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창 본당
咸昌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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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안동교구 소속 본당. 경북 상주시 함창읍 오동리 635 소재. 1942년 5월 20일에 본당으로 설정되었으며, 주보 는 그리스도 왕. 관할 구역은 상주시 함창읍 전 지역. 공 소는 금곡 : 병암 · 성심 · 신흥 · 아천 · 양정 · 여물 · 역 곡 · 하갈 9개소. 〔교 세〕 1965년 3,180명, 1970년 3,700명, 1975년 3,690명, 1980년 3,312명, 1985년 3,396명, 1990년 3,234명, 1995년 3,087명, 2000년 3,189명, 2003년 2,981명. 〔역대 신부〕 초대 이기수 (李己守) 야고보(1942. 5~1948. 8), 2대 김동한(金東漢) 가롤로(1948. 8~1949. 6), 3대 강찬형(姜贊亨) 파스칼 (1949. 6~1952. 3), 4대 정삼규(鄭三圭) 요한(1952.3~1955. 5), 5대 김준필(金俊弼) 아우구스티노(1955.5~1956. 4), 6대 에그너(R. Egner, 왕묵도) 레오나르도 (1956. 7~1973. 4), 7대 메시니(P. Mésini, 매기석) 베드로 (1973. 4~1974. 4), 8대 김재문(金在文) 이냐시오(1974.12~1981. 2), 9대 김욱태(金旭泰) 레오(1981. 2~1986. 1), 10대 이영길(李暎吉) 가롤로(1986. 1~1989. 3), 11대 정 호경(鄭鎬庚) 루도비코(1989. 3~1993. 5), 12대 조창래 (趙昌來) 빈천시오(1993. 5~1994. 8), 13대 공한영(孔漢 英) 고스마(1994. 8~1999. 1), 14대 전장호(全壯鎬) 프란 치스코(1999. 1~2003. 7), 15대 이상복(李相福) 비오 (2003. 7~현재). 〔전사 및 공소 설립〕 함창 지역에 언제부터 천주교가 전래되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다만 1866년 병 인박해 무렵 경상도 서북부 지역에서 전교 활동을 하던 칼레(A.-N. Calais, 姜良) 신부가 함창현 문수 마을의 이 요한의 집으로 피신한 사실로 보아 당시 이 지역에 신자 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함창 지역이 기록에 나타 나는 것은 1882년부터 경상도 지역을 전담하던 로베르 (A.P. Robert, 金保祿) 신부의 교세 통계표에서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1883~1884년 사이에 함창 읍내에는 11명의 신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후 함창 지역은 1894년 9월경 설립된 가실(현 낙산) 본당 관할이 되었다가 1901년 7월 김천(현 황금동) 본당 이 설립된 뒤에는 김천 본당의 관할이 되었다. 그런 가운 데 함창읍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 새로운 공소들이 설립 되었는데, 그 중 퇴강 공소와 공평 공소는 1922년 9월 에 각각 퇴강(사벌 퇴강 준본당의 전신) 본당과 공평(현 점 촌동)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한편 1924년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함창 지역은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고, 또 지역 내에 초등학교가 있었 기 때문에 부근의 많은 신자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이에 따라 1937년경에 퇴강 본당 주임 정수길(鄭水吉 요셉) 신부는 함창읍 오동리 729-3에 초가를 마련하여 함창 공소를 설치한 다음 전교회장을 파견하여 본격적인 전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신자수가 증가하여 공소 집이 협소해지자 좀 더 넓은 일본인 소유의 건물(구향리 15번지)을 매입한 뒤 그곳으로 공소를 이전하였다. 1940 년 6월 정수길 신부가 전임되자 공평 본당의 서형석(徐 亨錫, 프란치스코) 신부가 함창 공소에 거주하면서 퇴강 본당 관할 구역까지 담당하다가 1941년 6월 17일 폐결 핵으로 선종한 후, 상주(현 서문동) 본당 신부가 이 지역 을 관리하였다. 〔본당 설립과 발전〕 대구교구는 1942년 5월 20일자 로 공평 본당을 공소로 격하시키는 동시에 지리 · 교통상 유리한 함창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초대 주임으 로 임명된 이기수 신부는 함창에 거처할 곳이 없어 일단 공평에 거주하였다. 해방을 맞은 함창 본당 신자들은 성 당 터를 마련할 계획을 세우고, 자신들의 성금과 이기수 신부의 지원으로 오동리에 성당 부지를 매입하였다. 이 후 1948년 봄에 성당 신축 기성회를 조직한 뒤 공소 강 당으로 쓰던 건물을 성당과 사제관으로 개축하였다. 2대 주임 김동한 신부는 부임 후 사목에 필요한 집기 와 성구를 공평에서 함창으로 옮겼다. 이후 교세가 급증 하여 신자수에 비해 기존 성당이 협소하게 되자, 1949 년 2월 23일에 성당 건축 기성회를 조직하고 기금을 마 련하기 시작하였다. 3대 주임 강찬형 신부는 1949년 9월 15일에 본당 내 에 성모유치원을 개원하였고, 1950년 3월에는 교구의 도움을 받아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국 전쟁으로 공사 중이던 성당이 파괴되고 쌓아둔 건축 자 재는 모두 소실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자들은 비록 돈 이 부족하여 임시로 바깥 벽만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형 태였지만, 약 55평의 새 성당을 건립하고 남은 자재를 이용하여 둥근 모양의 2층 사제관을 지었다. 4대 주임 정삼규 신부는 임시로 쌓아 올렸던 성당을 보다 완전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 교구 지원과 구호 물자 판매 대금, 신자들의 성금 등으로 건축 기금을 조성한 뒤 공사를 진 행하여 1954년 11월 24일에 마침내 성당의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한편 1952년 7월 6일에 왜관 감목 대리구가 설정되 어, 베네딕도회가 상주와 문경 지방을 위임받아 사목 활 동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에 따라 1956년에 함창 본 당은 왜관 감목 대리구에 속하게 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베네딕도회의 에그너 신부가 6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에그너 신부는 유급 전 교사를 채용하여 활발히 전교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양 정 · 은척 · 예주 · 여물 · 양범 공소를 설치하였고, 1959 년 5월 29일에는 가난한 집 자녀들을 위해 성경 강습소 를 설치하였다. 이 강습소는 이듬해 3월 5일 교실 2개와 가사실을 가진 교사(校舍)를 마련한 뒤 1961년 4월에 모고등공민학교로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 이어 1965년 4월 15일에는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1월 14일에 봉헌식을 거행하였고, 1969년 5월 9일에는 안 동 감목 대리구가 교구로 승격되면서 새 교구로 편입되 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에는 성모고등공민학교 관리권 이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로 이양되었다. 1974년 4월 7대 주임 메시니 신부가 이임한 후 8~9 개월간 새로운 주임 신부가 임명되지 않아 교구청의 코 요스(C. Coyos, 具仁德) 신부가 주일마다 본당에 와서 미 사를 집전하다가, 12월에 김재문 신부가 8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김재문 신부는 성숙된 신앙 정착과 재정 자 립을 위해 공소 회장단 모임을 개최하고 공소 재정 담당 자들을 교육시켰으며, 1977년 2월에는 본당의 재정 형 편상 성모유치원을 폐쇄하였고, 1979년 5월에는 성소 후원회를 발족하고 새 성모상의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9대 주임 김욱태 신부는 1981년 여름에 서울의 돈암 동 본당과 합동으로 공검면 중소초등학교에서 산간 학교 를 개최하였고, 반 공동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반 모임 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2년 10월 24일에는 남녀 어 린이 레지오 마리애인 샛별 쁘레시디움과 상아탑 쁘레시 디움을 구성하였다. 10대 주임 이영길 신부는 1988년 4 월 3일에 교육관(나눔의 집)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0월 30일에 공사를 완료한 뒤 11월 20일에 두봉(R. Dupont, 杜峰)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11대 주임 정호경 신부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 소를 중심으로 관련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여 1990년 3월 18일에는 신흥에 생명 공동체인 오봉산 공동체를, 4월 1일에는 퇴강에 물미 공동체를 만들었고, 1992년 1 월 29일에는 퇴강의 두 번째 공동체인 만리산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아울러 1992년 11월 15일에는 혼자 살아 가는 노인들을 위한 '할머니 두레집' 의 축복식을 거행하 였다. 13대 주임 공한영 신부는 1996년 6월 1일에 성가대 를 조직하였으며, 1997년 4월 19일에는 주일학교 초등 부 자모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14대 주임 전장호 신부 는 1999년 3월 29일에 성당 내에 유아실을 설치하여 본 당 신자들의 호응을 받았으며, 2000년 2월 20일에는 여 성 연합회를 발족시켰다. 이어 15대 주임 이상복 신부 재임기인 2003년 7월 1일에는 본당 관할의 퇴강 공소와 계림동 본당의 사벌 · 매협 · 매호 · 묵상 · 목가 · 삼덕 공 소가 묶여 사벌 퇴강 준본당으로 설정되었고, 2004년 7 월 17~18일에는 본당에서 서울대교구와 안동교구 '나 눔의 묵상회' 하계 수련회가 개최되어 도시와 농촌 신자 들의 만남의 장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 서문동 본당 ; 안동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안동교구사 자료 제6집 - 본당, 활동수도단체, 교구단체 · 기관》, 1997. 〔白秉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