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연구소 韓國敎會史研究所 [영]The Research Foundation of Korean Church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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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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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연구소의 설립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노기남 대주교의 1964년 8월 17일자 공문(왼쪽). 한국교회사연구소가 개최한 교회사 사료 전시회.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 한국 교회사 연구 기관. 서울 중구 저동 1가 2-3번지 소재. 1964년 8월 17일, 한국 교회의 발전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과 그 지식을 보급하 며 교회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함은 물론, 한 국학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설립 당 시에는 가톨릭대학 부설 기관으로 혜화동 대신학교에 위 치하였다가 1967년에 절두산 순교성지로 이전하였으며, 1975년에 마포구 합정동에서 활동을 재개한 후 1986년 에는 명동 가톨릭 회관으로, 2002년에는 현재의 저동 평화빌딩으로 이전하였다. 한국 교회 최초의 교회사 연 구 기관으로 전문적인 교회사 연구만이 아니라 교회사의 대중화를 위한 여러 활동과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 및 학 술 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역대 소장] 초대 최석우 (崔奭祐, 안드레아) 몬시놀(1964. 8~2001. 2), 2대 김성태 (金聖泰, 요셉) 신부(2001. 2~현재). 〔설 립] 1961년 말 독일에서 돌아와 대신학교의 교회 사 담당 교수로 재직하던 최석우 신부(2005년 몬시놀 서 임)는 파리 외방전교회가 창립된 지 300주년이 되는 1964년을 맞아 기념 행사를 갖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한양대학교의 이원순(李元淳, 에우세비오) 교수를 만나 상의하던 중, 교회사 연구 기관의 설립을 제의받았다. 최 신부 역시 교회사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연구 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곧바로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서울대교구장을 찾아가 연구소의 설립 필요성을 설명하였고 노기남 대주교는 그 자리에서 허락한 후, 1964년 8월 17일자 공문을 통해 한국교회사연구소의 설립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였다. 이 러한 과정을 거쳐 설립된 연구소는 가톨릭대학의 부설 기관으로 대신학교 구내 옛 가르멜 수녀원 건물(현 혜화 동 주교관)을 사용하게 되었다. 최 신부는 유럽에서 가지고 온 자료와 한공렬(韓珍烈, 베드로) 주교에게 부탁하여 서울 주교관에서 신학교로 옮겨 놓은 자료들을 연구소로 이전하고, 1964년 8월 28 일부터 창립 기념전으로 '한국 교회사 사료 전시회' 를 개최하였다. 전시품은 총 204점이었는데, 서적이 172점 으로 가장 많았으며 서화 17점, 유물 15점 등이었다. 이 후 연구소의 자료 수집 작업은 계속되어 1966년에는 주 교관 지하실에 남아 있던 총 13,451건의 <위텔 문서>를 연구소로 이관하였다. 이 문서들은 뒤텔(G.C..-M. Mutel, 閔德孝) 주교가 1881년부터 1920년대에 이르는 기간에 수집하여 보존해 온 것으로 교회사 연구의 기본 사료가 될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사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 료이다. 최 신부는 이 교수와 함께 <위텔 문서>를 서양 문서와 동양 문서로 분류 ·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하여 1968년에는 동양 문서의 정리 작업을 완료하였다. 이와 함께 《조선사》(朝鮮史, 조선사편수회)에 주기(註記)되어 있는 여러 사료에서 한국 교회사 관계 자료를 뽑아 촬영 하고 필름화하는 작업도 진행하였다. 이러한 자료 수집 및 정리 작업 외에도 1966년에는 병인 순교 100주년을 맞아 '전국 순회 한국 교회사 자료 전시회' (3월)를 개최 하였고, 교회사 자료집 제1집으로 《황사영 백서》를 간행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연구소는 1967년 이후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즉 병인 순교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절두산 순교자 기 념관이 완공되자 1967년 9월 최 신부가 기념관 관장으 로 임명되었고, 연구소도 같은 해 10월 절두산으로 이전 하였다. 기념관을 관리하며 연구소 또한 더불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이곳이 본당 (양화진 본당)이 되자 본당 운영과 연구소 활동을 병행하 는데 어려움을 겪던 최 신부는 결국 사의를 표명하고 가 회동 본당, 명동 본당을 거쳐 삼각지 본당 등지에서 사목 하였다. 이처럼 연구소의 책임자가 일선 사목을 담당하 게 되자 연구소의 활동은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소의 재출범] 1975년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침체 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이하였다. '79위 순교 복자 시복 50주년' 을 맞아 가톨릭신문사에서 <가 톨릭신문>에 특별 칼럼을 마련하고 최 신부에게 복자들 의 전기를 부탁하자 이를 계기로 최 신부는 다시 교회사 연구에 전념하고자 하였으며, 또 교구 내에서도 교회사 와 순교자 연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 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서 울대교구장은 1975년 5월 한국교회사연구소를 교구 소 속의 독립된 특수 사목 기관으로 육성하기로 결정하고 최 신부를 전담 신부로 임명하였으며, 연구소는 6월 마 포구 합정동에 건물을 마련한 뒤 활동을 재개하였다. 최 영희(崔永禧, 전 국사편찬위원장), , 이광린(李光麟, 전 서강 대 교수), 이원순 교수가 운영위원으로 임명되고, 한국 교 회사에 대한 연구를 효율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하여 본격 적인 공동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에 앞서 교회사에 관심 이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자 1975년 8월 '교회사 강습 회' 를 개최하고 수강생들을 주축으로 '한국 교회사 연구 회' 를 발족시켰다. 1975년 9월에는 제1회 '월례 연구 발표회' 를 개최하고, 연구회 명의(3호부터 연구소 명의)로 《교회와 역사》를 창간하였다. 이어 10월부터는 정기적 인 성지 순례 행사를 주관하였으며, 12월에는 '한국교회 사연구소 후원회' 가 조직되어 연구소 활동을 뒷받침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재출범과 함께 연구소의 기틀을 마련해 가던 최 신부는 새로운 자료 수집에도 힘을 쏟아 1976년 12 월에는 독일의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를 방문하 여 베네딕도회 회원들의 한국 진출 초기 원사료와 연대 기들을, 또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의 편지들을 찾아 복사해 왔다. 또한 1978년 8월에 는 '한국 사학회' 의 위촉을 받아 유럽에 가서 독도 관련 지도를 찾던 중 파리 국립 도서관에서 김대건(金大建, 안 드레아) 신부의 <조선 전도〉(朝鮮全圖)를 발견하였고, 아 울러 다블뤼(M.N.A. Daveluy, 安敦伊) 주교의 <비망기> 사본의 소재처도 확인하였다. 이때 확인된 <비망기> 두 권(서설과 순교자 전기)은 이듬해 3월 연구소로 입수되었 다. 그 사이 연구소에서는 1977년 5월 월례 발표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모아 학술 논문집인 《교회사 연구》(敎 會史研究)를 창간하였고, 7월에는 신유박해 당시의 귀중 한 자료인 《사학징의〉(邪學懲義)를, 1978년 2월에는 이 기경(李基慶)의 《벽위편》(闢衛編)과 같은 희귀 자료를 영인하여 학계에 소개하였다. 1980년대가 되면서 연구소의 활동은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어 1979년에 달레(C.C. Dallet, 1829~1878) 신부의 《한국천주교회사) 상권이 역주 간행된 데 이어 1980년에 는 중권과 하권까지 완간되어 교회사 연구의 기초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1981년 3월에는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을 맞아 서울대교구에서 위촉한 《서울교구총람》의 편찬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종로구 신문로에 편 찬실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1982년 6월에는 1980년부 터 계획하던 《한국가톨릭대사전》의 간행을 위한 발기인 총회를 개최한 후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하였다. 한편 최 신부는 1983년 7월 자료 수집차 로마와 파리 를 방문하여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황사영(黃嗣永, 알렉 시오)의 〈백서〉(帛書) 원본을 확인하였고,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의 개인 앨범 4권을 입수하였다. 이와 함께 1984년에는 파리 외방전교회로부터 <위텔 주 교 일기>를 비롯하여 한국교회사 관계 자료 일체를 마이 크로피시(microfche)로 기증받았다. 이때 입수된 <위텔 주교 일기>는 전주교구에서 사목하던 세르스트반스(D. t'Serstevens, 池正煥) 신부가 해독과 타이핑 작업을 완료 한 후 연구소에서 번역과 감수를 하여 1989년 1월부터 <교회와 역사》에 연재하였다. 1984년에는 《최양업 신부 서한집》을 역주 간행하여 최양업 신부에 대한 연구를 촉 진시켰고, 같은 해에 <황해도 천주교회사》를 간행함으로 써 지방 교회사의 정리 작업도 병행하였다. 그런 가운데 마침내 1985년 2월, 한국 천주교회 200년의 역사를 총 정리한 <한국가톨릭대사전>이 간행되었다. 이 사전은 민 족사 안에서 한국 교회사의 위상을 정립하고 교회 문화 를 한국 사회 안에 널리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어, 특수 분야의 사전임에도 불구하고 1986년 1월 한국일보의 '한국 출판 문화상' 을 수상하였다. 〔도약의 명동 시대] 1986년 12월 연구소는 '명동 시 대' 를 맞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즉 교구의 배려 로 분리되어 있던 연구소와 편찬실을 통합하여 명동 가 톨릭 회관으로 이전하게 된 것이다. 체제 면에서도 일대 변화가 생겨 연구 주체의 확고한 정립과 연구의 효율적 인 추진을 위해 1988년 3월에는 사단 법인 체제로 전환 하였다. 1989년 창립 25주년을 맞이한 연구소는 '국제 학술 회의' 를 개최하였고 '한국 가톨릭 문화사 대계' 의 편찬을 계획하여 (한국가틀릭단행본논저해제)(190)를 간행하였다. 그리고 1992년 3월부터는 《한국가톨릭대 사전》의 증보 · 개정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하여 1993 년 2월 24일에 편찬 회의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이틀 뒤 인 1993년 2월 26일, 서강대 종교신학연구소와 공동으 로 사전을 편찬하기로 결정하면서 연구소의 사전 편찬 계획은 다소 변경되었다. 즉 서강대 종교신학연구소에서 1년 전부터 진행하고 있던 《종교신학대사전》 편찬 작업 이 중단되고 연구소와 공동으로 《한국가톨릭대사전)을 간행하기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1993년 11월에 부임한 변우찬(邊宇燦, 사도 요한) 신부가 주관하는 가운데 연 구소 창립 30주년이 되는 1994년 8월에 《한국가톨릭대 사전》 제1권이 간행되었으며 이듬해 1월에 '한국가톨릭 대사전 간행 후원회' 가 공식 발족하였다. 1996년 12월에 연구소는 사단 법인에서 재단 법인으 로 체제를 변경하고 인가를 받았다. 이것은 연구 범위를 한국 교회사 또는 역사 분야만이 아니라 세계 교회사와 여타 학문 영역으로까지 확대하고, 나아가 우수한 인재 를 양성하기 위한 지원 사업을 전개하여 연구소의 위상 을 높이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업 중의 하나가 바로 1997년 1월에 발족한 '성농 장학회'였다. 연구소가 새롭게 변신한 이듬해 3월 14일, 최 신부와 변 신부는 로마를 방문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 2005)를 알현한 후 <한국가톨릭대사전> 1~5권을 봉정 하였다. 그리고 같은 날 최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로마 대표부 문서고에서 다블뤼 주교 비망기 5권(순교자 약전) 의 사본을 발견하였다. 한편 1998년 9월 최승룡(崔承 龍, 테오필로) 신부가 연구소의 고문서 담당으로 부임하 면서 연구소의 자료 수집은 더욱 활기를 띄게 되어 파리 외방전교회, 미국 메리놀 외방전교회, 로마 교황청, 독일 베네딕도회 등으로부터 다양하고 새로운 자료들이 수집 되었다. 그리고 1998년 9월에는 연구소의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연구소와 연구소의 성과를 대외에 홍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2000년 대희년이 지나고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연구 소에 커다란 변화들이 생겨났다. 2001년 2월에는 1964 년부터 연구소를 이끌어 오던 최 신부가 은퇴와 함께 명 예 소장으로 추대되었고, 후임으로 김성태 신부가 2대 소장으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2002년 10월에는 좀 더 넓은 저동 소재의 평화빌딩으로 연구소를 이전하였으며, 고문서 · 고도서를 체계적으로 관리 · 보존하기 위하여 고문서고를 새로 마련하였다. 아울러 2004년 9월에는 연구소 설립 4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식과 기념 심포지 엄을 개최하고 기념 화보집을 발간하였으며(《빛 · 믿음 · 흔적》), 전문 연구자들을 육성하기 위한 '학술 연구 지원 제도 가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2005년 3월에는 명예 소 장인 최 신부가 몬시놀에 서임되었으며, 2006년 3월에 는 《한국가톨릭대사전》의 최종권인 12권의 작업이 완료 되었다. 연구소가 오늘날과 같이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연 구소를 후원해 주는 조직들의 도움이 컸다. '후원회' 는 1986년 2월에 '한국 가톨릭 문화 선양회' 로 변경된 후 1996년 3월 '한국 순교자 현양위원회' 와 통합될 때까지 연구소를 후원하였고, 교회사 연구회는 1987년 12월에 한국가톨릭 문화사 연구회로 개칭되었다가 1995년 12 월에 다시 '한국 교회사 연구회' 로 명칭을 환원하여 연 구 활동을 이끌고 있다. 1991년 4월에는 1989년 9월에 결성된 '한국 교회사 공개 대학' 동문회가 '한국 가톨릭 교회사 연구동인회' 로 재발족한 후 2000년에 '한국 교 회사 연구동인회' 로 개칭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 다. 이 모임은 교회사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 공부하는 비 전문가들의 모임으로 연구소가 추구하던 교회사 대중화 를 위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활동]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설립 이래 한국 교회 사의 연구, 관련 자료의 수집과 정리, 교회사의 대중화와 순교자 현양, 인재 양성, 가톨릭 문화의 발전을 위한 출 판 활동 등을 전개해 왔다. 이 중 연구 활동으로 중요한 것은 1975년 9월부터 시 작되어 2006년 3월 현재 총 147회 개최된 '연구 발표 회' 를 들 수 있는데, 이는 한국 교회사 연구의 기틀을 마 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반 학계에 연구소를 알리는 역 할을 하였다. 또한 '심포지엄' 같은 대외 학술 행사도 주 요한 연구 활동으로 꼽을 수 있다. 심포지엄은 1981년 에 시작되어 2005년까지 19회 개최되었으며, '안중 근 · '일제하의 한국 천주교회' . '한국 근대 종교와 천 주교 · '천주교 여성' 등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교회사 연구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1979년부 터 시작된 교회사 간담회(2006년 현재 77회 개최)도 다양 한 주제에 대한 논의를 통해 교회사 연구 발전에 많은 기 여를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 성과들은 《교회사 연 구》(2005년 현재 25집 발간)에 수록되어 학계에 소개되었 고, 이 외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한국교회 사논문집》 I · II(1984 · 1985)과 기타 기념 논총들을 통해 다양한 교회사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연구소는 설립 이래 자료의 수집과 정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파리 외방전교회, 로마 교황청, 미 국 메리놀 외방전교회, 독일 베네딕도회 등으로부터 수 집된 많은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으며, 특히 13,000여 건에 이르는 <위텔 문서>는 한국 교회사뿐만 아니라 한 국 근대사 연구에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이다. 이러한 자 료의 수집 과정에서 <조선 전도> 발견(1978), 황사영 <백 서>의 원본 확인(1983), 다블뤼 주교의 <비망기> 사본 입 수(1979 · 1998) 등과 같은 성과도 거둘 수 있었다. 이렇 게 수집된 자료들은 영인본과 역주본 형태로 간행되었는 데, <동유사우록>(東儒儒師友錄, 1977), 《벽위편》(闢編, 1978) , 《벽위신편》(闢衛新編, 1990) 등과 같은 희귀 한문 자료와 《신명초행》(1986) · 《성경직해》(1986) · 《경향잡 지》(1984 · 1985) · 《경향신문》(1978) · 《기해 · 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2004) · 《불한사전》(2004) 등과 같은 교 리서 · 성서 · 잡지 · 신문 · 증언록 · 사전 등이 '교회사 연구 자료집' 으로 영인되었고, 《리델문서》 I(1994) · 《뀌 텔 주교 일기》(1986~2002) · 《원산교구 연대기》(1991) · 《구합덕본당 100년사 자료집》(190) 등이 역주본으로 간행되었다. 특히 1979~1980년에 역주 간행된 달레 신부의 《한국 천주교회사》(상 · 중 · 하)는 교회사 연구자 들의 기본 텍스트로 이용되고 있다. 한편 연구소에서는 전문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일반 대 중들에게 교회사와 교회 문화를 알리고 교육하는 작업도 병행하여 왔다. 이러한 대중화의 첫 걸음은 1964년에 시작된 '사료 전시회' 에서 찾을 수 있으며, 1975년 8월 에 시작된 '한국 교회사 강습회' (1994년까지 13회 개최) 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전시회는 이후 본당 · 학교 · 단체 등에 교회사 관련 사진, 형구, 고서 등을 대여하는 형태로 진행되어 큰 호응을 얻었고, 교육의 경우 '한국 가톨릭 문화 강좌' (1987~1991년까지 18회 개최), '공개 대학' (1988~1996년까지 6회 개최), 교회사 초청 강연회 (1991~1992),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학술 강좌(2001) 등 다양한 형태의 강좌들을 개설하여 신자들의 교회사 지식을 높이는 역할을 해 왔다. 특히 2000년대 들어 한 국 교회사 연구 동인회' 의 활동이 더욱 활성화됨에 따 라, 2002년부터 '동인회 공개강좌' 를 매년 3차례 실시 하고 있으며, 교회사 원전 읽기 를 개설하여 황사영 <백 서> 등을 신자들이 함께 공부해 보는 기회도 마련하였 다. 그리고 정기적인 성지 순례를 통해 신자들의 신심 함 양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구소에서는 각 교구에서 전개하는 시복 · 시성 운동에도 참여하여 순교자 현양 사업에 적극 동참하고 있으며, 인재 양성을 위한 프로젝트로 성농 장 학회(1997)와 학술 연구비 지원 사업(2004)을 시행하고 있다. 아울러 2002년부터는 학계의 연구 성과를 본격적 으로 반영하기 위해 '교회와 역사 총서' 시리즈를 기획 하여 《조선 후기의 서학과 척사론 연구》를 제1집으로 간 행하였고, 2004년부터는 그동안 중단되었던 자료집 영 인을 재개하여 <불한사전> 등을 간행하였다. 2006년 3월 현재 연구소는 위와 같은 활동 외에 《한 국가톨릭대사전》을 비롯하여 160여 종의 도서를 편찬· 간행하였고 이러한 출판 활동을 통해 한국 교회의 역사 와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공헌해 왔다. 특히 2006년에 완간된 《한국가톨릭대사전)/전12권)은 1993년부터 13 년 동안 1,800여 명의 집필자가 참여한 대작업으로 10,000여 쪽 분량에 다양한 분야의 내용들이 총망라된 한국 최초 · 최대의 가톨릭 대사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연구소의 기관지인 월간 <교회와 역사》는 31년 동안 통권 370호가 발간되어 연구와 계몽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1 《교회와 역사》 ; <위텔 문서>) ※ 참고문헌 《가톨릭사전》 <교회와 역사》 최석우, <나와 교회 사 연구>, 《민족사와 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2000/ 이원순, <한국교회사연구소 40년과 방역 협조자들>, 《교회사연구》 23, 한 국교회사연구소, 2004/ 김수태, ,(한국교회사연구소의 연구 활동 과 방향>, 《교회사연구》 23, 한국교회사연구소, 2004/ <한국교회 사연구소 연혁>, 《교회사연구》 23, 한국교회사연구소, 2004. 方相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