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최고도의 실질적인 계시 진술. '형상' (形象) · '조상' (彫像)을 뜻하는 '모상' 의 표상으로,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가장 직접적인 관계성을 표현하는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총괄 개념. 현대 신학에서는 '하느님의 모상' 개념으로 그 본질인 '하느님과의 고유한 상응성' 뿐만 아니라 하느님 모상의 '삼중적 결과와 기능' 도 표현하는데. 그 삼중적 결과와 기능은 인간의 '내적 존엄성' , 타인에게 봉사하는 '위타적 존재성' , 그리고 자신이 위치해 있는 창조계 안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지상(地上)대리자로서 갖는 '통치권' 을 의미한다.
I. 어원과 개념 및 문헌학적 문제
〔어원과 개념〕 창세기 1장 26절에서는 모상을 가리키기 위한 두 단어, 곧 '첼렘' (צֶלֶם, 입상 · 조상 · 모상 · 형상)과 더무트' (דְּמוּת, 모사 · 형상 · 모상 · 같음 · 비슷함)가 사용되며, 이는 그리스어 '에이콘' (εἰκών, 모상 · 형상 · 상)과 '호모이오시스' (ὁμοίωσις, 같음 · 비슷함 · 유사성)로, 그리고 라틴어로는 '이마고' (imago, 모상 · 형상 · 상)와 '시밀리투도' (similituo, 비슷함 · 유사성 · 닮음)로 번역되어 신학에서 사용되었다.
히브리어 : 먼저 '첼렘' 의 어원을 살펴보면, 이 단어의 뿌리가 되는 동사의 어간(צלם)은 히브리어에 나타나지 않으며, 이스라엘 주변 세계의 셈족 언어들로 소급된다. 이 어간을 가진 동사는 유대교 아람어 · 팔미라(시리아 사막의 도시)어 · 시리아어에서는 '조상(彫像)을 비치하다' 를 뜻하며, 아랍어에서는 '잘라내다 · 베다 · 자르다 · 새기다 · 조각하다' 를 뜻한다. 그리고 히브리어 명사 '첼렘' 과 같은 뿌리를 지닌 명사들이 성서 아람어를 비롯한 셈족의 언어들에서 발견되는데, 그중 아카드어 명사 찰무 (salmu)가 특히 주목된다. 히브리어 명사 '첼렘' 에 상응하는 성서 아람어 명사 '철렘' (צַלְם) 또는 '첼렘' 은 '상' 을 뜻하며(다니 2, 31-32. 34-35 : 3, 1-18), 아카드어 명사 '찰무' 는 '입상 · 양각(Relief, 돋을 새김) · 표지 · 별자리 · 제의적 초상 · 입체적 모형' 을 뜻하고 전의(轉義)적 의미로는 '모상 · 모사' 를 뜻한다. 결국 명사 '철렘' 은 히브리어에서는 증명될 수 없는 셈어의 동사 어간(צלם, 잘라내다 · 베어내다 · 깎아 새기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며, '잘라내다 베다 · 자르다 새기다 · 조각하다' 를 뜻하는 아랍어 동사 '찰라마'(salama)와 '조상 · 입상' 을 의미하는 아카드어 명사 '찰무' 가 특히 이 사실을 입증해 준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 '첼렘' 과 함께 나오는 히브리어 명사 더무트 는 어원적으로 '같다 · 비슷하다' 라는 뜻을 지닌 동사 '다마' (דָּמָה)에서 파생되었다. 이 동사의 셈어적 어간(דמה)은 성서 밖에서는 제국 아람어(Reicharamäisch)에서만 발견되며, 성서 안에서는 히브리어 말고도 성서 아람어에 두번(다니 3, 25 ; 7, 5) 나온다. 성서 히브리어에서 이 동사는 칼, 니팔, 히필, 히트파엘의 어간형태로 나타나며, '같다 · 비슷하다 (칼 형태), '같게 되다' (니팔 형태), '같게 하다 · 대등한 위치에 놓다 · 견주다 · 비교하다 · 걸맞다고 여기다 · 계획하다 · 상상하다'(피엘 형태), '같아지다 대등한 위치에 놓이다' (히트파엘형태)라는 뜻을 지닌다. 이 동사 '다마' 에서 파생된 히브리어 명사로는 '더미' (דְּמִי, 절반), '디미온' (דִּמְיוֹן)가 비슷함 · 유사성), 더무트 (형상 · 모상 · 같음 · 유사성)가 있다.
그리스어 : 그리스어 역본인 70인역 성서는 히브리어 명사 '첼렘' 을 통상 '에이콘' 으로 옮기지만, 두 번은 '에이돌론' (εἴδωλον, 우상)으로 옮겼으며(민수 33, 52 ; 2역대 23, 17 : 병행 구절인 2열왕 11, 18에서는 '에이콘' 으로 옮김), '호모이오마' (ὁμοίωμα, 상 · 형상)로 번역하기도 하고(1 사무 6, 5) '튀포스' (τύπος, 형태 · 모형)로 옮긴 경우도 있다(아모 5, 26). 더무트 는 보통 '호모이오마' 로 번역되지만, 드물게는 '호모이오시스' 로(창세 1, 26), 그리고 '호모이오스' (ὅμοιος, 같은 · 비슷한 ; 이사 13, 4), '이데아 (ἰδέα, 외관 · 형태 · 형상 ; 창세 5, 3), '에이콘' (창세 5, 1)으로도 각각 1번씩 번역되었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라는 계시 진술은 구약성서 인간학의 정점에 위치한 진술로서 창세기의 사제계 문헌에 나온다. 그런데 하느님의 모형 내지 모상이라는 이 상념은 후기 유대교에서 지혜의 관점에서 받아들여지며, 이 점은 특히 지혜서 7장 25-26절에서 드러난다. 지혜서의 저자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알렉산드리아의 필론(Philon Alexandrinus, 기원전 20?~서기 50?)에게 있어서도 지혜는 하느님의 모형 내지 모상으로 정의되며, 로고스 또한 '에이콘 투 테우' (εἰκών τοῦ Θεοῦ, 하느님의 모상)라고 불린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인간학에서는 인간이 직접적으로 '하느님의 모상' 으로 표상되거나 '로고스의 에이콘' (로고스의 모상)으로 표상된다.
모상의 이런 이중적 의미는 신약성서에서도 입증된다. 한편으로 그리스도가 '에이콘 투 테우' 라고 정의되고(2 고린 4, 4 ; 골로 1, 15 ; 필립 2, 6),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자 영광이지만, 여자는 남자의 영광일 뿐이다(1 고린 11, 7). 신약성서에 나오는 이 '에이콘' 진술들의 배경에는, 구약성서 자체의 진술보다는 오히려 창세기 1장 26-27절에 대한 랍비들의 주석(1고린 11, 7 ; 야고 3, 9의 "호모이오시스" 참조)과 유다 헬레니즘의 로고스 사변 및 지혜 사변(2고린 4, 4 ; 골로 1, 15)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헌학적 문제〕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 라는 구약성서 인간학의 정점에 위치한 이 진술은 바빌론 유배 이후의 진술로서, 구약성서에서는 오직 사제계 문헌(창세 1, 26. 27 ; 5, 1 ; 9, 6)에만 나타난다. 중심구절인 1장 26절에서 하느님은 궁극적 창조 작품인 인간에 대한 결의를 문법적으로 '우리' 라는 복수 형태로 표현한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모상)으로 사람을 만들자." 여기서 '우리' 라는 복수 형태는 첫째로 '심사숙고의 복수' (Pluralis deliberationis)이거나, 둘째로 '천상궁정 회의의 표상' 과 연관된 복수이다. 그런데 하느님이 신적 존재들과 함께 천상 궁정 회의를 한다는 신화적 표상이 배경에 있다고 해석하는 둘째 견해(H. Gunkel, W.Zimmerli, G. von Rad)에 대한 반론(C. Westermann)에 따르면, 이 신화적 표상은 창세기 1장을 쓴 사제계 저자의 다른 성서 문헌에서는 발견되지 않을 뿐더러 사제계 저자의 유일신(Monotheisimus) 사상과도 모순된다. 그러나 이 반론은 다음과 같은 관찰로 반박될 수 있다. 즉 창세기 1장을 쓴 사제계 저자는 26절에서 하느님을 신화적 표상에 따라 복수로 제시하지만 27절에서는 신화적 표상을 자신의 유일신 사상에 따라 단수로 해석하였다는 것이다(F.J. Stendebach).
이 중심 구절(1, 26)에 나오는 두 개의 히브리어 정형 곧 '버찰메누' (בְּצַלְמֵנוּ : "우리의 모상으로")라는 표현과 '키더무테누' (כִּדְמוּתֵנוּ : "우리와 비슷하게")라는 표현에는 '첼렘' 과 더무트' 라는 두 개의 명사와 두 개의 전치사 '베트' (ב)와 '카프' (כ)가 사용되었다. 주된 정형은 '버찰메누' 이다(창세 1, 27 ; 참조 : 9, 6). 여기서 '첼렘' 은 '조상 · 입상' 을 의미하며, 전치사 '베트' 는 규범의 베트(beth normae : '~을 따라서' 또는 ~대로' 라는 규범의 의미를 지닌 전치사 베트)가 아니라 본질의 베트(beth essentiae: '~으로서' 또는 '~으로' 라는 본질의 의미를 지닌 전치사 베트), 곧 정체성의 베트(beth of identity)로 이해되어야한다. 따라서 히브리어 '버찰메누' 는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서' 또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라고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또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70인역 성서는 창세기 1장 26-27절에 나오는 이 히브리어 전치사를 규범의 베트로 이해하여 '카타' (κατά : ~을 따라서)라는 그리스어 전치사를 써서 "우리의 모상을 따라서" 곧 "우리의 모상대로"라고 번역하였다.
다른 히브리어 정형 곧 '키더무테누' 는 '버찰메누' 의 설명적 동격(explicative apposition)인데,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을 놓고 의견이 갈려 있다. 의미론적으로 볼 때, 그리고 창세기 5장 1절(5, 3 참조)에서 명사 '더무트' 앞에 전치사 '카프' 대신 '베트' 가 사용된다는 점에서, 히브리어 전치사 '베트' 와 '카프' 는 사실상 교환될 수 있다. 그리고 텔 페케리예(Tell Fekheriye)에서 출토된 기원전 9세기의 아람어 명문에서 '첼렘' 과 '더무트' 가 다른 종류의 문맥에서 보충적인 측면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어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창세기 1장 26절에서 첼렘' 과 더무트' 역시 동의어로 같은 의미를 지닐 개연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어 단어 '첼렘' 과 더무트' 를 번역한 그리스어 단어 '에이콘' 과 '호모이오시스 를, 그리고 라틴어 단어 '이마고' 와 '시밀리투도' 를 서로 다른 의미로 해석한 견해들이 교부 시대와 중세 시대의 사변에 큰 영향을 미쳤다.
II. 구약성서에서의 의미
〔종교사적 배경〕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되는 종교사적 병행구들의 전승사적(傳承史的) 중개 과정은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지만, 이 병행구들은 하느님 모상의 의미가 인간이 수행해야 하는 왕적 통치권의 과제와 연관된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무엇보다도 이집트 왕정의 전통에서 이 점이 확인된다. 기원전 1780년경부터 프톨레메오스 왕조(기원전 305~30) 시대까지 이집트에서는 신의 모상이라는 의미를 지닌 다양한 용어로 왕을 불렀다. 또한 왕의 직분을 근거로, 왕은 신의 아들이고 신과 닮았으며 지상에서의 신의 대리자라고 규정되었다. 소수의 예외가 있지만 많은 이집트 전거(典據)들에서 신의 모상이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지는 않았으며, 따라서 여기에는 하느님의 모상과 창조와의 관련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노동하는 인간을 창조한 후에 왕을 창조했다는 내용을 담은 신(新)바빌론 시대의 서판(기원전 1000~500년경)이 발굴된 이래, 그리고 기원전 13세기와 7세기에 아시리아에서 왕이 신의 모상으로 일컬어졌다는 점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종교사적 병행구들의 중개 과정에 더욱 주목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비록 구약성서가 이스라엘의 왕에게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을지라도,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후에 정리되었을 창세기 1장이 모든 인간의 '하느님 모상성' 을 이야기한다는 사실은, 왕을 신의 모상으로 보는 고대 근동 사상이 이스라엘 왕정의 종식과 함께 하나의 민주화(Demokratisierung)된 왕적 통치권의 상념으로 발전하여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두 유형〕 오늘날 창세기 1장 26-27절의 해석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두 가지 기본 유형(Grundmodell)이 제시되어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인간을 비(非)정신적 피조물에 대한 통치 임무를 부여받은 지상에서의 하느님 대리자로 보며, 두 번째 유형은 인간을 하느님과 대화가 이루어질 만큼 그분을 마주 대하고 있는 존재로 이해한다.
첫째 유형 : 이 유형은 폰 라트(G. von Rad), 헴펠(J.Hempel), 빌트베르거(H. Wildberger), 슈텍(0.H. Steck)볼프(H.W. Wolff), 프로이스(H.D. Preuss), 샤르베르트(J.Scharbert) 등에 의해 제시되었으며 근래에는 그로스(W.Gross)에 의해 옹호되었다. 그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인간이 동물들을 통치하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하였다. 청거(E. Zenger)는 그로스의 견해를 따르면서도, 창세기 1장 26b절과 28절에서의 목자의 은유를 첨가하여 인간의 목자적 통치를 강조하였다. 이 첫 번째 유형의 해석을 아렌호에벨(D. Arenhoevel)에 따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제계 저자는, 세계를 질서짓는 하느님의 창조 활동을 통해 그분을 에둘러 표현하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창조 활동과 하느님이 누구라는 것을 엄밀히 구별하지 않은 채 그 권능(Macht, 능력) 안에서 하느님이 누구인지를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방식으로 사제계 저자는 인간의 활동인 '비정신적 피조물에 대한 통치' 와 인간의 본질인 '하느님의 모상 을 엄밀히 구별하지 않은 채 인간이 행사하는 능력 안에서 인간의 본질을 본다. 즉 인간의 하느님 모상성은 인간이 세상을 통치하고 세계에 질서를 부여한다는 사실에서 전적으로 성립한다는 것이다.
둘째 유형 : 이 유형을 제시하는 학자로는 침멀리(W.Zimmerli), , 마아크(V. Maag) , 호르스트(F. Horst), 갈링(K. Galling), 루돌프(W. Rudolf), 로레츠(0. Loretz) 그리고 베스터만(C. Westermann)이 있으며, 그 밖에도 슈텐데바흐(F.J. Stendebach) 등을 꼽을 수 있다. 베스터만은, 인간 창조 이야기와 세계 창조 이야기는 본래 각기 다른 전승 노선에 속해 있었지만 나중에 하나로 결합됨으로써 "비정신적 피조물들에 대한 인간의 통치"라는 인간에 대한 규정이 덧붙여지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모상에 따른 인간 창조 이야기는 세계 창조 이야기로 부터 독립된 의미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하느님이 창조하기로 결정하신 것은 그분과의 관계 안에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관심사는, "하느님의 모상은 도대체 무엇에서 성립하는가?" 라는 물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에 따른 인간 창조 이야기에 나오는 상세한 규정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물음이다. 즉 두 번째 유형의 해석에서는, 인간의 한 자질(Qualität)을 의미하는 창조 행위의 상세한 규정이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하나의 사건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을 의미하는 창조 행위의 상세한 규정이 중요한 관심사이다.
〔첫째 유형의 해석〕 하느님 모상의 의미를 그로스와 청거의 주장에 따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그로스 : 창세기 1장 26절은 하나의 목적문(26b절 : "그가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을 사용하여 하느님의 모상이 동물들에 대한 다스림(Herrschaft, 통치권)에서 성립한다고 설명하였다. 이 목적문(26b절)에서 사용되는 히브리어 단어 '라다' (רדה, 다스리다 · 통치하다)는 무제한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왕다운 존엄성을 지닌 인간이 전체 창조계에 대한 하느님의 관리자로서 자신에게 맡겨진 동물들에 대해 신적 축복의 효력 안에서 책임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동물들에 대한 이 다스림 안에는 본래 동물 살생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지 않았다. 이 사실은 이미, 하느님이 순전히 식물들만을 인간의 먹거리로 지정해 주는 창세기 1장 29절에 드러나 있다. 동물을 다스리는 것이 그 살생을 포함하게 된 것은 노아 홍수 뒤의 일이었다. 그 이후 동물들을 다스리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의 다스림이 된다(창세 9, 2. 3). 그러나 이처럼 동물을 살생하는 것은 용인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살해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므로 엄격히 금지되고 배제된다(9, 5. 6). 사제계 저자는 그 이상의 내용적 명시화 없이 하느님의 모상을 다스림의 의미에서 기능적으로 규정한다. 그리하여 그로스는, "하느님의 모상" 개념에 대해 기능적 해석이 아닌 존재론적 해석을 통해 규명하려고 했던 지난 100년 동안(19세기 말~20세기 말)의 모든 시도는 창세기 1장의 필치에 적합지 않은 해석으로서 성공할 수 없는 시도들이었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면서 그는 초기 유대교의 주석과 랍비들의 주석이 이미 존재론적으로 해석했다고 강조하였다.
쳉거 : 쳉거는 그로스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하느님은 땅이 모든 생물의 주거지이자 삶 터로 계속 머물 수 있도록 인간에게 과제를 배정하며, 사제계 저자는 이 과제를 서로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두 가지 은유(창세 1, 26-28)로 표현하였다. 첫째 은유는 하느님 모상의 은유로서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이야기 안에 표현되어 있고, 둘째 은유는 목자의 은유로서 다른 생물들을 통치하라는 명령형으로 이루어진 축복의 과제 안에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먼저, 인간 존재의 근거 위에서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하느님 모상의 은유' 는 인간에게 삼중의 능력과 과제를 지시해 준다. 즉 첫째는 한 명의 왕처럼 창조계의 생명 질서를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는 능력과 과제이고, 둘째는 하나의 신상(神像, Götterbild)처럼 신적 활동의 권능이 지상에 현현하는 방식이자 신적 활동의 권능을 계시하는 도구로서의 능력과 과제이다. 셋째는 하느님과 특히 친밀한 관계에 있는 일종의 하느님 친족처럼, 곧 하느님의 아들처럼 자신이 태어난 고향 집이자 아버지 집인 세상(Welt)을 사랑으로 관리하고 가꾸는 능력과 과제이다.
사제계 저자가 하느님 모상의 은유로서 기능적 인간학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목자의 은유에서 입증된다. 그는 26b절에서 "다스리게 하자" 라는 목적문을 통해, 그리고 28절에서 "다스려라"라는 명령형을 통해 '목자의 은유' 를 '모상의 은유' 와의 연관성 아래 구사하였다. 고유한 의미에서 '라다' 는 목자가 자신의 가축 떼를 이끌고 이리저리 다니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목자란 가축 떼를 좋은 풀밭으로 이끌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사나운 맹수로부터 지키며, 같은 가축 떼 안에서도 힘이 약한 가축들을 힘이 센 가축들에게서 보호하고 가축들이 충분히 물과 먹거리를 섭취하도록 돌보고 보살피는 임무를 지닌 사람이다. 결국 사제계 저자는 기능적 인간학을 보여 주는 이 목자의 은유로써, 하느님 모상의 결과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모상의 본질을 제시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동물들을 다스리는 동물의 왕이자 목자라는 점에서 하느님의 모상이다.
〔둘째 유형의 해석〕 첫 번째 유형이 기능적 해석에 입각해 있다면 두 번째 유형은 말씀 중심적(worthaft)이고 인격론적(personlogisch)인 해석에 입각해 있다. 이 두번째 유형의 해석을 슈텐데바흐의 견해에 따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창세기 1장 26b절은 결과문이나 목적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결과문과 목적문, 이 둘 중 어느 경우든 26b절은 하느님 모상의 내용을 묘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정신적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통치권' 과 '하느님의 모상' 사이의 관련성은 오직 창세기 1장 26절과 28절에서만 성립할 뿐, 창세기 5장 3절과 9장 6절에서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창세기 5장 3절에는 아담이 자신의 모상을 따라서 한 명의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 말해질 뿐, 인간의 통치권(Herrschaft)과 관련된 어떤 언급도 없다. 이 점은 창세기 9장 6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즉이 구절에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사람의 피를 흘리게 만든 일에 대해 강력하게 응징하도록 경고할 뿐, 인간의 통치권과 관련된 어떤 언급도 없다. 이렇게 볼 때 창세기 1장 26절과 28절에서 보여지는 비정신적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통치권은 하느님 모상의 내용이 아니라, 다만 하느님 모상의 결과(Folgc)이거나 용도(Zweckbestimmung)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모상에 대한 해석은 창세기 1장 26-28절에서뿐만 아니라 창세기 5장 3절과 9장 6절에서도 타당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타당한 해석의 실마리는 창세기 1장 22절과 28절의 비교에서 발견된다. 창세기 1장 22절과 28절을 비교해 보면, 22절에는 온갖 수중 생물들과 새들에 대한 축복 말씀이 "따라서 ·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 다음과 같이"를 뜻하는 '레모르' (לֵאמֹר)에 의해, 곧 부사로 굳어진 부정사에 의해 도입되었다. 반면, 28절에는 인간에 대한 축복 말씀이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를 뜻하는 '바요메르 라헴' (וַיֹאמֶר לָחֵם)과 함께, 즉 상세하고 직접적인 표현의 말씀과 함께 나온다.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이 '말을 건넴' (Ansprech)의 상대자(Partner)로 지시된다. 즉 인간은 하느님을 마주 대하고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이 하느님에 의해 이런 방식으로 말 걸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위한 전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이 하느님을 마주 대하고 있는 존재로서 창조되었다" 라는 사실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진술 안에 이미 표현되어있다. 이 해석은 창세기 5장 3절에서도 마찬가지로 타당한데, "아담이 제 모상으로 아들을 낳는다" 라는 것은 "아담이 그의 아들을 마주 대하는 존재로서 낳는다" 라는 뜻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느님과 그분을 마주 대하는 인간 사이의 관계는 아버지와 그를 마주 대하는 아들 사이의 관계 안에서 계속된다. "하느님을 마주 대하는 존재" 라는 인간의 이 탁월성은 마침내 인간 생명의 보호를 위한 근거로 창세기 9장 6절에서 제시된다. 그런데 인간이 하느님이 말을 건네는 상대자라면, 이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유일무이하고 독특한 피조물인 인간에게 주어져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창세기 17장에서부터 실현되는 그 능력, 곧 하느님이 성조들과 함께하고 이스라엘과 함께하는 역사(歷史) 안에서 실현되는 바로 그 능력은 창세기 1장 26-27절에서 마련된 전체 인간의 지평 위에서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Ⅲ. 신약성서에서의 의미
하느님의 모상에 대한 교의적 표상의 신약성서적 뿌리들은 세 가지 범주들로 분류될 수 있는 '에이콘' 진술 안에 놓여 있다. 그 세 가지 범주란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그리스도' ,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 있는 믿는 이들',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인간' 이다.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모상으로 언급하는 고린토 후서 4장 4절은,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도록 믿는 이들에게 선사되는 체험적 인식을 묘사하는 4장 6절과 연관되어 있다. 이런 연관성 아래'하느님 모상' 의 주제는 종교사적으로 계시(Offenbarung)와 신현(Epiphanie)의 주제에 맥이 닿아 있으며, 따라서 하느님 모상의 의미는 계시와 신현의 맥락 안에서 파악될 수 있다. 골로사이서 1장 15-20절에 전해지는 찬가인 그리스도 찬가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맏이(1, 18b)인 그리스도의 구원론적 의미에 대해 칭송하면서 하느님 모상의 주제를 찬가의 시작(1, 15)에 사용한다. 이로써 이 찬가는 하느님의 모상이 구원론적 의미의 기초임을 부각시킨다. 초기 교회는 이미 알려져 있던 유대 사상의 유형(Modell)을 활용하여 하느님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와, 창조 또는 창조계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를 규정하고있다. 즉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우주에 대한 다스림에 간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시작에 나오는 장엄한 설교 형식의 수사학적 머리말(1, 1-4)은 아들을 "하느님 영광의 광채요 그분 본체의 표상"이라고 일컫는다(1, 3). 이 대목(히브 1, 3)에서 눈에 띄는 헬레니즘 철학의 개념들인 '아파우가스마' (ἀπαύγασμα. 광채, 반사된 빛)와 '카락테르' (χαρακτήρ, 표상 · 각인된 상)는 플라톤 철학의 개념인 '에이콘' 의 동의어들이다.
〔하느님의 모상인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 있는 믿는이들〕 로마서 8장 29절과 고린토 전서 15장 49절은 하느님의 모상을 미래적 완성과의 연관성 안에서 다룬다. 믿는 이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분 아들의 모상으로 형성될 것이고, 언젠가는 지상 인간인 아담의 모습 대신 천상 인간인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다. '원형-모형' 유형을 기초로 하고 있는 고린토 전서 15장 49절에는,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방향지어져 있는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은총 안에서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고린토 전서 15장 49절에 제시된 '아담-그리스도' 유형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실존에 참여하는 방식으로든 또는 '그분 자신이 곧 하느님의 모상 인그리스도에 신비롭게 동화되는 방식으로든, 은총 안에서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이렇게 볼 때 '에이콘' 진술에 나오는 '하느님의 모상' 개념은 불멸성 · 불후성(不朽性) · 영광 · 강함으로 진술되는 '완성' 가운데에 있는 인간을 표현한다(1고린 15, 43-44. 53-54). 그리스도인들 안에 각인된 '하느님의 모상' 의식(意識)은 고린토 후서 3장 18절에서, 믿는 이들이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주님과 '같은 모상' 으로 변형된다는 사상으로 나타난다. 이로써 바오로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은사 체험(charismatisches Erleben)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모상과 '같은 모습으로 된다' 는 사상을 표현한다(로마 8, 29 참조). 그런가 하면 골로사이서 3장 10절에서는 '옛 인간-새 인간' 이라는 논증의 틀 안에서 "자신의 창조주의 모상을 따라서" 라는 표어가 교훈적 문맥에서 수신인들에게 건네진다. 이 서간의 저자는 그들 자신의 '하느님 모상' (창세 1, 26 참조)이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으로 새로워졌음을 이런 논증 방식으로 수신인들에게 상기시킴으로써, 그들 자신의 새로워진 '하느님 모상' 에 상응한 윤리적 행위를 하도록 수신인들을 격려한다.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인간〕 고린토 전서 11장 7절에서 바오로는 여자가 베일로 머리를 가리는 문제에 대하여 하느님의 모상이요 영광이자 아내의 머리인 남자에 근거하여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하느님의 모상 개념을 일련의 복합적인 논증 고리(Argumentationskette)에 한정하여 다룬다. 즉 바오로는 이미 유포되고 있던 속담을 넘겨 받아 그의 미드라쉬적 설명 안에서 이것을 대인 논증(argumentatio ad hominem)으로 사용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모상을 문제삼는다. 그 당시의 유대교적 견해에 따르면, 가족의 머리인 남자는 '하느님과의 유사성' (Gottgleichheit, 하느님과 같음)의 자리였다. 여자를 비하하는 이런 경향에 대한 식별은 근대 사회적 여건들이 갖추어지기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졌다.
하느님의 모상에 대한 창조신학적 기반 위에 있는 신약성서는 이 창조신학적 기반을 그리스도론적으로 확장함으로써, 인간의 하느님 모상성을 그리스도론적으로 쇄신하고 확립하였다. '에이콘' 개념은 이를 위한 시대사적 · 문화사적 틀을 제공하였다.
VI. 신학사에서의 논의
〔고 대〕 하느님 모상의 성서적 사상은 초기 그리스도교 문학에 계속 전승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문학에서 하느님의 모상은 그리스도(<바르나바의 편지> 6, 12)는 물론 인간에게도 적용되었는데, 그렇게 적용되는 가운데 하느님의 모상은 이성(《제1 고린토 서간》 33, 4-8) 또는 불멸성(타시아노, 《그리스인들에 대한 연설》 12, 1)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어 하느님 모상의 의미에 대한 강조점이 그쪽으로 옮겨졌다. 리용의 이레네오(Ireneus Lugdunensis, 130/140?~202?)는 자연적인 모상(imago)과 초자연적 유사성(similitudo)을 구별하고, 전자의 측면에서 하느님의 모상은 상실될 수 없지만 후자의 측면에서는 하느님의 모상이 상실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이단 논박》 IV 38, 3-4) .그러나 하느님의 고유한 모상으로서 육화한 하느님의 아들(《이단 논박》 Ⅲ 18, 1)에 의해, "모상의 구원 경륜" 안에서 비로소 은총 가득한 "하느님 모상"이 회복되었다(《이단 논박》 V 16, 3). 테르툴리아노(Q.S.F. Tertullianus, 155?~230/240?) 역시 이 사상을 받아들였다(《성세론》 5). 이 두 교부는 하느님의 모상이 현저히 정신에 적합한 특성을 지닌다는 것을 받아들일지라도, 그노시스주의(Gnosticismus)를 거슬러 인간의 육신을 하느님의 모상 안에 포함시킨다. 아울러 이들은 하느님의 모상을 목적론적으로 그리고 역동적으로 이해하여, 인간의 완성을 위해 주어져 있는 윤리적 요청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신학자들에 의해 거듭 강조되었다. 그들에 따르면, 로고스 자신은 신적 원형이고 인간은 로고스의 모형이므로(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 《이교인들에 대한 권고》 98, 3), 영혼은 이성(λογικόν)과 자유(αὐτεξούσιον) 안에서 덕의 단련을 통해 로고스에 동화되어야 한다(오리제네스, 《철수스 반박》 8, 17). 그리고 그리스 교부들은 플라톤 철학의 '분여' (分與, participatio, 참여) 사상과의 연관성 아래 라틴 교부들보다 더욱 강하게 하느님의 모상을, 종말론적 완성을 향한 역동적인 질서지어짐으로 특징짓는다. 니사의 그레고리오(Gregorius Nyssenus, 335?~395?)의 《대교리 문답》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하느님 모상에 근거하여 하느님을 향한 항구한 성장의 방식 안에서 역동적으로 하느님 존재의 충만성에 참여한다.
〔중 세〕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는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주제 안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였다. 즉 삼위 일체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지성이 지닌 하느님의 모상성을 "기억(memoria) · 지성(intelligentia) · 의지(voluntas)" 로 정리한 것이다(《삼위 일체론》 VII 7, 11-12). 그는 또한 하느님 모상의 역동적 요소에 주의를 기울였는데, 그 까닭은 인간이 인식과 사랑 안에서 하느님에게로 향할 때(《고백록》 XIV 15, 12) 하느님 모상의 역동적 요소에 따라 비로소 충만한 의미에서 하느님의 모상을 획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교부들에 의하면 이 하느님의 모상은, 인류 전체의 단일성 때문에 남자에게만이 아니라 여자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오직 암브로시오(Ambrosius, 339~397)만이 일정한 '남성중심주의적 예외' 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초기 중세 시대에 이따금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초기 스콜라 신학은 일반적으로 아우구스티노를 따라 '이마고' 와 '시밀리투도' 에 대해 좀 더 존재적 · 윤리적 해석을 제시하지만, 하느님 모상의 그리스도론적 측면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베드로 롬바르두스(Petrus Lombardus, 1095~1160)는 하느님의 모상에 대한 이런 존재적 · 윤리적 해석을 받아들여 '이마고' 를 이성과 불멸성 안에서, 그리고 '시밀리투도' 는 거룩함과 의로움 안에서 봄으로써 둘을 구별하였다(《명제집》 II, d. 16, c. 3). 그런데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25~1274)는, 삼위 일체의 모상으로 여겨지는 영혼의 능력들 또는 그 능력들의 작용을 중심으로(《진리론》 10, 3) 존재론적으로 근거지어진 하느님 모상의 단계적 구조를 개진함으로써 하느님 모상의 존재적 · 윤리적 해석을 확대하였다(《신학 대전》 I, q. 93). 그러면서 그는 바오로 사상과의 연관성 아래 하느님의 모상을 '창조의 모상' (imago creationis), '재창조의 모상' (imago recreationis), '영광의 모상 (imago gloriae)이라는 삼중의 모상으로 구별하였다. 창조의 모상은 자연(natura, 본성) 상태에 있는 모든 인간들 안에서 발견되고, 재창조의 모상은 은총 상태에 있는 지상(地上)의 그리스도인들 또는 의인들 안에서 발견되며, 영광의 모상은 영광 상태에 있는 천상의 지복자(至福者)들 안에서 발견된다고 하였다(《신학 대전》 I, q. 93, a. 4 co.). 토마스와는 달리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17?~1274)는, 인간을 신적 원형에로 이끄는 향주덕의 실행과 관련하여 하느님 모상의 의지적 요소를 더욱 강조하였다(《명제집 주해》 Ⅲ,d. 25. p. 1, a. 1). 이 견해는 에크하르트(J. Eckhart, 1260~1328)와 독일 신비주의에 의해 더욱 승화되는데, 이에 따르면 하느님의 모상은 "영혼의 정점"에 위치해 있으며 내적으로 "그리스도의 형태로 되기" (Christusförmigkeit) 위해 그리고 "하느님의 형태로 되기" (Gottförmigkeit) 위해 상승한다(에크하르트,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르셨다 : 루가 10, 38>, 《독일어 설교집》).
〔근대와 현대〕 종교 개혁 신학은 루터(M. Luther, 1483~1546)의 견해에 의해, 하느님의 모상을 원초적 상태에서의 거룩함 및 의로움과 동일한 것으로 여긴 채 하느님의 모상과 원초적 상태에서의 거룩함 및 의로움이 죄로써 온전히 상실되었다고 말하지만, 프랑스의 종교개혁자인 칼뱅(J.Calvin, 1509~1564)의 주장에 따라 하느님 모상의 '나머지' 가 남아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 후 프로테스탄트 강단 교의학(Schuldogmaik)은 하느님 모상의 '나머지' 를 더욱 강력히 존재론적으로 확장하려고 추구하였고, 오늘날 한층 쇄신된 프로테스탄트 신학은 인격론적(personologisch) 개념들을 원용하여 이와 비슷한 길을 계속 추적한다(E. Brunner, P. Althaus, H. Thielicke).
그런데 죄에 대한 하느님 모상의 관계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교회 일치 차원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원초적 상태와 원죄교리 안에서 이 문제에 대해 종교 개혁자들이 부정적으로 답변한 이후 항상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에서 쟁점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부정적 답변의 경향을 거슬러 오늘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측에 의해 이루어진 성서 주석학적 노력의 결과로 일정한 의견 일치에 이르렀다. 이는 구약성서에 따르면'하느님의 모상은 인간에게 있어서 상실될 수 없는 것' 이라는 성서학자들(J.J. Stamm, K.L. Schmidt, G. von Rad, C. Stange 그리고 가톨릭 성서 주석학자들)의 인식 안에서 발견되며 이러한 견해는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조직 신학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하느님 모상의 의미를 새롭게 구명하려는 신학적 동향을 가톨릭 교의 신학 또는 조직 신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톨릭 조직 신학자 세프치크(L. Scheffczyk) 는 조직 신학에서 시도하는 하느님 모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하느님 모상의 의미를 전통적 설명으로부터 특히 가톨릭 신학의 경직된 전통적 설명과 차별화하여 부각시킬 때 가장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리용의 이레네오가 '이마고' 와 '시밀리투도' 를 분리해 전자를 자연적 하느님 모상에 연관시키고 후자를 초자연적 하느님 모상에 연관시킨 일은, 무엇보다도 스콜라 신학에서 지속되어 부정적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세프치크의 주장에 따르면, 특히 자연적인 모상은 은총을 향한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한 내적 역동성 안에서 이해되지 못하고, 순전히 정적 · 실체적으로 파악됨으로써 인간의 정신적 재능인 이성과 동일한 것으로 규정되어 왔다는 것이다. 오늘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현대 신학은 이를 비판하고 하느님의 모상에 대한 관계적이고 역동적인 견해를 발전시키고 있다. 곧 창조에 따라 이루어지고 그리스도론적으로 방향지어진 하느님의 모상은 하나의 부분적인 속성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언어적 · 대화적 관계성 안에 성립하는 인격적 기본 구조로 해석된다. 바로 이 점에서, 하느님의 모상은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실될 수 없는 차원의 것으로 남게 된다. 즉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끊임없이 이어 주는 '말걸기와 응답' 에 의해, 그리고 '말걸기와 거절' 에 의해, 인간은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교신' (unmittelbare Korrespondenz Zu Gott) 가운데 존재하게 되며. 인간의 인격적이고 역동적인 이 기본 구조 때문에 하느님의 모상은 인간의 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실될 수 없는 것이다.
V. 조직 신학에서의 의미
인간의 하느님 모상성은 인간에 대한 최고도의 실질적인 계시 진술이다. 그 진술 안에 충만히 담겨 있는 창조론적 · 그리스도론적 · 은총론적 · 종말론적 의미들 때문에 모상 개념에는 특별히 체계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오늘날 조직 신학은, 성서적 창조 사상에 근거한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총괄 개념인 이 모상 개념을 현실 안으로 가져와 현실과 화해시키는 작업을 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하느님의 모상' 개념이 지나치게 종교적으로 고답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난해해져 현실로부터 괴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성〕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지상에서 하느님을 대리한다' 는 구약성서의 사상과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모상으로 계시' 하는 신약성서의 구절들에 대한 성서 주석학적 연구 결과는 하느님 모상의 본질 규정을 위한 조직 신학적 발판을 제공한다. 하느님의 모상에 대한 성서의 진술들이 끼친 영향사를 살펴보면, 한때 하느님의 모상을 인간의 본질적 내용인 영혼이나 인간의 특수한 자질인 이성으로 파악한 적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하느님의 모상을 그렇게 '영혼' 이나 인간의 부분적 속성인 '정신적 능력' 으로 규정할 수 없게 되었다. 정신과 육신으로 구성된 온전한 인간, 곧 각각의 인간 전부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조직 신학에서는, 하느님으로부터의 인간 기원(起源)과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성에 근거하여 인격적 존재로서의 온전한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파악한다. 바로 이 점에서, 하느님의 모상은 지속적인 '말걸기와 응답' 가운데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인격적 존재로 정의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하느님 모상성은 하느님과의 직접성, 곧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고유한 상응성을 가리키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기본 구조를 보여 주는 이런 존재 규정 안에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반항 가능성도 물론 포함되어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에 대한 이 반항이 하느님을 향한 언어적 · 대화적 실존을 폐기하지는 않는다. 하느님의 모상을 두 가지 차원에서 구별하는 성서의 관점도 이 점을 또한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여기서 구별하는 성서의 관점이란'창조에 따른 하느님의 모상' 과 그리스도로 충만해지고 영으로 충만해진 '은총 가득한 하느님의 모상' 사이의구별(창세기 1, 26-27 ; 5, 3 : 9, 6 ; 2고린 4, 4 ; 참조 : 골로 1, 15)을 말한다.
〔역동성〕 하느님의 모상은 이런 관계적 특성 외에도, 인간의 구원 역사가 그리스도를 향해 방향지어져 있다는점에서 능동적 · 역동적 특성을 갖는다. 이는 인간의 역사적 성향과 역사적 특성에 상응하며, 따라서 하느님의 모상은 인간의 이런 '역사성' 안에서 실현된다. 그러므로 창조 신학적인 자연적 하느님의 모상과 그리스도론적인 은총적 하느님의 모상 사이의 성서적 구별을 잘못 해석하여, 하나의 모상을 기계적으로 둘로 분리하는 것으로 이해하거나 하나의 모상을 증축을 통해 더욱 크게 확장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고, 죄로 인해서도 상실될 수 없는 항구한 기본 구조와 그 내용적 성취 사이의 연관성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종말론적 특성〕 육화한 하느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일하고도 적합한 모상으로서, 인간의 손상된 하느님 모상을 회복하였을 뿐 아니라 더욱 드높였다. 이런 의미에서, 지상에서 하느님의 모상을 최고도로 실현할 수 있는 형태는 성사적으로 세례에 근거하여 인간이 육화한 하느님 아들과 결합하는 형태이다. 하느님 아들의 본질적 '하느님 모상' 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의 유사성은 정식으로 그리스도의 모상이 된다. 그러나 "그분 아들의 모상에 참여하는" (로마 8, 29 참조) 이 일은 그냥 주어지는 정적(靜的)인 사실로 생각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롭게 받아들여야 하는 과제로 생각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과제는, 인간이 부활에 의해 이루어질 '영광의 모상' 이라는 완성의 목표를 겨냥하여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끊임없이 심화하고 완성해야 하는 과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모상은 관계성과 역동성 외에도, 약속과 성취에 따라 질서지어진 하나의 종말론적 특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지상적 · 역사적 차원 위에서 인간이 '충만한 제2의 그리스도' 를 목표로 삼고 윤리적 성장을 추구하도록 지시를 받는 일(에페 4, 13 참조)은 하느님 모상의 종말론적 특성에 상응한다.
〔형상적 결과와 기능〕 하느님 모상의 형상적(形約)결과(formale Wirkung)와 기능에 대한 인식은 하느님 모상의 본질적 묘사로부터 생겨난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 동료 인간, 주위 세계와의 삼중 관계에 대한 인간의 하느님 모상성의 의미는 하느님 모상의 본질적 차원인 하느님과의 직접적 관계성을 토대로 해서만 비로소 규정될 수 있다. 여기서 하느님 모상의 본질적 차원이란 하느님과의 직접적 관계를 뜻하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고유한 상응성을 의미하며, 하느님 모상의 형상적 결과와 기능이란 하느님과의 고유한 상응성의 결과와 기능으로서 앞서 말한 삼중적 관계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하느님 모상성을 말한다. 첫째로, 인간 자신을 위해서 하느님의 모상은,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고유한 상응성으로부터 발생하는 최고의 내적 품위(dignitas, 존엄성)를 보증해 준다. 즉 인간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느님의 모상은 인간의 최고의 내적 품위로 정의된다. 하느님과의 직접성 또는 고유한 상응성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이 최고의 내적 품위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 인간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주위 세계와의 관계에서 모든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 둘째로, 동료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느님의 모상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위타성' (爲他性)으로 특징지어진다.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동료 인간과의 더불어 있음(Mitsein, 공동 존재)을 전제하고 또한 그런 더불어 있음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한, 하느님의 모상은 인간을 그리스도처럼 남을 위해 헌신하는 '위타적 존재' 로 만들어 준다. 끝으로 창조계 안에 위치해 있는 인간과 관련하여, 하느님의 모상은 인간을 창조계 안에서 하느님의 승고성(Hoheit, 주권)을 지닌 존재로, 곧 하느님의 통치권(Herrschaft, 다스림)을 분여(分與)받은 존재로 만들어 준다. 그러나 인간이 창조계 안에서 하느님의 승고성을 거슬러 행사하는 모든 자의적(恣意的) 통치권은 하느님의 모상을 손상하는 것이므로 그 의미에서 배제된다. 따라서 비정신적 또는 비이성적 피조물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느님의 모상은 지상에서 하느님의 관리자 내지 대리자 또는 목자로서 창조계를 자애로이 돌보고 보호하고 지키도록 인간을 의무지우는 '신적 승고성' (göttliche Hoheit) 곧 분여된 '신적 통치권' 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로써 인간의 하느님 모상성이야말로 그리스도교적 인간학과 세계관의 기초적 진술임이 입증된다.
VI. 윤리 신학에서의 의미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적 인간학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그분의 모상으로 창조되어 그분 앞에 마주 서 있는 인격적 존재이다. 신학적 인간학의 이러한 기본 진술은 인간이 탁월한 존재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에게 윤리적 요청인 당위(當爲, Sollen)가 부과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있어서는 존재(Sein)와 당위라는 두 가지 사이에 하나의 존재론적 동근원성(存在論的 同根源性, eine ontologische Gleichursprünglichkeit)이 성립한다.
〔의 미〕 신학적 인간학의 기본 진술인 '인간의 하느님 모상성' 은, 윤리적 관점에서는 인간적 행위의 윤리성을위한 하느님 모상의 의미 안에서 숙고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모상 개념은, 우주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능력 있는 통치자' 로서의 지위와 그 능력의 '선한 사용' 이 서로 결합되어 있음을 지시해 주기 때문이다.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이야기하는 성서의 진술은, 지상에서 하느님의 관리자이자 하느님의 대리자인 인간과 "선악의 앎" (창세 3장) 사이의 관계를 원초적으로 연결해 놓았다. 따라서 하느님의 모상은 정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고, 역동적인 가능성과 과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느님 모상에 대하여 사람들은 부분적으로 시대적 흐름에 영향을 받으며 이해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 및 남녀 간의 관계이다. 인간과 창조주 하느님 사이의 관계 및 인간과 그 밖의 다른 피조물들 사이의 관계를 언급함으로써 인간이 창조계 안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구약성서의 진술은, 사실 후대에 와서 좁게 해석되어 하느님의 모상을 이성주의적 · 본질주의적 · 정적 · 인간 중심주의적 · 남성 중심주의적으로 이해하는 결과를 낳았다. 뿐만 아니라 이런 좁은 이해에 부합하는 규범적 표상들을 잘못된 신학으로 뒷받침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구약성서에서 인간의 하느님 모상은, 정신과 육체로 구성되어 주위 세계와의 관계 안에서 남자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존재하는 전인적 인간 존재로 표상된다. 오늘날 좀 더 쇄신된 윤리 신학은 하느님 모상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천명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인간적 행위의 윤리성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즉 '하느님의 모상' 이란, 이성적(理性的)자질 안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인간이 창조에 근거하여 자유와 책임 안에서 자신의 삶과 세계를 스스로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 이자, 그런 가운데 항상 더욱더 하느님의 모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을 말한다. 하느님 모상 의미는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있어서 윤리 전체를 이끄는 특수한 주도적 동기(Leimotiv)를 형성한다.
〔열쇠 개념〕 오늘날 윤리 신학은, 성서와 교부들이 말한 하느님 모상의 의미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설명한 하느님 모상의 체계화된 의미를 다시 조명함으로써 '하느님의 모상' 개념이 기초 윤리 분야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윤리 분야를 위해서도 풍부한 생산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증명해 보이고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모상 개념이 '윤리적 자율, 이해와 책임성, 보편적인 인간 윤리의 정초(定礎)와 특수한 그리스도교 윤리의 정초 사이의 관계,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 간의 대화, 그리스도교와 세속적 휴머니즘 간의 대화, 상실될 수 없는 인간 존엄성(dignitas)과 그 위에 근거한 모든 인간 권리의 기초 놓기, 남녀 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 간의 친교와 같은 분야들을 위한 열쇠 개념(Schlüsselbegriff)이라는 것을 새롭게 증명해 보이고 있다. 특히 하느님 모상의 두 관점 사이의 관계, 곧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창조 신학적 관점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완전한 모상이라는 그리스도론적 관점 사이의 관계는 윤리적 자율과의 연관성 아래 더욱 심도 있게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 모상 ; → 그레고리오, 니사의 ; 글레멘스, 알렉산드리아의 ; 베드로 롬바르두스 ; 보나벤투라 ; 아우구스티노, 히포의 ; 암브로시오 ; 에크하르트 ; 오리제네스 ; 이레네오, 리용의 ; 인간학, 신학에서의 ; 창세기 ; 창조 ; 토마스 아퀴나스 ; 하느님 ; 하느님의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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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모상
— 模像
〔그〕εἰκών τοῦ Θεοῦ · 〔라〕Imago Dei · 〔영〕Image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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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