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우 (1910~1978)

韓昌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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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교육자. 세례명은 베네딕도. 1910년 5월 15 일 충청남도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에서 한규동(韓奎東, 요한)과 김창옥(金昌玉, 바르바라)의 장남으로 출생. 아 산공립보통학교와 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1년 4 월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대학)에 입학, 1934년 3월에 졸업하였다. 이어 4월에 동성상업학교 교 사로 부임하여 박물(博物)을 담당하였으며, 1946년에는 교무 주임을 맡았다. 이 사이 1939년 5월에는 성 프란 치스코 제3회에 입회하여 활동하였다. 광복 후 1947년 4월 학교를 떠나 경향신문사 사장 대 리를 맡은 이복영(李福永, 요셉) 신부의 비서장 겸 경리 부장으로 입사하여 같은 해 9월에는 업무국장으로, 10월 에는 부사장으로 각각 승진하였고, 1949년 9월에는 제2 대 경향신문사 사장에 취임하였다. 1950년 5 월 서울 대목구장 노기 남(盧基南, 바오로) 주 교와 유럽을 순방하다 가 한국 전쟁이 발발하 자 부산을 경유하여 귀 국한 한창우는 1950년 10월 30일 평양 지사 를 설치하고 평양 전선 판(前線版)을 발행하도 록 하였다. 한창우 사장 재임 시 <경향신문>이 이승만 정권에 대하여 비판적인 논조를 유 지하자, 정부는 1959년 2월 4일자 단평 칼럼 <여적>(餘 滴)을 문제 삼아 4월 30일자로 폐간 처분을 내렸다. 이 에 경향신문사는 폐간 처분 취소 행정 소송을 제기하여 법원의 가처분 허가 결정을 이끌어냈으나, 자유당 정부 는 무기 정간 처분을 내렸다. 이후 지속된 법정 투쟁은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난 뒤인 4월 27일자로 <경향 신문>이 복간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한창우는 1961년 1월 대한 사격 협회 제2대 회장과 대한 올림픽 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체육 부 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리고 1961년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뒤 6월 4일 신문사 사장직에서 물 러나 고문에 취임하였으며, 같은 해 6월 25일에는 반혁 명 행위 혐의로 혁명 검찰부에 구속되었다가 고소가 취 하되면서 9월 11일 석방되었다. 이어 12월 2일 경향신 문사의 고문직을 사임하고, 1963년에는 광산업을 하는 유원흥업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1966년 8월 8일에는 운 석(雲石) 장면 박사 회고록 간행·묘비 건립위원회 위원 장을 맡았다. 이후 천호동의 농장에서 소일하다가 1978 년 12월 9일 명동 성모병원에서 선종하였고, 12월 13일 경기도 평택의 선영에 안장되었다. ※ 참고문헌  《소우》(小愚), 京鄉新聞 韓昌愚社長 略傳 및 追慕 文集 刊行委員會, 1991/ 경향신문사 사사편찬위원회 편, 《경향신 문 오십년사》, 경향신문사, 1996/ 《동성 80년사》, 동성 중고등학교, 1987. 〔崔起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