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이자 작곡가. 세례명은 즈가리야.
1914년 6월 27일 강원도 홍천(洪川)에서 태어난 하대응은, 형으로부터 음악적 재질을 인정받아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1927년 휘문중학교에 입학한 후 본격적으로 음악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 1930년에 일본 동경음악학교에 입학한 그는 1934년에 전공을 바이올린에서 성악으로 바꿨다. 1936년에는 일본 매일신문사 주최 제5회 전 일본 음악 콩쿠르에서 <오! 파라다이스>를 불러 성악부 2위로 입상하였고, 1937년에는 오페라 <이프게니>의 주역으로 발탁되어 공연을 가졌다. 1938년에 귀국한 그는 1942년 12월 '부민 음악 감상회의 밤 에 출연하여 테너 독창을 하는 등 국내와 만주 일대에서 공연을 가졌고, 동성상업학교(현 동성중고등학교)와 성남중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활동하였다.
1939년경 수도원을 방문한 하대응은 신앙인들의 겸허와 순명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뒤 당시 종현(鍾峴,현 명동) 본당의 보좌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신부와 동성상업학교 교장 장면(張勉, 요한)의 권유로 세례를 받고 입교하였다. 이후 교회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건강이 나빠진 보댕(J. Bodin, 邊若瑟) 신부를 대신하여 1952년까지 경성 가톨릭 합창단의 지휘를 맡았다. 1944년 11월부터는 계성여자상업전수학교(현 계성여자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두 차례에 걸쳐(1946. 4~1948. 12, 1949. 9~1951. 1) 교감을 역임하였다. 특히 한국 전쟁 당시에는 국방부 정훈국(政訓局)과 협의하여 가톨릭 합창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하려 했으나, 1951년 1 · 4 후퇴로 인해 그 계획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후퇴 직전 정훈국의 협조를 얻어 음악회를 개최하였고, 대구로 피난간 후 대구 국립극장에서 군민(軍民)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승전을 기원하는 음악회를 열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쟁의 와중에서도 하대응은 1951년 <원죄 없으신 성모>와 <아베마리아 II> 등의 성가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1953년 휴전 이후 피난지였던 대구에 정착한 그는 효성여자대학교 음악과 전임 교수에 취임하여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에 전념하여 <진달래꽃>, <산>, <못잊어>, <접동새>, <나그네>, <그리움>, <향수> 등을 작곡하였다. 1955년 12월에는 대구 음악가 협회 회장을, 1962~1963년에는 한국 음악 협회 경북 지부장을 역임하는 등 지역 음악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1963년 4월에는 <아베마리아> 등을 수록한 《하대응 가곡집》을 출판하였고, 1964년 11월에는 제1회 작곡 발표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1965년에는 한국 예술 문화 단체 총연합회 경북 지부 음악협회 고문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에 작곡 활동과 향토 문화 발전의 공로를 인정 받아 경북 문화상을 수상하였다.
1967년 10월에는 가톨릭 음악 발전을 위해 대구대교구 상서국장 장병보(蔣柄補, 베드로) 신부, 전국 전례 위원회 성음악 분과위원장 최명화(崔命化, 베드로) 신부, 계명대학교의 김진균(金晋均) 등과 함께 대구대교구에 가톨릭 음악인 협회의 창설을 발기하였고, 11월에는 제 2회 작곡 발표회를 개최하였다. 1968년 11월에는 대구가톨릭 음악 협회가 주최한 '병인 순교 복자 시복 경축음악회' 에 출연하였고, 1972년 1월에는 대구대교구 가톨릭 합창단의 지휘를 맡았다. 이어 1973년에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자문을 맡았고, 《하대응 가곡집 Ⅱ-산》을 출판하였으며, 1974년 6월에는 회갑 기념 '하대응 가곡의 밤 이 개최되었다. 1975년에는 대구 가톨릭 음악 협회 지도위원을 역임하였고, 같은 해 5월에는 한국 음악 협회 경북 지부에서 주최한 '제2회 한국 음악의 밤' 에서 향토 음악 공로상을 수상하였으며, 1976년에는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하였다. 이처럼 활발하게 활동하던 하대응은 1980년 2월에 효성여자대학교에서 정년 퇴임한 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1983년 5월 29일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다.
하대응은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을 비롯한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들의 서정적인 시구에 곡을 붙인 많은 가곡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대축일 시간 전례 7곡 · 주님 탄생 예고 및 탄생 축일 시간 전례를 위한 전례곡 등도 작곡하여 가르멜 수녀원에 봉헌하는 등 교회 음악 발전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 참고문헌 <가톨릭 시보> 1963년 5월 12일자· 1967년 11월 5일자 · 1972년 1월 16일자 · 1972년 2월 6일자 · 1974년 6월 23일자 1 <가톨릭신문> 1983년 6월 19일자/ 《가톨릭 사전》 《가톨릭 青年》9권 4호(1955. 4)/ 《曉星女子大學校 三十年史》, 효성여자대학교, 1982/ 《啓星五十年史》, 啓星女子高等學校, 1994/ 孫泰龍, 《嶺南音樂史研究》, 민속원, 1999/ ⸺, 《한국의 음악가》,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3. 〔梁仁誠〕
하대응 (1914~1983)
河大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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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하대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