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꾹서

— 書

〔히〕חֲבַקּוּק · 〔그〕Αμβακουμ · 〔라〕Prophetia Habacuc · 〔영〕Habak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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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에 통곡의 벽에 모여 하바국의 기도를 올리는 유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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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에 통곡의 벽에 모여 하바국의 기도를 올리는 유대인들.

구약성서의 열두 소예언서 중 여덟 번째 예언서.
〔예언자 하바꾹〕 하바꾹이라는 이름의 어원은 분명치않다. 전에는 '껴안다' 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 "하바끄" (חָבַק)에서 연유된 것으로 여겼으나(2열왕 4, 16) 오늘날에는 칠십인역에서 차용한 아시리아어의 어원인 아카드어 '하바쿠쿠' (habbaququ, hambaququ : 방향 식물 또는 채소의 한 종류)에서 유래하였다고 보고 있다(M. Noth).
하바꾹서는 예언자의 이름과 그가 "예언자"(하바 1, 1 ; 3, 1)임을 소개할 뿐, 그의 집안이나 족보, 고향이나 거주지, 생존 시기, 소명 이야기 등은 전혀 알려 주지 않는다. 다만 예언서에 나오는 전례 음악 용어(3, 1. 19) 등을 고려하여 성전과 연관된 레위인, 또는 성전 예언자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 하바꾹 예언자의 활동 연대는 신바빌로니아의 위협이 드러나는 상황으로 보아 요시아(기원전 640~609) 왕 말기부터 아시리아의 패망 후 신바빌로니아가 팽창하는 시기, 특히 여호야킴(기원전 609~598) 왕 때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렇다면 이보다 약간 앞선 시기에 활동하였다고 여겨지는 예언자 나훔과 대비를 이룬다. 하느님이 악인들을 처벌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하느님의 정의를 옹호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나훔서와는 달리 하바꾹서에서는 악인과 의인의 정체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언자 하바꾹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기에, 후대의 묵시 문학에서는 이 예언자를 여러 차례 자유롭게 등장시켰다. 가령 다니엘서에 추가된 벨과 뱀' 이야기(다니 14, 1-30 : 기원전 2세기) 바로 다음에 언급된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에 대한 이야기에서 하바꾹은 특정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소개된다(다니 14, 33-39). 외경인 《예언자들의 생애》(서기 1세기)에서도 하바꾹을 시므온 지파 출신으로 유배 시기의 인물로 적고 있다(하바 1-9). 미드라쉬 역사 문헌집인 《세데르 올람 랍바》(2~3세기)에서는 그를 므나쎄 시대의 인물로 여기고 있다(랍바 20).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nus, 150?~215?)는 그를 예레미야와 에제키엘과 같은 시대 인물로 보는 동시에, 요나와 다니엘과도 같은 시대 인물로 소개하였다. 중세의 카발라 문헌(1300년경)에는 그를 엘리사 예언자와 관계된 수넴 여인의 아들이라고 하였다(조하르 1, 7 : 2, 44-45).
〔역사적 배경〕 하바꾹서에는 당시 근동의 혼란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100년 이상 절대 강국으로 군림하였던 아시리아는 이슈르바나팔(Ashurbanipal, 기원전 668~627)왕이 죽으면서 급격한 혼란에 빠졌다. 이때를 틈타 유대의 요시아 왕은 종교 개혁 등으로 내정을 쇄신하고 영토를 북서쪽으로 확장하였으나, 아시리아를 지원하기 위해 출정한 이집트의 네코 2세(Necho Ⅱ, 기원전 610~595, 성서에서는 '느고' 로 표기)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기원전 609) . 후계자인 여호아하즈가 왕위에 올랐으나 네코 2세 에의하여 3개월 만에 폐위되고, 그의 형이자 친이집트 세력인 여호야킴이 왕이 되어 유대는 이집트에 복속되었다. 그러나 근동의 신흥 세력으로 떠오른 신바빌로니아는 메대와 연합하여 아시리아를 멸망시킨 다음(기원전 609), 이집트 군대마저 카르케미쉬(Carchemish)에서 격파하고(기원전 605) 아스클론(Ashkelon)을 점령하였다(기원전 604). 기원전 11세기에 근동사에 등장한 칼데아인들은 기원전 8세기에 바빌로니아 지역에 침투하여 신바빌로니아를 건국한 나보 폴라사르(Nabopolassar, 기원전 625~605)와 그 뒤를 이은 느부갓네살(기원전 605~562)의 영도 아래 급격히 세력을 팽창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유대를 비롯한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의 여러 나라들은 이집트 대신 신바빌로니아를 종주국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느부갓네살 왕의 이집트 침공이 실패하자 유대는 신바빌로니아로부터 등을 돌리고 이집트로 기울었으나, 느부갓네살의 침공을 받아 여호야긴(기원전 598~597) 왕이 끌려가고 시드키야(기원전 597~587)가 새 왕이 되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유대는 신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사이를 오가며 저항과 복종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신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하였다(기원전 587). 이와 같이 기원전 7세기 말부터 6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유대는 거세게 몰아친 국제 정세의 변화와 이에 따른 국내의 혼란과 갈등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두 강대국의 억압과 이에 따라 움직이는 국내 지배 세력의 불의에 직면해서, 하바꾹 예언자는 하느님의 정의가 어떻게 실현되며 당신 백성에 대한 약속을 어떻게 실현하실 것인지 묻고 외치게 된 것이다.
〔구분과 문학 양식〕 전체의 구성 : 하바꾹서는 매우 짧지만 학자들의 논란이 무척 심한 책이다. 한 사람이 전체를 다 쓰지 않았다고 여겨지지만, 현재의 하바꾹서는 문학적으로 일관되게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특징 중의 하나는 예언자의 '1인칭' 화법이다. 일반적으로 예언서들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고 전하지만, 하바꾹서에서는 '내' 가 계속 나타난다. 이런 측면에서 하바꾹서는 개인 탄원 시편(22장)과 욥기, 예레미야의 고백(예레 11, 18-12, 6 ; 15, 10-21 ; 17, 14-18 ; 18, 18-23 ; 20, 7-18)과 비슷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초점은 한 개인의 탄원에 있지 않고 그를 포함한 백성 전체의 운명에 집중되어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대화' 양식이다. 예언자는 묻고 하느님은 답한다. 그런데 직접 묻고 답하는 방식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공명하는 식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이 독특하다. 아울러 하느님이 결코 침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욥기와 비슷하다.
이 책의 핵심 성격에 대한 논의는 분분하다. 전례적 또는 제의적 예언서로 보는 견해가 많으나, 예배 양식과 관련된 언어를 사용하여 예언자의 환시 체험 또는 신정론(神政論)을 다룬 예언서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하바꿈서는 크게 '환시' 를 통한 예언임을 밝힌 머리말(1, 1)에 이은 예언자의 물음과 하느님의 답변(1, 2—2, 5), 다섯 가지 재앙 선포(2, 6-20), 예언자의 기도(3장) 등 세부분으로 나뉜다. 또는 예언자와 하느님의 첫째 만남(1, 2-17), 둘째 만남(2장), 하바꾹의 기도(3장)로 나누기도 한다.
1-2장의 구성과 성격 : 이 부분은 예언자의 담화 부분인데, 크게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하느님께드리는 예언자의 탄원이다(1, 2-4). 예언자는 혼자서("제가") 악인들이 의인을 짓밟는 현실의 '폭력' 과 '불의' 를 고발하며, 이를 "언제까지" 겪어야 하는지 묻는다. 둘째는 이 항의에 대한 하느님의 답변이다(1, 5-11). 하느님은 예언자를 포함한 더 넓은 범주의 청중("너희는")에게 위로와 구원의 약속 대신 사나운 칼데아인들을 보내 사라지게 할 것임을 알린다. 셋째는 칼데아인들의 폭력에 대해 예언자가 하느님께 탄원하는 두 번째 항의이다(1, 12-17). 넷째는 초소에서 주님의 대답을 기다리는 예언자(2, 1)에게 '환시' 로 주시는 하느님의 답변(2, 2-5)과, 악인에게 선언하는 다섯 가지 불행이다(2, 6-19).
이 부분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의인" (צַדִּיק)과 "악인"(רָשָׁע)의 정체(1, 4. 13 ; 2, 4-5)와 칼데아인들이 맡은 역할이다(1, 6). 의인과 악인의 정체에 관한 견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악인들을 의인인 유대를 괴롭히는 아시리아나 이집트, 신바빌로니아, 그리스 같은 외부의 적으로 본다. 또 다른 견해는 유대 내에서 악인 집단이 의인집단을 억압하는 데서 오는 유대 사회의 내적 긴장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여기서 악인들은 요시아 왕의 개혁을 무너뜨린 이, 또는 여호아킴 왕과 그 지지자들로 생각한다. 세 번째로는 예언자의 항의가 처음에는 유대 내부 집단을 겨냥하였으나 후에 역사 체험을 통해 신바빌로니아에게 적용되었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혹은 이집트를 겨냥하였다가 신바빌로니아에게 재적용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이 부분에 대한 일치된 견해는 아직 없다. 그래서 편집자가 의도적으로 특정한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인간 역사를 관장하는 하느님의 권능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배열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확신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예언자의 탄원에 즉각 자비롭게 응답해주지 않는다. 하느님의 답변은 공동체 전체를 겨냥하며, 당신이 뜻한 때에 당신의 방식으로 정의를 세울 것임을 알려 준다. 칼데아인들 역시 유대를 심판하는 하느님의 도구로 쓰이지만, 결코 당신의 심판에서 제외되지 않음을 밝힌다.
두 번째 문제는 하바꾹서 2장 4절의 의미이다. 이 구절에 하느님 응답의 핵심이 담겼다고 이해하지만, 그 문장이 지닌 문법적 · 어휘적 문제 때문에 그 의미는 불분명하다. 구약성서 새 번역은 다음과 같다. "보라, 뻔뻔스러운 자를. 그의 정신은 올바르지 않다. 그러나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 그러나 이 구절의 주(註)에서도 히브리어 본문의 뜻이 분명하지 않다고 밝히고, 몇 갈래의 의견을 달고 있다. 즉 "보라, 마음(또는 영혼)이 올바르지 않은 자는 쓰러진다" "보라, 교만으로 가득 찬 자는 올바름을 모른다" , "의인은 믿음(또는 신앙)으로 살리라" 등이다. 문제는 '뻔뻔함' 또는 '교만' 으로 옮긴 히브리어 "우펠라" (עֻפְּלָה)가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단 한 번 나오는 단어라 그 뜻이 명확치 않다는 것이다. 또 "그"의 선행사가 분명치 않다. 현재 분명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으나, 이어지는 2장 5-20절과 연결시켜 이 구절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래 구절들은 악인들은 지나친 탐욕으로 인해 멸망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에 비추어 보면, 2장 4절에서는 오만한 악인의 임박한 몰락과 고통받는 의인의 생존이 대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근거는 하느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며 믿음에 충실한 이들을 의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때와 방법은 열려 있으므로 성실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요구된다.
세 번째 문제는 전례 또는 지혜 양식으로 구성된 다섯가지 불행 선언에서 상정되는 악인의 정체이다. 일부 학자들은 여기에 나오는 희생자가 지역적이라, 본래 악인은 이를테면 예루살렘의 지배 계급 같은 유대의 내부 집단이었는데, 후대의 편집자가 칼데아에게 다시 적용시킨 것으로 본다(예레 22, 13-23 참조). 반면 본래부터 칼데아인들을 겨냥한 신탁이라는 주장도 있다. 즉 이 신탁에서 민족과 국가들(2, 8. 10. 13), 세상, 물(바다), 땅(2, 8ㄴ. 14. 17ㄴ), "레바논에게 휘두른 폭력" (2, 17ㄱ) 등을 언급한 것으로 볼 때 국제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있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어느 특정 국가의 잘못이 아니라 온갖 형태의 억압과 착취를 심판하고 단죄하시는 이가 하느님임을 밝히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바꾹의 기도 : 하바꾹서 3장의 성격에 대한 논의도 다양하다. 한 예로 이 3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하바꾸 예언자의 기도, 쉬그요놋에 맞추어"(3, 1). 여기서 "쉬그요놋" (שִׁגְיֹנְוֹת)의 뜻을 아카드어 세구(segû)와 연결하여 '애가' 또는 '만가' 로 보는 견해가 있다(시편 7 참조). 또 "셀라" (3, 3. 9. 13), "합창 지휘자에게, 현악기와 더불어" (3, 19) 등의 전문 용어, 비탄에 젖은 분위기 등을 고려하여 이 노래가 성전 제의 때 애도의 뜻으로 부르던 제의 노래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반면 신화적 이미지에 주목하여 우주적 혼돈의 힘에 대항하여 싸우는 하느님의 승리가, 승전가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는 신현(神顯)을 묘사한 환시 보고문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시편 형식의 이 노래에서 예언자는 도입부(3, 2)에서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나길 청하고, 마지막 대목(3, 16-19)에서 하느님의 권능을 경외하며 그분이 자신의 청원을 들어주리라고 확신한다. 중간에 하느님이 데만(에돔)에서 전사처럼 진군해 오는 모습(3, 3-15)이 소개되는데, 우주적 차원에서 혼돈의 세력을 꺾는 하느님의 승리를 신화적 언어로 표현하였다(3, 7-15). 이 단락은, 아직 현실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하느님이 과거에 하였듯이 지금 또는 곧 당신 백성을 구하고(3, 13) 정의를 세울 것을 조용히 기다리는(3, 16) 예언자의 확신(2, 4)을 표현한다.
사용된 언어와 문장의 특성 때문에 하바꾹서 3장을 1-2장과 구분된 독립된 노래로 간주하는 견해가 한때 활발하게 제기되었으나, 현재는 예언자의 항변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이 준 '환시' (2, 1-5)의 내용으로 여겨 본래 연결된 본문으로 이해한다. 비록 야훼 하느님을 고대 근동의 신화와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하였지만, 그 하느님이 우주를 다스리며 백성들을 구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본문과 사본〕 하바꾹서 본문은 세 장에 불과하며 그 길이 또한 짧은데도 불구하고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은 난해하고 다른 고대 사본과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한예로 쿰란에서 발견된 하바꾹 주해서에는 3장이 빠져 있으며, 1-2장도 현재의 마소라 본문과 다른 부분이 160군데에 이른다. 그 결과 마소라 본문을 옮기거나 주석할때 어려움이 크며, 다른 사본들과 비교하여 본문을 수정하는 예도 적지 않다.
〔메시지와 의의〕 하바꾹서는 역사의 격변기에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성격과 그분이 이스라엘과 함께 일하는 방식에 대해 깊이 성찰하였다. 예언자는 하느님이 침묵을 지키며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 상황에서, 하느님의 정의와 악인들을 다루는 하느님의 방식에 대해 묻는다(예레 12, 1-3 참조). 답변으로 주어지는 하느님의 환시를 통해, 예언자는 세상사를 하느님의 구원 섭리라는 한층 넓은 맥락에서 재조명하게 된다(1-2장). 나아가 창조 세계와 역사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적인 권능을 강하게 긍정하며 그 실현을 기다린다(3장). 그리하여 정의가 보장되는 구원의 길은 곧 하느님의 성실함을 믿고 의지하는 것(2, 4)임을 고백한다(이사 7, 9 참조). 또한 그는 힘과 부의 축적을 통하여 자신의 힘에 의지하는 교만과 오만, 그리고 착취와 억압의 온갖 형태를 계속 고발하며, 결국 멸망하리라고 예언한다.
하바꾹서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쿰란 공동체는 하바꾹서 1-2장으로 자기 시대를 해석하였다. 즉 악인은 '악한 사제' (아마도 마카베오 가문의 요나단이나 시몬)이고, 의인은 자기 공동체의 스승이라고 하였다(하바꾹 페세르). 신약 시대에 사도 바오로는'믿음을 통해 의롭게' 된다는 주요한 가르침의 근거로 하바꾹서 2장 4절을 인용하였다(로마 1, 17 : 갈라 3, 11 ; 참조 : 히브 10, 38-39). 탈무드 시대의 랍비 시믈레(Simlai)는 하바꾹서 2장 4절이 토라의 613가지 계명을 요약한 것이라고 이해하였다(b. Mak. 23b-24a). 유대 전승에서 하바꾹서 3장은 시나이 계시를 묘사한 것으로 이해되며, 그래서 시나이에서 토라의 계시를 경축하는 초막절 축제 제2일에 봉독된다(b. Meg. 31a : 하프타라 부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비롯한 각종 전쟁과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같은 참극을 겪은 우리 시대에 하바꾹의 항변은 결코 낯설지 않다. 불의의 한가운데 있었던 하바꾹은 삶과 세상을 보는 지평을 넓히며 결국 의인은 성실함과 인내로 살리라(2, 4)는 가르침을 던져 준다. 아울러 하바꾹서의 구조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응답은, 신앙인들이 하느님께 탄원하고 항변할 수 있으며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이 나서 주시도록 청원할 수 있다는 사실, 하느님은 그 모든 것을 용인하며 응답해 준다는 것이다. → 구약성서 ; 나훔서 ; 아시리아 ; 예언 ; 예언서)
※ 참고문헌  이기락 역, 《열두 소예언서》 구약성서 새 번역 16,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9/ ⸺, 《소 예 언서》, 성서 와함께, 2005/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 이현주 역,《예언자들》 상, 종로서적, 1987/ M.A. Sweeney, 《ABD》 Ⅲ, pp. 1~61 A.R. Ceresko, pp.~2641 D. Bratcher, The Theological Message of Habakkuk, Richmond, VA, 1984/ R. Coggins, An Alternative Prophetic Tradition?, R. Coggins · A. Phillips · M. Knibb eds., Israel' s Prophetic Tradition, Cambridge, pp. 77~941 M. Delcor, Habacuc, Les Petits Prophètes, A.Deissler · M. Decor eds., pp. 389~433/ J.A. Fitzmyer, Habakkuk 2 : 3-4 and the NT, To Advance the Gospel, New York, pp. 236~246/ A.Schokel, L and J.L. Sicre Diaz, Profetas II, Madrid, 1980/ D.E. Gowan, The Triumph of Faith in Habakkuk, Atlanta, 1980/ L. Boadt, Jeremiah 26-52, Habakkuk, Zephaniah, Nahum, Wilmington, 1982. 〔李鎔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