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가톨릭 형제회

國際 - 兄弟會

〔프〕Association Fraternelle Internationale(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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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 레브 신부의 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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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 레브 신부의 필체.

1937년 이본 퐁슬레(Yvonne Poncelet)에 의해 벨기에 에서 창설된 평신도 사도직 단체. 정의와 진리를 갈망하 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 하는 정신으로 인류를 분열시키는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데 협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교회 내에서 평신도 들과 함께 생활하고 활동하면서 그들의 상황을 보다 정 확히 파악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준비된 평신도' 들의 모임으로서 '반죽 속에 든 누룩' 처럼 대중 속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는 단체이다. 이 회는 Auxiliaries Laiques des Missions(A.L.M.)라는 명칭으로 창립 되었고, 1956년 Auxiliaries Féminines Internationales (A.F.I.), 1973년 Association Interculturelle(A.l.)로 변경되었다가 1981년에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피(A.F.I.)의 이념은 벨기에 출신의 중국 선교사 뱅상 레브(Lebbe, Vincent Federic, 雷鳴遠, 1877~1940) 신부와 평 신도 외방전교회 창설자인 이본 풍슬레의 활동과 영성에 서 비롯되었다. 특히 레브 신부가 제시한 전(全) · 진 (眞) · 상(常) 정신은 모든 회원들의 중요한 생활 지침이 되었다. 전(全)은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위한 온전한 자 아 봉헌〔全犧牲〕을 뜻하며, 진(眞)은 참다운 사랑으로써 이웃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라〔眞愛人〕는 뜻이며, 상 (常)은 항상 어디서나 기쁘게 생활해 감으로써 그리스도 인의 기쁨이 주위에 전파되도록 하라〔常喜樂〕는 것이다.
〔활동 연혁〕 이 회의 활동사는 크게 4기로 구분된다. 볼랑(Andre Boland) 신부의 지도를 받은 3명의 회원으로 출범된 초창기(1937~195)는 1940년 봄 2명의 회원으로 소공동체를 구성하고 중국 교회에 파견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현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벨기에로 되돌아 온 시기였다. 이때 그들은 '선교 자원 봉사 운동' 을 전개 하여 회원수를 늘려가며 착실히 국제 단체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제2기인 발전기(1946~1966)는 1947년 벨기에의 말린(Malines) 교구 단체로서 공식 인준을 받은 데 이어서 1956년 교황청의 인준을 받은 시기였다. 이 시기는 가장 번성하여 회원수가 종전의 약 3배 가까이 증가하여 11개 국적의 회원들이 7개국에서 11개 팀으로 활동하였다. 중국과 중동의 교회로 파견된 회원들은 주 로 기초 교육, 모자 보건 등 의료 활동, 여성 기술 교육 등에 종사하였고 일부는 현지 성소자 양성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또한 브뤼셀, 파리, 로마, 밀라노 등지에 외국인 여학생들을 위한 숙소와 만남의 장소를 제공했던 까닭에 1960년대 파리에서 유학한 대부분의 한국 여학생들이 이 회의 기숙사를 거쳐갔고 일부는 가톨릭 신자가 되기 도 하였다. 당시의 회원 교육은 브뤼셀 국제 수련소에서 실시되었는데, 교육 방법은 대학 강의식의 학점제로 주 당 20여 시간을 수강케 하였으며 신학과 성서, 전례, 교 회사, 교회 문헌 연구 등을 그 내용으로 하였고, 아울러 규칙적인 기도와 묵상, 전례 준비, 본당 활동, 정기적인 연구 모임이나 생활 나눔 등을 실천하였다. 교육 기간은 1차가 1년, 2차가 2~3년, 3차가 1년으로 1차와 3차는 국제 수련소에서 1년 간 이론과 생활 교육을 받았으며 모든 교육 과정을 이수한 회원은 5년 이상 10년 이내에 종신 서약을 하였다.
제3기는 전환기(1967~1979)로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의 영향을 받아 1966년 공의회가 끝난 다음 브뤼셀에서 열렸던 총회에서 종래의 조직과 활동 방식에 일대 전환 을 단행했던 시기였다. 총회에서는 종래의 본부 중심과 팀 중심의 하향식 지시 체제를 개선하여 각 나라 또는 지 역별 소단위(Région, 후에 Unité)로 구성하여 자치적으로 운 영하기로 결의하였고, 아울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 회 헌장>과 <사목 헌장>의 정신에 입각하여 현대 사회에 서 위협받고 있는 모든 인간 문제, 곧 인간의 자유, 정 의, 평화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구속과 억압 속에 소외 된 사람들과 현대 경제 발전의 뒤안길에서 더욱 가난해 진 사람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인간 해방 운동에 동참할
것을 적극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방향 전환은 시대적 당 위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많은 혼란을 가져와 회 원수가 종전의 1/3로 감소되었다. 제4기(1981~현재)는 종래의 여성 중심에서 혼성 모임으로 발전된 시기였다. 1980년대 이래 A.F.I.는 국제적으로 유럽 국가들의 이민 문제, 동구권의 개방을 위시한 공산 국가들의 전환,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공해 문제와 환 경 보존 등에 주요한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 스위스 제네 바에 국제 본부를 두고 있는 이 회는 국제 연합 산하 기구 인 UFER(Union Fraternelle Entre Race)와 제네바에 있는 다 른 국제 인권 단체 등에 가입되어 있다.
〔한국에서의 활동〕 1956년 3월, 당시 서울 대목구의 노기남 주교 초청으로 독일과 이탈리아 출신 회원 2명이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들은 1962년 2월 명동 가톨 릭 여학생관(현재의 전진상 교육관)을 완공하여 운영해 왔 고 가톨릭 학생회, J.O.C., 스카우트, 부인회 등 평신도 단 체 창립과 국제적인 여러 활동 단체의 한국 진출을 도왔 다. 특별히 여성 계몽을 목표로 1964년 전주교구에 1개 팀이 파견되어 여고생 기숙사 운영을 맡게 되었다. 1969년 한국에서도 총회의 정신을 따라 서울에 있던 국 제 수련소를 폐쇄하였으나 대부분의 회원들은 교회 기관 에서 꾸준히 활동을 전개하여 명동 가톨릭 여학생관과 전주 여학생관 이외에도 1969년 안양 근로자 회관을, 1975년 시흥 전진상 복지관을 새로 설립하기에 이르렀 다. 1980년대 이후 회원들은 주로 교육계, 사회 · 의료 복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도시 빈민촌에 입주하 여 주민들과 더불어 생활을 나누면서 그곳 실정에 맞는 공부방, 유아원, 유치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1990년대 에 들어와서는 국체 단체로부터의 요청에 따라 특히 한 국 청년들의 해외 파견에 관심을 갖고 이를 실현하기 위 하여 노력하고 있다. (→ 레브, 뱅상)
※ 참고문헌  <국제 가톨릭 형제회>, 《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 톨릭출판사, 1984/ 김정옥, <국제 가톨릭 형제회의 활동>, 《韓國 가 톨릭 文化活動과 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91. 〔元載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