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본당

漢江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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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부 이촌동 301-110 소재. 1970년 12월 18일 삼각지 본당에서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관할 구역은 동부 이촌동 아파트, 서빙고동 신동아 아파트, 용산동 5가 · 한강로 3가 일부 지역. 〔교 세〕 1972년 691명, 1974년 1,847명, 1981년 2,971명, 1985년 4,402명, 1990년 4,248명, 1995년 4,543명, 2000년 4,808명, 2005년 5,030명. 〔역대 신부〕 초대 박고빈(朴槁斌) 시메온(1970. 12~1974. 2), 2대 이문근(李文根) 요한(1974. 2~1978. 1), 3대 함세웅(威世雄) 아우구스티노(1978. 1~1984. 8), 4대 이문주(李文柱) 프란치스코(1984. 8~1987.8), 5대 이병문(李炳文) 베드로(1987. 8~1992. 9), 6대 오태순(吳泰淳) 토마스(1992. 9~1996. 9), 7대 임태경(任泰景) 루가(1996. 9~1998. 9), 8대 황인국(黃仁國) 마태오(1998. 9~2002. 2), 9대 홍성만(洪性萬) 미카엘(2002. 2~현재).
1960년대 중후반 동부 이촌동은 공무원 아파트와 한강 맨션 아파트가 건설되는 등 본격적인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같은 이유로 신자수가 점차 증가하자 삼각지 본당에서는 이 지역에 새로운 본당을 신설할 계획을 세웠고, 그 결과 1970년 12월 18일 한강 본당이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신자수는 150세대 약 620명이었고, 초대 주임으로 박고빈 신부가 부임하였다.
설립 당시에는 아직 성당이 마련되지 않아 미사를 집전할 마땅한 장소가 없었는데, 당시 용산여자중학교(현용강중학교) 교장이던 신자 김종협(金鍾協)의 배려로 학교 운동장에 있는 가건물을 임시 미사 장소로 이용하였다. 아울러 사제관이었던 공무원 아파트 2동 106호에서 평일 미사를 집전하고, 서부 이촌동 신자들을 위한 구역 미사는 최용학(안드레아)의 집에서 집전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1971년 1월부터 교구에서 구입한 부지(이촌동 302-51 소재)에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월 17일에는 성체 수녀회 분원이 설립되었고, 기성회, 운영회, 단체회, 재정회를 주관하는 회장단이 결성되었다. 9월에는 유아 교육을 위해 대건유치원(1학급 40명)을 신설하였고, 10월 15일에는 2층으로 된 성당을 완공하였다.
2대 주임 이문근 신부 재임기인 1974년 2월에는 성체 수녀회 수녀들이 본당에서 철수하고, 대신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녀들이 부임하였으며, 3월에는 신용산 아파트 18동 303호에 수녀들의 거처를 마련하였다. 4월에는 군종 후원회를 발족하여 전방 부대를 방문함은 물론, 육군사관학교와 자매 결연을 맺어 대부 · 대자의 유대를 가졌고, 1975년 12월에는 성당을 3층으로 증축하여 3층을 수녀원으로 사용하였다.
3대 주임 함세웅 신부 재임기인 1978년 9월부터 협소하고 결함이 많은 성당을 대신하여 성당을 신축하려는 계획을 추진하였고, 1979년 3월에 성전 건립 위원회를 발족하였다. 본당에서는 바자회를 개최하는 등 건립 기금 마련에 주력한 결과 6월 24일 성당 건립 기공 미사를 거행하였고, 공사 기간 동안 명지 상가 4층을 임차하여 임시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같은 해 8월에는 함세웅 신부가 오원춘 사건과 관련하여 본당 주보에 '진리는 승리한다' 는 글을 게재하였다가 경찰들에게 연행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자 윤주병(尹周炳, 베드로) 신부가 임시로 본당에 부임하였다. 1980년 11월에는 십자고상 및 15처상을 성당 내부에 새로 설치하였으며, 12월 6일에는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된 성당이 마침내 완공되어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1981년 2월에는 도서실을 개관하였고, 1982년 9월에는 본당 주보 성인인 김대건 신부의 동상 축성식을 가졌으며, 1983년 7월에는 김대건 신부 축일을 맞이하여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본당으로 모시는 행사를 거행하였다.
4대 주임 이문주 신부 재임기인 1985년 2월부터 구역 반 모임의 활성화를 위해 산발적이던 구역 모임을 매달 정해진 날짜에 실시하고, 11월에는 강원도의 탄광과 무의촌을 방문하여 그곳 주민들을 위로하였다. 또한 신자 수가 성당 건립 당시의 2배에 이르러 신자들이 많은 불편을 겪게 되자, 1986년 9월에 용산구 이촌동 301-110번지의 522평과 용산구 용산동 69-131번지의 219평의 대지를 매입하였다.
5대 주임 이병문 신부 재임기인 1988년 2월 1일부터 6월 16일까지 지역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 가정 방문을 실시하였고, 1988년 2월부터 남성 신자들을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해 구역 공동체 가장 모임을 가졌다. 같은 해 3월에는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전주교구 원평 본당과 자매 결연식을 맺었으며, 4월에 대건유치원에서 사용하던 피아노, 주일학교용 악기 등을 전달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4월부터 신자들의 성서에 대한 지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신앙 도서함을 설치하였고, 5월에는 여성 구역장을 임명하였으며, 8월에는 구역의 활성화와 성당 신축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사목회를 개편하였다. 그런 가운데 1989년 6월 3일에는 드디어 새 성당 기공식을 거행하였고, 1990년 12월 30일에 김수환 추기경의 집전으로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1991년 1월에는 성당 지하 2층에 중 · 고등학생들의 학습 공간인 도서실을 마련하였고, 8월에는 경제적 사정으로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대건 장학회를 발족하였으며, 본당 소식을 담은 간행물 <한강>을 창간하였다.
6대 주임 오태순 신부 재임기인 1993년 2월에는 베트남 한인 2세들을 돕기 위한 추진 위원회를 발족하였고, 7월에는 '대건 사회 복지 문화 재단' 을 설립하여 '대건 장학회' 의 업무를 승계하는 한편, 불우 이웃 돕기, 노인 복지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신자들의 상호 부조를 위해 한강 천주교회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하였고, 1994년 1월에는 복음화 운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2000년대 복음화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1995년 4월에는 농촌을 살리고 도시민들에게는 신선한 농산물을 판매하기 위해 도농 직거래 판매장을 성당 지하 2층에 설치하였고, 5월에는 서부 전선 최전방에 있는 까치봉에 통일 염원을 담아 성모상을 봉헌하고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본당 설립 25주년을 기념하는 음악제를 개최하였고, 1996년 7월에는 설립 이후 본당의 성장 역사를 보여 주는 《한강 성당 25년사》를 간행하였다.
7대 주임 임태경 신부 재임기인 1998년 9월에는 지구별 사목을 담당할 15개의 지구장좌 본당 중 제1 지구의 지구장좌 본당으로 지정되었다. 8대 주임 황인국 신부 재임기인 2000년 5월에는 본당 설립 30주년을 기념하여 미리내 성지 순례와 체육 대회를 가졌고, 10월에는 성당 앞마당에서 대희년 맞이 불우이웃 돕기 바자회를 겸한 어울림 마당을 열었다. 그리고 2001년 6월에는 황인국 신부가 몬시놀에 임명되어 8월에 몬시놀 임명 축하식을 거행하였다. 9대 주임 홍성만 신부 재임기인 2002년에는 본당의 균형 발전을 위해서 남성 구역 모임이 활성화되어야 함을 인식하고 그동안 공석이었던 구역에 구역장을 임명하는 한편 각 구역에 남성 반장들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2003년 9월에는 소공동체 반 모임의 날을 '성서 백주간 공부의 날' 로 정하여 성서 공부를 생활화 하였으며, 2004년 9월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하는 '성서 백주간 1주년 기념 잔치' 를 개최하여 성서 백주간 체험 사례를 발표하고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미사를 봉헌하였다. 한강 본당은 2005년을 본당의 모든 신자가 쉬는 신자들과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가 되는 해' 로 정하고, 선교 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참고문헌  <가톨릭신문>1979년 12월 16일자 · 1995년 5월 28일자/ <평화신문>1998년 9월 27일자 · 2000년 10월 22일자 · 2004년 9월 12일자/ 《한강 성당 25년사》, 천주교 한강 교회, 1996. 〔梁仁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