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무라비 (?~기원전 1750)

Hammura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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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무라비 법전이 새겨진 돌기둥의 상부(루브르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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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무라비 법전이 새겨진 돌기둥의 상부(루브르 박물관 소장).


아모리인(Amorrhaei)들이 세운 바빌로니아(Baylonia) 제1 왕조의 6대 왕(기원전 1792~1750). 성서의 계명이나 법과 유사한 내용을 모아 당시 가장 합리적인 법전인 '함무라비 법전' 을 제정하였다. '함무 라피' (Hammurapi)라고도 표기한다. 〔생 애〕 함무라비의 자서전적 증언에 따르면, 하늘의 신인 아누(Anu)와 공기의 신인 엔릴(Enlil)이 자기들의 권한을 마르둑(Marduk) 신에게 이양한 태고적부터 자신 은 왕이 될 운명이었으며, 다른 모든 도시 국가에서 바빌 론을 구분하여 영원한 권력의 도시가 되도록 하였다고 한다. 함무라비 법전은 "그때에 백성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서 아누 신과 엔릴 신은, 나의 이름 '함무라비' 바로 신실하고 신을 두려워하는 나를 불러 땅에 정의를 실현 하고 악한 자들을 몰아내어 힘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를 학대하지 않고, 태양(혹은 샤마쉬 신)처럼 떠올라 머리가 까만 사람들을 위해 땅을 비추게 하였다" 라고 전하고 있 는데, 신들이 태고적부터 지명하여 세운 왕이라 자화자 찬하면서 정의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는 것은 메소포타미 아 왕조가 세운 비문들의 전통적인 내용이었다. 바빌론 : 본래 바빌론에는 아카드 왕조 시대의 왕인 샤르칼리샤리(Shar-kali-sharri, 기원전 2217~2193)가 안 누니툼(Annunitum)과 일아바(Il-aba) 신들에게 바친 신 전이 있었다. 그 후 기원전 21세기 우르 제3 왕조 시대 에는 바빌론에 지방 장관(ENSI)을 임명하다가, 기원전 2004년 엘람인(Aelam)들이 우르 제3 왕조를 멸망시키 자 도시 국가인 이신(Isin)과 라르사(Lara)가 그 틈을 이 용해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장악하였다. 엘람인들은 함무 라비가 등장할 때까지 바빌로니아 지역을 지배하였다. 바빌로니아를 세운 수무아붐(Sumu Abum, 기원전 1894~ 1881)이 바빌론에 도착한 것이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 다. 아마도 그는 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티나 지역의 유 목민인 아모리족 출신으로, 유목 생활을 하다가 바빌론 으로 이주한 것 같다. 당시 이 지역에는 오래전부터 메소 포타미아 지역에 거주하며 아카드인들의 문명을 이어받 은 도시화된 문명인들과 유목 생활을 하다가 정착한 아 모리인들이 있었다. 바빌로니아가 건설되었을 당시 그들 이 근동의 유력한 왕조였던 것은 아니지만, 수무아붐은 바빌론의 무너진 요새를 재건축하고 달신인 '신' (Sin)의 신전을 짓고 딜밧(현 텔 둘라임), 카잘루, 엘립, 키쉬 등지 를 정복하였다. 그 뒤를 이은 수무라엘(기원전 1880~ 1845), 사비움(기원전 1844~1831), 아필신(기원전 1830~ 1813)도 그처럼 바빌론의 요새와 신전 건축, 그리고 주 변 도시 정복에 힘썼다. 함무라비의 아버지인 신무발리트(Sin-muballit, 기원전 1830~1813)는 바빌론을 중심으로 한 영토 확장, 바빌론 시를 넘어선 국가 건설을 꾀하였다. 우룩(Urk)의 왕인 안아남(An-anam)이 그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로 당시 정 치 상황을 유추해 보면, 신무발리트는 이신 및 우룩과 연합 전선을 이루어 바빌론의 남쪽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는 라르사의 림신(Rim-Sin)을 견제하고 있었다. 게다 가 북쪽에서는 아시리아(Assyia)의 샴시아다드 1세 (Shamsi-Adad I, 기원전 1813~1781)가 강력한 제국을 형 성하기 시작하였고, 동쪽에서는 에슈눈나(Eshnunna)가 강력한 도시로 등장하였기에 신무발리트는 이들에게 정 복당하지 않으려고 국경을 지키는 일에 주력하였다.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에 위치한 바빌론은 고대 메소포 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비옥한 땅으로, 현재 이라크 지역 에 남아 있는 바빌론은 함무라비가 세운 수도이다. 함무 라비와 바빌론에 대한 정보는 이곳을 발굴하여 출토된 문헌과 유물을 통하여 알려졌다. 물론 가장 유명한 유물 은 '함무라비 법전' 이지만, 기원전 12세기에 현재 이란 지역의 엘람인(Elam)들이 침공하여 이 법전을 자신들의 수도인 수사(Susa)로 가져갔으며, 1901년 프랑스 고고 학 팀이 수사 지역을 발굴하다 발견하여 지금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북부 군사 원정과 남부 행정 합병 : 기원전 1792년 왕 이 되었을 때 함무라비는 어린 나이였던 듯하며, 당시 메 소포타미아에서는 왕위를 두고 크게 다섯 집단이 쟁탈전 을 벌이고 있었다. 함무라비, 라르사의 림신, 에슈눈나의 이발피엘(Ibal-pi-el), 카타나(Qatana)의 아무트피엘 (Amut-pi-el)을 지지하는 도시 국가들이 각가 10~15개 정도였으며, 20개 정도의 도시 국가가 암하드(Yamhad) 의 야림림(Yarim-Lim)을 지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열 을 뚫고 즉위한 함무라비는 즉위 30년에 엘람, 아시리 아, 구티움(Gutium), 에쉬눈나, 말기움(Malgium)에 대항 하여 국경선을 강화하였고, 이듬해에 마리(Mari)와 에슈 눈나의 도움을 받아 라르사의 림신을 정복하였다. 그 다 음 해부터 8년 동안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을 공격하여 에쉬눈나, 아시리아, 구티움, 마리와 말구(Malgu)까지 점령하여, 바빌로니아는 처음으로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정복하게 되었다. 함무라비는 메소포타미아의 남부 도시들을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만들었다. 남부 메소포타미아 정복을 통하 여 함무라비는 수메르와 아카드 전통의 정당한 계승자가 되었다. 그는 '함무라비 법전' 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나는) 목자, 이신의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 고, 정의가 나타나게 하며, 수메르와 아카드에 빛을 가져 오고, 사방의 적들을 전멸시키고 분쟁을 없애고 나라의 안녕을 증진시켜 힘센 자가 약한 자를 괴롭하지 못하게 하고,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였다." 이와 같은 이상적인 사회상은 후대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야 훼가 바빌론 유배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귀환시켜 이 루겠다는 회복의 말과 유사하다. 함무라비의 아들인 삼수일루나(Samsuiluna)가 남긴 서 신에 의하면, 함무라비가 병들어 죽자 자신이 왕위에 올 랐다고 한다. 함무라비는 바빌로니아의 국경을 넓히고 문화적 · 제도적 기틀을 만들었지만 효율적인 관료 제도 를 확립하지는 못하였기 때문에, 그가 죽은 후에는 군사 적으로 이룬 성과들이 급속히 퇴색하게 되었다. 〔함무라비 법전과 성서〕 282개 법조항을 담고 있는 '함무라비 법전' 은 구약성서에 담겨 있는 율법과 비슷한 내용이 많다. 이는 이 법전과 성서의 내용이 직접적인 관 련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당시의 공통적인 유산에 따른 것 으로 여겨진다. 이 법전은 현대적 의미의 법전 형태는 아 니지만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이 늘 추구해 온 이상(理想) 인, 정의로운 통치자가 되고자 하는 관심의 표현이었다. '함무라비 법전' 이 당시 바빌로니아의 상황을 정확하 게 대변해 주지는 않는다. 법전에 나타난 가격, 벌금, 그 리고 형량이 당시 쐐기 문자 기록에 나타난 자료와 일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문제는 성서에서도 발 견된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나타난 오래된 법이 실제 로 후대 기록에는 무시되었기 때문이다(신명 24, 16 ; 여 호 7. 24-25 ; 2사무 21, 1-9 ; 1열왕 21, 1-3 ; 2열왕 9, 26) . 함무라비 법전은 이전부터 내려오는 메소포타미아의 법들과 함무라비 치세 당시의 법들이 모여진 형태이다. 그 내용에는 경제 관련 규정들(가격 · 관세 · 무역 · 통상), 가족법(혼인 · 이혼), 형사법(폭행 · 절도), 민법(노예제 · 채 무)이 포함되어 있으며, 형벌은 가해자의 신분과 범죄의 정황에 따라 달랐다. 그리고 가족의 유대와 지역적 책임, 동태 복수법(同態復讐法, lex talionis), 신적(神的) 재판 등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지만 부족적인 관습은 넘어선 형태이며, 혈족 간의 집단 복수(blood feud), 사적(私的) 인 복수, 약탈혼 등은 인정하지 않았다. 기원전 21세기의 수메르 시대에 만들어진 '우르남무 법전' 에서 알 수 있듯이, 메소포타미아는 수세기 동안 법을 통한 문명 사회를 지향하고 있었다. '함무라비 법 전' 이 셈족어에 속하는 아카드어로 쓰여진 것으로 보아, 이 법전은 아마 신생 국가인 바빌로니아를 넘어 과거의 수메르와 아카드 전통을 이어받아 새로 정복한 다민족들 을 통합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후기에서 '함무라비 법전' 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 는 법이라고 주장한다. "법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은 누 구든지 정의의 왕인, 나의 이 (법전) 돌기둥 앞에 와 이 새겨진 돌기둥(의 내용)을 자세히 읽고 나의 소중한 말 들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면 이 돌기둥(의 내용)이 그의 문제를 확실히 인식시키고 그가 자신의 소송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면 그의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그러나 실 제로는 쐐기 문자로 쓰인 이 법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법전을 새긴 돌기둥은 함무 라비가 정복한 나라들에 보내져 그의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을 것이다. 이 법전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받은 십계명(신명 5, 22 ; 9, 9-11 ; 10, 3)처럼 석판에 새겨졌다는 점이 비슷 하다. 석판에 새겨진 말들은 쉽게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 었을 것이다. 함무라비는 다음과 같이 법전의 영구성을 말하였다. "앞으로 오는 세대에, 모든 세대에, 이 땅에 와서 내 뒤를 이어 왕이 되는 사람은 내가 이 돌기등에 새긴 말들을 준수하며, 내가 만든 이 나라의 법을 고치지 말라!" (⇦ 함무라비 법전 ; → 동태 복수법 ; 바빌론 ; 아모리 민족 ; 아시리아 ; 아카드 ; 엘람) ※ 참고문헌  S. Dalley · C. Walker · J.D. Hawkins, The Old Babylonian Tablets from Tell al Rimah, London, 1976/ G.R. Driver . J.C. Miles, The Babylonian Laws, 2 vols., Oxford, 1952~1955/ A. Finet, Le Code de Hammurabi, Paris, 1973/ J.J. Finkelstein, The Geneology of the Hammurapi Dynasty, Journal of Cuneifom Studies 20, 1966, pp. 95~118/ 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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