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대표적인 철학자 중 한 사람.
하이데거가 철학사에 미친 영향은 매우 광범위하다. 그는 실존 철학만이 아니라 현상학, 해석학, 철학적 인간학, 형이상학, 존재론, 예술 철학, 종교 철학에도 관심을 두었으며, 후설(E. Husserl, 1859~1938)의 현상학을 철학적 방법론으로 삼아 내용적으로 키에르케고르(S.A. Kierkegaard, 1813~1855)의 실존 철학과 딜타이(W. Dilthey, 1833~1911)의 생의 철학(Lehensphilosophie)을 자신의 '현존재분석론' 에 융합시켜 독특한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생애와 저술〕 하이데거는 1889년 9월 26일 독일 바덴(Baden) 주의 인구 4,000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 메스키르히(Messkirch)에서 요한나와 프리드리히의 삼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그는, 메스키르히 본당의 주임 신부로 후에 프라이부르크(Freibug)의 대주교가 된 그뢰버(Konrad Gröber) 신부의 도움으로 1903~1909년까지 콘스탄츠(Konstanz)와 프라이부르크의 김나지움에서 공부하였으며, 졸업 후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건강상의 이유로 2주 만에 예수회의 학자 신부가 되는 꿈을 포기해야 하였으며, 그 후 교구 소속 신부가 되기 위해 1909년 겨울 학기부터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하였다. 하지만 이때 1907년에 선물로 받은 독일의 철학자 브렌타노(F. Brentano, 1838~1917)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존재 의미의 다양성》(Von der mannigfachen Bedeutung des Seienden nach Aristoteles, 1862)을 읽고 존재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신학과 철학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1911년부터 철학 공부에 전념하였다.
1913년 <심리주의에서 판단에 대한 이론>(Die Lehre vom Urteil im Psychologismus)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터졌으나 심장 질환으로 징집에서 면제되어 후방 근무를 하게 되었다. 1915년 중세 스콜라 철학자인 스코투스(J.D. Scotus, 1265/1266~1308)에 대한 <둔스 스코투스의 범주론과 의미론>(Die Kategorien und Bedeutungslehre des Duns Scotus)으로 교수 임용 자격을 획득, '역사학에서의 시간 개념' (Der Zeitbegriff in der Geshichtwissenschaft)이란 주제로 시범 강의를 하고 모교의 시간 강사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존재' 만이 아니라 '시간' 도 그의 연구 주제가 된 것이다. 하이데거는 니체(F. Nietzsche, 1844~1900), 딜타이 등의 생의 철학과 키에르케고르의 실존 사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편, 고대 그리스 철학도 깊게 연구하였다. 1919년 이후에는 후설의 조교가 되어 현상학 연구에 몰두하였고, 그와 관련된 강의를 하였다.
1923년에 하이데거는 마르부르크(Marburg) 대학교의 철학과 부교수로 초빙을 받아, 같은 대학 교수인 신학자 불트만(R. Bultmann, 1884~1976)과 친교를 맺으며 그의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27년 대표작인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이 발간되면서 유명해졌으며, 1928년에는 후설의 후임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정교수로 초빙되었다.
1933년에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으로 선출되어 5월 27일에 '독일 대학의 자기 주장' (Die Selbstbehauptung der deutschen Universität)이라는 취임 강연을 하였다. 그러나 국가 사회주의인 나치와 교육 정책적인 면에서 충돌이 끊이지 않아 9개월 만에 총장직에서 사임하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치 정권에서 총장직을 맡은 것은 이후 그의 삶과 명예에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기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이 끝날 때까지 하이데거는 《플라톤의 진리에 대한 학설》(Platons Lehre von der Wahrheit, 1942), 《진리의 본질에 대하여》(Vom Wesen der Wahrheit) 및 활덜린(F. Hölderlin, 1770~1843)의 시에 대한 해설 등 몇몇 소책자만을 발간하였다. 1944년 11월에 프랑스 점령군에 의해 강의가 금지되었다가 프랑스 학자들의 탄원으로 1951년 강의 금지가 해제되었지만, 하이데거는 한 학기 강의를 끝으로 은퇴하였다. 그 후 1930년대의 강의록들, 논문과 강연집 등 몇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생애 마지막 3년 동안은 주로 자신의 원고들을 정리하며 보냈으며 '손수 엮은 전집' 의 출판을 원하였다. 하이데거 전집은 100권 이상으로 기획되어 추진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80여 권 가량이 출간되었다.
그는 1976년 5월 26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장례식은 유언대로 고향인 메스키르히에서 그의 동향 친구이며 제자인 벨테 신부의 집전으로 조출하게 거행되었다. 그의 유해는 메스키르히에 있는 부모의 무덤 옆에 안장되었다.
〔사 상〕 하이데거와 가톨릭 신학 : 하이데거는 가톨릭 교회 및 그 신학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성장하였다. 그는 가톨릭의 울타리 안에서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내며 자신을 정서적 · 인격적 · 사상적으로 키워 나갔다. 젊은 하이데거에게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신학자는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교의 신학 교수인 브라이크(Carl Braig) 신부였다. 후에 하이데거는 "이러한 신학적인 유래 없이 나는 결코 사유의 길에 이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유래는 끊임없이 미래로서 남아 있다" 라고 고백하였다. 하이데거의 교수 임용 자격 논문은 '스콜라 철학의 활성화' 를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당시의 통상적인 분위기는 계몽 시대의 구호인 "스콜라 사상은 읽을 가치가 없다"였는데, 하이데거는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에 도전하고 나섰다. 즉 스코투스의 저서에 보존되어 오는 철학적 정신의 단일성을 보았고, 그것을 후설의 현상학을 통해 새롭게 해석해 보임으로써 전통과의 대화가 유익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려 시도한 것이다. 따라서 교수 임용 자격 논문은 후설의 현상학적 관점에서 본 <둔스 스코투스의 범주론과 의미론>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이데거는 1920~1921년 겨울 학기에 프라이부르크 대학 사강사로서 '종교 현상학 입문' 이라는 강의를 개설하여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4, 13 이하)에 나오는 바오로 사도의 말을 인용하여 '실제적 삶의 경험' 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였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희망에 근거하고 있어야 한다는 바오로의 말을 특히 강조하였다. 또한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12, 1-10)에 나오는 바오로의 말도 해석하였다. 그 구절은 신비로운 영상과 계시에 대한 것이며 동시에 살 속의 가시를 한탄하면서 사탄의 하수인을 쫓아 줄 것을 간구하는 데 대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라고 대답하였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바오로가 자신이 받은 특별한 은총에 대해 자랑하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인 채 삶의 현사실성에 몸을 맡기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하이데거는 1921년 여름 학기에 '아우구스티노와 신플라톤주의' 라는 강의를 개설하였다. 이 강의에서 딜타이, 사도 바오로,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Hipponensis, 354~430), 루터(M. Luther, 1483~1546), 키에르케고르 그리고 누구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83~322/321)를 연구하면서 얻은 결실들을 처음으로 독자적인 사상으로 정리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렇게 하이데거는 자신의 사상 시초에 가톨릭 사상의 영향 아래에서 키에르케고르와 딜타이 그리고 후설을, 다시 말해 실존 철학과 생의 철학 그리고 현상학을 융합시키려 시도하였다.
철학적인 주장 : 하이데거는 존재가 시간 속에서 인간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점에 철학적 관심을 집중하였다. 이러한 존재의 의미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 《존재와 시간》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공시적인 고찰, 즉 모든 시간에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고찰에서 인간이 존재자를 이해하고 있는 양식과 방식 그리고 그 구조적인 특징을 밝혔다. 더욱이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규정한 서양 철학은, 인간만의 독특한 존재 이해의 특징을 간과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인간만이 있음과 없음을 구별할 수 있다. 인간은 이러한 있음과 없음을 구별할 수 있는 '자리' 이다. 다시말해 인간은 존재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다. 이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 (거기-있음, Dasein)라 하는데, 그것은 '존재의 거기에' 라는, 즉 '존재가 나타나는 바로 그 자리' 라는 뜻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독특함이 잘못 이해되고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즉 이성적 동물,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생물학적 전제와 신학적인 전제를 갖고 인간을 항상 덮쳐 왔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그러한 전제 없이,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보려고 시도하며 인간의 '현존재' 를 다루었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이해하는 인간 현존재의 고유한 특성을 '실존' (Existenz)이라고 규정하였다. '실존' 은 인간 각자가 자신의 존재를 떠맡아 존재해야 함을 지칭하기 위한 개념이며, 그 밑바탕에 존재자와 왕래하면서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그 존재자의 존재를 이해한다는 인간만의 특성을 깔고 있다. 인간은 존재하면서 자기 자신, 다른 사람, 사물, 도구, 역사와 관계를 맺으며 그것들의 존재를 이해한다. 이렇게 인간이 존재함으로써 '존재자 전체로의 침입' 이라는 사건이 일어나며 존재자 전체가 '개방 가능한 것' 이 된다. 인간의 이러한 본질적인 구조를 하나의 낱말로 지칭하기 위해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 (Sein in der Welt, 세계-안에-있음)라는 용어를 택하였다.
시간 속에 주어지는 존재는 우선 대부분 시간의 형태로 나타난다. 서양 철학이 존재를 지속적으로 그 자리에 있음, 현전함, 변화의 와중에 변화하지 않는 실체, 절대 정신, 같은 것의 늘 되돌아옴 등으로 파악한 것은 결국 시간의 형태로 파악된 존재의 의미들이다. 통상 존재하는 것을 구분할 때에는 시간적인 것, 무시간적인 것, 비시간적인 것, 초시간적인 것 등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이렇게 존재 속에 어김없이 시간이 끼여들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존재와 시간' 은 어떤 사이이길래 이처럼 붙어 다니는 것일까? 지금까지 철학에서 존재는 이념 혹은 이데아의 차원으로 간주되어, 변화하는 시간적 현실의 변화하지 않는 원본 정도로 생각되었다는 점을 보면 존재와 시간은 사실상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다. 시간이란 존재와 합치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 존재는 영원한 것, 이념적인 것, 보편적인 것,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는 존재는 시대마다 시간 속에 각기 다르게 주어지며, 더욱이 존재는 유한하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하이데거는 우리가 자명하다고 알고 있던 존재와 시간의 관계를 새롭게 규명해야 할 필요를 역설한 것이다. 존재와 시간이 뗄 수 없는 연관 속에 붙어 다니는 까닭은 존재가 나타나고 있는 출현의 현장인 인간 현존재가 시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이데거의 획기적인 인간 이해가 깔려 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하이데거는 시간(역사) 속에 자기 자신을 내주는 존재와 그 존재에 응답하는 인간의 상호 대응 역사에 관심을 가지며, 그것을 '존재의 역운' , '존재의 사건' 이라 표현하였다. 그리고 서양 철학사 전반을 비판하며 서양 철학의 종말을 선언하고, 새로운 존재 사유로 새로운 시작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철학 곧 형이상학은 오직 인간에게서만 일어나는 '존재자 전체로의 침입 사건' 이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존재자 전체로 향한 '존재의 시각' 이며, 그러한 시각 아래에서 아무 의심 없이 전제되고 있는 존재의 의미' 이다. 눈앞에 세울 수 있는 것만을 존재자로 보고, 그 근거를 묻고 원인을 찾으며 설명과 해석, 지배와 조작에 관심을 두는 전통 철학의 이성적 사유, 즉 '셈하는 사유' 는 그러한 존재의 '뜻(의미)' 을 읽어낼 수 없다. 셈하는 사유에게 '존재' 란 애초부터 없는 것이며, '존재의 뜻' 같은 것은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형이상학의 종말에 사유가 해야 할 일은, 이성 중심, 현전 중심, 인간 중심의 사유 태도에서 벗어나 '존재의 지평' 과 '사유의 지평' 을 넓히는 일이다. 없는 것으로 내쫓은 신과 성스러움, 무(無) · 공(空) · 허(虛)를 존재의 마당 안으로 끌어들이고 새로운 만남의 가능성을 열어 주는 일이 사유가 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 서양 형이상학은 이제라도 지구상의 다른 곳에서 일어났고 계속 일어나고 있는 '존재자 전체의 침입 사건' 에 주목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뿐인' 지구가 당면하고 있는 새천년의 문제를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영 향〕 하이데거는 당시까지의 형이상학이 존재자(das Seiende)를 고찰하였으나 본질 연구에 집착하여 존재(das Sein)를 잊어버렸기에, 형이상학은 존재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비판이 서구 형이상학에서 위대한 철학자들에게 그대로 적중되지는 못할지라도 그가 발전시킨 형이상학에 의한 새로운 성취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와 과제들을 제시한다.
그의 영향은 막대하였고, 아직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제자 중에는 가다머(H.-G. Gadamer, 1900~2002), 뢰비트(K. Löwith, 1897~1973), 마르쿠제(H.Marcuse, 1898~1979) 등 유명한 학자들이 많다. 프라이부르크 시절 그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으로는 뮐러(M. Müller, 1906~ ), 벨테(B. Welte, 1906~1983), 라너(K. Rahner, 1904~1984) 등이 있으며, 후설의 현상학 테두리에 있는 사르트르(J.-P. Sartre, 1905~1980), 메를로풍티(M.Merleau-Ponty, 1908~1961) 등에게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일본의 유명한 철학자들이 그의 지도를 받기 위해 독일에 유학하였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프랑스 철학자인 푸코(M.P. Foucault, 1926~1984)를 비롯하여 현재 활동 중인 데리다(J. Derrida, 1930~ ) 등 도 직 · 간접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으며, 비판 이론의 대변가인 하버마스(J. Habermas, 1929~ )도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였다. 하이데거는 철학의 흐름 및 분과와 연관하여 실존 철학, 현상학, 해석학, 존재론, 철학적 인간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철학의 테두리를 벗어나 타학문, 즉 의학 및 심리 분석(Ludwig Binswanger, Medard Boss)을 비롯하여 가톨릭 및 프로테스탄트 신학(Karl Rahner, Rudolf Bultmann, Paul Johannes Tillich), 그리고 자연 과학(Karl Fridrich von Weizäcker)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 라너 ; 불트만 ; 생의 철학 ; 셀러 ; 스코투스 ; 실존 신학 ; 실존 철학)
※ 참고문헌 마르틴 하이데거, 이기상 역, ,《존재와 시간》, 까치, 1998/ ⸺, 이기상 역,《현상학의 근본 문제들》, 문예출판사, 1994/⸺, 이기상 역, 《형이상학의 근본 개념들. 세계-유한성-고독>, 까치, 2001/ ⸺, 이기상 역, 《논리학一진리란 무엇인가》, 까치, 2000/ ⸺, 이기상 역,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독한대역본, 서광사, 1995/ ⸺, 이기상 역, 《기술과 전향》, 독한대역본, 서광사, 1993/ ⸺, 최상욱 역, 《세계상의 시대》, 독한대역본, 서 광사, 1995/ ⸺, 박찬국 역, <니체와 니힐리즘》, 지성의 샘, 1996/ -,최상욱 역, 《셀링》, 동문선, 1996/ ⸺, 신상희 역, 《동일성과 차이》, 민음사, 2000/ ⸺, 이기상 역, 《진리의 본질에 관하여.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테아이테토스》, 까치, 2004/ 이수정 ㆍ 박찬국, 《하이데거, 그의 생애와 사상》,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소광희,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의》, 문예출판사, 2003/ 박찬국,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동널, 2004/ 한국하이데거학회 편, 《하이데거의 언어 사상》, 철학과 현실사, 1998. 〔李基相〕
하이데거, 마르틴 (1889~1976)
Heidegger, 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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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하이데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