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란

[히]הָרָן · [그]χαρραν · [라 · 영〕Har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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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하란에 머물고 있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아브라함은 하란에 머물고 있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현재 터키(Türkiye)와 시리아(syria)의 국경 지대로 터키의 남동부에 위치한 우르파(Ar-Ruhā) 주에 속한 고대 유적지이며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의 북서부에 위치한 대상(隊商) 무역의 중심지. 아브라함은 하란에 머물고 있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창세 12, 1).
〔위치와 이름〕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인 발리크(Balikh)강변에 위치한 하란은, 티그리스 강변의 니느웨(Nineve)에서 고잔(Gozan)과 카르케미쉬(Carchemish)를 거쳐 동부 지중해로 나아가는 동서 간 간선 도로의 중간 지점이다. 또 하란 남쪽 120km 지점에서는 발리크 강이 유프라테스 강과 합류하며, 다마스커스에서 이 강변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와 하란을 거쳐 아나톨리아(Anatolia)로 빠지는 남북 간 간선 도로도 이곳에서 교차된다. 수메르어 '카스칼' (kaskal)에서 연유한 아카드어 '하라누' (harranu)는 '길, 도로' 라는 뜻이며, 바빌로니아어와 아시리아어에서도 같은 단어가 '각종 길, 여행, 여정, 대상, 장사길, 군 진격로'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하라누' 를 히브리어로 '하란' 이라 부르기 때문에, 즉 이러한 전략적 위치 때문에 하란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성서에서 하란은 “바딴”(פֶּדָּן)과 같은 곳으로 나타나는데(창세 27, 43 ; 48, 7), 아카드어에서 '파다누' (padanu, paddanu) 역시 하라누처럼 '길' 또는 '대상 행렬' 을 의미한다. 바딴보다 더 자주 사용되는 '바딴 아람' (פַּדָּןאֲרָם)은 "아람 평야" (호세 12, 13) 또는 '바딴' 처럼 하란을 가리키는 아람어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와 연관된단어가 두 강(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또는 유프라테스와 카부르) 사이의 평원' (메소포타미아), 또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서 크게 휘돌아 흐르는 안쪽 땅 을 가리키는 '아람 나하라임' (אֲרַם נַהֲרִים)이다. "나홀의 성"(창세 24, 10)은 리브가의 부모가 살던 곳으로 하란 근처의 다른 성읍이며, 현재의 나쿠르(Nakhur)로 추정된다.
〔역 사〕 하란의 기원은 기원전 3000년대까지 소급된다. 기원전 19~18세기에 아시리아인들이 아나톨리아의 가빠도기아(Kappadokia)에서 교역하며 남긴 토판에 따르면, 당시 하란은 중요한 교차로로 대상들의 기착지였다.뿐만 아니라 하란에 있던 에홀훌(Ehulhul) 신전은 메소포타미아의 월신(月神)인 신(Sin)의 제의 중심지였다. 함무라비 시대(기원전 1792~1750)에 하란은 아모리왕 아스디타킴(Asdi-takim)의 통치하에 있었다. 하란은 인접한 강국인 아시리아(Assyina)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중요한 도시였기에 아시리아 왕 아다드니라리 1세 (Adad-nirari I, 기원전 1307~1275)는 하란을 점령한 뒤 요새를 구축하였으며, 티글라트 필레세르 1세(Tiglathpileser I, 기원전 1115~1077)는 에훌훌 신전을 아름답게 꾸몄다. 그러나 하란 성읍이 반역을 일으키자 아수르단 3세(Asshur-dan Ⅲ)가 기원전 763년에 이 성읍을 파괴하였다가, 사르곤 2세(Sargon Ⅱ, 기원전 722~705)가 복구하였다. 그 아들인 산헤립(Sennacherib, 기원전 704~681) 왕은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을 때 특사를 보내 이 파괴 사건을 언급하였다(2열왕 19, 12 ; 이사 37, 12). 에사르하돈(Esarhaddon, 기원전 680~669)과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기원전 668~627) 왕 때에는 신전도 복원하였였으며 하란은 니느웨가 함락당한 때부터(기원전 612) 기원전 609년까지 아시리아의 마지막 수도였다.
신바빌로니아 왕국은 하란에 달의 신전을 복구하였으며, 나보니두스(Nabonidus, 기원전 556~539) 왕은 모후를 이 신전의 대사제로 임명하였다. 그 시대에 하란은 티레(Tyre)와 교역하는 유명한 상업 도시였다(에제 27, 23). 그 뒤 하란은 차례로 페르시아와 로마,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로마 시대—당시 이름은 카레(Carrhae)—에 접어들던 기원전 53년에는 크라수스(M.L. Crassus, 기원전 115?~53)가 이곳에서 파르티아(pathia)에 대패한 사건이 있었다. 또 297년에는 이곳에서 후에 로마 황제가 된 갈레리우스(Galerius, 305~311)가 사산 제국의 나르세스(Narses, 293~302) 왕에게 패배하였으며,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 379~395)는 신전을 헐어 버렸다(382). 639년 이슬람 세력에 정복된 하란은 1260년 이곳을 침입한 몽골족(Mongol)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현재는 폐허 유적지 옆에 작은 마을만이 존재한다.
〔성서에서의 언급〕 하란은 성서의 아브라함과 관계되어 유명하다. 에벨의 후손인(창세 10, 21. 25) 데라와 그의 가족은 칼대아 우르에서 이곳으로 와 오래 머물렀다. 아브라함이 "내 고향" (창세 24, 4)이라고 부른 '아람-나하라임' 은 하란을 포함한 넓은 지역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떠난 뒤에도 동생인 나홀의 일가는 이곳에 남았다. 후에 엘리에젤은 이사악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와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데려간다(창세 24장). 야곱 역시 이곳에 있는 라반의 집으로 도망쳐 와서 레아와 라헬을 얻어 12명의 자녀를 낳았다.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고백에 따르면, 그들의 조상은 "떠돌며 사는 아람인"이었다(신명 26, 5). 아람인들은 기원전 11세기경에야 고대 근동 문헌에 등장한다. 그러나 창세기에 따르면, (원)아람인들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하란 주변의 '아람-나하라임' 일대에 두루 퍼져 반유목 생활을 하던 목축민으로 추정된다.
사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이스라엘 선조들의 이주 시기를 확정할 자료는 없다. 다만 성서 등을 종합하면, 기원전 2000년대 전반기로 볼 수 있다. 그들의 생활상은 하란을 중심으로 한 북서 메소포타미아의 문화와 유사한데, 그것은 수메르-아카드 문화의 기초 위에 후리족(Hurrian)과 아모리족(Amorite)의 문화가 혼합된 형태였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고향인 "칼대아의 우르" (창세 11, 31)를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로 보지 않고 하란 근처로 보는 견해가 늘고 있다. 초기 역사는 불확실하지만, 특히 선조들의 시대에 칼데아인들은 서부 셈족의 한 갈래로 하란 근처의 북서 메소포타미아에 살았다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아람 민족 ; 아브라함 ; 아시리아 ; 칼데아)
※ 참고문헌  한상인, 《족장 시대의 고고학》, 학연문화사, 1996/정기덕,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 는 어디인가?>, 《신 학과문화》 9, 2000, pp. 91~132/Yoshitaka Kobayachi, 《ABD》 3, pp. 57~591 W.W. Hallo, 《EJ》 7, pp. 1328~1330. 〔李鎔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