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꾸르실료 협의회 韓國 - 協議會 [영]Korean Cursi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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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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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꾸르실료 30주년 심포지엄(1997. 12. 6). 제14차 전국 울뜨레야(2004. 5. 26) .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단체 가운데 하나. 협의회 의 설립 목적은 한국 꾸르실료 운동의 통일성 · 정통성 · 순수성을 유지 발전시키며, 효과적인 운동 전개를 위하 여 각 교구 꾸르실료 사무국 간의 원활한 협의 기구로서 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971 소재. [꾸르실료의 한국 도입] 스페인어 '꾸르실료' (Cursillo) 는 '작은' (Curso, a little course)이라는 뜻으로, 짧은 시간 에 갖는 회심으로의 여행을 말한다. 꾸르실료는 3박 4일 동안 기도와 묵상, 담화를 통해 회심을 얻어 그리스도적 삶을 살고 나누는 것이 그 목적이며, 일반적으로 '꾸르 실료 운동' 이라고 말하지만 정식 명칭은 '크리스찬 생활 의 꾸르실료 운동' 이다. 꾸르실료 운동은 1940년대 스 페인의 주교 후안 에르바스(J. Hervas)와 가톨릭 활동 단 체 회장 에두아르도 보닌(E. Bonin)에 의해 시작되었는 데, 에르바스 주교를 비롯한 사제들과 평신도들이 성 야 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80 de Compostela)로 성지 순례를 준비하면서 순례 안내 자들을 위한 단기 강습회를 실시한 것이 그 시초였다. 당 시 보닌을 비롯한 몇몇 젊은이들은 순례만을 위한 꾸르 실료보다는 교회 운동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 고 있었으며, 1948년 순례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에르바 스 주교 등이 꾸르실료를 교회 운동으로 발전시킴으로써 1949년 1월 7일에 제1 단계 '그리스도인 생활의 꾸르 실료' 가 탄생되었고, 이것이 발전되어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제2 단계 꾸르실료가 완성되었다. 이후 꾸르실료는 전세계로 확산되어 1963년 교황 바오로 6세(1963~ 1978)에 의해 교회 내의 신심 운동으로 인정을 받았다. 한국에 꾸르실료 운동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66년이 다. 당시 주한 평화 봉사단 단장 케빈 오도넬(Kevin O' Donnell)과 필리핀에서 꾸르실료 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에드문도 카이모(Edmundo F. Kaimo)는 한국 교회에도 꾸르실료 운동을 전개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혜화동 본 당 신자들에게 꾸르실료의 내용과 참뜻을 전하였다. 이 에 대해 당시 혜화동 본당의 류수철(柳秀徹, 도미니코) 신부와 청파동 본당의 김정수(金晶壽, 레오) 신부를 비 롯한 몇몇 신자들은 한국 교회에 꾸르실료 운동을 시도 해 보기로 결정하고, 당시 서울대교구장 서리였던 윤공 희(尹恭熙, 빅토리노) 주교에게 꾸르실료 실시를 승인받 았다. 윤공희 주교는 서울대교구장 명의로 필리핀의 마 닐라 교구장에게 꾸르실료를 지도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 고, 이러한 요청이 받아들여져 1967년 5월 4일 한국 최 초로 서울 성수동 본당에서 영어로 된 꾸르실료가 실시 되었다. 이 꾸르실료에는 윤공희 주교와 메리놀회, 예수 고난회, 골롬반회, 과달루페회 소속 신부 6명이 강의를 하고, 카이모를 비롯한 12명의 필리핀 신자들이 봉사를 하였다. 지도 신부는 메리놀회 소속인 리처드슨(E.Richardson) 신부, 회장은 카이모, 부회장은 오도넬이었 으며, 수강자는 류수철 신부와 김정수 신부 등을 비롯하 여 총 21명이었다. 1967년 8월 17일에는 서울 정동 명도원에서 외국인 을 위한 제2차 꾸르실료가 개최되었고, 그해 8월 24일 에는 같은 곳에서 류수철 신부의 지도하에 처음으로 한 국어 꾸르실료인 제3차 꾸르실료가 실시되었다. 한국어 꾸르실료가 성공을 거두자 꾸리실료 운동은 각 교구로 확산되어 나갔고, 1969년 11월 6일에는 부산 '사랑의 집' 에서 남성 봉사자에 의한 한국 최초의 여성 꾸르실료 도 실시되었다. 〔협의회의 설립과 활동] 1970년에 이르러 꾸르실료 운동이 서울 · 대구 · 광주 · 부산 · 전주 · 인천 · 마산 등 7개 교구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꾸르실료 운동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서 전국 협의회 창립이 추진되었 다. 이에 6월 30일 전국의 꾸르실료 주간, 지도 신부, 추 천자들이 서울 가톨릭 학생회관에 모여 한국 꾸르실료 협의회를 창립하였고, 서울대교구 꾸르실료 주간인 문창 준을 회장으로, 부산교구 주간 박우순과 광주대교구 주 간 이상래를 부회장으로 선출하였다. 이 협의회는 7월 2 일 주교 회의 임시 총회에서 승인을 받았고, 임원들도 그 대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꾸르실료 협의회의 실무는 서 울대교구 꾸르실료 사무국에서 담당하였다. 한편 1971 년 8월 12일에는 서울의 끈벤무알 성 프란치스코 수도 원에서 캔트웰(A. Cantwell) 신부 등의 지도하에 여성 꾸 르실료가 실시되었는데, 이를 통해 7개 교구에서 모집된 여성 꾸르실리스타 21명이 탄생하였고, 이후 여성 꾸르 실료는 전국적으로 보급되어 갔다. 꾸리실료 운동이 확산 · 정착되어 가면서, 한국 꾸르실 료 협의회는 1970년 10월 24일 꾸르실리스타들의 재교 육을 위한 일종의 단합 대회이자 전진 대회인 '울뜨레 야 를 처음으로 개최하였다. 그리고 1976년 1월에는 꾸 르실료에서 봉사할 임원을 양성하기 위해 상설 지도자 학교를 개설하였으나, 이 학교는 활성화되지 못하고 바 로 폐쇄되었다. 1978년 3월 서울에서 열린 제9차 총회 에서는 꾸르실료 용어를 쉬운 한국어로 바꾸어 사용하도 록 하는 토착화 방안을 모색하였고, 4월에는 제9차 총회 의 결의에 따라 서울대교구 사무국 소식지였던 《울뜨레 야》를 통합 기관지로 발행하여 매월 각 교구 꾸르실료 사무국에 배부하였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의 꾸르실료는 해외 교 포들에게도 보급되었다. 1979년 9월 미국 시카고(Chicago)의 한인 교회 주임인 켈리(M. Kelly) 신부가 시카고 교포 신자들을 위해 꾸르실료를 전수해 줄 것을 요청하 자 1980년 7월 황인국(黃仁國, 마태오) 신부 등이 시카 고에서 교포 신자들을 상대로 첫 꾸르실료를 실시하였 고, 이후 캐나다 토론토(Toronto) , 독일, 호주 등에도 꾸 르실료 운동을 전파하였다. 한편 1981년 10월에 열린 주교 회의 추계 정기 총회 에서 꾸르실료 담당 주교가 임명되었다. 이는 꾸르실료 운동의 체제를 정비하고 교회 운동으로서의 비중을 높여 주는 조치로, 초대 담당 주교로는 서울대교구의 경갑룡 (景甲龍, 요셉) 주교가 임명되었다. 그해 12월에는 제37 호를 끝으로 《울뜨레야》의 발행이 중단되었고, 1982년 2월에는 꾸르실료 운동을 조직화하려는 경향을 지양해 야 한다는 경 주교의 인식에 따라 임원진을 축소하였다. 그러나 1984년 11월에 안동교구장인 두봉(R. Dupont, 杜 峰) 주교가 제2대 꾸르실료 담당 주교로 임명되면서 1986년 6월에는 발행이 중단되었던 《울뜨레야》가 재발 간되었고, 1987년 5월 5일에는 제9차 대회 이후 중단되 었던 전국 울뜨레야(제10차)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그 이 후부터 전담 주교 제도가 폐지되고, 주교 회의 전국위원 회 중 평신도 사도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주교가 꾸르 실료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내적 발전을 이룬 한국 꾸르실료 협의회는 국제적인 교류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88년 7월에는 베네수엘라에서 개최된 제4차 꾸르실 료 세계 대회에 공식 대표단을 파견하였고, 1989년 3월 에는 스리랑카에서 열린 제4차 아시아 태평양 지역 그룹 회의에 최용록(崔鏞錄,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를 파 견하였다. 아울러 1988년 12월에는 <꾸르실료의 기본 정신》을, 1990년 4월에는 <꾸르실료 운동 지도자 교본》 을 번역 출간하였으며, 6월에는 꾸르실료 사무국을 명동 가톨릭 회관에서 현 소재지인 세계 성체 대회 기념 교육 관으로 이전하였다. 1992년 9월에는 의정부 한마음 수련장에서 제7차 아 시아 태평양 지역 그룹 회의를 개최하였고, 회의 마지막 날에는 올림픽 공원 제1 경기장에서 꾸르실료 도입 25 주년 기념 전국 울뜨레야를 열었다. 또 1994년 7월에는 한국이 꾸르실료 세계 협의회(OMCC) 의장국이 되어 OMCC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1998년까지 OMCC를 이끌어 나갔고, 1995년 8월 31일~9월 2일에는 세계 성체 대회 기념 교육관에서 제12차 꾸르실료 세계 회의 를 개최하였다. 이어 이듬해 2월에는 꾸르실료 운동을 보다 깊게 이해하기 위한 자료집으로 《꾸르실료 운동의 기본 사상》을 발간하였으며, 1997년 9월 30일~10월 4 일에는 의정부 한마음 수련장에서 제5차 꾸르실료 세계 대회를 개최하였고, 12월에는 꾸르실료 30주년 기념 심 포지엄을 통해 꾸르실료 운동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였 다. 그리고 1999년 1월 서울대교구 꾸르실료 사무국에 서는 꾸르실료 운동의 지속적인 발전과 새로운 비전 제 시를 목적으로 꾸르실료 영성 연구소를 개설하였다. 2000년 10월 하와이에서 열린 제14차 아시아 태평양 꾸르실료 대표자 회의에서는 한국이 2년 임기의 꾸르실 료 아시아 태평양 지역 새 주간국으로 선출되었다. 이에 2001년 10월에는 경기도 예수 마음 배움터에서 제15차 아시아 태평양 꾸르실료 대표자 회의를 열고 새로운 세 기의 효율적인 복음화 방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그리고 2002년 2월 28일~3월 1일에 열린 2002년도 정기 총 회에서는 꾸르실료 운동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해 교구별 로 상설 지도자 학교를 운영하기로 하였고, 2004년도 정기 총회(2월 29일~3월 1일)에서는 각 교구별로 전개해 온 해외 꾸르실료 지원 활동을 한국 협의회로 통합하고, 교구별 회장 독본 적용도 통일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2005년 현재 한국 꾸르실료 협의회는 2005년을 팀 회합 정착의 해' 로 정하고 꾸르실리스타들의 핵심 그룹 인 팀 회합을 통한 울뜨레야의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다. (는 꾸르실료 협의회 사무국 ; → 꾸르실료) ※ 참고문헌 <가톨릭신문> 1998년 11월 22일자 2000년 11월 12일자 · 2001년 10월 21일자 · 2002년 3월 10일자 · 2004년 3월 7 일자 · 2005년 3월 13일자/ 〈韓國 꾸르실료 二十年史》, 꾸르실료 한국 협의회, 1987/ 《한국 꾸르실료 30년사》, 꾸르실료 한국 협의 회, 1998/ <울뜨레야> 103호(1999. 7~9월호). 〔梁仁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