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한주 (1909~1984)

河漢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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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신부. 세례명은 요셉. 1909년 2월 5일 경상남도 창녕(昌寧)에서 하도윤(河圖潤, 스테파노)과 조봉이(曹鳳伊, 체칠리아)의 아들로 출생. 1935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졸업하고 6월 15일 대구 계산동 주교좌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 다음날인 6월 16일에 새로 설립된 이리(현 창인동)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으나 당시 성당 건물만 있을 뿐 제반 시설들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군산(현 둔율동) 본당에 머무르다가 그해 10월에 사제관과 부속 건물이 완공되자 11월 5일부터 본격적으로 이리 본당 초대 주임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7년 전주 지목구가 설정되자 하한주 신부는 대구 대목구에서 전주 지목구로 이적되어 1939년 4월부터 1946년 5월까지는 장수 수분리(현 장계) 본당의 4대 주임, 1949년 3월부터 1950년 12월까지는 익산 석동(현용안) 본당의 6대 주임을 역임하였다. 이후 1954년 4월부터 1957년까지는 나환우들의 보금자리인 성 라자로 마을의 제2대 원장을 지냈고, 1957년부터 1959년 9월까지는 사회사업가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된 구산 후생 학원(鳩山厚生學院)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59년 9월 경기도 평택 본당의 10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활동하던 중, 1963년 10월 수원교구가 설정되자 전주교구에서 수원교구로 이적되었고, 1967년 1월에는 경기도 이천 본당의 9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973년 5월 은퇴한 하한주 신부는 이후 수원 조원동 본당에서 노후를 보내다가 1984년 8월 7일 수원 성 빈센트 병원에서 노환으로 선종하여 8월 9일 미리내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하 신부는 분주한 본당 사목 활동 중에도 시와 시조를 지어 《가톨릭 청년》이나 《가톨릭 조선》 등의 잡지에 발표하였고, 《영혼의 노래》(경향잡지사, 1961), 《골고타》(가톨릭 청년사, 1958), 《마돈나》(갑진문화사, 1960), 《삐에타》(가톨릭 출판사, 1969) 등의 시집과 시조집을 내기도 하였다. 또한 번역서 《聖人傳一 로마의 성녀 프란치스까》(가톨릭 청년사, 1959)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 참고문헌  <가톨릭신문> 1984년 8월 12일자/ 《경향잡지》 808(1935. 6. 27) · 1398(1984. 9)/ 河漢珠, 《詩集 - 영혼의 노래》, 京鄉雜誌社, 1961/ 《수원교구 30년사》, 천주교 수원교구, 1993/ 《평택성당 70년사》, 수원교구 평택 성당, 1998/ 《천주교 전주교구사》, 호남교회사연구소, 천주교 전주교구, 1998/ 《안세화 주교 공문집》, 대구 가톨릭대학교 부설 영남교회사연구소, 2003.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