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
割禮
〔히〕מִילָה · 〔그〕περιτομή · 〔라〕circumcisio · 〔영〕circumc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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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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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에게 속함을 드러내는 표징인 할례(루카 시그노렐리, 1485년).
남자 성기 끝의 살가죽을 정해진 의식에 따라 잘라내 는 행위.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바빌론인과 아시리아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대 셈족, 이집트인, 그리고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메리카의 여러 종족들도 할례를 하였 으나 인도 · 유럽어계와 몽골어계, 우랄어계 민족들 사이 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일부 민족들은 여자에게도 할례를 행하는데, 이는 성서의 내용과는 무관하다. 〔기원과 취지〕 할례가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 지는 알 수 없다. 창세기 17장에 따르면 할례는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의 표징으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제계 전승에 속하는 이 본문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배 이후의 것으로, 당시의 관심사를 반영한 것 이므로 믿을 수 없다. 일부에서는 출애굽기 4장 24-26 절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인들이 모세 시대에 미디안족의 영향으로 할례를 시작하였다고 추측하지만, 수수께끼 같 은 이 본문 또한 할례의 기원을 말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 기원전 484?~430/420?)는 이 관습이 이집트에서 유래하 여 동쪽과 북쪽으로 퍼져 지중해 해변의 페니키아(Phoenicia)까지 이르렀다고 하였다. 한편 서부 셈족 식으로 할 례를 받은 시리아 전사들의 그림이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발굴되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2천년대 초기까 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할례를 거행하였다는 최초의 사료는 기원전 2200년대의 것이다. 이를 토대로 할례 관습이 북서부 셈족에게서 시 작하여 남쪽 이집트로 전파되었다고 추정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판단이 근동의 상황에 맞을 수는 있어도 다른 대 륙에까지 유효하다고는 볼 수 없다. 아무튼 돌칼로 할례 를 하였다는 말(출애 4, 25 ; 여호 5, 2-3)은 아직 쇠로 만 든 연장을 사용하지 않던 기원전 11세기 이전부터, 그리 고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에게 할례를 혼인 조건 으로 내세운 것(창세 34, 14-24)으로 미루어 보아 모세 이전부터 팔레스티나에서 이 관습이 실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여러 민족이 할례를 시작하게 된 까닭 역시 분 명하지 않다. 구약성서 자체에서도 할례의 취지는 여러 가지로 드러난다. 첫째는 야곱의 아들들과 세겜 사람들 의 일화가 시사하듯이, 혼인과 관련하여 다산을 기원하 는 의식이다. 출애굽기 4장 24-26절은 본래의 의미가 어떠하였든 혼인과 연관된 것으로 여겨진다. 창세기 17 장에서 할례는 새 이름을 받은, 곧 새로 혼인한 것과 같 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적자(嫡子)가 태어나고 또 그 를 통하여 많은 민족이 태어난다는 약속의 표지이다. 할 례의 둘째 취지는 마귀 또는 부정(不淨)을 쫓는 것이다. 모세와 시뽀라의 일화에서는 할례가 죽음의 위험을 물리 치며(출애 4, 24-26), 반면 할례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죽 음의 영역 속에 온전히 갇히는 신세가 된다(에제 28, 10 ; 31, 18 : 32, 19-32). 할례의 셋째 취지는 사회적 의미이 다. 정식으로 특정 종족의 일원이 되는 입문식 또는 통과 의례 구실을 하는 것이다. 이스마엘은 열세 살 때에 할례 를 받았다(창세 17, 25). 즉 이스라엘에서도 다른 민족들 의 경우처럼 본래 소년기나 (혼인을 하는) 사춘기 때에 할 례를 베푼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회가 하 느님과 맺은 계약 공동체라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할례 의 시기가 매우 빨라져서 태어난 지 여드레에 하게 되고 (레위 12, 3 ; 신약성서 시대에는 이 날에 아기 이름도 짓는다 : 루가 1, 59 : 2, 21) 그 범위도 넓어졌다(창세 17, 12). 이 스라엘 남자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외국인 종과 그들 곁 에 사는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과월절을 함께 지낼 수 있다(출애 12, 48). 이들도 할례로 계약의 혜택을 일부 받는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에서는 할례가 "계약의 징 표"로 정착되었다(창세 17, 11). 할례를 받음으로써 하느 님의 백성이 되고 하느님이 맺어 준 계약의 수혜자가 된 다(이스라엘 백성이 길갈에서 할례를 받았다는 여호수아서 5장 2-9절의 일화도 이러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할례와 이스라엘 백성〕 할례는 이스라엘 주변의 여러 민족들도 행하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할례 관습 이 없는 민족과 갈등을 겪고 충돌하면서, 할례는 이스라 엘의 문화적 · 종교적 정체성의 결정적 요인으로 자리잡 게 되었다.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땅에 입주하여 한 민족으로서, 또 한 국가로서 살아가기 시작할 때 마주치게 된 가장 적 대적인 집단이 불레셋 민족이었다. 지중해를 건너 이주 해 온 이 종족은 할례를 몰랐다. 불레셋 민족에게 억압을 당하면서, 그리고 그들과 연이어 싸워 나라를 세우면서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을 멸시하는 의미로 "할례받지 않은 자들" 이라고 불렀다(판관 14, 3 : 15, 18 : 1사무 14, 6 : 17, 26. 36 : 31, 4 ; 2사무 1, 20 : 1역대 10, 4). 기원전 587년에 남부의 유대 왕국은 신바빌로니아 제 국에 멸망하였다. 그리고 임금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할 례를 모르는 바빌론인들의 지방으로 유배를 가서 살게 되 었다. 국가와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은 와해되었으며 집 단으로 존속할 수 있는 길은 종교 공동체뿐이었으나, 예 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종교 생활도 매우 제한 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식일과 할례가 야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그분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편으로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유대 인들은 하느님에게 선택된 민족 곧 계약 공동체에 속한다 는 사실을 할례로 자기 몸에 직접 표시하고, (예전의 성전 전례를 대신하여)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계약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였다. 불레셋 민족과의 갈등 속에서는 할례가 이스라엘인들의 문화적 · 민족적 정체성을 정립하 는 도구였다면(특히 판관 14, 3 참조), 바빌론 유배를 거치 면서는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종교적 정체성을 확립해 주 는 방편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창세기 17장과 출애 굽기 12장 47-48절, 레위기 12장 3절 등의 배경을 이룬다.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기 원전 336~323)의 군대가 팔레스티나를 점령하자 근동에는 그리스 문명이 본 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그리 스화의 물결은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 앞에까지 밀어닥쳐, 그곳에 그리스식 경기장이 들어섰다. 할례를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경기에는 모두 알몸으로 참 가하는 그리스인들은 이 낯선 관습을 망측한 것이라면서 멸시하였기에, 일 부 유대인들은 할례의 표시를 부끄럽 게 여겨 그 흔적을 지우려고 수술을 하 기도 하고(1마카 1, 14-15) 아들에게는 할례를 하는 시능만 내기도 하였다. 기 원전 2세기 중엽,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Antiochus IV Epiphanes, 기원전 175~164) 시대에 할례는 첨예한 갈등의 중심이 되었다. 안티오쿠스 4세는 할례를 엄금 하고 아이가 할례를 받았으면 그 어머 니까지 예루살렘 성벽 위에서 내던져 죽이게 하였으며(1마카 1, 48. 60-61 ; 2마카 6, 10), 이에 대항하여 마따디아 와 그의 동료들은 이스라엘 영토 안에 서 할례받지 않은 아이들을 찾아내 할 례를 베풀었다(1마카 2, 46). 이로써 할 례는 야훼 하느님과의 계약 곧 그의 통 치권에 속하느냐, 또는 할례받지 않은 악마적 왕의 통치권에 속하느냐를 가 름하는 첫째 표징이 되었다. 나라 없는 집단의 종교적 정체성의 확립을 넘어 이제는 종교적으로 살아남느냐 또는 스러지느냐 하는 차원의 문제가 된 것 이다. 그리스인들에 이어 팔레스티나를 지배하게 된 로마인 들도 할례를 혐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서기 66~70년의 제1차 유대 독립 전쟁 이후, 로마 제국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자신들의 최고 신인 주피터를 섬기는 데에 사용하였다. 오현제(五賢帝) 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하드리아누스 황제(117~ 138)는 할례가 도덕적으로 거세(去勢)와 동일하다고 여 겨 이 둘을 법으로 금지하였다. 할례는 하느님이 맺어준 계약의 일원임을 자신의 몸에 표시하는 것이다. 계약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순종을 요구 한다. 그들은 곧 (지성적 · 의지적 · 영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의 중심인) 마음으로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한 다. 이러한 의미로 할례는 은유적으로 사용되었다. 밖으 로 나온 지체가 아니라 속에 있는 마음에 행하는 것이 참 할례라는 것이다. 겉할례에 이어 속할례까지 해야 자신 들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하느님에게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신명 10, 15-16).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 할례를 받지 않은 이스라엘인은 일반적인 할례의 관습을 따르는 다른 민족들과 다를 바가 없다(예레 9, 25-26). 결국 하느 님은 장차 당신 백성의 마음에 몸소 할례를 베풀어, 그들 이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사랑하고 그럼으로써 당신의 보호 아래 기쁘게 살아가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신명 30, 6). 바오로는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살에 드 러나는 겉모양만의 할례' 는 할례가 아니며(로마 2, 28) "거짓된 할례" 라고 역설하였다(필립 3, 2). "영 안에서 (받은) 마음의 할례" (로마 2, 29 ; 필립 3, 3)가 "그리스도 의 할례" 라는 것이다(골로 2, 11). 은유적 할례는 하느님 의 말씀을 전하는 능력(입술)과 그분의 경고를 받아들이 는 귀와 아직 주님에게 바칠 수 없는 과일과 관련하여 사 용되기도 하였다(출애 6, 12. 30 ; 예레 6, 10 ; 레위 19, 23-25). 〔할례와 그리스도인〕 극단적인 경우 목숨과도 바꾸어 야 하는 신앙 고백의 상징이었기에, 유대인들은 할례를 매우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서 선포되기 시 작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다른 민족들에게로, 세계로 퍼져갈 때, 할례는 필연적으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 었다. 그리스도교가 다분히 혈연에 의한 민족 종교적인 모습을 지닌 유대교의 한 분파가 되느냐, 혈연과 지연을 뛰어넘어 세상 만민의 보편적 교회가 되느냐가 이 문제에 달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비단 할례만이 아니라 할례를 명하는 구약성서의 율법 자체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예수는 율법에 따라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 았다(루가 2, 21). 그의 제자들도 모두 그리하였을 것이 다. 바오로 역시 마찬가지였으나(필립 3, 5), 그가 할례받 지 않은 비(非)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 관습 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다. 할례에 대한 그 리스도인들의 자세는 여러 갈래로 나타났다. 유대계 그 리스도인들은 모세가 명한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 으면 하느님이 맺어 준 계약의 결실 곧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믿었다(사도 15, 1). 유대교에서는 할례받지 않은 이교인들이 개종할 때에 할례를 받아야 하였기에(유딧 14, 10),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같은 규칙을 그리 스도교에도 적용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바오로 는 할례가 율법과 함께 더 이상 본질적인 요소가 되지 않 는다고 역설하였다. 아브라함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할 례가 아니라 믿음이 먼저이고, 또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로마 4, 1-12). 할례는 부차적인 것으로, 받아도 받지 않 아도 그만이다(1고린 7, 18 ; 갈라 6, 15). 하느님에게 소 속되고 그분에게 받아들여지는 조건은 믿음뿐이다(로마 3, 30). 이 믿음이야말로 "영 안에서 (받은) 마음의 할 례" 이다(로마 2, 29). 그래서 바오로는 결론적으로 이렇 게 선포하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비할례 가 무슨 힘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사랑으로 행동하는 신앙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갈라 5, 6). 할례와 구원의 관계를 둘러싼 이 논란으로 갓 태어난 그리스도교가 처음으로 내적 위기를 겪게 되자, 이러한 내분을 막으려고 예루살렘에서는 사도 회의가 개최되었 다. 그리고 유대계 신자들은 지금까지 해 온 대로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며, 비유대계 신도들은 (유대교 의 입장에서 볼 때) 최소한의 것만 지키라는 결정이 내 려졌다. 곧 "우상에게 바친 고기와 피와 숨막혀 죽은 짐 승의 고기와 음행을 멀리하는 것"이다(사도 15, 29). 그 래서 에페소서는 '할례받은 자들' 과 '할례받지 않은 자 들' 을 가르는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선포하였다. 그리스 도가 당신 몸으로 유대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들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을 허물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할례받은 이들과 할례받지 않은 이들을 당신 안에서 "하 나의 새 인간으로 만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람과 하느님 사이의 평화를 이룩하였다는 것이다(에페 2, 1122). 이제 외형적인 할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런 의 미가 없다. 바오로 사도가 구약성서에서 시작된 전통을 이어받아 강조하는 '마음의 할례' (로마 2, 29), 곧 "사랑 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갈라 5, 6) (→ 유대계 그리스도인 ; 유대교 ; 유대인 ; 표징) ※ 참고문헌 J.P. Hyatt, 《IDB》I, pp. 629~631/ R.G. Hall, 《ABD》I, pp. 1025~1031. 〔任承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