 때, 하깨 예언서의 의의는 더욱 두드러진다.
하깨가 성전이라는 건축물에만 관심을 기울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실의에 빠져 제대로 살지 못하는 하느님의 백성에게 용기를 북돋으며 그들의 "영"을 일깨운다(1, 14). 그들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이 '함께함' 을 밝히는 것이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는 둘째 단락(1, 12-15)의 의의이다.
하깨서에 예고된 메시아 시대가 말 그대로 도래하지는 않았다. 하깨서의 최종 편집자도 그것을 잘 안다. 그러나 '예언' 은 미래의 일을 맞추었느냐 못 맞추었느냐가 아니라 하느님이 계획하신 미래를 향해 하나의 문을 열었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어둠과 실망 속에 살던 하느님의 백성은 새로운 활기와 희망을 가지고 그 문을 통하여 하느님의 미래로 나아가며 마침내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진다. (→ 구약성서 ; 성전 ; 예언서)
※ 참고문헌  W. Neil, 《IDB》2, pp. 509~511/ R.L. Smith, MicahMalachi. Word Biblical Commentary 32, Waco-Texas, Word, 1984/ D.L.Petersen, Haggai and Zechariah 1~8 The Old Testament Library,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4. 〔任承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