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 신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선교 활동과 사목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평신도 사도직 단체. 1970년 1월 13일 발족되었으며 '중앙회' 는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1 가톨릭 회관 602호에 소재한다.
〔설립과 발전〕 한국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1년 2월 한국군 내에 군종 제도가 시행되었으나, 군종 신부들은 제도적 ·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선교와 사목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52년 1월 대구의 계산동 본당 청년 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종군 신부 전교 사업 대구 후원회' 를 발족하였는데, 이것이 군종 후원회의 효시였다. 그러나 휴전 후의 어려운 국내 사정과 성당 재건 사업 등으로 신자들의 부담이 커졌고 아울러 각 군 본부가 서울로 이전하면서 대구 후원회는 그 사업을 종료하였다.
한편 전쟁이 끝나자 가톨릭의 군종 활동은 지속성을 상실한 채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군종 신부들이 차례로 제대를 하는 반면, 새로운 입대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는 1958년 3월 박희봉(朴喜奉, 이시도로) 신부를 초대 단장으로 군종 신부단을 창단하였으며, 1961년 11월 주교 회의에서는 '가톨릭 군종 신부단'의 발족을 정식으로 인준하였다. 그러나 군종 신부들은 재원의 부족으로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그리하여 1968년 5월 주교 회의에서는 10월 첫 주일을 군인 주일로 제정하여 이때 걷힌 2차 헌금을 군종 신부들의 재원으로 사용하도록 결정하였다. 하지만 군종 신부단은 상시적인 후원 단체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1969년 1월 군종 신부단 총회에서 군종 후원회의 발족을 결의하였다. 이 군종 후원회 결성안이 10월에 개최된 주교 회의 정기 총회에서 가결되면서 군종 후원회는 초교구 단체로서 전국에서 회원을 모집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지학순(池學淳, 다니엘) 주교가 초대 담당 주교, 박춘식(朴春植, 야고보) 신부가 초대 지도 신부, 민병권(프란치스코)이 초대 후원회장직을 담당하였다.
1970년 1월 군종 후원회는 서강대학교 학생 회관에서 발족식을 갖고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 빌딩 내에 본부를 마련하였다. 회칙은 그해 2월에 인준되었으며 5월에는 서울 아현동 본당에서 첫 지회를 발족하였고, 9월에는 회지 〈PAX〉를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듬해 3월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신형식(플라치다) 수녀가 후원회의 업무를 전담하기 위하여 부임하였으며 1971년 7월에는 군 성서 보급 운동의 일환으로 《공동 번역 신약성서》 2만 부를 전후방과 파월 장병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리고 후원회 회장단은 1971년 말부터 부대를 수시로 방문하여 지휘관들에게 군종 신부의 활동과 후원 사업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였다.
1972년 2월 〈PAX〉지의 제호를 〈등불〉(The Light of Christ)로 바꾸고, 5월에는 대구와 부산 지부를, 7월에는 원주 지부를 발족하였다. 그리고 1974년에는 서울(10월) · 광주(11월) · 춘천(12월) 지부를 각각 발족하였으며 1978년 2월에는 마산 지부를 발족하였다. 그 사이 1972년 12월에는 미사 통상문, 각종 기도문, 공소 예절 및 성가를 담은 《군인 기도서》를 발간하였고, 1974년 9~10월에는 군종 신부들의 기동력을 지원하기 위하여 차량 4대를 구입하여 군종단에 기증하였다.
1978년부터 후원회는 은인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던 군 성당 건축을 후원회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그에 따라 같은 해 6월에는 2사단에 노도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10월에 봉헌식을 거행하였고, 9월에는 1사단에서 전진 성당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이듬해에는 현리 · 열쇠 성당 등 4개의 군 성당을 신축하였으며, 성당의 비품 구입과 부속 시설 건축 또한 지속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런 가운데 1979년 12월에는 활동이 주춤하던 춘천 지부가 사업을 종료하였다.
1980년 1월 군종 후원회에서는 발족 10주년 기념 행사를 거행하였고 입교 장병들을 위한 《천주교 입문 교리》 1만 부를 제작 · 배포하였다. 그리고 1982년 1월에는 전주 지부를, 6월에는 수원 지부를 발족하였으며 1983년 12월에는 천주교에서는 처음으로 애기봉 성탄수 점화식을 군종 후원회 주관으로 실시하였다. 그렇지만 1983년에는 회원수가 감소하여 원주 지부와 광주 지부가 활동을 중단하였다.
1984년 2월 군종 후원회에서는 회원 기도문인 '군인을 위한 기도문' 을 제정하여 담당 주교의 인준을 받았고, 4월에는 '제1회 서울 지부 회원 1일 피정' 을 육사 성당에서 실시하였다. 또한 11월부터는 연차 사업으로 군 성당 도서 문고를 지원하기 시작하였으며 1985년 5월에는 미국 퀸즈 한인 교회에서 처음으로 해외 지회가 발족되었다. 그리고 1986년 3월에는 후원회 운영 개선책 및 회칙 개정안을 검토하기 위하여 군종 신부단과 후원회가 함께 임시 합동 소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986년 4월 군종 후원회는 본부를 명동 성당 교육관으로 이전하였고 11월에는 다시 가톨릭 회관 7층으로 옮겼다. 그리고 이듬해 2월에는 군종 신부가 아닌 신부로는 처음으로 부산교구의 염봉덕(廉鳳德,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가 부산 지부 지도 신부로 임명되었다. 이후 후원회의 지도 신부로는 인사 이동이 잦은 군종 신부를 대신하여 일반 교구 신부들이 위촉되는 경우가 증가하였다. 이러한 변화 속에 후원회에서는 1988년 1월에 해군 함상용 공소함 50개를 최초로 제작하여 지원하였고 5월에는 1987년 5월 군 내부 사정으로 중단되었던 군인 신학생 후원을 재개하여 <가톨릭신문>과 《믿는 이의 편지》를 정기적으로 발송하였다. 그리고 11월에는 후원회 사무실을 가톨릭 회관 5층으로 이전하였으며 12월부터는 회원 관리 업무의 전산화 작업에 착수하여 이듬해 4월 완료하였다. 아울러 1989년 6월에는 군 성당에도 <등불>을 배포하기 시작하였고 7월에는 '회원 1일 피정' 을 '회원의 날' 로 개칭하였다.
1989년 10월 군종교구가 설정되면서 이듬해 3월에 군종교구장 정명조(鄭明祚, 아우구스티노) 주교와 후원회 대표들이 모여 군종교구와 후원회 간의 업무 체계를 재정립하였다. 군종교구의 설정은 군종 후원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이전까지 후원회의 규모나 기능이 서울 지부에 편중되어 있어 활동이 부진하였던 지방 지부들이 군종교구의 설립으로 소속감을 느끼면서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1980년대 중반 이후 침체되었던 마산 지부가 1990년 이후 활기를 되찾기도 하였다.
이후 군종 후원회는 1990년 11월 그동안 중단되었던 차량 지원을 재개하여 지프 3대를 백령도 흑룡 성당, 인제 을지 성당, 화천 칠성 성당에 각각 전달하였고 1991년 1월부터는 명동 가톨릭 회관에서 후원회 회원들을 위한 월례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93년 9월과 11월에는 군종 병용 자전거 79대를, 이듬해 5월에는 군 성당용 기타 320대를, 8월에는 영상 장비 11대를 지원하였으며 10월에는 군 성당과 공소에 온풍기 29대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1995년 9월에는 제1회 지회장 피정을 역곡 '은혜의 집' 에서 실시하였다.
이처럼 꾸준히 진행되던 후원회의 활동도 1997년 IMF로 주춤해 지면서 1998년 1월 출판물 지원 사업의 축소를 시작으로 성당 건축과 군 성당 지원을 제외한 모든 사업에서 긴축 운영을 실시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 9월에는 동티모르의 상록수 부대에 물품을 지원하는 한편, 효율적인 후원을 위해 군 성당 건립 ARS 후원 전화를 개설하였다. 그러나 회원 이탈의 문제점 등이 발생하여 2000년 2월에 중단하였다.
1999년 12월 이기헌(李基憲, 베드로) 주교가 군종교 구장 겸 6대 군종 후원회 총재로 부임하였고 본부도 가톨릭 회관 6층(현 위치)으로 이전하였다. 이기헌 주교는 중앙회 회칙을 현실에 맞게 정비하기 위하여 2000년 1월 중앙회 회장단 회의를 개최하여 회칙 용어를 변경하고 2월부터 이를 시행하였다. 이에 따라 '군종 후원회 본부' 는 '군종 후원회 중앙회' 로, '군종 신부단' 은 '군종교구'로, '담당 주교' 는 '총재 주교' 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6월에는 동성고등학교 대강당에서 군종 후원회 창립 30주년 기념 행사를 가졌으며 12월에는 1985년에 사업을 종료한 수원 지부를 재창설하였다. 또한 2002년 4월에는 인천 지부를, 10월에는 청주 지부를 설립하였으며 2004년 3월에는 입대 예정자들과 신자 장병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군 종교 생활 체험' 행사를 개최하였다.
2005년 현재 군종 후원회의 후원자 수는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고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 비중도 50%가 채 안되는 실정이다. 이에 군종 후원회에서는 각 교구 지회 차원에서 인적 자원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울러 체계적인 회원 관리 방안을 마련하여 지속적으로 군 사목에 참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군 선교 지원단' 을 구성하는 등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군종 후원회 ; → 군종교구)
※ 참고문헌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편, 《한국 천주교 평협 30년사》,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1999/ 군종교구사 편찬위원회, 《천주교 군종교구사—군 사목 50년사》, 천주교 군종교구, 2002/ <가톨릭신문>, 2002년 4월 14일자 · 2002년 10월 6일자 · 2004년 3월 28일자 · 2005년 2월 24일자 · 2005년 3월 6일자. [金가람]
한국 가톨릭 군종 후원회
韓國 — 軍宗後援會
〔영〕Korea Catholic Chaplain Support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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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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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군종 신부들(1951.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