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
國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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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악 연주 장면.
한국 음악, 또는 나라 음악. 오늘날은 한국 전래의 모든 전통 음악과 그 어법에 따라 새로이 작곡되는 창작 국악을 통칭하며, 서양 음악과 그 어법에 따라 새로이 작곡되는 창작 서양 음악의 통칭인 양악(洋樂)과 대칭 개념으로 쓰인다. 즉 우리 민족의 언어를 국어라 하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국사라 하듯이 우리 민족의 음악을 국악이라 일컫는다. '국악'이라는 용어는 1907년, 당시의 국가 음악 기관이었던 교방사(敎坊司)를 장악과(掌樂課)로 개칭하고 국악사(國樂師)와 국악사장(國樂師長)이란 직제를 둠으로써 공식적으로는 처음 사용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면서 일제에 의해 '아악'(雅樂)이라는 용어로 대치되었다가 해방 이후에야 다시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1907년에 사용된 '국악'이란 용어는 한국의 전통 음악 중에서 '궁중악'(宮中樂)만을 가리키며 정악(正樂)이나 '민속악'(民俗樂)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0년 이왕직(李王職) 아악부의 부설 기관이었던 이왕직 아악부원 양성소의 교과 과정에 정악이 포함되면서, 정악을 포함하는 용어로 확대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민속악까지 포함하는 용어로 확대되어, 서양에서 들어온 양악이란 용어와 대칭되는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1959년 서울대학교에 국악과가 신설되면서 국악에 대한 학문 연구를 시작하였고, '창작 국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면서 '국악'이라는 용어는 한국의 전통 음악뿐만 아니라, 그 전통 음악의 어법에 따라 새로이 작곡되는 창작곡들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음악들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궁중악:조선 시대 악공과 악생들이 국가 음악 기관에서 왕실의 각종 의식 때에 연주하던 음악을 말한다. 이 궁중악은 15세기(세종 · 세조 · 성종 시대)에 크게 융성하였으나 여러 번의 전란과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크게 축소되어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연주되고 있는 곡들로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제사 때에 쓰이는 문묘 제례악과 조선 역대 제왕과 왕후의 제사 때 쓰이는 종묘 제례악, 그리고 궁중의 잔치나 궁중 무용〔呈才〕 반주에 쓰던 관악보허자 · 낙양춘 · 만 · 본령 · 해령 · 수제천 · 동동 · 여민락 등의 연례악, 그리고 왕이나 군대의 행차 때에 쓰던 취타와 대취타 등의 고취악이 있다. 정악:17세기 말에 대두하고 18세기에 점점 확산, 발전하여 19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꼴을 갖추게 된 음악으로, 정계를 떠나 향리에 묻혀 학업에 정진하던 사림파 선비들과 그 뒤를 잇는 실학파 선비들 그리고 조선 후기 경제권을 장악하던 중인층이 향유하던 민간 풍류 음악이다. 오늘날 성악곡으로는, 시조시를 세악(細樂) 편성(거문고, 가야금, 세피리, 대금, 해금, 단소, 양금, 장구 등의 악기 편성)에 얹어 부르는 가곡(歌曲) 26곡과 가곡을 축소하여 간단히 장구 장단만으로 부르도록 한 다양한 형태의 시조(時調:평시조, 지름 시조, 사설 시조 등)들, 비교적 긴 가사를 일정한 형식 없이 장구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가사(歌詞) 12곡 등이 있다. 기악곡으로는 상령산 · 중령산 · 세령산 · 가락덜이 · 삼현 도드리 · 하현 도드리 · 염불 도드리 · 타령 · 군악의 모음곡으로 되어 있는 영산 회상(현악 영산 회상, 평조 회상, 관악 영산 회상의 세 가지 형태가 있음)과, 밀도드리 · 웃도드리 · 천년 만세(계면 가락 도드리, 양청 가락 도드리, 우조 가락 도드리의 모음곡) 등의 기악 합주곡들, 그리고 가곡 반주곡을 노래 없이 관악기 중심의 악기 편성(대금, 피리, 해금, 아쟁, 장구 등)으로 변주시켜 연주하는 수룡음, 염양춘, 경풍년(이 곡들은 대금, 피리 등의 독주곡으로 연주되고 있음) 등이 있다. 민속악:민속악은 18세기 후반에 등장하여, 19세기에 이르면서 민간에 널리 퍼지게 된 음악으로서 재인, 수척승, 재인 백정, 나례 우인 등의 명칭으로 불리고 민간 예능인들에 의해 전승, 발전된 민간 대중 음악이다. 오늘날 성악곡으로는 앉아서 북을 치는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한 사람의 가수가 서서 아니리(사설), 소리(노래), 발림(연기)을 섞어 가면서 다양한 가락과 장단에 얹어 긴 이야기를 엮어가는 판소리 다섯 마당(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과, 판소리 가수가 본바탕을 부르기 전에 목을 뚫고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인 단가(短歌) 20여 곡, 그리고 여러 가지 내용의 긴 사설을 민요풍의 가락에 얹어 부르던 노래들로서 주로 전문 소리꾼들이 부르던 잡가(雜歌)와 선소리〔立唱〕, 또한 민간에서 일반인들이 부르던 향토 민요와는 달리 역시 전문 소리꾼들이 무대에서 연주곡으로 부르던 통속 민요(각 지방의 독특한 음악적 특징을 따라 경기 민요, 서도 민요, 남도 민요, 제주 민요 등으로 구분됨) 약 60여 곡 등이 있다. 기악곡으로는 대금, 피리, 해금, 거문고, 가야금, 아쟁, 징, 장구 등의 악기 편성으로 주로 산조의 계면 가락을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시나위 합주(산조 합주라고도 함)와, 시나위(굿판에서 무당의 춤 반주를 위해 연주되던 토막곡들)와 판소리를 바탕으로 발전한 여러 가지의 산조(散調)곡들이 연주되고 있다. 타악곡으로는 꽹과리, 징, 장구, 북, 나발, 새납(태평소) 등의 악기 편성으로 농사일이나 마을 굿 등 농촌의 여러 행사 때 연주되는 농악과, 전문 예능인들에 의해 발전된 '사물 놀이' 등이 연주되고 있다. 종교 음악:크게 불교 음악과 무속 음악으로 구분된다. 불교 음악이 의식을 거행할 때 부르던 범패(한문이나 범어로 된 경전을 그 가사로 쓰며, 전문적인 범패승이 부른다. 가톨릭의 그레고리오 성가와 같은 비중을 지님)와, 포교를 위해 부르던 화청(일반 백성들에게 불교를 널리 전파하기 위하여 우리말로 된 가사를 민요 곡조에 얹어 부르는 불교 가요), 그리고 탁발할 때 부르던 고사 염불(그 집안의 재앙을 물리치고, 안녕과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는 내용의 노래) 등이 있다. 무속 음악에는 무당이 굿의 내용에 따른 가사를 민요 가락에 얹어 부르던 노래인 무가(巫歌)와, 피리, 대금, 해금, 장구, 징 등의 악기 편성으로 다양한 무속 장단에 맞추어 무당의 춤을 반주하던 무악(巫樂)이 있다. 창작 국악:전통 음악의 어법에 충실하면서도 현대 감각에 맞추어 새로이 작곡되는 곡들. 창작 국악은 1940년대 김기수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1959년 서울대학교에 국악과가 설립되면서 이 분야가 본격적으로 개척되었다. 그 후 여러 대학이 국악과를 신설하고, 전국적으로 국악 관현악단들이 속속 설립되면서 '창작 국악' 분야는 점차 활기를 띠었다.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난 30여 년 동안 실로 다양한 독주곡과 합주곡, 성악곡, 관현악곡, 협주곡, 국악 동요, 국악 성가곡들이 작곡, 발표되었으며, 최근 들어 더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더욱이 1980년대에 음악학계에 일기 시작한 '한국 음악론', '민족 음악론'에 힘입어 국악과 양악의 접목이라는 새로운 과제가 부각되면서, 점차 이 방면의 움직임들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통틀어 50년 안팎의 창작 국악 분야는 아직 시작 단계이며, 여전히 대중성의 확보, 악기 개량, 국악 연주자들의 의식 개혁 등 풀어야 할 많은 과제들이 있다. 〔민족 음악으로서의 한국 음악의 모색〕:국악에 대한 일반 인식이 예전과는 달리 많이 정상화되었지만, 아직도 '음악' 하면 서양 음악을 연상하고, '국악' 해야만 한국의 전통 음악을 떠올리는 것이 부끄러운 오늘의 현실이다. 한국 사람들이 '말' 하면 국어를 연상하고, '역사' 하면 국사를 연상하듯이 '음악' 하면 당연히 국악을 먼저 연상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오늘날의 이 비정상적인 음악 인식의 배경에는 우리 민족의 불행한 근대사가 고스란히 깔려 있다.
서양 음악이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17세기 초반이었지만, 1880년대부터 좀더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개항을 전후하여 주로 군악대와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을 통해 들어온 양악은 그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음악'을 대표하기보다는 단지 서양에서 들어온 색다른 음악에 불과했다. 그리고 한국 음악을 대표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 음악, 즉 국악이었다. 만일 이때 우리 국력이 튼튼하여 자주국으로서의 면모를 지켜 나갈 수 있었다면, 틀림없이 이 양악을 자주적으로 수용하여 훌륭하게 전통 음악과의 접목을 이루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일합방으로 우리 민족은 일제의 지배 하에 들게 되었고, 36년 간이나 식민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우리 문화는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음악 분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는 정규 교육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 음악을 완전히 배제하고, 양악과 일본 음악만을 가르치게 하였다. 해방 이후에 이런 그릇된 음악 교육을 즉시 시정해야 했지만 오히려 서양 음악 일변도로 가속화되어 오늘날과 같은 비정상적인 음악 인식을 고착시켰다. 다행히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한국의 음악 현실을 비판하는 시각들이 제기되고, 새로운 음악 이론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음악론'과 '민족 음악론'이 대두되었다. 양악계 음악 학자들과 한국 음악론(민족 음악론)은 서로 다소 차이점을 보이지만, 전체적인 주장의 요점은 서로 일치하고 있다. 즉 이제라도 우리 민족의 전통 음악을 토대로 서양 음악을 자주적으로 수용하고 명실공히 민족 음악으로서의 '한국 음악'을 재창조하자는 것이다. 오늘날 국악과 양악, 순수 음악과 대중 음악 등으로 대별되는 한국의 음악 상황 안에서, 어느 것 하나 명실공히 '한국 음악'을 대표하기에는 나름대로의 한계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므로, 이제는 국악과 양악, 대중 음악이 각자 자기 것만을 주장하며 서로 대립할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말 그대로 새로운 '한국 음악'을 재창조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음악 이론계의 중론이다. 또한 북한의 음악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도 높아가고 있다. 북한은 이미 민족 악기의 개량을 상당 수준 진척시키고 있으며, 나름대로 민족 음악의 정립을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 음악은 음악 자체보다는 사상이 우선시되고, 전통 음악의 한 부분(주로 서도 민요)만을 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지니지만, 이미 이루고 있는 음악적 성과를 통해서, 장차 이루고자 하는 '한국 음악'의 재창조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된다. 물론 이러한 논의들이 구체화되고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음악 인식에 대한 일대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음악 교육의 시급한 정상화, 홍보 매체들(텔레비전, 라디오, 언론 등)의 태도 변화, 국악인 · 양악인 · 대중 음악인을 통틀어 모든 음악인들의 의식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서두르지 않아도 모든 것은 언젠가는 제자리를 잡게 마련이다. 한국 음악사를 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번의 외래 음악 수용 과정을 통하여 그때마다 훌륭하게 한국 음악을 재창조해 왔다. 따라서 지금의 이 비정상적인 한국의 음악 상황도 언젠가는 바로잡혀, 한국 전통 음악의 토대 위에 서양 음악을 자주적으로 수용하여 말 그대로의 '한국 음악'이 틀림없이 재창조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 참고문헌 국악교육협의회, 《초 · 중 · 고등학교 국악 교육 내용 통일안》(제1차), 국립 국악원 국악 교육 협의회, 1993/ 노동은 · 이건용, 《민족 음악론》, 한길사, 1991/ <한국 음악인들의 현실 인식과 수행>, 《민족 음악》 제1집, 공동체, 1990, pp. 1689/ <한국 양악사, 100년사인가? 360년사인가?>, 《음악과 민족》 제5호, 민족음악연구소, 1993, pp. 5761/ 대한민국 예술원, 《韓國音樂事典》, 대한민국 예술원, 1985/ 《韓國音樂史》, 대한민국 예술원, 1985/ 박기환, 《國樂通論》, 형설출판사, 1989/ 송방송, 《韓國音樂通史》, 일조각, 1985/ 〈韓國音樂學序說》 세광음악출판사, 1989/ 이인원, <국악계의 새로운 흐름과 90년대의 전망>, 《민족 음악》 제1집, 공동체, 1990, pp. 229~235. 〔姜秀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