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 소속 본당. 경북 경산시 하양읍 동서 2리 618 소재. 1928년 5월 6일 용평(영천 본당의 전신)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성 미카엘 대천사. 관할 구역은 경산시 하양읍 와촌면 전 지역, 영천시 청통면 일부. 공소는 와촌 공소 1개소. 〔교 세〕 1965년 2,296명, 1970년 2,300명, 1975년 2,153명, 1980년 2,401명, 1985년 2,769명, 1990년 2,998명, 1995년 3,375명, 2000년 3,098명, 2003년 3,110명. 〔역대 신부〕 초대 김필곤(金泌坤) 바르나바(1928. 5~11), 2대 아몽(J.M.Hamon, 河濟安) 요한 마리아(1929. 4~1943. 2), 3대 이성만(李性萬) 이냐시오(1943. 2~1947), 4대 유흥모(柳興模) 안드레아(1947~1947.5), 5대 김계룡(金季龍) 베드로(1947. 5~6), 대 강찬형(姜贊亨) 파스칼(1947. 6~1949. 6), 7대 권영조(權永兆) 마르코(1949. 6~1950. 10), 8대제찬규(諸燦) 시메온(1950. 10~1955. 4), 9대 이임춘(李林春) 펠릭스(1955. 4~1971. 11), 10대 허연구(許淵九) 모세(1971. 11~1975. 1), 11대 박형진(朴馨鎭) 아우구스티노(1975. 1~1976. 10), 12대 김용효(金容孝) 요셉(1976. 10~1978. 3), 13대 이상호(李相浩) 베드로(1978.3~1981.4), 14대 권혁시(權赫時) 모세(1981. 4~1984. 1),15대 정성우(鄭聖羽) 바오로(1984. 1~1988. 6), 16대 김철재(金鐵在) 바오로(1988. 6~1991. 3), 17대 전헌호(全憲浩) 실베스테르(1991. 3~1994. 8), 18대 정재완(鄭在脘) 니콜라오(1994. 8~1996. 8), 19대 이강언(李康彥) 바오로(1996. 8~1997. 9), 20대 이성억(李成億) 타대오(1997. 9~1998. 8), 21대 이재수(李在壽) 시몬(1998. 8~2001. 8), 22대 김상규(金尙奎) 필립보(2001. 8~2004.8), 임시 곽재진(郭載珍) 베드로(2004. 8~10), 23대 곽재진(2004. 10~현재).
하양 지역에 언제부터 신자가 거주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886년도의 교세 통계표에 하양 북동에 12명의 신자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대체로 1880년대경부터 신자가 살지 않았나 추측된다. 그러나 이 지역에 본격적으로 복음이 전파된 것은 1920년대이다. 즉 1920년경 영천 용평 본당의 신자 이규혁 가정과 전기직(베드로) 가정, 그리고 북동 공소 신자인 박성예(아가타) 등이 하양 읍내로 이사오면서 신자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이규택의 집(동서동 630-12)에서 주일 첨례를 보다가 1925년에 동서리 599번지의 집 한 채를 매입하여 하양 공소를 건립하였고, 1928년 5월에 이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주임으로 김필곤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러나 김 신부가 부임 6개월 만에 병환으로 선종하자, 하양 본당은 약 4개월 동안 용평 본당 주임인 유흥모 신부의 사목 지도를 받았다.
1929년 4월에 2대 주임으로 부임한 아몽 신부는, 이듬 해에 동서리 618번지의 현 성당 부지를 매입한 뒤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성당과 사제관은 1931년 4월 4일에 완공되어 5월 21일에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그리고 1932년 9월 19일에는 성당의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후쿠오카(福岡)의 외제(Heuzet) 신부를 초청하여 지하 수맥을 찾기도 하였다. 3대 주임 이성만 신부는 성당 종을 설치한 뒤 무세(G. Mousset, 文濟萬) 주교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거행하였고, 6대 주임 강찬형 신부는 곡식과 미군들의 구제품 일부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신자들에게 지급함으로써 실질적인 구호 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8대 주임 제찬규 신부는 교회 활성화를 위해 여러 신심 단체를 조직하고, 1951년부터는 본당 내에 소화유치원을 설립하여 하양 지역에 천주교를 알리는 데 이바지하였다.
9대 주임 이임춘 신부는 신자수가 증가하여 성당에 신자 전체를 수용하기 어렵게 되자 성당과 주변 건물의 증축을 결정하였다. 이에 1958년 현 위치에 수녀원을 신축하였고, 1961년에는 성당 40평을 증축하였으며 1963년에는 좁고 낡은 유치원 건물을 헐고 새로 신축하였다. 1962년에는 금호 공소를 현대식 교회로 신축하여 1963년 9월에 본당으로 승격시켰고, 1963년에는 진량 공소의 대지와 건물을 매입하였으며, 1969년에는 평사 공소의 건물을 준공하였다. 10대 주임 허연구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을 조직하였고, 11대주임 박형진 신부는 1968년 이래 재정난으로 휴교 중이던 소화유치원을 무학유치원으로 개명하여 1975년 3월에 재개원하였다. 그리고 1976년 2월 20일에는 '반(班)공동체의 단결 액션화' 라는 주제로 본당 내의 각종 액션 단체들이 참석한 가운데 무학산에서 산상 기도회를 개최하였다. 이어 14대 주임 권혁시 신부 재임기에는 교무금 및 주일 헌금 배가 운동이 전개되는 한편 원활한 사목 활동을 위해 사도회가 창립되었고, 1983년 6월에는 사도들의 모후 꾸리아가 창설되었다.
15대 주임 정성우 신부는 사도회와 성도회를 포함한 여러 단체들이 친목 단체로만 머물러 있는 점을 쇄신하고자, 이들 단체들을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으로 전환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본당에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들이 생겨나면서 본당의 분위기가 기도와 활동 중심으로 일신되었다. 그리고 성당을 비롯한 각 건물들이 노화되자, 성당 도색 작업과 사제관 내부 수리, 사무실 이전 작업 등을 실시하였다.
16대 주임 김철재 신부는 부임 후 전체 신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신자들의 세대별 교적부를 재정리하였으며, 1989년 10월 25일에는 수녀원과 유치원 사이의 공터에 사제관 및 교리실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 공사는 1990년 10월에 끝나, 12월 13일 이문희(李文熙, 바오로) 대주교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그 사이 1990년 5월 11일에는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을 도울 목적으로 인성회를 창립하였다. 17대 주임 전헌호 신부는 부임과 동시에 성당 마당 포장 및 정문 신축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1992년 2월 29일에는 본당 설립 65주년 기념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3월 초에 신자들의 교회 도서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본당 내에 서점을 개설하였으며, 5월 5일에는 《하양본당 65년사》를 발간하였다.
90년대 후반부터 하양 본당은 성당 내의 환경 개선에 노력하여, 21대 주임 이재수 신부는 낡은 교리실의 보수공사를, 22대 주임 김상규 신부는 노후된 성당과 수녀원의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23대 주임 곽재진 신부는 성당 뒤편에 성모 동산을 조성하였다. (→ 대구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하양 본당 65년사》, 하양 천주교회, 1992/ 영남 교회사 연구소, 《옛 공소의 어제와 오늘》, 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영남교회사 연구소, 2000/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사 편찬위원회, 《교구사연대표》, 천주교 대구대교구, 1984/ 천주교 대구대교구 편, 《교구총람》, 대구대교구 홍보국, 1986/ 《본당 50년사》, 영천 천주교회, 1986. 〔白秉根〕
하양 본당
河陽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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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 성당 신자들과 함께한 드망즈 주교와 아몽 신부(1931. 5. 21). 현재의 성당 외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