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교구 소속 침묵의 교회. 함경남도 함흥시 소재. 1927년 5월에 원산 본당에서 분리 · 설정되었다가 1949년 5월에 폐쇄되었다. 주보는 성 보니파시오. 〔교세〕 1930년 초 300여 명. 〔역대 신부〕 초대 노이기르크(P. Neugirg, 俞順和 플라치도(1927. 5~1930. 1), 2대 브란들(A. Brandl, 張仁德) 알렉시오(1930. 1~1934), 3대 푹스(A. Fuchs, 陳) 알프레도(1934~1939), 4대 콜러(E. Kohler, 景道範) 엘리지오(1939~1949.5).
함흥 지역에 공소가 설치된 계기는 1913년 여름에 이 지역으로 이사해 온 일본인 신자에 의해서였다. 그는 원산 본당의 프와요(V. Poyaud, 表光東) 신부에게 자신과 자신의 부인에게 성사를 주러 와 달라고 여러 번 요청하였고, 그 결과 1914년 2월 프와요 신부가 함흥에 도착하였다. 프와요 신부는 이 지역에 10여 명의 신자가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함흥 공소를 설치하였으며, 이후 원산 본당의 신부들이 꾸준히 방문하여 성사를 주었다.
1927년 5월 함흥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노이기르크 신부가 임명되었다. 노이기르크 신부는 1928년 초에 본당으로 사용할 대지와 가옥을 매입하였는데, 이 집은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의 거주지 사이에 위치해 있는 한옥으로 외관상 매우 초라하였다. 이에 노이기르크 신부는 선교 활동을 하는 한편 새로운 성당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29년 11월 덕원 수도원으로 전임되고 브란들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공식 발령 1930. 1. 17).
브란들 신부는 1929년 11월부터 함흥 본당에서 활동하였는데 1930년 봄에는 1,100여 평에 이르는 새 성당부지를 매입하고, 1931년 7월 31일에는 조선교구 설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예수 성심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콜러 신부는 사제관을 새로 건립하는 한편, 1941년 8월 22일에는 본당 내에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분원을 설치하였고, 9월 24일에는 예수 성심의원을 개원하였다. 그러나 콜러 신부는 1945년에는 일본군에게, 해방 후에는 소련 군대에게 사제관을 점령당하는 어려움을 겪었고, 1948년 8월부터는 북한 공산 정권의 탄압으로 사목 활동을 거의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1949년 5월 11일 콜러 신부가 공산당에게 체포되어 함흥 본당은 폐쇄되고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 함흥교구)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원산교구 연대기》,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1/ 一, 《함경도 천주교회사》,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95/ - 《한국어 자료집》, 함경도 천주교회사 간행사업회, 1989. 〔白秉根〕
함흥 본당
咸興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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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함흥 본당 앞에 서 있는 콜러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