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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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봉헌식을 가진 구 한림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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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봉헌식을 가진 구 한림 성당.


제주교구 소속 본당.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대림리 1814번지 소재. 1954년 4월 1일 한림 공소에서 본당으 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티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관 할 구역은 한림읍과 애월읍 일부 지역, 관할 공소는 애월 공소 1개소. 〔교 세〕 1954년 50명, 1965년 2,099명, 1970년 1,949명, 1975년 1,707명, 1980년 1,552명, 1985년 2,018명, 1995년 2,661명, 1999년 2,062명. 2003년 2,450명. [역대 신부] 초대 맥그린치(P.McGlinchey, 任) 파트리치오(1954. 4~1960. 5), 2대 오고 르만(D. O'Gorman, 殷) 다니엘(1960. 5~1964. 1), 3대 크 롭츠(J. Crofts, 吉) 요셉(1964. 1~1969. 10), 4대 플라나간 (J. Flanagan, 구) 요셉(1969. 10~1970. 7), 5대 곰리(M. Gormley, 고) 미카엘(1970. 7~11), 6대 매과이어(D. Maguire, 梅) 데스몬드(1970. 11~1974. 6), 7대 로이어(F. Royer, 노) 프란치스코(1974. 6~1978. 10), 8대 설리반(E.Sullivan, 설) 에르네스트(1978. 10~1980. 4), 9대 화이트 (P. White, 白) 바오로(1980. 6~1983. 5), 10대 양영수(梁 榮秀) 베드로(1983. 9~1987. 7), 11대 양명현(梁明鉉) 토 마스(1987. 7~1990. 7), 12대 김석순(金石淳) 마태오 (1990. 7~1995. 8), 13대 머레이(A. Murray, 함) 에단 (1995. 8~1997. 2), 14대 이시우(李時雨) 안드레아(1997.2~2001. 8), 15대 김석주(金碩柱) 베드로(2001. 8~2005. 1), 16대 현경훈(玄景勳) 미카엘(2005. 1~현재). 〔전 사〕 한림 지역에서의 전교는 1899년 5월 선교사 들이 제주도에 도착한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그 해 12월 배령(盃令, 현 한림읍 금능리) 출신의 윤 요셉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 지역의 첫 번째 신자가 되었다. 점 차적으로 신자수가 증가하면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 으나, 1901년의 제주 교안으로 와해되었다. 그러나 교 안 후 제주 판관을 지낸 양제하(梁濟夏, 안토니오)와 그 가족 등이 입교하면서, 다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 작하였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날짜는 분명하 지 않으나, 1903년경 라크루(M. Lacrouts, 具瑪瑟) 신부 가 금악리의 상명(上明, 북제주군 한림읍 상명리의 명솔왓) 에 있는 소나무 밭과 수원리 892번지의 기와집을 매입 하여 수원 공소를 설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신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이 공소는1930년 무렵에 폐쇄되었고, 경당은 제주(현 제주 중앙 주교좌) 본 당 최덕홍(崔德弘, 요한) 신부가 1931년에 매도하여 성 당 건축비의 부채를 청산하였다. 이후 한림 지역에 신자 공동체가 다시 형성된 것은 한 국 전쟁 때였다. 인천에서 이 지역으로 피난 온 임종국 (林鍾國, 바오로) 신부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수 녀들을 비롯하여 타지방에서 피난 온 신자들이 다시 복 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에 신창 본당의 조 응환(曹應煥, 타대오) 신부는 1951년 4월 한림리 1419 번지 김종선(베르나르도)의 집에 한림 공소를 설립하였 고, 1953년 5월 신창 본당의 2대 주임 김병준(金丙準, 요한) 신부는 한림 지역에 부지 100평(대림리 1814번지) 을 매입하여 본당 터를 마련하였다. 〔본당의 설립과 발전〕 1954년 4월 1일 한림 공소는 마침내 본당으로 승격하였고, 맥그린치 신부가 초대 주 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처음에 한림 우체국 옆 신순영 의 사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였으며, 5월에는 350평의 부지(현 성당 부지)를 더 매입하여 성당 기공식을 거행하 였고, 10월경에는 사제관을 완공하였다. 성당은 1955년 5월에 완공되어 7월 6일 광주 지목구장 헨리(H. Henry, 玄海) 대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가졌다. 맥그린치 신부는 1955년 한경면의 고산(高山) 공소와 귀덕리의 귀덕(歸德) 공소, 이듬해에는 한경면의 청수 (清水) 공소를 차례로 설립하고, 1956년에는 교회 묘원 으로 사용하고자 천아오름의 임야 6,170평을 매입하였 다. 그리고 1957년에는 고산 · 청수 공소를 신창 본당으 로 이관하고 금능(金陵) 공소와 금악(今岳) 공소를 신설 하였으며, 9월 29일에는 제주 지역에서 처음으로 성체 거동 행사를 가졌다. 이어 1958년 1월에는 '한림 본당 운영위원회' 를 조직하였고, 3월에는 본당 주변의 가옥을 매입하여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의 분원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제주 본당으로부터 하귀(下貴) · 곽 지(郭支) 지역과 애월(涯月) 공소를 이관받았다. 맥그린치 신부는 전교 활동에서뿐만이 아니라 지역 사 회에도 큰 공헌을 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4H 가축 은 행 설치와 직조 강습소(후의 한림 수직사, 2004년 폐쇄)의 운영이었다. 4H 가축 은행에서는 도내 청소년들을 대상 으로 축산 및 영농 교육을 실시하여 자립 기반을 마련해 주고자 하였다. 또한 독일 원조 단체인 미세레오르(Misereor)의 도움으로 운영되던 직조 강습소 역시 도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지역 사회 번영에 일조하였다. 맥그린치 신부에 이어 1960년 5월에는 보좌 신부였던 오고르만 신부가 2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곽지 공소(1961)와 하귀 공소(1962)를 설립하여 교세를 넓혀 나갔으며, 1962년에는 철수한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를 대신하여 성 골롬반 외방선교 수녀회의 분원을 설립하였 다. 3대 주임 크롭츠 신부는 1964년 귀덕 공소를 폐쇄 하고 금능 공소에 강당을 건립하였으며, 1968년에는 하 귀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4대 주임 플라나간 신부는 이듬해 12월 곽지 공소를 폐쇄하였고, 5대 주임 곰리 신부는 1970년에 광양 본당으로 하귀 공소를 이관 하였다. 6대 주임 매과이어 신부는 1973년 3월에 본당 행사를 주도적으로 이끌 '안나회' 를 설립하여 본당 활동 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7대 로이어 신부는 1975년 9월 에 성모상을 건립하였다. 1979년 4월에는 8대 설리반 신부가 성당 창문 개조 작업을 추진하는 등 본당의 환경 을 크게 개선하였다. 9대 주임 화이트 신부는 1981년 11월에 신설된 금악 공소를 금악 준본당으로 이관하고, 1982년 5월에는 서 울 성가 소비녀회의 분원을 설립하여 본당 사목을 담당 하도록 하였다. 10대 주임 양영수 신부는 본당 설립 30 주년 기념 사업으로 1984년 사제관 개축 및 본당 보수 공사와 《본당 30년 약사》를 발간하였고, 10월 9일에는 김창렬(金昌烈, 바오로) 주교의 집전으로 본당 설립 30 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였다. 11대 양명현 신부는 1989년 11월에 선종 봉사회를 조직하고 공원 묘지 사용 규정을 제정하는 등, '천아오 름 공원 교회 묘지' 건설을 위한 사전 준비를 시작하였 다. 이어 12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석순 신부는 1992년 9월 금능 공소를 폐쇄하고 이듬해 6월에는 본당 설립 40주년 기념 행사를 개최하였으며, 1994년에는 교회 묘 지 조성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였다. 그리고 농촌 지 역의 특성을 감안하여 1985년에 개원한 '한림 성 이시 돌유치원' 을 위임받아 1994년 2월부터 운영하기 시작 하였다. 13대 주임 머레이 신부는 1995년 천아오름 공 원 교회 묘지 진입로와 장재소(葬在所)를 신축 · 축복하 였으며, 이듬해에는 교회 묘지 사용 규정을 개정하여 교회 묘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도록 하였다. 14대 주임 이시우 신부는 1997년 7월, 폐쇄된 금능 공소의 경당을 해변 미사 장소 및 영성 수련장으로 활용 하고자 대대적으로 수리하였고, 11월에는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 성전 건립 추진위원회' 를 발족하여 새 성전 신축을 위한 준비에 돌입하였다. 그리고 1998년 1월에 는 애월 공소를 신설된 하귀 본당으로 이관하였으나, 본 당 관할 구역의 재조정으로 6월에 다시 이관받았다. 한편 1998년 9월부터 제주도의 도로 확장 공사가 실 시되면서 본당의 교리실과 사제관이 철거되었고, 이듬해 1월에는 성당마저 철거되었다. 임시로 성당 옆 '한림 수 직사 건물에서 활동하던 본당 측에서는 1999년 12월 에 본당 소유지(800여 평)와 이시돌 농촌 산업 개발 협회 에서 기증한 부지(2,800여 평)에 새 성당을 짓기로 하고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성당 · 사제관 · 수녀원 · 유치원 등은 2001년 7월에 완공되어 김창렬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 및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15대 주임 김석주 신부는 2003년 11월 교육관 내부 및 지하 레지오실을 수리하고, 이듬해 2월에는 교육관 2 층에 영안실을 설치하였다. 또한 2004년 6월 19~20일 에는 본당 설립 50주년 행사를 가졌는데, 50주년 기념 영상물 상영과 50주년 기념 신앙 대회 등이 거행되었다. 이어 16대 주임으로 부임한 현경훈 신부는 컴퓨터실과 EBS 학습실, 독서실 등 김석주 신부 시절부터 계획하였 던 중고등부 활성화를 위한 수능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 으며, 한 달에 한 번씩 장애인을 위한 수화 미사를 봉헌 하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 고 있다. (→ 제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 사업 추진 위원회 편, 《제주 천주교회 100년사》, 천주교 제주교구, 2001/ <한 림 본당 사목 보고서>, 제주교구 한림 본당, 2005. 〔金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