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글, 군터 (1910~1992)

Heigl, Gun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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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 소속 한국 선교사. 신부. 수도명은 군터. 세례명은 알로이스(Alois) 한국 성은 허(許).
1910년 10월 24일 독일 라티스본(Ratisbon) 교구에 속한 브룬(Brunn)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졸업 후 메턴(Metten) 수도원이 운영하던 김나지움에서 6년 동안 공부한 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딜링겐(Dillingen) 소신학교로 옮겨 고등학교 과정(Abitur)을 마쳤다. 1933년 5월 초순 경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여 1년간 법정 수련을 받고 1934년 5월 14일 유기 서약을 한 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철학 과정을, 뮌헨 대학교에서 신학 과정을 공부하고 1937년 5월 22일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 교구 주교좌 성당에서 차부제품을 받았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선교사들의 국외 파견이 점점 어려워지자,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는 3개 수도원에서 선발된 총 8명의 차부제들을 한국 선교사로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정치적 어려움을 타개하고 일찍 선교 지역을 익힌다는 명목 아래 이들은 1937년 9월 독일을 떠나 배를 타고 일본을 거쳐 10월 덕원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연길 수도원으로 배속된 하이글은 덕원 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계속하여, 1939년 4월 10일 초대 연길 대목 구장인 브레허(T. Breher, 白化東, 1889~1950)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용정 본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 후 용정 본당 보좌를 거쳐 두도구 본당 주임(1940. 9~1942. 9)을 역임하였으나 장티푸스로 자주 요양을 하다가 1942년 9월 북경의 한 병원에 입원하였다. 이듬해 3월 하이글은 돈화 본당의 초대 보좌 신부로 부임하여 한인 사목을 담당하였다. 1946~1948년까지 동료들과 함께 남평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후 사목 활동을 계속할 수 없어 독일로 돌아갔다.
독일에서 그는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선교 담당 총무 보좌, 1958~1972년에는 뮌헨 상트 오틸리엔 기숙사 사감으로 일하였다. 파사우 교구의 키른(Kim) 본당에서 사목하다가 1992년 1월 14일 숙환으로 선종하였으며, 유해는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 돈화 본당 ; 두도구 본당 ; 연길교구)
※ 참고문헌  A. Kasper P. Berger, HWAN GAB(還甲), Münsterschwarzach, 1973/ D. Drexl, Necrologium, St. Ottilien, 2000/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81/ Schematismus Monachorum Et Fratrum Congregationis Ottiliensis O.S.B 1913~1931/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원 60년사 편찬위원회 편, 《은혜의 60년》, 부산 올리 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1995/ Tdesanzeige von St. Ottilien 1992. 〔宣智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