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섬기는 이들과 하느님에게서 특수한 사명을 받아 수행하는 일꾼들, 하느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칭호. 예수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교회의 직무를 수행하는 이들 역시 하느님의 종이다. 그래서 교황들은 '하느님의 종들의 종' (Servus Servorum Dei)이란 칭호를 통해 자신의 직무가 하느님의 종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라는 겸손한 표현을 하였다. 또한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시복(諡福, beatificatio)을 위한 과정에서 복자(福者)로 선언할 목적으로 그의 삶과 덕행을 조사하기 시작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로 사용되기도 한다.
〔개 념〕 사회적 계급의 차별 없이 모든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권리를 행사함을 기본으로 하는, 민(民)이 곧 주(主)임을 표방하고 그 실천에 노력을 기울이는 민주주의 시대에 '종' 은 이미 타파된 옛 제도의 유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과거의 현재 관점에서 볼 때 이 제도는 인권 유린과 일방적 수탈의 도구로 쓰였기 때문에, 현대인에게는 부정적인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서에서 는 '종' 이 그에 상응하는 '주님' 과 함께,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매우 자주 사용되었다.
성서 시대에는 '종' 이 별다른 사회적인 이의 제기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으나, 여기서의 '종' 은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동양과는 다르다. 이스라엘인들은 본래 씨족사회를 이루고 살았으며 그 구성원들 사이에 서열은 있어도 계급은 없다. 이스라엘인은 모두 하느님이 선택한 민족이며 종살이 하던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백성이라는 신학적 바탕 위에(레위 25, 42), 이 전통은 사회가 복잡해진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즉 이스라엘 사람은 원칙적으로 종이 될 수 없다(그러나 딸을 종으로 파는 경우에 대해서는 출애 21, 7-11 참조). 경제적 여건 때문에 제 몸을 내놓을 경우에도, '계약 법전' 에 따르면 "일곱 해째에는 대가없이 자유로운 몸으로 풀려 나간다" (출애 21, 2). 사제계법전에서는 아예 이스라엘인들의 종살이 자체를 금지하고, 머슴 등 일종의 고용살이만 인정하였다(레위 25, 39-43). 재산으로 소유하면서 상속하고 매매할 수 있는 것은 외국인 종뿐이었다(레위 25, 44-46)
이스라엘을 비롯한 고대 근동에서는 '종' 이라는 개념 자체도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면을 지닌다. 항상 명쾌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근동에는 이를테면 두 부류의 종이 있었다. 첫째는 좁은 뜻의, 또는 법적의미의 종이다. 곧 우리 나라나 주변 국가들에도 존재하던 일반적인 노예이다. 법적으로 신분이 확정되어 있어서 다른 형태의 법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한 주인이나 상전이 있든 없든 그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절대적 의미의 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둘째는 넓은 뜻의, 또는 사회적 의미의 종이다. 이 종은 항상 주인을 전제로 한다. 주인이 없어지면 자연히 종의 신분도 해제되는, 상대적 의미의 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종은 곧 관계의 개념인 것이다. 고대인들은 다양한 상하 관계를 이루며 살아갔다. 그런데 근동의 사람들은 자유인들 사이의 상하 관계를 흔히 주인과 종의 관계로 표현하였다. 즉 윗사람은 주인, 아랫사람은 그의 종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에서는 자신을 누구의 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옛적에 우리말에서 자신을 공손히 지칭하는 '소인' 이나 '소첩' 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예의만 갖추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관계를 받아들이고 재확인하는 행위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위아래가 이미 설정되어 있지 않거나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를 웃어른 또는 강자로 인정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둘째 의미의 주종 관계는 서로 의무를 지는 상호 관계이다. 종은 자기 주인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고 주인은 자기 종을 보호해야 한다. 이러한 연유로 종은 곧잘 명예 칭호로도 사용되었다. 주인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와 개인적 관계 속에 있는 종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상하 관계에는 먼저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포함된다. 궁궐에서 일하는 모든 신하(창세 20, 8 ; 출애 10, 7 ; 1사무 8, 14), 사신(2사무 10, 2), 장수(1열왕 16, 9 ; 이사 36, 9), 병사(2사무 2, 12 ; 3, 22), 일반 백성(창세 47, 3 ; 출애 5, 15 : 1사무 12, 19) 등이 임금의 종으로 불린다. "임금의 종은 또 시종장처럼 특별한 지위와 임무를 지닌 신하를 가리킨다(2열왕 22, 12 : 그러나 진정한 군주는 백성의 종으로서 그들을 섬긴다는 1열왕 12, 7도 참조). 씨족이나 민족 또는 국가 사이에 지배나 종속 관계가 성립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창세 9, 26-27 ; 27, 37 ; 여호 9, 8 ; 2사무 8, 2). 주종의 표현은 가족 관계에서도 사용되어, 왕후가 왕의 "여종" 으로, 왕자가 왕의 "종" 으로 지칭된다(1열왕 1, 13. 19 ; 2사무 15, 8). 일반 가정에서도 아내를 남편의 "여종"이라 하기도 하고(판관 8, 31 ; 9, 18 ; 창세 18, 12), 아들이 아버지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기도 하며(마태 21, 30), 아우가 형을 "주인님"으로, 자신을 그의 "종"으로 표현하기도 한다(창세 32, 5 : 그러나 반대의 경우인 창세 50, 17도 참조). 제자가 되는 것 역시 스승의 종이 되는 것이다(1열왕 19, 21). 길 가는 손님(창세 18, 3), 자기보다 어른, 또는 사회적 · 종교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도 상대방을 "주인"으로, 자신을 "종" 또는 "여종" 으로 부른다(창세 44, 18. 24 ; 민수 32, 5 ; 판관 19, 19 ; 룻기 2, 13 ; 1사무 1, 18 ; 20, 7 ; 25, 27 ; 2사무 15, 2 : 20, 17 ; 1열왕 18, 9 ; 2열왕 5, 15). 천사와 이야기할 때에도 사람들은 자신을 그의 종이라고 일컫는다(창세 19, 19 ; 여호 5, 14). 이러한 호칭은 심지어 국가 원수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이용된다. 이때 어느쪽의 왕이 주인으로 불리느냐는 겉으로 드러나는 군사력 또는 전쟁의 결과로 뒤바뀌기도 한다(1열왕 20, 4. 9. 32 ; 2열왕 16, 7). 종속국이 된다는 것은 그 나라 임금이 종주국 임금의 종이 되는 것이다(2열왕 24, 1).
〔하느님의 숭배자와 일꾼〕 두 번째 의미의 주종 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도 그대로 쓰인다. 그렇다고 단순히 대신(對神) 관계를 대인(對人) 관계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근동에서는, 구약성서는 물론 신약성서에서도 나타나듯이 신 또는 하느님을 처음부터 인간의 주(主)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 주종 관계는 강제성을 띠는 것이 아니라, 인간 쪽의 자유가 보장된 것이다. 이 신을 주님으로 모실 수도 있고 저 신을 주님으로 모실 수도 있었다. 고대인들은 철학적 불신앙(不信仰) 또는 무신론(無神論)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믿음 또는 믿지 않음이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자기가 주님으로 섬길, 또는 자기가 종이 될 신을 선택할 수 있었을 따름이다(예를 들어 여호 24, 15 ; 2열왕 10, 23).
고대 근동에서는 한 왕국의 모든 신민(臣民)이 임금의 종이듯이, 야훼 하느님을 믿는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인들도 모두 그분의 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느님에게 말씀드릴 때, 곧 기도할 때 자신을 흔히 "당신의 종이라고 일컬었다. 이 표현은 통상 단수 1인칭 대명사인 '나/저' 로 이어진다. 이는 성서에 전해 내려오는 여러 위인의 기도에서도 확인된다. 즉 야곱(창세 32, 11), 모세(출애 4, 10), 삼손(판관 15, 18), 한나(1사무 1, 11), 사무엘(1사무 3, 9), 사울(1사무 14, 41), 다윗(1사무 23, 10 ; 2 사무 7, 20), 솔로몬(1열왕 3, 7), 엘리야(1열왕 18, 36), 느헤미야(느헤 1, 6), 다니엘(다니 9, 17), 에스델(에스 4, 17), 마리아(루가 1, 38. 48), 시므온(루가 2, 29) 등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같은 현상을 시편에서도 볼 수 있는데, 특히 탄원 시편에서 "당신의 종의 쓰임새가 두드러진다. 하느님에게 올리는 간청에서 이렇게 자칭(自稱)하는 것은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첫째는 고백이다. 자신이 하느님에게만 종속된 존재임을, 자신의 삶과 죽음을 포함한 모든 것이 온전히 하느님에게만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둘째는 촉구이다. 하느님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님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종을 보호해야 하는 당신의 의무를 지체 없이 수행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당신 종의 간청을 들어준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감탄에 젖어 시편 저자는 이렇게 외치기도 한다. "아, 주님/ 저는 정녕 당신의 종/ 저는 당신의 종, 당신 여종의 아들"(시편 116, 16). 이 밖에 하느님을 충실히 섬겨 그분의 총애를 받는 이들도 하느님의 종으로 불린다. 즉 읍(읍기 1, 8), 엘리아킴(이사 22, 20), 다니엘(다니 6, 21) 등이다.
'하느님의 종' 또는 '주님의 종' 은 그분을 섬기는 일반 숭배자들을 가리키는 명칭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특수한 사명을 받아 수행하는 그분의 특별한 일꾼들을 일컫는 명예 칭호로도 사용되었다(로마 13, 4). 이러한 하느님의 종에는 우선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분 말씀을 실천하는 힘센 용사"인(시편 103, 20) 천사들이 있다. 인간 쪽에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성조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이 나란히 '하느님의 종' 으로 불린다 (출애 32, 13 : 신명 9, 27 ; 창세 24, 14 ; 26, 24 ; 에제 28, 25). 하느님의 명에 따라 이집트 탈출과 광야 횡단의 주역으로, 또 시나이 계약의 중개자로 활약하는 모세(출애 14, 31 : 묵시 15, 3 등 약 40번),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려고 할 때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른 갈렙(민수 14, 24),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인들을 약속의 땅에 정착시킨 여호수아(여호 24, 29)도 같은 영예를 누린다. 하느님을 대신하여 그분의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특히 장차 올 메시아의 표본으로 추앙받는 다윗에게는 도합 30번이 넘게 사용되어, 모세 다음으로 자주 이 칭호가 붙여진다(2사무 3, 18 ; 2역대 32, 16 ; 하깨 2, 23 ; 즈가 3, 8 ; 시편 18, 1 : 루가 1, 69 : 사도 4, 25 등). 바빌론의 임금까지도 하느님이 맡긴 임무를 수행할 때에는 그분의 종으로 불린다(예레 25, 9 ; 27, 6 ; 43, 10). 그분의 말씀을 전하고 그분의 계획을 선포하는 예언자들도 자연히 포함되므로, 구체적으로는 아히야(1열왕 14, 18), 엘리야(2열왕 9, 36), 요나(2열왕 14, 25), 이사야(이사 20, 3)를 비롯한 구약과 또 신약의 예언자들에게 이 칭호가 부여된다(2열왕 9, 7 ; 에즈 9, 11 ; 예레 7, 25 ; 아모 3, 7 ; 묵시 10, 7 ; 11, 18 등). 이들의 임무는 결국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성실하면서 그분만을 충실히 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시편 105, 6-10. 26. 45).
하느님의 백성을 위하여 특별한 일을 하는 이스라엘 안팎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집단 자체도 하느님의 종으로 불린다(레위 25, 42 ; 1역대 16, 13 ; 느헤 1, 10 ; 이사 63, 17 ; 예레 30, 10 ; 루가 1, 54). 이는 특히 유배의 암흑기에 하느님의 새로운 개입과 구원을 선포하는 제2 이사야서(이사 40-55장)에서 돋보이는 현상이다. 하느님이 많은 민족들 가운데에서 특별히 이스라엘을 당신의 소유로 뽑았기에(41, 8-9 ; 43, 10 ; 44, 1 ; 45, 4), 이 민족을 빚어 만들었기에(44, 21) 그들은 주님의 종이 된다. '위로의 책' 이라고도 불리는 이 예언서에서 주님이 여러 차례에 걸쳐 직접 이스라엘을 당신의 종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시편 86편 16절 등에서 기도자가 하느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당신 종, 당신 여종의 아들' 이라고 이중으로 부각시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시편에서는 기도자 자신이 하느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느님이 자신을 구원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제2 이사야서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종이기 때문에 하느님이 그들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를 확신한 나머지 구원이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선포되기도 한다(48, 20).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종이라는 것은 단순히 수동적으로 그분의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능동적으로 하느님의 "증인" 으로 나서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43, 10).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 안으로 개입하는 하느님을 올바로 알고 그분에 대하여 온 세상에 증언해야 한다. 그들은 이 세상과 관련된 하느님의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그분의 특별한 일꾼인것이다.
〔민족들의 대속자〕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이 야훼 하느님의 종임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제2 이사야서의 일련의 시들은 또 다른 종을 노래한다(42, 1-4 ; 49, 1-7 ; 50, 4-9 ; 52, 13-53, 12). 일부 학자들은 처음 세 개의 노래가 그 뒷구절(42, 5-9 ; 49, 8-13 ; 50, 10-11)까지이어지는 것으로 여기지만, 이는 본래의 노래와 이어지는 본문을 연계시키려고 후에 덧붙인 것 같다. 통상 주님(야훼)의 종의 노래' 라 불리는 이 시들은 명확한 논리적 순서 없이 흩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각각의 노래가 매우 독립적이어서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주인공이 근본적으로 무명인데다가, 드러내면서도 감추고 감추면서도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다.
첫째 노래(42, 1-4)에서는, 주님이 친히 선택하여 당신 영을 불어넣은 종을 장엄하게 소개한다. 주님에게서 전권을 위임받은 이 종은 모든 민족들을 다스리는데, 여느 통치자와 달리 조용하고 부드럽게, 또 가망 없는 이들을 일으키면서 난관을 헤치고 자기의 사명을 완수한다.
둘째 노래(49, 1-7)는 종 자신이 예언자처럼 모태에서 부터(예레 1, 5 참조) 하느님의 선택과 소명을 받았다고 세상 만민에게 선포한다. '이스라엘' 로도 불리는 이 종은, 실패하여 심한 멸시를 받지만, 자신을 종으로 빚어만든 분이 힘이 되어 주심을 확신한다. 주님은 당신의 종을,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키는 일꾼만이 아니라 '민족들의 빛' 으로 세운다. 그리하여 '지배자들의 종' 이었던 이종에게 세상 임금들이 경배하게 된다.
셋째 노래(50, 4-9)에서는 종이 자신의 존재와 사명과 사명 수행의 역사를 다른 사람들에게 밝힌다. 주님의 특별한 제자인 이 종은 자기 임무를 회피하지 않고 자신을 때리며 모욕하는 자들 앞에서 비켜서지도 않는다. 스승인 주님이 함께해 주기에 얼굴을 '차돌처럼' 만들고 끗끗이 자기 길을 걷는다.
가장 긴 넷째 노래(52, 13-53, 12)는 당신의 "의로운 종"에 관한 주님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52, 13-15 ; 53, 11-12). 그 중간에 (이스라엘인들이나 이민족들, 또는 둘 다일 수도 있는) 일단의 사람들의 보고와 고백이 나온다. 종은 학대받고 천대받다가 마침내 처참한 종말을 맞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죄 때문에 하느님에게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죄가 '우리의' 죄임을, 그가 '우리 모두의 죄악' 을 짊어지고 갔음을, 그가 자신을 '많은 이들을' 위한 '속죄 제물' 로 내놓은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주님은 종이 자신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음을 선포하고 그를 '더없이 존귀하게' 들어 높인다.
이 종은 예나 지금이나 신비에 싸여 있다. 종의 정체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된다. 첫째는 이스라엘 또는 그 가운데에서 선별된 단체라는 집단적 해석이다. 이 해석의 출발점은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49 3 ; 참조 : 41, 8)이다. 칠십인역, 특히 그리스도교의 메시아적 해석에 반발한 유대교 주석에서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둘째 노래에서는 종이 이스라엘을 복구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것으로 되어있어서 이렇게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현대에서도 이러한 '공동체적 인격체' (corporate personality)라는 고대인들의 특수한 사고 방식으로 어려움을 해소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예컨대 임금은 백성을 대표하고 대리하며, 자기 백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위한 사명을 수행한다는 표현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개인적-예언적 해석이다. 주님의 종은 그 소명에서부터 예언자의 면모를 지닌다. 그러나 동시에 예언자의 모습과는 일치하지 않는 왕적인 특성도 지니고 있다. 셋째는 개인적-왕적 해석이다. '임금' 이라는 칭호라든가 고대 통치의 근본적인 측면인 전쟁 같은 것이 전혀 언급되지는 않지만, 종에게서는 예언자보다 왕의 특성이 더 뚜렷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 고난과 죽음은 임금의 모습과 합치하기 어렵다.
이러한 세 가지 해석은 역사와 미래라는 두 차원으로 각각 양분된다. 집단적 해석에서는 현존하는 이스라엘과 미래에 형성될 이상적인 이스라엘로 갈라진다. 개인적-예언자적 범주에서는 역사적 인물인 이사야, 예레미야, 또는 제2 이사야로 생각하기도 하고, 장차 재림할 모세나 예레미야를 본보기로 하여 종말에 나타날 예언자로 생각하기도 한다. 개인적-왕적 이해에서는 과거의 몇몇유다 임금이나 다윗의 후손으로 바빌론에 끌려간 임금 또는 그 자손, 심지어는 한때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로 불렸던 페르시아의 고레스 임금(이사 45, 1)을 제시하기도 하고, 유배 이전 유다 왕의 모습으로 그려진 미래의 메시아로 이해하기도 한다.
제2 이사야가 노래하는 주님의 종은 복합적 존재로 위의 어느 한 범주에 포함시키기에는 항상 무리가 따른다. 그런 가운데서도 역사적 인물보다는 미래의 인물로서, 한 가지 칭호로 부를 수 없는 다양한 면을 지닌 메시아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의 종의 정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하는 일이다. 그는 구약성서의 그 어떤 인간도 받은 바 없는 대속(代贖)의 사명을 받아 완수한다. "수많은 민족들"(5 15)의 고통과 죄악을 대신 짊어지고 그들의 '평화를 위한 징벌' (53, 5)을 받는다. 그들을 대신하여 속죄한 것이다(53, 10). 이러한 종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고 고백하기에 이른다(53, 5-6). 이처럼 제2 이사야가 주님의 종을 노래한 이후 오백 년 동안 그 선포 내용을 충족시킨 이는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실 때까지 그러하였다.
〔하느님의 아들〕 신약성서는 주님의 종의 노래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고 선포한다(사도 8, 26-35 ; 1 베드 2, 21-25 : 마태 12, 18 ; 사도 3, 13. 26 ; 참조 : 4, 27. 30). "마지막 날에는"(히브 1, 2) 하느님의 아들 자신이 그분의 종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다(필립 2, 6-11).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당신 자신을 완전히 비우시어 '종의 모습' 곧 종의조건을 취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분이 종이 되었다는 것은 가장 높은 데에서 가장 낮은 데로 내려왔음을 의미한다. 가장 아래로 내려갔기에 또한 '주님' 으로서 가장 높이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종의 가장 기본적이며 중심적인 임무는 상전에게 '순종'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아들이면서도 동시에 철저히 종이었음을 보여 주었다. 하느님의 종은 하느님만을 섬기는 존재가 아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계획을 실현시키려고 특정인을 당신 종으로 뽑아 파견하였고(구약), 마침내 당신 아드님을 종의 신분으로 세상에 보냈다(신약). 이 계획은 하느님의 백성 또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종은 하느님을 위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위한 존재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의 종은 사람들의 종도 된다는 것이다. 공관 복음서들이 전하는 예수의 말씀이 이 사실을 알려 준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크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여러분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인자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고 또한 많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속전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습니다" (마르 10, 43-45 ; 마태 20, 26-28 ; 루가 22, 26-27).
요한 복음서는 같은 사실을 예수가 수난 전날 저녁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것으로 드러낸다(요한 13, 1-20).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종이나 노예가 상전에게 하는 일로, 유대인 종에게는 요구할 수도 없을 정도로 천한 일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 역시 주인과 종의 관계와 동등하다. 스승이며 주님이신 분이 제자이며 종인 사람들에게 노예가 하는 일을 해 주었다. 이로써 공관 복음서가 언급하였던 하느님을 섬기는 종들, 하느님의 종 그 자체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어떠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 준것이다. "주요 또 선생인 내가 여러분의 발을 씻었다면 여러분도 마땅히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본을 보여 준 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행한 대로 여러분도 그렇게 행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3, 14-15) .
〔그리스도의 종〕 신약성서에서도 '하느님의 종' 이라는 표현의 용도는 근본적으로 구약성서와 같지만, 다른점은 하느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도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먼저 하느님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도 구약성서에서처럼 계속 하느님의 종으로 불린다(1베드 2, 16 ; 묵시 1, 1 ; 7, 3 ; 19, 2. 5 ; 22, 3. 6). 특정한 사명을 수행하는 일꾼들에게 이 명예 칭호가 부여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과 그분의 명을 수행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같기 때문에, 천사와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종이라는 동일한 명칭으로 한데 어우러지기도 한다(묵시 19, 10 ; 22, 9). 신약에서는 특별한 일꾼의 사명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한 일과 관련되고 또 그 사명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받는다는 점이 구약성서와 다르다. 신약성서의 첫째 일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들이다. 그래서 사도들은 스스로 하느님의 종이라고 칭하기도 하고(사도 4, 29 ; 디도 1, 1 ; 1고린 3, 5 ; 2고린 6, 4) 다른 이들이 사도들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사도 16, 17).
신약성서의 핵심적 고백은 예수도 하느님과 같이 "주님"이라는 것이다(로마 10, 9 ; 1고린 12, 3). 사도는 자신을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른다(야고 1, 1).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하느님이 보낸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요한 12, 26)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묵시 2, 20).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들과 그들의 협력자들에게, 사도들의 후계자 또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종" 또는 "주님의 종"이라는 명칭이 붙었다(필립 1, 1 ; 2 베드 1, 1 ; 유다 1 : 골로 1, 7 ; 4, 7 ; 2디모 2, 24). 이는 명예 칭호일 뿐만 아니라, 주님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배타적 관계와(갈라 1, 10) 그로부터 선택과 소명을 받아 복음을 선포한다는 자의식을 드러내는 고백이기도 하다(로마 1, 1 등).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첫 번째로 맡긴 것은 당신의 말씀 곧 복음, 그리고 당신의 교회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 과 동의어를 써서 사도들이 "말씀의 시종"(루가 1, 2), "복음의 일꾼" (에페 3, 7 ; 골로 1, 23), "교회의 일꾼" (골로 1, 25)으로도 불리게 된다.
종은 주인이 명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종이 주인의 '일' 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부차적인 사항이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단순한 종의 수준을 넘어선다. "내가 여러분에게 명하는 것을 행하면 여러분은 나의 친구들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더 이상 종들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종은 자기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나는 여러분을 친구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여러분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요한 15, 14-16).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은 친구가 되어 주고, 자기들을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는 지고한 우정을 실천한 분을(요한 15, 13) 모시는 종들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명칭에는 주님인 그리스도와의 종적 관계와 더불어 다른 종들에 대한 횡적 관계도 포함된다. 이 횡적 관계는 바오로 사도가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한 한 마디 권고로 요약된다. "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시오"(갈라 5, 13). 그리스어에서 '섬기다' 는 단어는 '종' 과 어근이 같다. 그래서 '섬기다' 는 '종이 되다, 종살이하다' 로 번역할 수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은 예수가 모범을 보여 준 것처럼 서로 종이 되어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 ; 이사야서 ; 하느님의 백성 ; 하느님의 아들)
※ 참고문헌 C.R. North, 《IDB》 IV, pp. 292~2941 K.H. Rengstorf, δοῦλος, 《TDNT》 II, pp. 261~280/ C. Westermann, עֶבֶד, 《THAT》 II, pp. 182~200/ Ch. Augrain ㆍ M.-F. Lacan, Vocabulaire de Théologie Biblique, Paris, Cerf, 1981, pp. 1120~1224. 〔任承弼〕
하느님의 종
〔라〕Servus Dei · 〔영〕Servant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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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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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