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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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 사적지 무명 순교자 묘역(왼쪽)과 순교 기념비.
초기 교회 유적지이자 순교 사적지.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동 5 소재. 대구에서 북쪽으로 24km쯤 떨어 진 팔공산과 가산 사이 깊은 산간 지대에 자리잡은 한티 는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신앙을 간직하던 유서 깊은 곳이다. 또한 이곳은 병인박해(丙寅 迫害) 때 순교한 조 가롤로, 최 바르바라, 조아기, 서태 순(베드로)의 묘와 무명 순교자의 묘 30여 기가 있는 한 국 가톨릭의 성지이기도 하다. 〔교우촌의 형성과 순교〕 한티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이후로 추정된다. 이곳에 가장 먼저 정착한 신자는 김현상(요아킴) 가정으로 서울 관철동에 살다가 1837년 낙향하여 처음에는 신나무골에 서 살다가, 1838~1839년 무렵 한티에 정착하였다. 그 리고 병인박해가 발생하기 몇 년 전에는 상주 구두실 출 신인 조 가롤로 가정, 1865년에는 대구의 이 알로이시 오 가정, 1866년에는 서익순(인순, 요한)과 서철순(바 오로) 가정 등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하였다. 이들 은 척박한 한티에서 옹기, 사기와 숯을 굽고 화전을 경작 하여 생계를 유지하면서 신앙을 지켜나갔다. 한티 교우촌에는 박해 기간 동안 믿음을 지키다 순교 한 신자들이 적지 않다. 1861년 경상도 지방에 박해가 일어나자 칠곡 신나무골에 살던 이선이(李先伊, 엘리사 벳) 가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다가 이선이와 큰아들 배 스테파노가 포졸들에게 잡혀 그 자리에서 처형되었는데, 이들 모자가 한티의 첫 순교자이다. 그리고 1867년경 서익순과 이 알로이시오가 대구에 있는 본가로 돌아가던 중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가 1868년 절두산에서 순 교하였다. 1868년에는 한티에 포졸들이 급습하여 공소 회장 조 가롤로, 부인 최 바르바라, 여동생 조아기 등 30 여 명의 신자들이 그 자리에서 혹은 흑다리골에서 처형 되었다. 이와 같이 박해로 순교한 신자들의 시신은 남은 가족 들이 수습하였다. 이선이와 배 스테파노의 시신은 이선 이의 남편인 배정모에 의해 그들이 순교한 장소에 매장 되었다가 후에 이선이의 시신만 선산이 있는 칠곡의 안 양동(현 대구시 북구 읍내동, 1984년 신나무골로 이장)으로 이장되었고, 조 가롤로, 최 바르바라, 조아기 등의 시신 은 박해 당시 피신하여 생존한 조 가롤로의 아들 조영학 (토마스) 등에 의해 매장되었다. 아울러 1866년 대구에 서 문경 한실로 피신하였던 서익순의 동생 서태순은 포 졸들에게 잡혀 상주 진영으로 압송된 후 감옥에 갇혔다 가 1867년 1월 23일(음력 1866년 12월 18일)에 순교하였 는데, 그의 시신은 서익순과 그의 친척들에 의해 한티에 묻혔다. 박해 이후 조영학을 비롯하여 생존한 신자들이 폐허가 된 한티를 재건하는 데에 앞장섰다. 그리고 군위읍 용대 리 부근에 살았던 김재윤과 그의 친척 김윤하(안드레 아), 칠곡 지천면 백운리에 살았던 이상기 가정, 칠곡 신 나무골 인근에서 이사온 배순규(야고보) 가정 및 그의 장인 최씨 가정 등이 정착하면서 한티는 다시 활기를 띠 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교우촌이 재건되어 1882~ 1883년경 로베르(A.P. Robert, 金保祿) 신부가 판공 성사 를 주러 왔을 때 한티의 신자수는 총 39명에 이르렀다. 이후 신나무골에 정착한 로베르 신부는 자주 이곳에 와 서 성사를 주었고, 공소 신자들도 큰 축일날에는 신나무 골에 가서 미사에 참석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한티 공소의 신자수는 매년 늘어 1900년 초에는 80여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1910년 이후 공소 회장인 조영학 가정 을 비롯해서 조규성(프란치스코), 배순규 가정의 후손들 이 살기 불편한 한티를 떠나면서 신자수가 점차 감소하 고 공소도 쇠퇴하였다. 반면 한티보다 교통이 비교적 편 리한 가산 산성 밑의 원당 공소가 성장하면서 결국 1960 년대 초반 한티 공소는 원당 공소와 통합되었다. 〔성지 조성 과정〕 신자들이 떠나면서 점차 기억에서 잊 혀져 가던 한티는 1961년 당시 칠곡 본당의 전교회장이 었던 마백락(글레멘스)이 조사를 진행하면서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칠곡 본당의 관할 공소였던 한티에 관 심을 갖고 있던 그는 그곳에서 출생하고 생활하던 사람들 을 찾아가 증언을 수집하고, 순교자들의 묘지를 확인하였 다. 이처럼 순교자의 묘소가 확인되면서 1967년 9월에는 박병원(朴炳元, 필립보) 신부, 이문희(李文熙, 바오로) 신부, 경북대학교 김달호 교수의 주관으로 대구대교구의 신자들이 신나무골, 칠곡 안양동에 묻혀 있던 이선이 묘 소와 한티를 도보 순례하였다. 그리고 1968년 9월 병인 순교자 시복 경축 행사로 대구대교구의 신자들이 한티를 순례한 이후 매년 9월에 순례 행사가 계속되었다. 이와 같이 연례적인 순례 행사가 열리고, 순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방문하는 순례객들을 맞이하던 한티는 1980년대 초반 대구대교구가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 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성지 개발 계획을 수립하면 서 본격적으로 천주교 성지로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먼 저 1983년 5월 동명 본당은 한티 인근에 자리잡은 이기 수(李基守, 야고보) 몬시놀의 사저(동명면 기성동 소재)를 인수하고, 대구대교구의 지원을 받아 사저를 새롭게 단 장하여 한티 순례자의 집으로 개원하였다. 이어 1986년 11월 대구대교구는 한티 지역 20만 평의 부지를 확보하 여 1차로 피정의 집을 건립하고, 연차적으로 1천 평의 피정 시설을 마련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처럼 한티 성지 조성 사업이 진척되는 가운데 순교자의 묘소 조사 및 성 지 발굴 작업도 진행되었다. 1983년 7월에는 왜관 본당 의 서상우(徐相瑀, 요한) 신부와 신동 본당의 전교회장 마백락이 문중 족보와 순교자의 후손의 증언을 통해서 서태순이 한티에 묻혀 있음을 알아냈고, 9월에는 마백락 이 조 가롤로 자손들의 증언과 한티 마을 주민들의 구전 을 토대로 조 가롤로와 최 바르바라, 조아기의 묘를 확인 하였다. 그리고 1988년 4~5월에 효성여자대학교 박물 관에서는 한티 성지 조사단을 결성하여 자기 요지와 숯 가마 터를 발굴하였고, 자연 환경을 조사하고, 순교자 묘 소와 지형을 측량하였으며 공소 건물지 등을 실측하였는 데, 이를 통해 한티에 거주하던 천주교 신자들의 생활상 을 규명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같은 해 5월 마백 락과 한티의 마지막 공소회장이었던 김태현과 김복현 형 제 등은 증언과 현장 답사를 통해 무명 순교자의 묘 19 기를 확인하고 이를 대구대교구에 보고하였다. 이에 대 구대교구는 한티 사적지의 보존과 무명 순교자의 묘 발 굴을 위하여 '한티 사적지 무명 순교자 분묘 이장위원 회' 를 구성하고, 5월 24일에 순교자 묘 발굴 작업을 진 행하였다. 분묘 이장위원회는 19기 중 6기를 발굴하고 그 가운데 3기를 성지 묘역 안으로 이장하였으며, 발굴 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무명 순교자의 묘 5기도 공식적으 로 확인하였다. 1991년 10월에는 지상 5층, 지하 2층 규모의 한티 피 정의 집이 완공되었는데, 개관에 앞서 증언 등을 통해 무 명 순교자의 묘 9기가 추가로 확인되었다. 이어 1997년 10월에는 대구대교구 신학생들의 영성 수련을 위한 공 간인 한티 영성관이 착공되어 2000년 2월 축복식이 거 행되었다. 영성관은 지상 5층, 지하 2층 규모의 건물로, 2000학년도 신입생부터 1년간 공동 생활을 하면서 신학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그리고 2004년 12월에는 성지를 찾은 순례객들이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장소 인 '순례의 집' 의 축복식이 거행되었다. ※ 참고문헌 <가톨릭신문> 1968년 10월 6일자 · 1983년 5월 15 일자· 1983년 7월 10일자 · 1983년 8월 14일자 · 1983년 9월 25일 자 · 1986년 11월 30일자 · 1988년 6월 12일자 · 1991년 10월 27일 자 · 2000년 3월 5일자 · 2004년 12월 12일/ <한티> 2호(1991. 12. 8), 천주교 대구대교구 한티 성지 보존위원회/ 윤광선, <험준한 太白 줄기 … 한티 마을>, 《교회와 역사》 110호(1984. 8), 한국교회사연 구소/ 마백락, <한티와 원당 공소>, 《교회와 역사》 136호(1986. 10), 한국교회사연구소/ ⸺, 《경상도 교회와 순교자들》, 대건출판사, 1989/ 《빛》 123호(1993. 7) · 125호(1993. 9), 대구대교구/ 차기진, <경상도 일대의 성지와 사적지>, 《사목》252호(2000. 1), 한국천주 교중앙협의회/ 《옛 공소의 어제와 오늘 : 1815~1910》, 대구 가톨 릭대학교 부설 영남교회사연구소, 2000. 〔梁仁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