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아들

〔그〕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 〔라〕Filius Dei · 〔영〕Son of God

글자 크기
12
구약의 성조 요셉은 하느님의 아들로 불렸다(세겜에 있는 요셉의 무덤).
1 / 3

구약의 성조 요셉은 하느님의 아들로 불렸다(세겜에 있는 요셉의 무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그리스도론적 칭호. 그러나 이 칭호는 예수에 의해 직접 사용되지는 않았다.
〔구약성서에서의 의미〕 고대 근동에서는 '신의 아들' 로 불리는 일이 흔하였다. 예를 들어 아비엘(אֲבִיאֵל :ㅤ1사무 14, 51)은 '엘이나의 아버지' 라는 의미이다. 이런 이름들은 신의 부성적 보호에 대한 신뢰를 표명한다.
구약에서 야훼는 누구보다도 왕을 "나의 아들" 이라 불렀다(2사무 7, 14 ; 1역대 22, 10 ; 시편 2, 7). 왕은 야훼께 선택되고(1역대 28, 6) 맏아들의 지위에 올려지고(시편 89, 28) 왕의 즉위식 날 하느님의 아들로 입양되며(시편 2, 7) 지상에서 야훼의 대리자(2역대 9, 8)로, 하느님의 대신으로 간주(1역대 29, 23 ; 2역대 9, 9)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고대 근동의 다른 왕들과는 달리 결코 신적인 제의나 특별한 숭배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느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천상 존재(창세 6, 2 ; 욥기 1, 6 ; 2, 1 ; 38, 7)에게도 붙여졌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하느님의 아들로 간주되었다(출애 4, 22 : 신명 14, 1 ; 32, 19 ; 이사 1, 2 ; 43, 6 ; 예레 31, 9. 20 ; 호세 2, 1 ; 11, 1). 여기서 이 칭호는 야훼와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를 표현하는 방법이고, 야훼가 이스라엘을 입양하는 형식을 지녔다. 후대에 하느님의 아들 칭호는 지혜 문학에서 의인에게 붙여졌다(시편 73, 15 ; 지혜 2, 13. 18 ; 5, 5).
〔유대교 문헌에서의 의미〕 1세기 전후의 유대교 문헌에서는 구약성서의 용법에 따라 '하느님의 아들' 이란 표현을 여러 대상에게 다양하게 적용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의 맏아들"(《희년서》 20, 20) 또는 "위대한 하느님의 아들" (《시빌라의 신탁》 Ⅲ, 702)로 묘사되었다. 특히 쿰란 공동체는 어둠의 아들들과 달리 "계약의 아들, 은총의 아들, 진리와 빛의 아들"로 스스로를 지칭하며 '아들' 이란 용어를 선호하였다. '하느님의 아들' 이란 표현은 구약의 성조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리스계 유대인이 쓴 소설 《요셉과 아세네트》(Joseph et Aseneth)에서 요셉은 하느님의 아들로 불린다(6, 2 : 21, 1). 《열두 족장의 예언》에서 레위 역시 "하느님의 아들이요, 종이며 하느님 면전의 직무자" (4, 2)이다. 《솔로몬의 시편》(13, 8)은 의인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카리스마적인 능력을 가진 랍비들 가운데 기원전 1세기경의 호니(Honi)는 하느님께 아들처럼 기도하였고, 예수 이후 세대인 하니나 벤 도사(Hanina ben Dosa)는 하늘로부터 "나의 아들" 이라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m.Taan 3, 8 ; b.Taan 24b).
하지만 무엇보다 메시아가 하느님의 아들로 불렸다. 에티오피아의 에녹서에서 하느님은 메시아를 "나의 아들"이라 부르고(1에녹 105, 2), 《제4 에즈라서》에서는 메시아가 하느님의 아들과 동일시된다(4에즈 2, 47 ; 4, 28-29 ; 13, 37. 52 ; 14, 8). 쿰란에서 발견된 가명(假名) 다니엘의 한 아람어 단편은 "그는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리고 그들은 그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부르리라"(4Q246 I, 7-9 ; Ⅱ, 1-5)라고 말한다. 이 대목이 매우 단편적이어서 하느님의 아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전반적인 배경은 분명히 묵시주의적이다.
한편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론(Philon Alexandrinus, 기원전 20?~서기 50?)은 신적인 중개자들, 곧 말씀이나 지혜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는데 특히 말씀을 천사들 가운데 으뜸이고, 그들의 지배자이며 하느님의 맏이이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였다(《언어의 혼란》 146).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서의 의미〕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Apollon) 신과 헤르메스(Hermes) 신은 신들의 왕인 제우스(Zeus)의 아들이고, 제우스와 인간 알크메네(Alcmene) 사이에 태어난 헤라클레스(Herakles)와 같은 영웅도 신의 아들로 불렸다. 헤라클레스는 일생 동안 신을 섬기고 악과 투쟁하는 사람의 전형이었다. 위(僞)세네카(Pseudo-Seneca)는 이러한 영웅을 '구원자' (σωτήρ)라고 불렀고, 루치아노(Lucianus, 240?~312)는 헤라클레스를 '신적인 인간 그리고 신' (θεῖος ἀνήρ καὶ θεός)이라고 불렀으며,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헤라클레스를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인식하였다. 비상한 의술 능력을 보여 준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의 제자들이나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580?~500?)와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 같은 철학자들도 신적인 존재로 불렸다. 헤르메스는 소수의 뛰어난 존재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재생(再生)을 통하여 신, 신의 아들(θεοῦ παῖς)이 된다고 가르쳤다(Cop. Herm 13, 2).
그리스-로마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알렉산더대왕(기원전 336~323)은 제우스를 아버지라고 불렀고(Arrian. Anab. 7. 8. 3),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46?~119?)는 그가 제우스에게 태어났다(Plut, Alex. 2-3)는 전설을 전해 준다. 로마에서 황제는 죽은 후 신격화되어 '신의 아들' 이란 칭호를 받았으며, 그의 이름은 신들의 족보에 올려졌다. 이것은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기원전 27~서기 14) 때 행하여졌는데, 당대의 주화에 새겨진많은 초상들이 이를 증명한다. 제정 시대가 시작할 무렵에 '신의 아들' 이란 표현은 황제 개인을 신격화하기보다는 신의 이름으로 그의 권력을 정착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말하자면 권위는 신에게서 온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39~40년경 칼리굴라 황제(37~41)가 신의 칭호를 자신에게 적용하고 황제 숭배를 강요하기 시작한 이후, 황제 숭배는 네로(54~68)와 특히 도미티아누스 황제(81~96) 때에 성행하였다. 어쩌면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당대의 의심스러운 칭호였던 "하느님의 아들"이란 표현을 드물게 사용하였는지도 모르겠다(묵시 2, 18 ; 12, 5 ; 21, 7).
〔신약성서에서의 의미〕 역사의 예수 : 먼저 '하느님의 아들' 과 '아들' 이란 표현을 구분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느님의 아들' 이란 표현은 예수가 자신의 인격을 지칭하기 위해 스스로 사용한 표현이 아니다. 이 칭호는 악마의 입에서 발설되거나(마르 3, 11 ; 5, 7) 제자들이나(마태 16, 16) 이방인들의 입을 통해(마르 15, 39) 고백되었다.
무엇보다 예수는 하느님을 "아빠" (Αββα)라고 부르고(마르 14, 36)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기도하도록 가르쳤으며(마태 6, 6 : 루가 11, 2),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느님의 아들로 부름을 받았음을 강조하였다(마태 5, 8 ; 루가 6, 35). 독일의 신약학자인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예수가 결코 '우리 아버지' 라고 하지 않고 늘 '너희 아버지' 와 '나의 아버지' 라는 구별된 표현을 사용하였다는 점을 지적하였으나, 이는 후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와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편집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면 예수는 절대적인 용법의 '아들' 이란 표현으로 자신을 가리켰는가? 마르코 복음 13장 32절에서 예수는 자신을 아버지 앞의 아들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그의 설교를 특징짓는 강한 하느님 중심주의와도 상통하는 것이어서 이 말씀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한편, 포도원 농부들의 우화(마르 12, 1-12)에는 부활 이후의 공동체에게 그 출처를 돌릴 만한 요소들, 예컨대 부활에 대한 암시나 재림에 대한 기대 등이 전혀 없다. 포도원 주인이 다름 아닌 하느님 자신이며 예수는 스스로를 하느님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다. 예수는 '아빠' 체험을 전제로 마르코 복음 13장 32절에서는 아들로서의 한계를 언명하고, 마르코 복음 12장 1-12절에서는 아들의 신분을 암시한 것이다.
《예수 어록》 자료에 속하는 루가 복음 10장 22절의 진정성에 관한 토론에서 이 구절이 부활 이후의 상황을 더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마르코 복음 13장 32절의 "아들"이란 표현과 관련지어 볼 때, 예수가 '아빠' 앞에서의 아들로 자신을 표현한 것은 역사적인 진실로 보인다. 아마도 예수는 '아들' 이란 표현을 일종의 그리스도론적 칭호로 발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아들이라고 선언한 것이 아니라 '아빠' 앞에 선 아들처럼 처신한 것이다. 이것은 선언과 표현의 양식이 아니라 삶과 행동의 양식이다. 그렇기에 '아들' 이란 표현은 후에 교부들의 논쟁에서 정형화된 존재론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없고, 아버지와의 내밀한 관계와 자신의 사명을 설명하는 기능적인 의미로 먼저 파악되어야 한다.
초대 교회 : 예수의 부활은 그가 하느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책봉된 사건으로 이해되었다.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자신이 물려받은 전승을 전해 준다. "그분은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으며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권능을 지닌 하느님의 아들로 책봉되신 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로마 1, 3-4). 이러한 해석은 다윗 가문의 메시아를 하느님의 아들로 칭하는 유대 전통(시편 2, 7 ; 2사무 7, 13-14 ; 4QFlor I, 11-13 ; 4Q246)을 이어받은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서 기원하였을 것이다. 사도 행전(13, 33)은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시편 2, 7)를 부활에 대한 말씀으로 해석하였다. 복음서에서는 이 하느님의 음성이 세례 때(마르 1, 11)와 거룩한 변모 사건(마르 9, 7)에 적용된다. 마르코 복음 12장 6절에서 예수에게 적용된 "사랑하는" (ἀγαπητός)이라는 수식어는 칠십인역과 유대교 전통에서 아들 관계의 유일무이성을 드러낸다. 요한 복음 1장 14절의 "외아들"(독생자, μονογενής)도 마찬가지이다. 유대교 전승이 말하는 희생 제사의 맥락 안에서 예수는 이사악처럼 사랑받는 아들이다(히브 11, 17). 말하자면 '유일한 아들' 이라는 뜻인데, 바오로는 그가 하느님의 "친아드님"이라고 분명히 말하였다(로마 8, 3). 부활 사건은 예수를 배타적인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하느님의 아들이 현자들과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포괄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에 때로 절대적 용법의 '아들' 이란 표현이 선호되기도 하였다. 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리지만(마태 5, 9 ; 루가 6, 35), 바오로는 입양 언어로 예수의 아들됨과 그리스도인들의 아들됨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별하였다(로마 8, 15. 23). 배타적인 의미의 아들-그리스도론은 아들이 하느님의 세계에 깊숙이 속해 있음을 강조하고, 이로써 아버지와 아들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조하는 요한 복음에서 정점을 이룬다. 아들-아버지 관계는 아버지의 품안에서(요한 1, 18) 이미 시작하거나, 세례 때(마르 1, 9) 또는 부활을 통하여(로마 1, 4), 또는 재림 때(1데살 1, 10 ; 참조 : 사도 3, 21) 확인된다. 한편 성령에 의한 잉태 그리스도론을 통하여 마태오 복음사가(1, 21. 23. 25)와 루가 복음사가(1, 32)는 이 아들 관계가 동정 잉태에서 시작된다고 말하였다.
'하느님의 아들' 이란 칭호는 다양한 공동체에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적응할 수 있을 만큼 가변적이고 매우 유연하다. 말하자면 그것은 다양한 그리스도론이 만나는 교차점인 것이다. 예컨대 의인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지혜-그리스도론, 아들을 새로운 이스라엘과 동일시하는 미드라쉬적 그리스도론, 인자와 연결되어 있는 묵시주의적 그리스도론, 하느님의 아들이 메시아와 동일시되는 메시아적 그리스도론, 아들이 하느님의 세계에 깊이 속해 있음을 강조하고 이로써 아버지와 아들의 직접적인 관계를 나타내려는 아들-그리스도론 등이다.
《예수 어록》 전승을 포함하여 모든 전승이 '아들' 이라는 칭호를 널리 수용하였다. 일부 칭호는 사용이 중지되거나 또 일부 칭호는 특정 공동체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아들' 이란 칭호는 예수에게 부여된 칭호 중에 가장 오래되었으면서 동시에 가장 새로운 칭호였다. 물론 메시아나 마르(mar, 주님) 등의 아람어 칭호들 역시 매우 일찍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 기능적인 칭호들은 '아들' 처럼 탁월하게 예수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는 폭넓은 의미를 갖추지 못하였다. 다른 어떤 그리스도론적 칭호도 의인을 메시아와 일치시키고, 인자를 새롭게 지명된 하느님의 아들과 일치시키면서 예수의 다양한 면모를 그처럼 포괄적으로 표현해 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아들' 이란 칭호는 예수를 신앙 고백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과 그렇지 않는 유대인들 사이의 괴리를 더욱 넓혀 주었다. 어떤 스승이나 메시아에 대해서는 그가 과연 진실로 그러한 존재인지를 토론할 수 있다. 그러나 '아들' 의 신원 문제는 다르게 제기된다.
그러면 초대 교회는 하느님 앞에서 아들로 처신한 예수를 신격화하여 이해하였는가? 이미 바오로 사도부터 예수를 아들로서 아버지와 영과 함께 삼위 정식으로 축복문에 등장시켰고(갈라 4, 6), 마태오 복음사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삼위 정식을 세례 기도에 사용하였다(28, 19). 요한 복음사가의 서언은 말씀의 선재성과 신성을 말하고 이를 아들과 동일시하였다(요한 1, 18). 그러나 필론이 로고스를 제2의 하느님이라고 말하는 것처럼(《창세기 해설》 2, 62) 예수는 두 번째 신이 되지는 않았다. 신약성서는 예수의 신성을 말하면서도, 그의 구원론적인 중개를 강조함으로써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사변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파리 가톨릭대학의 신약학 교수인 페로(Charles Perrot)가 지적하였듯이, 바오로(1데살 4, 16-17)와 마르코 복음사가(9, 1-9)는 시나이 모티브를 통해 미드라쉬적인 방식으로 예수의 구원자 기능을 설명함으로써 성서의 언어로 가장 탁월하게 예수의 신원을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에 대한 제의(祭儀)의 발전과 그에게 드리는 하느님 칭호는 그리스도인들의 유일신론(monotheismus)에 남아 있으면서도 유대교의 전통적인 유일신론과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신론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 분명하다. 초대 교회 이후의 그리스도교는 유일신 사상에서 아들과 아버지와의 관계에 주목하는 형이상학적인 언어를 찾아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부터 칼체돈 공의회(451)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을 그리스도론에 관한 논쟁에 바치게 된다. (→ 그리스도론 ; 독생자 ; 묵시 문학 ; 사람의 아들 ; 예수 그리스도 ; 외경)
※ 참고문헌  J.H. Charlesworth, Jesus within Judaism, SPCK, 1989/O. Cullmann, Christologie du Nouveau Testament, Neuchâtel, 1958/J.D.G. Dunn, Christology in the Making, SCM PRESS, 1980, 1989²/ ⸺ The Partings ofthe Ways, SCM PRESS, 1991/J. Fossum, 《ABD》6,pp. 128~137/ F. Hahn, Christologische Hoheitstitel, 《FRLANT》 83, Göttingen, 1964²/ M. Hengel, The Son ofMan, J. Bowden. Philadelphia, 1976/ 요아킴 예레미아스, 김경희 역, 《예수의 선포》, 분도출판사, 1999/ 레이몬드 브라운, 김광식 역, 《신 약성서 그리스도론 입문》, 분도출판사, 1999/ 샤를르 페로, 백운철 역,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가톨릭 출판사, 2001/ 백운철, 신약성서의 예수 그리스도, 《가톨릭 신학과 사상》 48(2004. 여름호), pp. 7~47. 〔白雲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