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미술

韓國 — 美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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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상>(부산 오륜대 순교자 기념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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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상>(부산 오륜대 순교자 기념관 소장)

한국인이나 또는 한국에서 제작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그 가르침을 고백하며 찬미하는 예술 작품. 좁게는 성당 건축과 함께 전례용품으로 제작된 작품을 의미하며, 넓게는 가톨릭 신앙이 깃든 모든 예술 작품을 포함한다.
한국 가톨릭 미술은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한국 교회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에, 박해 시대(1785~1886), 개화기(1886~1910), 일제 강점기(1910~1945), 해방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시기(1945~1962)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시기(1965~현재)로 구분할 수 있다.
〔박해 시대〕 한국 천주교회는 1784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한 이승훈(李承薰, 베드로), 이벽(李檗, 요한), 김범우(金範禹, 토마스) 등에게 세례를 줌으로써 창설되었다. 근대적인 평등 사상과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천주교는 당시 충효를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유교의 가부장적 윤리와 정면 대치되어 박해를 받았다. 따라서 카타콤바(catacomba)에서 시작된 서구의 그리스도교 미술처럼, 박해 시대에는 성당 건축이 불가능하였고 신자들은 회장을 중심으로 신자들의 집에 번갈아 모이며 신앙 생활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여건으로는 조각 작품을 제작하여 성당이나 공소에 설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현재 이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성모상〉이 부산 오륜대 순교자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외국에서 들여온 성모상에 다시 주형을 떠서 만든 것으로 보이며 그 표면이 매우 거칠고 기포가 많다.
이 시기의 회화는 서구의 그림을 모방하였으며 예술적 가치보다는 선교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우라가와 와사부로(浦川和三郎, 1876~1955) 주교가 쓴 《조선순교사》(朝鮮殉教史)에 의하면 이승훈은 1783년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이듬해 귀국을 하면서 성화를 가지고 와 이벽에게 주었다고 한다. 또 본격적인 성화 제작에 힘썼던 이희영(李喜英, 루가)은 화공(畵工)으로, 그가 그린 〈예수상〉을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에게 보낸 사실이 밝혀져 1801년 순교하였다. 그의 친구인 김건순(金建淳, 요사팟)도 경기도 여주의 한 교우 집에서 미카엘 대천사의 그림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그림들에 대해서는 북경에서 은밀히 반입되었다는 견해와 이희영과 같은 화가들이 국내에서 모사한 것이라는 견해로 나뉘어진다. 반면 1895년 게일(J.S. Gale)이 번역 · 출판한 《천로역정》(天路歷程, The Pilgrim's Progress)에 풍속화가인 김준근(金俊根, ?~?)이 그린 삽화가 우리 나라 그리스도교 회화의 효시이며 현존하는 최고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현재 승실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와 함께 현재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에 소장된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에는 당시 신자들에게 행한 고문과 형벌에 대한 스케치가 있다. 또한 이 기념관에는 박해 시대의 묵주와 성광, 병인박해 때의 유물인 성모상, 십자가와 십자고상 등과 같은 공예품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서양에서 전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개화기〕 1886년 6월 4일 한불조약을 계기로 한국 천주교회는 신앙의 자유를 찾게 되었고, 약현(현 중림동) 성당과 종현(현 명동) 성당 등이 건축되었다. 그리고 이 성당들에 예수상과 성모상, 천사상 등이 봉헌되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작자 미상으로 유럽에서 만들어져 들여온 것으로, 미적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라기보다 전례를 위한 기능적인 측면이 강조되었다. 한편 1886년에 제작된 <성모자상>이 있는데, 이 작품 역시 파리의 노트르담 주교좌 성당 정문에 있는 성모자상과 매우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서양의 것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의 회화 역시 매우 빈약하여, 유럽에서 선교용으로 가져온 인쇄된 상본화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천사 가브리엘, 최후의 만찬에서부터 명동 성당에 14처로 걸려 있던 상본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이콘과 종교화에서 유래한 이러한 다양한 상본화는 그 예술성을 논하기에 앞서 당시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 시기의 주요한 작품으로 명동 성당의 유리화(stained glass)를 들 수 있다. 프랑스 투르(Tours)에서 만들어져 들여온 화려하고 엄숙한 이 작품은 제대 뒤의 <묵주 기도의 15가지 신비>, 동쪽 윗벽의 <동방 박사의 경배>, 서쪽 윗벽의 <열쇠를 받는 성 베드로>를 주제로 한다. 또한 공예 작품으로는 명동 · 약현 성당 건립 당시 프랑스에서 가져온 전례용품이 있다. 1909년 한국에 진출한 베네딕도회가 설립한 중공학교(崇工學校)에서 제대 · 촉대 · 세례대 등이 제작되었으며, 특히 1915년에 만들어진 명동 성당의 강론대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이 시기 전국 각지에 세워진 성당을 장식한 조각품들은 거의 유럽에서 들여온 작자 미상의 것이 대부분이었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서울 중림동 성당의 <성모상>, <성모자상>, <성 요셉상> 그리고 14처, 명동 성당의 <성모자상>과 <베네딕도 성인상>, 인천 답동 성당의 <바오로 성인상>과 <성모자상>, 전주 전동 성당의 <성모상> 등이 있다. 이들 작품들은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기보다는 교회를 꾸미기 위한 장식의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조각가 윤승욱(尹承旭, 1915~?)이 1939년 동경에서 개최된 전람회에 그리스도상을 출품하였다고 하지만 이 작품은 현존하지 않는다. 또 그는 김대건 신부의 상도 대리석으로 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정확한 인물 묘사로 유명한 백문기(白文基, 1927~ )가 1943년에 제작한 조각 작품 〈신부의 초상〉은, 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쳐 준 공베르(A.Gombert, 孔安國) 신부의 반신상이다.
이 시기에 지어진 성당 건축은 유럽 양식의 모방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조각 역시 뚜렷한 작품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발(張勃, 루도비코, 1901~2001)의 등단으로 한국인에 의한 가톨릭 회화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장발은 한국 최초의 학술적 그리스도교 미술 연구가로 평가받고 있다. 명동 성당 제대 위에 그려진 벽화 <14사도>(1925~1927)는 그의 대표작으로, 1925년 로마에서 거행된 '조선 79위 순교자 시복식' 에 참여하였다가 귀국한 후 서울 대목구의 드브레(E.A.J.Devred, 俞世竣 부주교의 요청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 작품은 정확한 인체 데생과 부드러운 색감으로 사도들의 영성을 깊이 있게 표현하였다. 또 현존하는 최초의 작품인 <김대건 신부>(1920)는 78 × 42cm 크기로,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고유 복장인 갓과 도포를 입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왼손에는 성서를 들고 오른손에는 순교자의 상징인 종려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김대건 신부의 성품, 지혜, 담력과 청아한 인상이 아름다운 조형미로 나타나는 작품이다. 또 다른 대표작인 <복녀 김 골롬바와 아네스>는 경직된 표정의 두 여인을 화면 가득 담고 있다. 두 여인의 의상은 푸른색과 붉은 색으로 대비되며, 단조로운 명암을 보여 준다.
또 다른 한국인 화가인 이순석(李順石, 바오로, 1905~1986) 또한 1923년에 열쇠를 지닌 <성 베드로>와 칼을 지닌 <성 바오로>를 각각 반신상으로 중림동 성당 제단의 양측에 그렸다고 한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풍모와 강렬한 색채가 매우 표현적이었다는 이 작품들은 안타깝게도 한국 전쟁 중 소실되었다. 이 시기에 제작된 가톨릭 회화 중 또 다른 걸작은 현재 명동 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79위 순교자>로, 1926년에 이탈리아 사람인 주스타니안(Justanian)이 그린 작품이다. 제2대 조선 대목구장인 앵베르(L.-J.-M. Imbert, 范世亨) 주교 및 두 명의 성직자와 김대건 신부를 포함한 79위 복자들을 그린 이 그림은 원숙하고 균형 잡힌 구도와 색조가 일품이다. 앵베르 주교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여자 순교자를, 왼쪽에는 남자 순교자를 그렸는데, 인물 각자의 지위와 특수한 개성을 고증하여 그렸기 때문에 복자들은 모두 다른 감정을 표출하면서도 순교라는 커다란 주제로 통합되어 나타난다. 또 함경남도 덕원군 베네딕도 수도원 내의 덕원 성당에 있던 작자 미상의 <12사도>를 비롯, 일부 성당의 성화와 상본들은 선교사들을 통해 중국 및 일본에서 들여온 것들이다.
일제 시대의 전례 용구도 선교사들이 전례를 위해 본국에서 가져온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에는 뮈텔(G.‑C.‑M. Mutel, 閔德孝) 주교가 사용하던 촛대, 십자가, 성합, 주교관, 제의, 주교 지팡이, 캅파(Cappa) 등이 보관 · 전시되어 있다. 이 시기 전례 용구들 중에 유일하게 한국인에 의해 제작된 것이 사제의 미사용 제의로, 수녀원에서 솜씨 있는 자수 작품이 제작되었으며, 덕원에 있던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는 주교좌, 제대를 비롯한 일부 전례 용구들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해방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시기〕 한국 천주 교회는 해방 이후 1960년대 이전까지 선교 중심의 교세확장이라는 교회의 일차적인 목표와 경제적인 여건으로, 교회 미술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역량 있는 몇몇 작가들의 등장과 노력으로 그 수준이 향상되었다. 이 시기는 해방 이전 서양 미술의 모방과 아류에 불과하였던 가톨릭 조각이, 한국적 특색을 갖기 시작한 여명기로 볼 수 있다.
조각 : 김세중(金世中, 프란치스코, 1928~1986)을 비롯한 김종영(金鍾瑛, 1915~1982), 장기은(張基殷), 차근호(車根鎬), 송영수(宋榮洙, 1930~1970) 등의 조각가들 이 모방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창작의 시작을 예고하는 성상을 조각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의 조각 작품들은 성당 주변에 세워진 성상 조각과 성당 벽면에 부착된 부조, 그리고 기타 단독 조각품 등을 들 수 있다. 해방 이전까지의 작품이 서구의 것을 단순 모방한 모조 혹은 아류에 그쳤던 반면, 해방 이후에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국내 조각가들이 등장하여 작가의 개성이 가미된 독특한 양식의 작품이 제작되었다. 석재, 청동재, 목재, 석고, 시멘트 등 다양한 조각의 재료를 선보였으며, 작품의 주제는 예수상이나 성모상, 십자가의 길 등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김세중이 제작한 혜화동 본당의 <십자고상>(1958)과 1960년에 김세중과 장기은이 공동 제작한 혜화동 본당의 정면 부조 등이 있다. <십자고상>은 십자가가 상징하는 고통을 시각화한 것이며, 본당의 정면 부조는 예수 그리스도와 네 명의 복음사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날개 달린 인간은 마태오, 소는 루가, 독수리는 요한, 사자는 마르코를 상징하는 화강암 부조이다. 이 외에도 김세중은 〈성모상〉(1947, 이탈리아 밀라노 박물관 소장), 〈골롬바와 아녜스〉(1954, 가톨릭대학교 의과 대학 소장), 〈무염 시태〉(1954, 가톨릭대학교 소장), 〈순교자〉(1955, 개인 소장), 〈성모자〉(1956, 흑석동 본당), 〈십자가〉, 〈동정녀〉(1957, 벨기에 박람회 출품작), 〈성모상〉(1957, 국전 출품작) 등 많은 조각을 제작하였다. 장발이 회화에서 한국 가톨릭 미술의 선구자라면 김세중은 가톨릭 조각의 선구자라 칭할 수 있다. 김세중 외에도 장기은의 <성모상〉(1954), 〈성모자〉(1957, 벨기에 박람회 출품작), 차근호의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1957, 벨기에 박람회 출품작), 〈예수 고상〉(1960) 등이 있으며,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작품은 1960년에 제작된 혜화동 본당의 〈십자가의 길〉이다. 이 작품은 독일에서 미술을 전공한 당시주한 미국 대사관 문정관의 부인인 핸더슨(Handerson)이 제작한 것으로,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장중한 작품이다.
회화 : 이 시기 회화의 특징은 해방 이전부터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장발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장으로 재직하며 주변 교수들 또한 세례를 받도록 이끌어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이 가톨릭 미술의 본거지가 되었다는 점과, 1954년 이들을 중심으로 '성미술전' 이 개최된 점이다. 장발 등 서울대 교수 및 졸업생의 주도로 1954년 10월 5~12일까지 미도파 화랑에서 개최된 '성미술전'은 한국 가톨릭 미술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전시회였다. 그 당시 출품자들은 다음과 같다. 서양화는 장발의 〈십자고상〉과 정창섭(丁昌燮, 1927~ )의 〈동방 박사들의 경배〉, 동양화는 노수현(盧壽鉉, 1899~1978)의 〈만종>, 배렴(裴濂, 1911~1968)의 〈성당 가는 길〉, 서세옥(徐世玉, 1929~ )의 〈간구〉, 권영규(權寧奎)의 〈노기남주교〉 등이다. 또 조각 작품으로는 김종영의 〈성모상〉, 김세중의 〈순교자 골롬바와 아네스〉가 출품되었고, 공예 작품으로는 이순석의 〈십자가와 촛대〉, 백태원(白泰元, 1923~ )의 〈성서대〉 등이 있었다. 이 미술전은 성모 성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화가, 조각가, 공예가등의 가톨릭 미술가들을 하나로 묶어 가톨릭 미술을 집약한 체계화된 가톨릭 미술 활동이었다. 또 1954년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1913~2001)이 예수의 일대기를 다른 성화전을 개최하였는데, 여기에 전시된 작품들은 예수의 일대기를 한국적으로 해석한 의미 있는 것들이었다.
성당 벽화나 상본 이외에 두드러진 작품으로는 동양화가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요셉, 1912~2005)과 서세옥, 서양화가 박득순(朴得錞, 1910~ )의 작품 등이 있다. 장우성의 〈성모자상〉(서울대교구 소장)은 성모 마리아가 우리 나라 고유의 궁중 복장(당의)을 입고 있는 것으로, 한국적인 토착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1950년 로마에서 개최된 '전교 지방 미술 전람회' 에 보내진 그의 3연작 <조선 순교자의 모후〉(교황청 인류 복음화성 소장)는 성모를 중심으로 순교자를 그린 작품으로, 당시 로마에서 관람자들의 눈길을 끈 작품이었다. 이 전시회에는 장발이 성 김효임(골롬바)과 성 김효주(아네스)를 그린 〈두 동정 순교자〉(로마 한인 신학원 소장)도 출품되었다. 동양화가 서세옥은 〈성가정〉, 〈성모자상〉, 그리고 반 추상계열의 〈동정녀〉, 〈성모상〉 등을 남겼다. 박득순은 명동 성당을 배경으로 가족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악기를 갖고 있는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제작하였다. 한국 가톨릭 회화에서 장발을 주축으로 하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들의 활동은 가톨릭 미술을 체계화하고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그들이 활동한 '성미술전' 은 후에 '가톨릭 미술전' 으로 이어지며 많은 가톨릭 미술 작품을 제작하고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는데에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공예 : 한국 근현대 미술에서 공예는 조각과 회화에 비해 다소 뒤쳐진 양상을 보였으며, 이는 가톨릭 미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이후에야 여러 성물들의 토착화, 국산화가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열악함 속에서 이순석은 공예 미술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1931년에 일본 도쿄 우에노(上野) 미술학교 도안과를 졸업하고, 1946~1969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많은 공예가를 양성한 교육자이기도 하다. 또한 가톨릭 미술 협회 회장과 서울 가톨릭 미술가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 시기 그의 대표작으로는 1955년 흑석동 본당에 설치한 대리석으로 만든 성수대가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시기〕 현대 가톨릭 미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다. 공의회를 소집한 교황 요한 23세(1958~1963)가 주장한 두 가지 원칙인 '새롭게 하기' (update)와 '적극적 참여' (activeparticipation)는 가톨릭 미술을 쇄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가톨릭 미술은 '신앙을 풍요롭게 함' 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갖고 제작되었다. 여기에 한국 가톨릭 미술은 '토착화' 의 문제도 함께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60년대 이후 미국을 통해 추상 표현주의와 이어지는 미니멀리즘(minimaism) 등의 급변하는 현대 미술의 동향 속에서 가톨릭 미술은 물질성과 정신성의 접점을 모색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조각 : 성당 건축과 함께 세워진 조각으로는 외부에는 성모상, 성모자상, 성인 · 성녀상 등이 있고, 내부에는 제대 중앙에 십자고상, 양편에 예수 성심상, 성모상이 있다. 그리고 성당 내부 벽면에 부조 형식의 14처상이 있다. 초기에는 주로 외국에서 제작된 작가 미상의 성상들을 들여와 설치하였지만, 현재는 가톨릭 전시회에 출품된 성상이나 성당 건축 시 주문 · 제작으로 만들어진 성상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예술 세계가 탁월한 조각가들이 성상 제작에 참여하여 그 수준을 한층 높였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 화단을 풍미한 추상 조각과 달리 가톨릭 조각은 그 표현에 있어서 종교적인 조각이라는 특성상, 완전한 추상 조각보다는 고전적인 사실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 다수 제작되었다. 이러한 한계성으로 인해 조각가들은 석재, 청동재, 목재, 석고, 폴리에스텔, 시멘트 등 다양한 재료를 작품에 도입하여 종교적인 심미안을 드러냈다.
김세중과 더불어 1970년부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한 최종태(崔鍾泰, 요셉, 1932~ )는 창작 자체를 구도의 길로 삼았으며, 신성한 것과 세속적인 것의 만남, 이성과 감성의 만남,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의 만남을 통해 절대적인 것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1989년 제작한 명동 성당의 <십자가의 길>은 단순한 형태를 통한 본질의 표현으로 보는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간 고통과 부활의 길로 이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대전교구 대흥동 주교좌 성당의 <성모상>(1963), 절두산 순교성지 성당의 <순교자상>과 <성모자상>(1973), <성 요셉과 아기 예수>(1974) 등이 있다. 역시 서울대학교 미대 교수인 최의순(崔義淳, 요한 비안네, 1934~ )도 시멘트와 같은 재료로 표현적인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절두산 순교성지 성당의 <십자가의 길>(1967)이 대표적이다. 그는 시멘트뿐 아니라 석고로 만든 <성모상>(1975), 테라코타로 제작한 성 라자로 마을 성당의 <성모 성심〉(1975) 등 재료와 표현 기법에서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1980년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성당이 신축되거나 오래된 성당이 재건축되기 시작하자 다양한 건축적 변화와 함께 성상들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신축 성당의 대부분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실용성을 강조한 단순 건축물이었기에, 이와 함께하는 성상들도 단순하면서 절제된 미를 보여 주었다. 이런 까닭에 단순한 형태미를 추구한 최종태 교수와 최봉자(崔峰子, 레지나,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의 작품들이 선호되어 연희동을 비롯한 여러 성당에 놓여졌다. 특히 논현동 본당의 <성모자상>과 백석동 성당의 <성모자상> 등의 작품에서 최봉자 수녀는 절제된 형태와 깔끔한 표면의 마무리와 함께 한국적 정서에 부합하는 성모와 아기 예수의 표정을 만들어 냈다.
성당 내부 제대 중앙에 놓이는 십자고상도 건축 양식의 변화에 따라 그 크기와 재료가 다양해졌다. 춘천 임당동 성당의 십자고상은 조광호(趙光浩, 시몬, 1947~ ) 신부의 작품으로, 작가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조형화시킨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팔 아래에 있는 7개의 원은 7성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전례에 부합한 생명력을 가지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다른 작품인 서울 장위동 성당의 14처는 기존의 부조 형식에서 벗어나 나무 위에 붉은 색을 칠하고 쇠못을 부착하여 강렬하고도 숙연한 느낌을 전달한다. 초기에 교회 미술은 신자인 예술가가 대부분이었으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최봉자 수녀와 조광호 신부와 같은 성직자 및 수도자들의 작품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의 활동은 예술의 종교적 가치를 고양시키고 예술이 구도의 길임을 드러내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회화 : 1954년 개최된 '성미술전' 은 두 차례로 막을 내리고, 1970년 이순석, 김세중 등이 주도하여 결성된 서울 가톨릭 미술가회는 2005년 현재 32회의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이들은 1971년 신세계 화랑에서 제1회 전시회를 가졌는데, 출품작은 김원(金源, 1932~)의 〈성당이 보이는 풍경〉, 김태(金泰, 1931~ )의〈수유동 성당〉, 나희균(羅喜均, 1932~ )의 〈공존〉,박득순의 〈예수고상〉과 〈어느 행사 때〉, 방혜자(方惠子, 1937~ )의 <생명의 나무> 등이었다. 대부분 구상 계열의 작품으로, 가톨릭이라는 종교적인 주제에 고유의 정서가 혼합되었다. 십자가, 예수, 천사, 성인 등이 화면에 직접 등장하기보다는 <성당이 보이는 풍경>, <생명의 나무>와 같이 상징적으로 종교적인 색채를 띠는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1960~1970년대의 한국 화단은 추상 표현주의 계열의 성세였으며 더불어 이를 벗어나려는 다양한 모색이 활기차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가톨릭 회화는 여전히 구상에 머물고 있었다. 이 시기의 성당 및 수도원 건축과 함께 그 내부 장식을 위해 제작된 작품으로 김기영의 〈예수의 죽으심〉(1972, 인천 용현동 성당),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슈미트(Alwin Schmid, 1904~1978) 신부의 〈성모의 생애〉, 〈예수 부활 만찬〉(1975,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과 같은 벽화가 있다. 또 정창섭(丁昌燮, 암브로시오, 1927~ )의 <병인 순교자 24위>(1968, 절두산 순교성지 성당)와 같은 유화 작품과 방오석(方五錫, 마르가리타)의 〈복녀 골롬바와 아네스〉(1966,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장운상(張雲祥, 1926~1982)의 〈성모 마리아〉(1969, 성가 소비녀회)와 같은 동양화 작품이 있다. 1976년에는 문학진(文學晉, 토마스, 1924~ )에 의해 〈103위 순교 복자 성화〉(혜화동 성당)가 제작되었는데, 이 작품은 전례 · 역사 · 복식 등 전문가들의 폭넓은 자문과 한국적 주체성을 살려 각 인물의 표정을 특색 있게 나타냈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에 의해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된 시성식에서 공식 성인화로 사용된 후에는 <103위 한국 순교 성인화>로 불리고 있다. 문학진은 103위의 순교자들을 배치하면서 중앙에 김대건 신부를 위치시켰는데, 이는 '쿠테타' 라고 표현될 정도로 큰 사건이었으며 교회 미술에 있어서 주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한 하나의 큰 결실이었다.
또 외국 공방에 의지하던 스테인드 글라스 제작을 개척한 이남규(李南奎, 루가, 1931~1993)는 한국 가톨릭 미술사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인물이다. 그는 국내 최초로 서울 중림동 성당의 유리화를 제작하였고, 명동 성당의 유리화를 복원하는 등 성당 40여 곳에 유리화를 설치한 국내 종교 미술의 독보적 존재이다. 프랑스 유학 중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의 딸인 이자벨(Isabelle Rouault)을 만나면서 그는 유리화에 손대기 시작하였다. 혜화동 성당을 장식하고 있는 이남규의 작품은 루오와 프랑스 서정 추상의 대가 마네시에(AIfred Ma-nessier, 1911~1993)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교회 내부를 신비한 빛으로 채운다. 특히 루오의 작품이 떠오르는 굵고 검은 테두리 선을 지닌 그의 성인상들은 대담한 색면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빛을 투과시킨다. 이남규의 유리화 작품은 단순히 회화의 연장이거나 종교인으로서 전통적인 교회 제작물을 위한 작업에 동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도구로 사용한, 하느님을 향한 예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념하여 그려진 <김대건 신부의 초상>(명동 성당)은 문학진의 작품으로 성스럽고 고매한 모습의 성인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199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에 기도문과 함께 상본으로 제작되어 신자들에게 배포되었다. 같은 해에 황창배(黃昌培, 1947~ )의 <이승훈>, 김태의 <이벽>, 조영동(趙榮東, 1933~ )의 <김범우> 초상화가 제작되었다. 동양화로 제작된 이승훈, 이벽, 김범우의 초상화는 단순하면서도 사실적인 인물 묘사와 절제된 느낌이 잘 표현되었고, 자생적으로 발전된 한국 천주교회의 굳은 신앙과 한국 고유의 정서가 잘 조화된 작품들이다. 역시 1984년에 제작된 김태의 <명례방 집회>는 교회 창설 직후의 공동체 모습으로,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을 이끌었던 이벽, 권일신 등이 김범우의 집인 명례방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유화이다. 이처럼 1984년은 한국 천주교회가 2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였지만, 가톨릭 미술이 성인들의 초상화를 제작하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토착화라는 과제를 어느 정도 실현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해이기도 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가톨릭 회화는 추상화로 변화하는 경향을 보여 주는데, 대표적인 화가가 조광호 신부이다. 그는 당시까지의 구상적이고 교훈적인 종교화와는 달리, 종교적인 주제를 자유분방한 표현 기법을 통하여 표출하였다. 특히 그의 작품은 현대 성당 건축의 내부를 장식하였는데, 국내에서는 드물게 제대 정면 벽을 장식하는 벽화를 그렸다. 그 주제는 성서의 말씀이나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용의 추상화로 자유롭고 활기찬 기법을 보여 준다. 상동 본당(1993), 석촌동 본당(1995), 평촌 본당(1996)의 벽화들은 성당 내부를 예술적이며 영적 교감이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밖에 임당동 본당(1992), 남천동 본당(1994)의 지붕과 벽면의 유리화는 매우 화려하고 웅장하다.
공예 : 가톨릭 미술에서 공예는 전례에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지만, 작품의 규모가 작아 운반이 용이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외래 수입품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차츰 국내 공예가들에 의한 작품이 전례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이순석의 뒤를 이어 김교만(金敎滿, 아우구스티노, 1928~1998) 민철홍(閔哲泓, 1933~ ) 성옥희(成玉嬉, 1935~ ) 권순형(權純亨, 1929~ ) 등 서울 미대 출신의 공예가들이 성물 제작에 힘썼다. 민철홍은 금속 공예로 촛대(1971, 반포 성당), 감실, 성체등(1965, 절두산 순교성지 성당)을 제작하였고, 김교만 역시 금속으로 십자가의 길(1975, 반포 성당)을 제작하였다. 권순형은 도예가로 성수대와 세례대(1975, 성 라자로 마을 성당)를 제작하였는데,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공예인 도예를 성물 제작에 이용한 것은 뜻깊은 일이다. 또한 성옥희는 타피스트리(tapestry)를 이용하여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의 독서대를 제작하는 등 중세 교회 미술에서 유래한 오랜 전통의 타피스트리를 전례용으로 제작하였다.
〔가톨릭 미술가들의 활동과 전망〕 1971년 제1회 서울 가톨릭 미술가회의 전시는 가톨릭 미술인들을 응집하여 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지대하다. 서울 가톨릭 미술가회의 제9회 전시회(1981)는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전' 으로 세종문화회관 전시장에서, 제 12회 전시회(1984)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현대 종교 미술 국제전' 으로 교황청을 비롯한 프랑스와 독일 등의 귀중한 박물관 소장품들을 다수 전시하였다. 제 17회 전시회(1989)는 제44차 세계 성체 대회 기념 '평화를 그리는 미술전' 으로 이루어졌는데, 이처럼 한국 천주교회의 큰 행사와 더불어 전시회를 가짐으로써 그 의미를 더해갔다. 또한 가톨릭 미술가회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미술이 지니는 역할 및 성당 건축과 가톨릭 미술품의 필요성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1986년 제14회 전시회는 로마에서 개최된 <국제 종교 미술전>(SIAC)에 참가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1994년에는 제22회 전시회와 함께 '우리 삶 속의 종교 미술' 을 비롯하여 '우리의 전례 공간은 어떻게' (1995) '생활 속의 성미술' (1996) 등의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또 1994년부터는 미술가의 수호 성인 안젤리코(Fra Angelico)의 축일인 2월 18일을 '가톨릭 미술가의 날' 로정하고 가톨릭 미술상을 수여하는 등 발전을 위해 내실을 다지고 있다. 서울가톨릭 미술가 협회뿐 아니라 광주(1984), 대구(1974), 대전(1995), 마산(1997), 부산(1983), 부천(1987), 수원(1998), 안동(1998), 원주(1986), 인천(1991), 전주(1998), 청주(1992), 춘천(1995) 등 지역별로 가톨릭 미술가 협회가 생겨났으나, 신앙인들이 모여서 전시하는 순수 화합 단체이므로 결속력과 조직력, 뚜렷한 특징이 없어 전시회의 질이 다소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지역별로 모인 가톨릭 미술가 협회는 1995년 6월 14일 한국 가톨릭 미술가 협회를 구성하여 현재 15개의 모임과 500명의 회원이 세 차례의 협회전을 개최하였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문화의 복음화, 복음의 문화화를 지향하는 한국 교회의 활동이 점차 활성화되면서 2000년 1월에는 명동 가톨릭회관 1층 41평의 공간을 활용해 최초의 가톨릭 전문 화랑인 '평화 화랑' 을 열고, 가톨릭 미술가 협회 소속 원로 작가 30명을 초청해 개관 기념전을 개최하였다. 또 2002년 2월에는 '가톨릭 화랑' 이 중림동 가톨릭 출판사 내에서 개관하였고, 3월에는 '가톨릭 미술 아카데미' 를 개원하여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이 미술사와 이콘 등 다양한 실기를 직접 배워 풍요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같은 가톨릭 전문 화랑의 개관은 조각과 회화가 건축에서 분리되어 교회 안에서 독립된 예술 작품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장이 마련된 점에서는 반가운 양상이지만, 교회 미술의 질보다는 무분별한 양적 생산을 부추기는 단점을 낳기도 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절망에 빠지지 않으려면 아름다움이 필요하며, 아름다움은 진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에 기쁨을 주며 시대를 초월하여 각 세대를 일치시키고 함께 경탄하게 하는 고귀한 열매" 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메시지처럼 보다 아름답고 영성적인 작품을 제작하고 수집 · 보존하는 것이 앞으로 개진할 과제이다. (⇦ 가톨릭 미술, 한국의 ; → 가톨릭 건축 ; 가톨릭 미술, 세계의 ; 김세중 ; 상본 ; 성모자상 ; 이순석 ; 이콘 ; 이희영 ; 장발 ; 전례 미술 ; 전례 용구 ; 한국 가톨릭 미술가 협회)
※ 참고문헌  方五錫, 〈韓國가톨릭美術에 關한 研究〉, 이화여대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76/ ——, 〈現代 韓國가톨릭美術에 關한 研究〉, 《崔奭祐 神父 華甲紀念 韓國 教會史 論叢》, 韓國敎會史研究所, 1982/ 오광수, 《한국 현대 미술사 : 1900년대 도입과 정착에서 1990년대 오늘의 상황까지》, 열화당, 2000/ 李龜烈, 〈韓國 가톨릭美術 2백년의 軌跡〉, 《季刊美術》 29호, 中央日報社, 1984/林英芳, 〈그리스도敎와 美術〉, 《司牧》 50호(1977. 3), 韓國天主教中央協議會 박성연, ,<한국가톨릭미술에 관한 연구>,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7/ 강정윤, <그리스도교 미술의 동아시아 유입과 전개 : 17~18세기 예수회를 중심으로>,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 《새날 새삶 대희년 미술전》, 2000. 〔鄭恩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