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문 효수

軍門梟首

글자 크기
2
머리를 베어 장대에 매다는 군문 효수.

머리를 베어 장대에 매다는 군문 효수.


사형수의 머리를 베어 간두(竿頭, 장대)에 매다는 형 벌. 고려 · 조선의 5형(五刑) 중에서 사형에, 사형 중에 서 참형(斬刑)에 속하는 것으로 모반 · 대역죄 등 중범자 들에게 행하였다. 일반적으로 '효수' 또는 '효시' (梟示) 라 하며, 참수(斬首)나 능지처참(陵遲處斬), 거열(車裂) 등을 행한 뒤 경중(警衆)하는 의미로 행하여졌다. 능지 처참의 경우에는 그 머리를 거두어 갈 수 없었으나, 참수 한 경우에는 3일이 지나면 이를 거두어 갈 수 있었다. 효 수의 방법은 하나의 간두를 세우거나 간두 세 개를 삼각 형으로 세우고 그 중앙에 머리를 매다는 경우가 있었는 데, 군문 효수의 경우 머리를 군문 앞에 매단 경우는 흔 치 않고, 실제로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시장이나 성문 누각에 머리를 매달았다. 이 효수형은 중국 상고(上古) 시대 때부터 행해져 왔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시대 때부터 행형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중 유명한 예로는 조 선 세조 때 모반죄로 처형된 김종서(金宗瑞) · 황보인(黃 甫仁) 등 10명을 이 형벌에 처한 사실을 들 수 있다. 형은 1894년(고종 31) 12월 27일 칙령 제30호에 의해 폐지되었다. 조선 후기 천주교인들의 경우에는 제사를 폐지하고 신 주를 불태웠다〔廢祭焚主〕는 강상죄(綱常罪), 서양 선박 을 불러들이는 데 앞장섰다〔洋舶請來〕는 모반죄 등이 적 용되어 군문 효수형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유언비어를 퍼뜨려 혹세 무민(惑世誣民)했다는 남형(濫 刑)을 적용한 경우도 있었으며, 따라서 추분(秋分)을 기 다려 실행하는 대시참(待時斬)의 경우는 거의 없었고, 부대시참(不待時斬)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형벌을 당한 천주교 신자들로는 1791년 전주 남문〔豊南門〕에서 순교한 윤지충(尹持忠, 바오로)과 권상연(權尙然, 야고 보), 1801년 새남터에서 순교한 주문모(周文謨, 야고 보) 신부, 1846년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 1866년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와 성 도리(Dorie, 金) · 볼 리외(Beaulieu, 徐沒禮) 신부 등이 있다. ※ 참고문헌  《經國大典》/ 《續大典》/ 《달레 교회사》/ 權仁鎬 《行 刑史》, 國民書館, 1973/ 吳道基, 《大明律과 經國大典 刑典의 實體法 的 比較 研究》, 螢雪出版社, 1977.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