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본당
咸陽本堂
글자 크기
12권

1 / 2
사목 방문을 온 드망즈 주교와 함양 본당 신자들(1936. 11).
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977-6번지 소재. 1913년 4월 26일 설립. 주보는 원죄 없으신 잉태. 관할 구역은 함양군 전 지역. 관할 공소는 안의 · 공배 · 운산 · 백운 · 관동 · 문정 공소 등 6개소. 〔교 세〕 1953년 746명, 1958년 2,527명, 1965년 3,517명, 1970년 2,623명, 1975년 2,051명, 1980년 2,052명, 1985년 2,015명, 1990년 2,092명, 1995년 2,330명, 2000년 2,402명, 2003년 2,388명. 〔역대 신 부〕 초대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1913. 4~1918.2 , 2대 주재용(朱在用) 바오로(1918. 2~1922. 9), 3대 정수 길(鄭水吉) 요셉(1922. 9~1926. 5), 4대 유선이(柳善伊) 요셉(1926. 5~1936. 6), 5대 박재수(朴在秀) 요한(1936. 6~1943. 2), 6대 권영조(權永兆) 마르코(1943. 2~1948. 5) , 7대 서정도(徐廷道) 베르나르도(1948. 6~1950. 4), 8대 김준필(金俊弼) 아우구스티노(1950. 4~1953. 7), 9대 김 태호(金兌浩) 알로이시오(1953. 7~1957), 10대 정수길 (1957. 10~1959. 3), 11대 박문선(朴文善) 야고보(1959.3~1961. 10), 12대 윤예원(尹禮源) 토마스(1961~1963.1), 13대 이윤호(李潤浩) 필립보(1963. 1~1967. 1), 14대 김석좌(金錫佐) 베드로(1967. 1~1971. 11), 15대 허정식 (許正植) 마태오(1971. 11~1976. 1), 16대 김성길(金成 吉) 아우구스티노(1976. 1~1977. 1), 17대 이형수(李亨 洙) 블라시오(1977. 1~1979. 12), 18대 박주선(朴周善) 안토니오(1979. 12~1984. 1), 19대 서원열(徐元烈) 라파 엘(1984. 1~1987. 2), 20대 차기병(車奇秉)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87. 2~1988. 2), 21대 이창섭(李昌燮) 아우구 스티노(1988. 2~1991.6), 22대 김화석(金華碩) 도미니코 (1991. 6~1994. 3), 23대 조규성(曹圭聖) 베드로(1994.3~1996. 7), 24대 김국진(金國鎭) 가우덴시오(1996.7~2000. 1), 25대 김용민(金鎔珉) 레오나르도(2000.1~2003. 1), 26대 배진구(裵鎭九) 베드로(2003. 1~현재) . 〔본당의 설정과 발전〕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를 피해 여러 지역을 떠돌며 피난살이를 하던 노수전(베드 로)이라는 신자가 1907년 함양읍 대덕리 죽장(大德里 竹場)에 정착하면서부터 함양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되었 다. 노수전은 고성에서 장사를 하던 최학조를 알게 되어 그를 개종시키고 함양으로 이주하게 하여 그와 함께 본 격적인 전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함양은 전북 진안 본당의 관할 구역이었는데, 진안 본당 초대 주임 김양홍 (金洋洪, 스테파노) 신부는 1909년 죽장에 공소를 설립 하였다. 공소 강당으로는 초대 공소 회장인 최학조(안드 레아)의 사가(私家)를 이용하였으며, 그가 원교로 이사 한 후에는 당시 함양보통학교 부지와 교사(校舍)를 매입 하여 공소로 사용하였다. 공소의 규모는 점차 확대되어 갔고 그에 따라 본당 설 립의 필요성도 증대되어 갔다. 이에 1913년 4월, 대구 대목구 초대 교구장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는 함양에 본당을 설정하기로 하고 초대 주임으로 이상화 신부를 임명하였다. 이로써 함양 본당은 1911년 대구 대목구가 설정된 이후 첫 번째로 설립 인가를 받은 본당 이 되었다. 초대 주임 이상화 신부는 원교의 공소 강당을 개축하여 임시 성당으로 이용하였으며, 2대 주임 주재용 신부는 부임 직후 임시 성당을 개축하고 1918년 11월 5 일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하지만 점차 교세가 확장 되어 신자수가 늘자 기존의 성당이 협소하게 되어, 5대 주임 박재수 신부는 최학조가 죽기 전 기부한 땅 2,000 여 평과 소유 전답(200여 마지기)에 1937년부터 성당 신 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1940년에 완공된 신축 성당은 105평의 고덕식 성당으로, 이를 계기로 함양 본당의 교 세는 더욱 확대되어 갔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9대 주임으로 부임한 김태호 신부 는 본당의 기틀을 다져 가는 한편, 가톨릭 구제회(N.C.W.C.)의 원조로 받은 구호품들로 지역민들의 전후(戰 後) 복구 사업을 지원하여 신입 교우들이 급증하자, 재 정적으로도 여유가 생겨 함양읍 중심가에 소화유치원을 개원하였다. 이어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정수길 신부는 수녀원을 건립하였으며 11대 주임 박문선 신부는 본당 첫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였다. 그러나 유 치원은 재정난 때문에 12대 주임 윤예원 신부에 의해 폐 쇄되었고, 수녀원도 13대 주임 이윤호 신부에 의하여 폐 쇄되었다. 1965년 12월에는 본당 관할이던 산청 지역이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4대 주임 김석좌 신부는 부임 당시부터 성당이 읍 중 심가로부터 떨어져 있음을 지적하고 교회 발전과 지리적 여건으로 인한 사목상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읍으 로의 이전 문제를 검토하였다. 그리하여 1970년 본당 자체 기금으로 교산리 학당에 있는 교회 토지(최학조가 헌 납한 것)에 현대식으로 성당을 신축 · 이전하였다. 이후 15대 주임 허정식 신부는 자모회를 성모회로 개칭하는 등 본당 사도직 단체들을 재정비하여 본당 운영의 활성 화를 꾀하였다. 18대 주임 박주선 신부는 수녀원을 신축하고 인보 성 체 수녀회를 초청하였으며, 꾸리아를 조직하여 본당 레 지오 마리애의 체계적인 기틀을 마련하였다. 22대 주임 김화석 신부는 1992년 7월 이농 현상으로 신자수가 줄 어든 광평 공소를 폐쇄하였으며, 9월에는 강당 증축 공 사를 실시하였다. 이어 이듬해에는 본당 설립 80주년 기 념 사업으로 교육관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0월에 본당 설립 80주년 기념 행사와 함께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23대 주임 조규성 신부는 1994년 주일학교의 활성화를 위하여 자모회를 부활시켰으며, 24대 주임 김국진 신부 는 1999년 청년회 · 성모 성심회를 조직하여 신자들의 본당 참여를 독려하였고, 재임 중 쁘레시디움을 증설하 여 레지오 마리애 활성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25대 주임 김용민 신부는 2000년 8월 장애인 신자들 을 위한 편의 시설(성당 입구 출입로, 전용 화장실)을 마련 하고 이듬해 10월에는 본당 설립 90주년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한편 건설 교통부에서 낙동강 물 관리 종합 대책의 하나로 지리산 일대에 4개의 식수 댐을 건설하기 로 결정하자, 지리산 인근 천주교 · 프로테스탄트 · 불 교 · 원불교의 종교 지도자들은 2000년 9월 함양 본당에 서 지리산 댐 백지화를 위한 종교 지도자 협의회를 구성 하고 인근 지역 환경 보호 운동을 실시하였다. 26대 주 임 배진구 신부는 2003년 5월 본당 설립 90주년 기념 바자회 및 사진전을 개최하였으며, 이듬해 12월에는 5 월에 착공한 운산 공소의 축복식을 안명옥(安明玉, 프란 치스코 사베리오) 주교의 주례로 거행하였다. → 마산 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김구정, 《천주교 경남 발전사》, 천 주교 부산교구, 1967/ 《교구 설정 10주년 기념》, 천주교 마산교구, 1976. 〔洪延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