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운동 본당

鶴雲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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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학운동 731-1 소재. 1974년 4월 16일 방림동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한국 순교 성인. 관할 구역은 소태동, 용산동, 운림동, 내남동, 월남동, 선교동, 용연동과 방림동 · 학동 일부 지역. 〔교 세〕 1975년 522명, 1980년 839명, 1985년 2,143명, 1990년 3,496명, 1995년 4,796명, 2000년 5,136명, 2005년 5,433명. 〔역대 신부〕 초대 장옥석(張玉石) 루치오(1974. 4~1975. 5), 2대 돌란(J. Dolan, 도) 요셉(1975. 5~1979. 3), 3대 쉬한(D. Sheehan, 간) 다윗(1979. 3~1983. 9), 4대 오그래디(M. 0'Grady, 오) 미카엘(1983. 9~1987. 10), 5대 오리어리(A. 0'Leary, 오) 안드레아(1987. 10~1990. 1), 6대 김종남(金鍾南) 로마노(1990. 1~1995. 2), 7대 김서규(金瑞圭) 마태오(1995. 2~1997. 1), 8대 김종주(金宗柱) 루가(1997. 1~2001. 1), 9대 임병태(林炳泰) 시몬(2001. 1~현재).
광주시의 외곽인 학운동 일대는 방림동 본당의 관할 구역이었으나, 본당과의 거리가 멀어 학운동 지역의 신자들은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그러나 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학운동에 본당 설립을 추진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주대교구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대주교는 학운동 지역 신자들의 고충을 덜어 주고 이 지역의 복음화를 진작시키기 위해 본당 신설을 결정하였다. 그 결과 1974년 4월 16일 학운동 본당이 설립되고, 초대 주임으로 장옥석 신부가 부임하였다. 본당 설립 당시 신자수는 방림동 본당에서 분리된 185세대 577명이었다.
학운동 본당의 성당 건립 부지는 1963년 10월에 당시 헨리(H. Henry, 玄海) 교구장이 매입해 놓은 학운동 731-1번지의 70평과 이후 매입해 놓은 학운동 731-1번지의 또 다른 대지 및 그 부근의 밭으로 교구에서 제공해 준 것이었다. 이곳에는 본래 1972년에 광주대교구에서 건립한 사제관이 있었으나, 1974년 4월 학운동 본당이 설립되자 이 건물과 부지를 본당에 제공하여 준 것이다. 장옥석 신부는 1974년 8월에 65평 규모의 성당을 신축하였고, 11월 3일에 윤공희 대주교의 집전으로 봉헌 미사를 거행하였다. 그리고 1974년 9월에는 안나회, 요셉회, 청년회 등을 조직하여 본당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
2대 주임 돌란 신부 재임기인 1977년 8월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빈천시오회를 조직하였고, 1978년 4월에는 사도들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발족하였다. 3대 주임 쉬한 신부 재임기인 1979년 3월에는 사랑의 씨튼 수녀회 소속 수녀가 본당에 파견되었고, 1982년에는 '본당 공동체의 해' 를 맞이하여 설립 초창기부터 실시해 오던 8개의 반 기도회를 21개의 반 모임으로 정비하여 체계를 갖추었다. 4대 주임 오그래디 신부 재임기인 1984년 2월에는, 성당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면서 전입하는 신자수가 증가하자 성당 신축을 결정하고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는 당시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에게 신축될 성당의 머릿돌을 축복받았으며, 7월에는 본당 재정을 자립화하여 더 이상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보조를 받지 않게 되었다. 1985년 12월에는 공사 시작 8개월 만에 358평 규모의 성당이 완공되어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6대 주임 김종남 신부 재임기인 1991년 6월에는 약 7개월간의 공사 끝에 지하 1층과 지상 3층으로 된 종합관 건물을 완공하여 축복식을 거행하였고, 7대 주임 김서규 신부 재임기인 1996년 5월에는 성당 옆에 있는 3층 건물을 매입하여 1층을 신자들의 만남의 공간으로, 2층을 교육실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9대 주임 임병태 신부 재임기인 2001년에는 성당 주위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부속 건물을 철거하였고, 2003년 12월 24일에는 원불교와 불교계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성당에서 '성탄 기념 무등산 풍경 소리 공연' 을 여는 등 타 종교와의 만남의 기회도 넓혀 나갔다. 그리고 2004년 8월에는 본당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선교하라' 를 주제로 성당에서 선교 출정식을 갖고 선교 활동 40일 운동에 돌입하였다. 선교 출정식은 선교 활성화를 주제로 한 강의와 선교 기도문 낭독, 선교 구호 제창 순으로 진행되었고, 9월 30일을 '천주교회를 소개하는 날' 로 정하여 본당 신자 1가구 당 1명 이상 예비 신자 입교 운동을 전개하였다.
2005년 현재 학운동 본당은 '문화 선교 라는 새로운 선교 방법을 통해 지역 사회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구현해 나가고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가톨릭신문> 1986년 1월 19일자 · 2002년 8월 11일자 · 2004년 1월 4일자/ <빛고을> 609호(1991. 6. 16) · 790호(1995. 1. 29), 천주교 광주대교구 홍보국/<평화신문> 2004년 8월 29일자/ 《광주대교구 50년사 : 1937~1987》, 천주교 광주대교구, 1990.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