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백 본당

咸白本堂

글자 크기
12

원주교구 소속 본당.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 5리 188-2번지 소재. 1963년 9월 29일 영월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미카엘 대천사. 관할 구역은 정 선군 신동읍, 영월군 중동면 석항리, 연상리(화원리)이며 관할 공소는 예미, 자미원 2개소. 〔교 세〕 1963년 550 명, 1970년 700명, 1975년 889명, 1980년 637명, 1985년 876명, 1990년 967명, 1995년 594명, 2000 년 1,155명, 2003년 1,137명. 〔역대 신부〕 초대 오브라 이언(J. O'Brien, 인) 야고보(1963. 9~1968. 11), 2대 조응 환(曹應煥) 타대오(1968. 11~1971. 4), 3대 댈리(N. Daly, 노), 노엘(1971. 4~1972. 2), 4대 쉬한(M. Sheehan, 신) 마 르티노(1972. 2~1973. 5), 5대 코넬리(N. Connelly, 노) 노 엘(1973. 5~1974. 4), 6대 루(C. Rue, 유) 가롤로(1974. 4~1975. 6), 7대 슈미트(W. Schmitt, 심) 월리엄(1975. 6~1976. 12), 8대 조명호(趙明鎬) 타대오(1976. 12~1977. 9), 9대 이학근(李學根) 베네딕도(1977. 9~1981. 5), 10 대 신현봉(申鉉奉) 안토니오(1981. 5~1983. 6), 11대 김 승오(金勝五) 아우구스티노(1983. 6~1987. 9), 12대 김종 인(金鍾仁) 마태오(1987. 9~1990. 8), 13대 김하수(金河 秀) 미카엘(1990. 8~1993. 9), 14대 윤종민(尹鍾民) 안토 니오(1993. 9~1996. 4), 15대 김민규(金珉奎) 요한(1996.4~1999. 6) 16대 김성훈(金誠勳) 스테파노(1999.6~2000. 1) , 17대 최종복(崔鍾福) 베드로(2000. 1~2002. 2), 18대 백인현(白麟鉉) 안드레아(2002. 2~2003. 9), 19 대 한장우(韓長遇) 베드로(2003. 9~현재). 강원도 정선의 조동리와 방제리를 아우르는 함백 지역 은, 1948년 국영 기업체인 석탄 공사 함백 광업소가 개 광하고 1957년 충북 제천과 함백을 잇는 산업 철도 함 백선이 개통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신자수도 증가하여 1961년 9월 영월 본당 소속 함 백 공소가 설립되었고, 1963년 9월에는 함백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964년 8월에는 영월 본당에서 예미 공소 를 이관받았고, 1965년 3월에는 원주교구가 신설되어 원주교구 소속이 되었다. 1966년 9월에는 성당 봉헌식 및 수녀원과 사제관의 축복식을 가졌고, 11월에는 영원 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수녀 2명이 부임하였다. 이듬해 12월에는 '성모회' 가 설립되는 등 본당의 기틀이 잡혀 나갔으나, 1968년 12월 본당의 재정이 어렵게 되면서 수녀회는 본당에서 철수하였다. 1974년 1월 본당에 꾸르실료회를 창설하고, 1977년 에는 자미원 공소를 설립하였다. 1982년 3월에는 성가 유아원을 개원하였으며 1985년 9월에는 교육관을, 이듬 해 5월에는 성가유아원 건물을 신축하였다. 1988년 6월 에는 서울 시흥동 본당과 자매 결연을 맺고 10월에는 성 당 및 수녀원의 전면 보수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11월에 는 교리실 신축을 단행하였다. 이어 1989년 3월에는 프 란치스코 전교 봉사 수녀회에서 분원을 설립하였으며, 6 월에는 사무실을 신축하였다. 1990년 11월에는 운영난 으로 성가유아원을 폐쇄하였다. 1991년 4월에는 사제관 및 교육관과 성당 지붕을 수리하였으며, 9월에는 시흥동 본당의 교우들을 초청하여 체육 대회 행사를 가졌다. 한편 1989년에 실시된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의 일환 으로 1993년 10월 함백 광업소가 폐광하면서 이 지역의 경제적 기반은 무너지게 되었다. 대체 사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많은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는데, 특히 생계를 위하여 자녀들을 부모에게 맡기고 떠나는 젊은 층의 이주가 두드러졌다. 그리하여 지역 사회 및 교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청장년층이 줄어들었고, 아울러 신자수도 감소하였다. 이에 함백 본당은 1993년부터 '폐광으로 떠난 함백, 신앙으로 꽃피우자' 는 구호를 신앙 실천의 목표로 삼고 본당의 활성화를 위하여 여러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 나 지역 사회의 침체로 인하여 뚜렷한 성과를 올릴 수 없 었고, 결국 1995년에는 프란치스코 전교 봉사 수녀회가 본당에서 철수하였다. 그 사이 예미 공소 강당이 신축되 어 1994년 10월에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함백 지역은 고문서 · 민속 자료 박물관을 건립하고 다양한 축제를 개최하며 영화의 촬영지로 이용되는 등 관광촌으로 거듭나기 시작 하였다. 이에 본당에서는 문화 생활의 기회가 적다는 지 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2003년 10월부터 토요일과 일요 일 미사 후에 영화 상영을 실시하는 등 지역 사회의 변화 에 보조를 맞추어 나갔다. 그리고 2004년 5월에는 성당 내에 유아방을 설치하여 유아와 부모가 함께 미사를 봉 헌할 수 있게 하였고, 2005년 현재에는 성서 읽기 운동 및 교회 출판물과 비디오 보급 등에 앞장서며 신자 재교 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 원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원주교구사 편찬위원회 편, 《원주 교구 30년사》, 천주교 원주교구, 1996. 〔金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