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 외쳤던 말. 미사에서 축성된 빵을 나누고 작은 조각을 성혈과 혼합시킬 때 신자들이 하는 환호. '고양' (羔羊)이라고도 하며, 창미사곡에서는 라틴어 표기에 따라 '아뉴스 데이' 라고 한다.
〔어 휘〕 하느님의 어린 양은 요한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두 번 등장한다(요한 1, 29. 36). 어린 양(ἀμνός)은 신약성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사용되는데(사도 8, 32 ; 1베드 1, 19), 이 경우 역시 예수를 지칭한다. 한편 요한 묵시록은 어린 양을 의미하는 또 다른 그리스어 '아르니온' (ἀρνίον)을 그리스도께 28회나 적용하였다. '아르니온' 은 요한 복음에는 단 한 번 나타나는데, 복수인 "어린 양들" (τὰ ἀρνία)로 표현하여 '믿는 이들' 을 가리킨다(요한 21, 15). 그런데 요한 복음 1장 29절과 36절의 "하느님의 어린 양은 독특한 성격을 지닌다. 사도 행전 8장 32절과 베드로 전서 1장 19절에는 "하느님의"(τοῦ θεοῦ)라는 수식어가 없고 요한 묵시록도 "아르니온"에 "하느님의"를 결부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 복음 1장 29절에서 하느님의 어린 양은 "세상의 죄를 치워 없애시는 분" 으로 소개되며,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도인 듯 39절에서는 단순히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한다.
〔신학적 의미〕 주석가들은 "세상의 죄를 치워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의 의미에 대해 구약성서적인 배경과 유대교 문헌을 배경으로 다양한 해석을 제안하였는데, 이는 대개 묵시 문학의 어린 양, 과월절의 양, 야훼의 종의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세례자 요한이 사용한 의미 : 공관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심판(마태 3, 7 ; 루가 3, 7)과 정화(마태 3, 12 ; 루가 3, 17)의 사명을 수행하는 메시아의 도래가 임박하였음을 예고하였다. 그는 후에 감옥에서 예수의 복음 선포와 치유 활동이 혹 이러한 메시아적 기대를 실현하고 있는것인지 의심하였다(마태 11, 3 ; 루가 7, 19). 공관 복음이 전하는 대로 심판관으로서의 메시아관을 지닌 요한이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는 또 다른 메시아관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런 메시아관을 과연 예수에게 적용시킬 수 있었을까? 회의적인 주석가들은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는 표현이 세례자 요한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공동체나 요한 복음사가가 만들어서 예수에게 적용한 것으로 본다. 물론 예수의 메시아성에 확신을 갖지 못한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고 직접적으로 증언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느님의 어린 양 이 본래 세례자 요한이 발설한 표현일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고, 다만 후대에 그리스도인 공동체나 요한 복음사가가 이를 예수에게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럴 경우 유대교 묵시 문학의 언어와 이미지를 즐겨 사용한 요한이 묵시 문학의 어린 양의 개념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에녹 1서 89-90장은 동물의 상징으로 가득한데, 여기서 이스라엘은 양 떼와 그 우두머리의 이미지로 지칭된다. 에녹 1서 89장 12절에 의하면 야곱은 흰 양이고, 다윗은 어린 양에서 숫양으로 성장하여 양 떼의 우두머리가 된다(89, 46). 에녹 1서 90장 6-19절은 이스라엘과 원수들 간의 큰 전투에서 뿔 달린 커다란 숫양이 적들을 패주시키는 것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숫양은 유다 마카베오나 메시아를 가리킨다. 《요셉의 유언》 19장 8절은 흠없는 어린양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고 들짐승들이 그를 공격하였으나 어린 양이 이들을 섬멸하였다고 한다. 예레미아스(J. Jeremias)는 이 대목을 그리스도인 필사가가 후대에 삽입한 것으로 여기고 그 역사성을 부인하지만, 필로넨코(M. Philonenko)는 이 전승을 그리스도교 이전의 것으로 보고 동정녀를 공동체로, 들짐승들을 악의 세력으로, 어린 양은 메시아로 해석하였다.
물론 이상의 전거에서는 어린 양, 즉 메시아가 죄를 없애는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에녹 1서 90장에 의하면 빛을 상징하는 하얀 양들이 사탄의 세력을 상징하는 까마귀들과—《희년서》 11장 11절에 의하면 까마귀들은 사탄이 보낸 심부꾼들로, 아마도 그 검은 색깔 때문에 선택된 듯하다—전투를 하고 그들을 패주시킨다. 여기서 빛과 어둠의 대결이라는 상징 언어가 사용되고, 어린 양-메시아가 죄의 세력을 물리친다는 것이 암시된다.
메시아가 죄를 종결시킨다는 개념이 에녹서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으나, 이는 유대인들의 메시아 기대에 포함된 요소이다. 메시아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법자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이사 11, 4-5)하였고, 지혜서에 의하면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땅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지혜 18, 15). 하지만 메시아가 셋의 아들들을 궤멸시키는 용감한 전사로 소개되기도 한다(1Q27i 4-6 4QpPs 37, 3-7 ; CD 7, 20 이하). 로마서 11장 26절이 인용하는 칠십인역의 이사야서 59장 20절에 의하면 구세주가 "시온으로부터 와서 야곱으로부터 사악함을 치워 없애리라." 이처럼 메시아의 불경한 자를 치는 기능과 죄를 없애시는 어린 양의 개념이 합해져서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이 보낸 메시아-어린 양이 세상의 죄를 소멸시킬 것이라는 개념을 가졌을것이다.
요한 복음에서의 의미 : ① 어린 양과 야훼의 종 : '하느님의 어린 양' 이란 개념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이사야서에 언급된 '야훼의 종의 노래' 이다. 야훼의 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에 형성된 해석학적인 범주로서 요한 복음 이전 전승에 속한다. 세례자 요한에 의하면 죄는 쿰란에서처럼 죄인의 구체적인 현실, 곧 그가 저지르는 잘못을 가리킨다. 하느님의 어린 양이 세상에서 죄를 없앰으로써 메시아의 왕국에는 더 이상 죄도, 죄인도 없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예수의 죽음에 깊이 영향을 받은 전승은 어린 양이라는 단어에서 즉시 이사야서 53장의 야훼의 종의 노래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때 아람어로 종을 의미하는 단어가 동시에 종을 의미한다는 점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죄 없는 세상이 세워지기 전에 과거의 죄는 속죄되어야 하고, 죄인은 받아야 할 벌을 감수해야 한다. 요한 복음사가는 두 개의 개념을 한데 모으고 이를 넘어선다. 어린 양은 세상의 죄를 치워버림으로써 무죄한 상황을 만들고 아울러 죄를 속죄한다. 죄를 없애고 속죄한다는 두 가지 개념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물과 피를 통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물만 거쳐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를 거쳐 오셨다"(1요한 5, 6)는 증언과 일치한다.
마태오 복음 8장 17절은 이사야서 53장 4절을 인용하며 "그분은 몸소 우리의 병고를 떠맡으시고 질병을 짊어지셨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한 복음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죄를 자신 위에 짊어질 수 없다. 그는 죄에 연루됨이 없이 죄를 없애고 쫓아내며, 그가 죄를 없애는 방법은 어린 양의 의미를 통해서만 구체적으로 결정된다.
예언서와 묵시 문학은 미래에 죄 없는 삶이 가능해지고 메시아 안에서 거룩한 백성이 탄생하기를 기대하였다. 요한은 나름대로 이런 희망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분 안에 머물러 있는 이는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그분을 뵙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습니다"(1요한 3, 6).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이는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씨가 그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1요한 3, 9). 요한 1서 3장 5-10절은 요한 복음 1장 29절을 상기시키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죄 없는 삶을 훌륭하게 주석하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시작, 곧 죄가 없는 왕국은 오로지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속죄의 제물이 되었기 때문이다(1 요한 2, 2). 그렇다면 요한 복음에서 죄를 속죄하는 종의 개념은 과연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에 결정적인가. 요한의 수난 사화는 야훼의 종보다는 과월절 양의 개념에 더 가까우며,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죄로부터 해방시키는 어린 양을 과월절 양과 연결시켰다. 고린토 1서 5장 7절과 베드로 1서 1장 18-20절이 이를 잘 보여 준다. 확실히 요한은 세례자 요한의 묵시주의적인 어린 양 이해를 배제하지 않고 승리자-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이를 완성시켰다. 그리스도가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키는 방식은 이 세상의 두목을 쫓아내고(12, 31) 악마의 일들을 멸하는 것이다(1요한 3, 8). 그리스도는 죄인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의 아버지를 상대로 싸우고 승리하는 것이다. 그분의 수난은 이미 승리이며 영광이다.
이상의 논거를 바탕으로 어린 양이란 의미의 전승사적인 발전 과정을 가정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세례자 요한은 죄인들과 죄를 함께 멸망시키는 묵시주의적인 메시아-어린 양을 설파하였다. 둘째, 그리스도인 전승은 부활 체험의 빛 안에서 야훼의 종이란 이미지와 어린 양의 이미지를 결합시켰다. 셋째, 요한 복음사가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무죄를 강조하며 종의 개념을 넘어서고 묵시주의적 승리를 더욱 강화하였다. 그리고 요한 복음사가는 속죄의 과월절 양의 개념으로 어린 양의 전승을 완성하였다.
② 과월절 양과 속죄의 제사 : 구약성서에서 속죄 예식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예식은 제사에 바쳐진 짐승의 피가, 죽어 마땅한 죄인의 피를 대신한다는 개념에 근거한다. 짐승의 피 안에서 야훼께 '생명' 의 제사를 봉헌하는 것이다. "생물의 생명이 그 피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 자신을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할 때, 그것을 제단 위에서 쓰라고 너희에게 주었다. 피가, 그 생명으로 속죄하기 때문이다"(레위 17, 11). 처음에는 다양한 제사들이 구분되고 그 차이가 존중되었으나, 점차 속죄의 개념이 제사 전체에 스며들게 되면서 아침과 저녁에 바치는 매일의 제사도 죄를 위한 제사로 간주되었다. 이와 반대로 일 년에 한 번 도살하는 과월절 양은 속죄의 제사로 간주되지 않았다. 단지 이집트를 탈출할 때 사용된 양의 피의 이미지와 종말의 시간에 나타날 양의 이상적인 이미지가 속죄의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신약성서에서 과월절 양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상징으로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계약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가 과월절 양의 이미지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과월절의 양은 양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매개로 야훼의 종의 이미지와 연결되었다. 이사야서 53장과 과월절 양의 이미지 결합은 신약성서에서 새로운 계약, 죄의 종살이에서의 해방, 죽음을 통한 속죄의 의미로 종합되었다.
요한 복음에는 어린 양을 과월절의 양이란 의미로 해석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여럿 있다. 첫째, 수난 사화의 연대에 의하면, 공관 복음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날이 과월절이나(마르 14, 12), 요한 복음에 의하면 과월절 준비일이며 때는 정오쯤이었다(18, 28 : 19, 14). 출애굽기에 대한 랍비 주석서인 《메킬타》(12, 6)에 의하면, 과월절 준비와 양을 잡는 시간은 정오부터 시작된다. 둘째, 19장 29절에서 사람들은 해면을 식초에 듬뿍 적셔 히솝 가지에 꽂아서 예수의 입에 갖다 대었다. 반면 마태오 복음 27장 48절은 히솝 대신 갈대라고 하였다. 출애굽기 12장 22절은 히솝의 채로 과월절 양의 피를 적셔 문설주에 바르도록 지시하였다. 여기에 일종의 비교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19장 36절에 의하면 "그의 뼈가 상하지 않으리라"라는 즈가리야서 12장 10절의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이는 과월절 양의 뼈를 꺾지 말라는 말씀(출애 12, 46 ; 민수 9, 12)과 연결된다. 넷째, 예수 그리스도가 숨을 거두는 장면(19, 31-37)을 제사로 해석할 수 있다. 군인 하나가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자 곧 피와 물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제사의 완성을 함축한다. 유대교의 제사에서 죽음 자체는 싱싱한 피를 제단에 뿌리는 의식에 비하여 거의 2차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히브리서 9장 22절은 율법에 의거하여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깨끗해지며 피의 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로마 병사가 창으로 찌른 것은 매일의 제사에서 어린 양의 심장이 찔려 모든 피가 쏟아지게 하려는 의식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요한복음 19장 34절에서 "즉시"(εὐθύνς) 피가 흘렀음을 강조하는 것은, 피가 아직 응고되지 않아 생명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제사의 유효성을 채우는 것을 상징한다. 피와 함께 나온 물은, 모세가 물과 히솝과 송아지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고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구전 전승(히브 9, 19-20)과 연결지을 수 있다. 레위기 14장 52절도 나환자의 집을 정화하는 데 피와 물과 히솝을 함께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참된 어린 양인 예수 그리스도는 피를 뿌림으로서 "죽은 행실로부터 우리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히브 9, 14)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고(히브 9, 11-28) 제사를 완성한다. 이런 사상은 요한 복음에도 낮설지 않다. 요한 복음사가는 섬세한 편집 활동을 통하여 어린 양을 속죄의 과월절 양으로 암시하고 있다.
〔전례적인 의미〕 미사 중에 사제가 성체를 쪼개고 그 조각을 성작 안에 넣는 동안 성가대나 선창은 '하느님의 어린 양 을 노래하거나 큰 소리로 외며, 교우들은 회답한다. 당시 콘스탄티노플 교회 회의에서 그리스도를 어린 양이라 부르는 것을 금지시키자, 교황 세르지오 1세(687~701)가 미사에 이 노래를 도입하여 성체를 쪼개는 동안 신자들이 부르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이 노래는 빵을 나누는 동안 계속 반복되었다. 8~9세기 부터 작은 빵이 등장하고 빵을 나눌 필요가 없게 되자 세번만 반복하여 부르게 되고, 차츰 빵 나눔과는 상관없는 독자적인 예식이 되었다. 또한 이 노래 앞에 거행된 평화의 인사와 연결되어 마지막 간청은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로 바뀌었다. 그리고 11세기에는 위령 미사 때에 두번째와 세 번째 간구를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로 변경하여 불렀다.
중세에 이 노래는 빵 나눔과 더욱 멀어져, 프랑스의 일부 지역과 수도원에서는 빵을 나누기 전에 부르기도 하였다. 새로운 파스카의 어린 양인 예수 그리스도의 뼈는 꺾이지 않고 오직 심장만 찔렸다(요한 19, 33)는 성서의 내용과 빵을 나누는 행위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세 후기에는 성체를 쪼갠 후 성작에 넣은 다음에 부르게 되어 평화 예식의 동반 성가, 영성체 성가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성가대가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주례자는 성체와 성혈을 영하곤 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이 노래는 공동체가 함께 부르는 빵 나눔의 동반성가로 환원되었다. 일반적으로 세 번 반복하지만 빵 나눔이 계속되는 동안 여러 번 반복할 수도 있으며, "평화를 주소서"로 끝을 맺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결정에 따라 전례 개정을 하면서 마지막 간구도 "자비를 베푸소서"로 하려고 하였으나, 1967년 매년 1월 1일을 '세계 평화의 날' 로 제정한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의 뜻을 존중하여 그대로 존속시켰다. 또 마지막 간구를 달리함으로써 빵 나눔이 끝났음을 알게 하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과거처럼 위령 미사 때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로 바꾸지는 않는다. 죽은 이에 대한 평화 기원과 빵 나눔은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어린 양 을 노래할 수 없을 때에는 큰 소리로 낭송한다. 일반적으로 성가대 또는 해설자가 선창하면 신자들이 응답하는 식으로, 또는 본문 전체를 일제히 함께 낭송할 수도 있다. 선창할 사람이 전혀 없을 경우에만 주례자가 '하느님의 어린 양 을 시작한 뒤에 빵을 쪼갠다.
상징으로 '하느님의 어린 양 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성체나 제물로서의 예수를 의미하며, 대체로 어린 양은 십자가 또는 기(旗)와 후광이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 고양 ; 아뉴스 데이 ; 어린 양 ; 양 ; → 과월절 ; 메시아 ; 빵 나눔 ; 성찬 전례 ; 세르지오 1세 ; 영성체 ; 예수 그리스도 ; 요한 ; 하느님의 종)
※ 참고문헌 J. Jeremias, 《ZNW》 34, 1935, pp. 115~123/ ⸺,《TWNT》 I, pp. 342~345/ C.K. Barret, The Lamb of God, 1,1954 · 1955, pp. 210~218/ S. Virgulin, Recent Discussion of the Title Lamb of God, Scripture 13, 1961, pp. 74~80/ R.Rosé, Jésus Christ, Agneau de Dieu, 《BVieChr》 62, 1965, pp. 27~321 F. Gryglewicz, Das Lamm Gottes, 13, 1967, pp. 133~147/ G.L. Carey, The Lamb of God and Atonement Theories, 《TyndB》 32, 1981, pp. 97~1221 G.Stemberger, La symbolique du bien et du mal selon saint Jean, Seuil, Paris, 1970/ M. Philonenko, Testament des douze partiarches, La Bible Ecits intertestamentaires, Gallimard, 1987, pp. 914~919/ P.Stuhlmacher, Das Lamm Gottes-eine Skizze, Geschichte-TraditionReflexion Ⅲ, 1996, pp. 529~542/ G. Ferguson, Signs & Symbols in Christian Art, Oxford Univ. Press, 1961. 〔白雲哲〕
하느님의 어린 양
— 羊
〔그〕ὁ ἀμνός τοῦ θεοῦ · 〔라〕Agnus Dei · 〔영〕Lamb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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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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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