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성동 본당

鶴城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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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원주시 학성1동 972 소재. 1957년 12월 3일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관할 구역은 학성동, 단계동 일부 지역이며, 공소는 신평 · 월송 · 간현 · 만종 4개소. 〔교 세〕 1957년 1,033명, 1960년 1,583명, 1965년 2,434명, 1970년 1,889명, 1975년 2,636명, 1980년 2,628명, 1985년 3,287명, 1990년 2,851명, 1995년 2,961명, 2000년 3,217명, 2005년 3,446명. 〔역대 신부〕 초대 스튜어트(T. Stewart, 朴) 토마스(1957. 12~1958. 9), 2대 코머포드(T. Comerford, 공) 토마스(1958. 9~1961. 10), 3대 오브라이언(A. O'Brien, 신) 안토니오(1961. 10~1965), 4대 딜레이니(R. Delaney, 도) 리처드(1965~1966. 10), 5대 클라크(L. Clarke, 鄭) 레오(1966. 10~1968. 11), 임시 엘리스(G. Ellis, 엄) 제라르도(1968. 11~1969. 11), 6대 클라크(1969. 11~1971. 9), 7대 최기식(崔基植) 베네딕도 (1971. 9~1973. 8) · 안승길(安承吉) 로베르토(1971. 9~1972. 5), 8대 노세현(盧世賢) 마티아(1973. 8~1976. 4), 9대 양대석(梁大錫) 알로이시오(1976. 4~1982. 5), 10대 조규남(曹奎男) 구니베르토(1982. 5~1983. 9), 11대 박용식(朴容植) 시몬(1983. 9~1986. 7) , 12대 박무학(朴武學) 요한(1986. 7~1990. 8), 13대 장석윤(張錫潤) 비오(1990. 8~1995. 2), 14대 김종인(金鍾仁) 마태오(1995. 2~2000. 1), 15대 김태원(金泰元) 요한(2000. 1~현재).
한국 전쟁 이후 많은 피난민들이 원주에 정착하면서 원주(현 원동 주교좌) 본당의 신자수가 급증하자, 이에 당시 원주 본당의 양대석 신부는 본당 분리에 착수하여 1957년에 현재의 성당 부지인 학성동 972번지의 논 815평과 973-16번지의 대지 62평을 매입하여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같은 해 12월 3일에는 성당(113평)이 완공되어 본당이 설립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스튜어트 신부가 부임하였다. 설립 당시 본당의 관할 구역은 학성동, 단계동, 일산동 일부, 우산동, 태장동, 지정면, 호저면 일부, 소초면, 문막면, 부론면 등이었고 신자수는 1,033명이었으며, 공소는 문막, 부론, 월송 등이었다. 이 중 문막 공소는 1958년 9월에 본당으로 승격 · 분리되었고, 1959년 9월에는 횡성(橫城) 본당으로부터 영산 공소를 이관받았다.
3대 주임 오브라이언 신부 재임기인 1963년 9월에는 대명원 공소(30평)를, 1964년에는 본당 사제관(33평)을 준공하였고, 1965년 3월에는 원주교구가 설정됨에 따라 춘천교구에서 원주교구로 소속이 바뀌었다. 그리고 6대 주임 클라크 신부 재임기인 1970년에는 1965년 7월에 횡성 본당으로부터 이관받았던 곤의골 공소를 다시 횡성 본당으로 이관하였고, 7대 주임 최기식 신부 재임기인 1972년 8월에는 월송 공소 강당(21평)의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8대 주임 노세현 신부 재임기인 1975년 11월에는 유치원(64평)과 수녀원(22평)을 준공하여, 1976년 3월에는 유치원을 개원하였으며, 4월에는 일산 동과 학성1 · 2동 일부를 일산동 본당으로 이관하였다. 9대 주임 양대석 신부 재임기인 1977년 2월에는 간현 공소와 월송 공소를 문막 본당으로, 소초 공소를 봉산동 본당으로 각각 이관하였고, 1970년에 횡성 본당에 편입시켰던 곤의골 공소를 다시 이관받았다.
1978년 3월,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성당이 전소되어 원주교구 사제들과 평신도 대표들은 긴급 대책 위원회를 구성하여 복구에 나섰고, 그 결과 1979년 5월에는 성당을 신축하고 원주교구장 지학순(池學淳, 다니엘)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새 성당은 연건평 242평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교리실, 회의실, 사제관 등을 갖추었다. 그 사이 1979년 4월에는 신평 공소 (19평)를 준공하였으며, 1981년 9월에는 신설된 태장 · 가현 · 영산 · 곤의골 공소를 태장동 본당으로 이관하였다. 그리고 11대 주임 박용식 신부 재임기인 1985년 11월에는 월송 공소와 간현 공소를 문막 본당으로부터 다시 이관받았다.
12대 주임 박무학 신부 재임기인 1986년 8월부터 본당에서는 신자 재교육을 목적으로 매년 각 단체의 1회 이상 피정, 연중 가정 방문 1회와 매년 1회 이상의 성지 순례를 실시하도록 하였고, 또 성소 후원회의 활성화를 위해 후원금 모금과 신학교 방문 등 성소자 배양에도 힘을 썼다. 아울러 1990년 6월에는 옛 유치원을 철거하고 2층 건물인 새 유치원을 신축하였다. 13대 주임 장석윤 신부 재임기인 1993년 6월에는 수녀원(53평)과 교리실(19평)을 준공하였고, 10월에는 귀래면에 6,000여 평의 본당 묘지를 조성하였으며, 11월에는 교적을 전산 입력하는 등 교회 행정 전산화 작업을 시행하였다. 그리고 1994년 6월에는 41개 반을 편성하여 반 모임의 활성화에 주력하였고, 9월에는 본당 신자로 구성된 의료진들이 간현 공소에서 공소 신자들과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의촌 의료 봉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14대 주임 김종인 신부 재임기인 1995년 2월에는 우산동 본당이 신설되어 우산동 대부분 지역을 이관하였고, 8월에는 단계동 39 · 40통을 일산동 본당으로 이관하였다. 1998년 8월에는 성당 1층에 '언제나 쌀통' 을 마련하여 누구든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쌀을 갖다 부을 수 있고, 필요한 사람은 신자가 아니더라도 가져갈 수 있도록 하여 이웃 사랑을 실천하였다. 15대 주임 김태원 신부 재임기인 2000년 11월에는 평소에 잘 만나지 못하던 대부모, 대자녀들을 위한 '대부모, 대자녀 만남의 날' 행사를 개최하였고, 2003년 11월에는 원주교구에서 개최한 제1회 통일 상장예식 경연대회에서 대상인 '사랑상' 을 수상하였다. 또한 2004년 7월에는 신평 공소 설립 25주년을 기념하여 원주교구장 김지석(金智錫, 야고보) 주교의 주례로 기념 미사를 거행하였고, 아울러 본당 설립 50주년(2007년) 기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50주년 기념 사업 분과, 50년사 편찬 분과, 자원 재생 분과를 조직하여 위원장을 임명하였다. 이 가운데 50주년 기념 사업 분과에서는 운전자 기도문 작성, 일일 성서 읽기 생활화 등 개인 성화를 위한 사업과 가족 미사 봉헌, 가족 단위 성지 순례, 대부모 만남의 장 개최, 교회 공동체의 날 운영 등 가족과 공동체 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였고, 50년사 편찬 분과에서는 《학성동 본당 50년사》 발간 및 50년의 본당 역사와 기념 사업 자료를 타임 캡슐에 영구 보관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자원 재생 분과에서는 신자 가정에서 발생하는 신문지, 헌책, 병 등 재활용품을 모아 분류하여 50년사 편찬 사업비와 기념 사업 및 제반 사업비에 충당할 예정이다.
※ 참고문헌  <가톨릭 시보> 1978년 3월 19일자 · 1979년 5월 20 일자/ <가톨릭신문> 1998년 8월 23일자 · 2000년 11월 12일자 · 2003년 12월 7일자 · 2004년 8월 8일자 · 2004년 8월 29일자/ <평화신문> 1999년 5월 16일자/ 《原州教區 三十年史》, 天主教 原州敎區, 1996/ 《園洞 百年史》, 天主教 原州教區 主教座 園洞敎會, 1999.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