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열 본당
咸悅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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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익산시 함열읍 와리 226-3 소재. 1910년 10월 19일 안대동 본당으로 설립되었다 가 1959년 함열 지역으로 옮기며 본당 명칭을 변경하였 다. 주보는 그리스도 왕. 관할 구역은 익산시 함열읍 전 지역과 용안면 · 용동면 · 낭산면 · 성당면 · 함라면 일부 지역. 관할 공소는 상지원 공소 1개소. 〔교 세〕 1964년 3,200명, 1969년 3,244명, 1976년 2,348명, 1982년 2,316명, 1988년 2,370명, 1994년 1,298명, 2000년 1,961명, 2003년 1,984명. 〔역대 신부〕 초대 서병익 (徐丙翼) 바오로(1910. 10~1911. 5), 2대 이상화(李尙華) 바르톨로메오(1911. 5~1913. 4), 3대 페셀(R. Peschel, 白) 레나도(1913. 4~1914. 5), 4대 파르트네(T. Parthenay, 朴) 테오필로(1921.6~10), 5대 허일록(許日錄) 타대오(1938.6~1941. 5), 6대 서병익(1941. 5~1943. 2), 7대 이철연(李 喆淵) 프란치스코(1944. 4~1947. 4), 8대 오기순(吳基順) 알베르토(1947. 4~1949. 3), 9대 이상화(1949. 3~1950. 4) , 10대 김영태(金永泰) 도미니코(1950. 4~1951. 2), 11대 송남호(宋南浩) 요셉(1951. 2~1958. 4), 12대 김영구(金 榮九) 베드로(1958. 4~1961. 7), 13대 김반석(金盤石) 베 네딕도(1961. 7~1963. 7), 14대 박성운(朴聖雲) 베네딕도 (1964. 6~1967. 12), 15대 김종택(金鍾擇) 요셉(1967. 12~1970. 5), 16대 박진량(朴鎭亮) 라우렌시오(1970.5~1972. 7), 17대 김이환(金二煥) 스테파노(1972. 7~1977.12), 18대 서석구(徐錫九) 요한(1977. 12~1982. 9), 19대 안복진(安福瑱) 요셉(1982. 9~1986. 1), 20대 서석기(徐 錫基) 베드로(1986. 1~1989. 1), 21대 양재철(楊載喆) 안 토니오(1989. 1~1992. 1), 22대 김교동(金巧東) 베드로 (1992. 1~1995. 8), 23대 양경배(梁庚培) 베네딕도(1995. 8~1998. 1), 24대 엄기봉(嚴基奉) 베드로(1998. 1~2002. 1), 25대 이사정(李思情) 라파엘(2002. 1~2005. 1), 26대 강명구(姜明求) 요한 보스코(2005. 1~현재). 〔전 사〕 함열 · 용안 · 임피 지역은 박해 시대부터 많은 신자들이 관군의 눈을 피하여 이주하여 살던 곳이었다. 특히 함열의 용왕골은 비교적 규모가 큰 공소로 블랑(G.M.-J. Blanc, 白圭三) 신부가 1878~1880년 박해를 피해 숨어 있던 곳이기도 하였다. 이후에는 리우빌(L.N.A. Liouville, 柳達榮) · 두세(C.-E. Doucet, 丁加彌) · 조스(J.B. Josse, 趙) 신부 등이 이 지역을 포함한 전라도 지역 사목 을 담당하였다. 1884년 <교세 통계표>를 보면 두세 신부 가 리우빌 신부를 도와 용안 동지뫼를 사목 방문한 기록 이 나오는데, 동지뫼는 안대동과 접해 있는 곳으로 1896년부터는 안대동 공소로 기록되었다. 안대동 공소 는 1897년 나바위 본당이 설립되자 나바위 본당 소속으 로 편입되었다. 나바위 본당 초대 주임 베르모렐(J. Vermorel, 張若瑟) 신부는 본당과의 거리가 멀어 제대로 성사 생활을 할 수 없던 익산이나 임피 아래쪽 지방에 있는 신자들을 위하 여 본당을 신설할 계획을 세웠다. 특히 그는 신부가 거처 할 만한 공소집이 있는 용안이나 안대동이 본당을 신설 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1910년 10월 19 일 안대동 본당이 설정되고 초대 주임으로 서병익 신부 가 임명되었다. 〔안대동 본당 시대〕 서병익 신부는 나바위 성당으로부 터 11개의 공소와 신자 1,088명을 인계받고 안대동 공 소로 사용하던 집을 임시 본당으로 사용하였는데, 외교 인들의 입교와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개종이 이어졌으며 많은 냉담자들이 회두하였다. 하지만 서 신부가 1년 도 채 지나지 않아 평안북도 의주 본당으로 전임되고, 이 후 이상화 신부와 페셀 신부가 차례로 부임하였으나 별 다른 활동은 하지 못하였다. 결국 페셀 신부의 전임 이후 본당은 폐쇄되어 나바위 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한편 1914년 4월 부 · 군 폐합으로 용안현이 전북 익산군에 병합되어 안대동 본당의 소재지명은 전북 익산군 함열면 으로 개칭되었다. 1921년 6월 파르트네 신부가 4대 주임으로 부임하였 으나 그는 10월에 나바위 본당으로 전임되었고, 안대동 본당은 다시 나바위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안대동 지 역의 신자들은 본당 신부를 다시 모셔오기를 갈망하였고, 이를 위해 특별 기도를 바치는 등 꾸준한 노력을 보 였다. 그 결과 1938년 5대 주임으로 허일록 신부가 부 임하였다. 이어 6대 주임으로 재부임한 서병익 신부는 1941년 말 로마에 <교세 통계 보고서>를 보냈는데, 일제 는 이것을 스파이 활동이라 규정하고 서 신부를 구속하 였다. 이후 주임 신부들의 잦은 이동과 1950년 한국 전 쟁의 발발로 본당은 침체기에 빠졌다. 1951년 11대 주임으로 부임한 송남호 신부는 침체되 어 있던 본당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하여 성당 벽을 벽돌 로 쌓아 외관을 갖추고 라디오를 들고 다니며 삼종을 치 는 열의를 보이며 교우들의 신앙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 1955년 봄에는 장선리 공소 강당을 신축하고 주일학교 를 시작하였으며, 1957년에는 익산군 함열 역전 와리에 소재한 심상소학교 건물(100평)과 임야 3,000평을 매입 하였다. 이 일은 이후 안대동 본당을 함열로 옮기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교구에서는 안대동 본 당이 읍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교통이 불편하고 장래성 이 없다고 판단하여, 함열읍으로 본당을 이전하고자 하 였다. 하지만 안대동 본당 신자들의 반대가 완강하자 교 구 당가이던 김이환 신부와 박성운 · 이상화 신부 등이 김현배(金賢培, 바르톨로메오) 교구장의 편지를 가지고 와 송 신부와 교우들을 설득하여 본당 이전에 대한 승낙 을 얻었다. 〔함열 본당 시대〕 12대 주임 김영구 신부는 심상소학 교 건물을 임시 성당으로 개조하고 1959년 1월 본당을 이전하며 본당명도 함열 본당으로 변경하였다. 김 신부 는 함열로 이전한 후 바로 성당 건축 기성회를 조직하고 공사를 시작하여, 6개월 만에 공사가 완료되어 1959년 10월 29일 김현배 주교의 집전으로 성당 봉헌식이 거행 되었다. 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1960년 12월 함열여자중 학교의 가인가를 받았으며 이듬해 2월 학생을 모집하여 4월에 개교하였다. 13대 주임 김반석 신부는 부임 직후 구호 물자를 이용 하여 웅포 하천 부지 개간 사업을 추진하였으나 사업을 완료하지 못하고 고산 본당으로 전임되었다. 그런데 이 개간 사업 문제로 본당이 단체벌을 받아 1년간 주임 신 부 자리가 공석이 되며 본당은 세 번째로 나바위 본당 소 속 공소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곧 14대 주임으로 박성운 신부가 부임하여 개간 사업을 마무리하고 35,000여 평 의 농장을 마련하였으며, 1965년 11월에는 웅포 공소 강당 준공 및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1965년 3월 사랑방 을 수녀원으로 개조한 성체회 분원이 마련되고, 1967년 10월에는 사도회가 발족되었다. 15대 주임 김종택 신부는 1969년 3월 '치명자의 모 후'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여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적극 적으로 지원하였고, 16대 주임 박진량 신부는 본당 관할 내에 있는 나환우 정착촌인 상지원 공소 건물을 1971년 8월에 준공하였다. 18대 주임 서석구 신부는 1978년 복 사회 · 성모회 등을 조직하였으며 1981년 11월에는 상 지원 공소를 지원하기 위해 신자들이 장학금을 마련하기 도 하였다. 19대 주임 안복진 신부는 1983년 4월 박정일(朴正 -, 미카엘) 주교의 집전으로 상지원 공소 성당 신축 기 공식을 거행하였고, 11월에는 사제관을 개조한 수녀원 과 신축 사제관의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20대 주임 서석 기 신부는 부임 직후 요셉회 · 밀알회 등의 사도직 단체 를 조직하였으며, 21대 주임 양재철 신부는 '병인의 나 음' 쁘레시디움을 비롯한 7개의 쁘레시디움을 창단하여 레지오 마리애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어 22대 주 임으로 부임한 김교동 신부는 농촌의 바쁜 일손을 돕고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자 1992년 12월 익산 시청으로부터 어린이집 개원을 승인받아, 즉 시 건물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994년 2월 '성심어린이 집' 축복식을 갖고 3월에 첫 입학식을 가졌다. 23대 주임 양경배 신부는 1997년 7월 교육관과 수녀 원을 건립하고 축복식을 가졌으며, 1998년 2월에는 어 린이집 신관 증축 공사를 마치고 축복식을 가졌다. 24대 엄기봉 신부는 본당과 교육관 및 어린이집 주변 조경 사 업을 1998년부터 2년여에 걸쳐 실시하였으며, 25대 이 사정 신부는 2003년 전체적인 성당 보수 공사를 진행하 였다. 26대 강명구 신부는 2005년 3월부터 1개월간 사 제관 보수 공사를 진행하였으며, 현재 가정 공동체의 일 치와 단체 활동을 통한 신앙 쇄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안대동 본당 ; → 전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김진소, 《천주교 전주교구사》 Ⅱ, 천주교 전주교구, 1999. 〔洪延周〕 ((Referenc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