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말씀

〔그〕ὁ λόγοσ τὸν θεόν · 〔라〕Verbum Dei · 〔영〕Word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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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모세에게 말씀을 집약한 십계명을 주셨다. 사울(왕좌에 앉아 있는 이)은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다윗은 순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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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모세에게 말씀을 집약한 십계명을 주셨다. 사울(왕좌에 앉아 있는 이)은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다윗은 순종하였다.

모든 피조물의 존재와 생명의 기원으로, 창조 때 하신 하느님의 말씀이자 예수 그리스도. 동시에 지혜의 근원이고 모든 만물을 주관하는 영원한 법칙이며,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생활의 지침인 율법. 성서의 내용 역시 모두 하느님의 말씀이다. 또한 교회는 성서에서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1데살 2, 13).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성서 안에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과 만나시며 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시기"(계시 21항) 때문이다.
성서는 "한 처음에…말씀하셨다"(창세 1장)라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시작하여,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한다" (묵시 21, 5)라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 은 성서 전반에서 발견되며, 성서에 등장하는 여러 작품들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꾸며져있다. 비록 인간의 손에 의해, 인간의 언어로 쓰여졌지만 하느님의 계시(啓示)에 의한 것이기에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 하느님은 당신의 계시를 통해 인간에게 글을 쓰도록 충동하였다. 부연하면, 일차적인 저자인 하느님은 이차적인 저자인 인간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여 당신의 말씀을 쓰도록 한 것이다. 성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각기 다른 인간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표현되기 때문에 다양하게 드러난다. 예를들어 하느님은 말씀을 통해 엄한 아버지처럼 백성을 강하게 훈계하는 분으로 나오지만, 때로는 자상한 아버지처럼 백성들을 염려하여 위로하는 분으로 나오기도 한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무엇을 말씀하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인간에 대한 교육(敎育)인 성서를 살펴보는 가운데 자명하게 드러난다.
〔구약성서에서의 의미〕 모세 오경에 드러난 하느님의 말씀 : 하느님은 부르심(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의 선조들을 선택하였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창세 12, 1)고 말씀하셨고, 이 부르심(말씀)으로 하느님과 아브라함과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이 부르심은 마치 주인과 종 사이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자유가 배제된 의무적인 부르심이 아니라 한 인간인 아브라함의 자유로운 응답(동의)을 기다리는 부르심으로, 아브라함이 이에 응답함으로써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계속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느님의 말씀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유대인들의 신앙 고백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한결같이 말씀을 통하여 땅에 대해 약속하고 당신이 이스라엘 역사의 주관자임을 드러냈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선조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은 결코 다른 신들과는 비교될 수 없으며 어디에서나 현존한다는 사실을 경험하였다.
하느님은 불붙은 떨기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 말씀' 으로 당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밝혔으며, 그에게 억압 받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할 사명을 주었다(출애 3장).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한 후 시나이 산에서 백성들에게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출에 20, 2)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자신이 이스라엘 역사의 주관자임을 스스로 밝혔다. 또한 그분은 당신의 백성에게 율법인 '십계명' (출애 20장 신명 5장)과 생활의 법규와 지침(레위 17-26장)을 주었다. 이 십계명과 생활의 법규와 지침에서 말씀하시는 주체는 하느님이고, 계명은 이스라엘 종교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이스라엘인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집약한 총체인 십계명(율법)과 생활의 법규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된다. 이 계명들의 근본 정신은 신명기에 나오는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신명 6, 4-5)라는 말씀에 잘 요약되어 있다. 결국 하느님의 말씀은 생활의 지침인 율법으로 발전되었다.
역사서에 드러난 하느님의 말씀-행동하는 말씀 : 구약성서에서 신명기계 역사서로는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 상 · 하, 열왕기 상 · 하권이 있다. 판관기는 왕정 시대가 시작되기 전 백성들을 이끌었던 판관들에 관하여 기록한 책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하자 하느님은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판관들을 일으켰으며, 이들은 하느님의 명(말씀)에 순종하였다. 사무엘 상 · 하권은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사무엘서에서 사울은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왕으로, 다윗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왕으로 소개된다. 이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이에게는 축복이, 불순종하는 이에게는 저주가 따를 것이라는 교훈을 후대에 남겨 준다. 이 역사적인 사실은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역사 속에 피상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말씀으로 존재하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열왕기 상 · 하권은 역대 왕들의 역사를 전하면서 왕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는 축복이, 불순종하였을 때는 저주가 따랐음을 밝혀 행동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강조하였다. 결론적으로 역사서에 드러난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 개개인의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살아 계시는 말씀이다.
예언자들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말씀 : 하느님은 예언자(נָבִיא, προφήτης)들의 입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은 공통적으로 "야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야훼의 말씀이 내게 내리셨다,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훼께서 하신 말씀이다"라 특수한 화법을 사용하여 자신들이 전하는 말씀이 '하느님의 말씀' 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하느님은 예언자들에게 환시나 꿈을 통해 말씀하셨고, 그 말씀의 대변자인 예언자들은 인간의 언어로 하느님의 뜻을 올바르게 전달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예언자(預言者)는 '미래를 말하는 자' 가 아닌 ~를 대신하여 말하는 자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언자들을 시대별로 구분하여,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려는 말씀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하느님은 유배 시대 이전의 예언자들(아모스, 호세아, 제1 이사야, 미가, 스바니야, 나훔, 하바꾹, 예레미야)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부패상을 강하게 비난하고, 회개하여 당신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였다. 둘째, 하느님은 유배 시대의 예언자들(에제키엘, 제2 이사야)을 통하여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벌을 내린 이유는 멸망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참된 구원을 주기 위한 것임을 말씀하시고, 이스라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하였다. 셋째, 유배 시대 이후의 예언자들(제3 이사야, 하깨, 즈가리야 등)은 성전 재건을 통하여 새로운 메시야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고, 이 희망은 하느님 말씀의 약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느님은 예언자들을 통해 당신의 백성이 잘못하였을때(유배 시대 이전)에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꾸짖지만, 당신의 백성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유배 시대)에는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고, 당신의 백성이 유배지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희망의 말씀을 건네주었다. 결론적으로 예언자들을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말씀은 배반한 이들에게는 회개를 촉구하고, 절망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위로와 희망을 전달하는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말씀이었다.
인격체인 하느님의 말씀 : 성서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는 달리 어떤 한 요소가 아닌 세상 질서(율법)를 주관하는 전체였다. 또한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어떤 객체가 아닌 인격적인 주체로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 하느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였으며(창세 1장), 지혜의 근원으로 묘사된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만물을 주관하는 영원한 법칙(집회 1, 5)이며,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하는 능동적인 주체자이다(이사 55, 11). 신약에서 특히 요한 복음사가는 말씀, 즉 로고스(λόγος)는 천지 창조 이전에 있었으며, 모든 것은 말씀으로 창조되었으며, 이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였다(요한 1장). 결국 지혜의 근원인 하느님의 말씀(구약)이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격화된 것이다.
〔신약에서의 의미〕 위격화된 하느님의 말씀 : 신약에서는 '하느님의 말씀' 의 대변자인 예언자들을 찾을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곧 인간을 위해 말씀이 되신 하느님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스스로를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칭하지 않았고, 부활 사건 이후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 혹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만 하였을 뿐 결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초대 교회 이후의 신학자들(히브리서, 요한 복음서, 요한 1서)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말씀' 이라고 칭하기 시작한 이래,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친교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와 같이 분리되지도 않고 소멸되지도 않는 단일성으로 받아들여졌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입니다"(요한 10, 30). 이러한 의미에서 아버지의 충만함 안에서 아버지와 하나이며 아버지 안에서 온전히 존재하는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특이한 성질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불렀다. 결론적으로 신약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위격화(Personilicatio)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뿐만이 아니라 행동(기적) 안에서도 그 신비가 드러난다.
복음서에 드러난 하느님의 말씀 : 복음서 자체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해도 복음사가들은 성령의 감도에 의해 하느님의 말씀을 진술하였으므로, 이를 예수의 삶에 초점을 두고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은 천사를 매개체로 하여 예수의 탄생과 신변에 일어날일들을 마리아와 요셉에게 알려 주었으며(마태 1, 20-21 ; 루가 1, 26-38), 그 이후 예수는 공생활 기간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말씀(복음 선포)과 행동(기적)으로 드러냈다.
첫째, 예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다운 복음을 선포하였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군중들에게 8가지의 참된 행복을 선포하였으며(마태 5, 3-12), 자신은 율법(하느님의 말씀)을 완성하러 왔다고 천명하였다(마태 5, 17-20). 그는 율법의 근본 정신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있으며(마태 7, 12 ; 루가 6, 31), 당신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하였다(마태 7, 24-27 ; 루가 6, 47-49). 그는 여러 비유를 통해서(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누룩의 비유, 보물과 진주의 비유 등 ; 마태 13장) 군중에게 종말에 있을 사건을 미리 말하였다. 이 복음 선포는 절망 속에 있는 이들에게는 위로의 말씀으로 다가오지만, 예수를 박해하고 법을 이용하여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들(예 :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절망의 말씀이었다. 군중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예수의 말씀(신약)은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신 하느님의 말씀(구약)과 동일하다.
둘째, 예수는 행동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계시하였다. 예수는 하느님 나라의 표지(標識)로 기적을 행하였다. 구약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유가 구원을 위한 것이었던 것처럼, 예수는 행동(기적)을 통하여 구원의 완성(하느님 나라)을 미리 맛보여 주었다. 예수는 병자들의 병을 고쳐 주었으며(루가 5, 12-16 등)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기적을 행하였고(마르 6, 30-44), 마귀를 쫓아내고(마태 17, 18) 열두 제자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주었다(마태 18, 18 ; 요한 20, 23).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은 당신의 아버지인 하느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요한 12, 50), 하느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다.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의 말씀 :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고 그 말씀에 응답하기 위하여 생겨났으며, 또한 그 말씀을 전달하기 위하여 탄생되었다. 초대 교회에서 사도들은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즉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여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고, 이 의무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하다(사도 4, 29)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성장과 하느님의 말씀 선포는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살아 있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다(사도 6, 7).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의 말씀은 구원의 말씀(야고 1, 21)이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요한 6, 68)이며 살아 있는 말씀(히브 4, 12)이다. 결국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 즉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으며,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증언함으로써 그 존재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
〔교리서에서의 가르침〕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아버지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유일한 '말씀' 이다. 성부는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말씀하였고, 그 말씀 외에 다른 말씀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교는 '하느님 말씀' 의 종교이다. 그리고 그말씀은 "글로 된 무언(無言)의 말이 아닌, 사람이 되시어 살아 계신 말씀"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8항). 이러한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의 전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전례 행위는 하느님의 말씀이 표현하는 것을 드러내기"(1153항)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말씀의 책(전례 성서), 말씀에 대한 존경(행렬, 향, 촛불), 말씀을 선포하는 장소(독서대),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성서 봉독, 말씀 선포의 연장인 사제의 강론, 회중의 응답(환호송, 화답송, 호칭 기도, 신앙 고백) 등 하느님 말씀의 표징들이 부각되어야 한다”(1154항). 전례 거행에 바탕을 둔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기도가 되도록 한다(1177항). 왜냐하면 "성령은 신앙인들이 받아들이고 실천하도록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이 되게"(1100항)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모든 신자들이 성서를 자주 읽도록 권고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읽을 때에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계시 25항). 사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느님의 말씀으로써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것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769항). 그렇기에 기도의 원천이 하느님의 말씀인 것은 분명하지만, 여러 가지 기도에 비해 특히 "관상 기도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구"(2716항).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게는 버팀과 활력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영혼의 양식 그리고 영성 생활의 순수하고도 영구적인 원천이 되는 힘과 능력이있다" (계시 21항). 그렇기에 신앙 안에서 살고, 성장하고 마지막까지 항구하려면 하느님의 말씀으로 신앙을 키워야 하며, 주님께 신앙을 키워 주시도록 간구해야 한다(마르9, 24 ; 루가 17, 5 ; 22, 32). 사실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숨결(성령)로 산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2835항). 그래서 "고해성사를 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양심 성찰을 해야 한다"(1454항). "양심의 형성에서 하느님 말씀은 우리의 길을 비추는 빛" 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앙인은 "신앙과 기도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양심을 성찰해야 한다"(1785항). → 로고스 ; 예수 그리스도 ; 예언 ; 율법 ; 하느님)
※ 참고문헌  Pietro Rossano . Gianfranco Ravasi · Antonio Girlanda eds., Nuovo Dizionario di Teologia Biblica, San Paolo, 1988/ Jacques Guillet, Une Dieu qui Parle(최영철 역, 《말씀하시는 하느님》, 성바오로출판사, 1994)/ 김정수, <하느님의 말씀—성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말씀>, 《사목》 4, 1968, pp. 16~24. 〔李勇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