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본당
陜川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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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677 소재. 1932년 5월 22일 진주(현 옥봉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바오로 사도. 관할 구역은 합천군 전역이며, 공소는 삼가 · 쌍백 · 야로 3개소. 〔교 세〕 1933년 353명, 1936년 473명, 1967년 850명, 1974년 673명, 1980년 1,179명, 1985년 1,305명, 1990년 1,541명, 1995년 1,613명, 2000년 1,680명, 2005년 1,670명. 〔역대 신부〕 초대 장순도(張順道) 바 르나바(1932. 5~1934. 5), 2대 유흥모(柳興模) 안드레아 (1934. 5~1938. 6), 3대 박동준(朴東俊) 마티아(1938.6~8), 4대 장덕범(張德範) 바오로(1964. 1~1968. 2), 5대 현기호(玄基浩) 시몬(1968. 2~1970. 10), 6대 이억민(李 億敏) 바오로(1970. 10~1971. 11), 7대 정삼규(鄭三圭) 요 한(1971. 11~1974. 5), 8대 유영봉(劉英奉) 야고보(1974.5~1979. 1), 9대 최용진(崔龍鎭) 이냐시오(1979. 1~1982.2), 10대 신은근(申銀根) 바오로(1982. 2~1985. 2) , 11대 허성규(許聖奎) 베드로(1985. 2~1987. 6) 12대 이한기 (李漢琦) 요셉(1987. 6~1990. 6), 13대 김병운(金炳雲) 라이문도(1990. 6~1994. 8), 14대 김남엽(金南燁) 안토니 오(1994. 8~1996. 10), 15대 여인석(呂寅碩) 베드로(1996.10~1999. 1), 16대 남영철(南榮喆) 요한 비안네(1999.1~2003. 1), 17대 김국진(金國鎭) 가우덴시오(2003. 1~2005. 1) , 18대 제찬석(諸璨拓) 요한(2005. 1~현재). 1920년대 초, 천주교 신자인 이 마르타가 지역 주민 들을 권면하여 천주교에 입교하게 하면서 합천 지역에 신앙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점차 신자수가 증가하자 1922년경 당시 합천 지역을 관할하던 진주 문산 본당의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신부는 이 마르타의 아들인 강세현(姜世鉉, 시몬)의 집에 공소를 설정하고 봄 가을 에 판공 성사를 베풀었다. 이후 1926년 진주 본당이 설 립되자 합천 공소는 그 관할로 편입되었고, 1928년에는 진주 본당의 정수길(鄭水吉, 요셉) 신부가 함양에 살던 양 마르타를 전교회장으로 합천 공소에 파견하기도 하였 다. 이러한 전교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신자수가 꾸 준히 증가하자 정 신부와 공소 신자들은 공소 신축 계획 을 추진하였고, 1929년 12월에 강세현이 헌납한 부지에 공소를 완공하였다. 이후 1931년 11월에 거행된 공소 축복식에 참석한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에게 본당 설립을 요청하여 1932년 5월 22일 합천 본당이 설 립되었다. 설립 당시 관할 지역은 거창군과 합천군 전 지 역이었고, 관할 공소는 합천군 삼가면의 어전리 공소, 쌍 백면의 쌍백 공소, 율곡면의 낙민 공소, 거창군 거창면의 학리 공소 등이었다. 초대 주임 장순도 신부는 부임 직후에 공소 강당을 증 축하여 성당으로 사용하였고, 사제관을 신축하는 등 본 당 시설을 확충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2대 주 임 유흥모 신부는 1935년 12월에 유아 교육을 위해 '성 모유치원' 을 개설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본당의 기반이 잡힐 즈음 대구 대목구에서는 교세가 급증하고 있던 거 창 지역으로 본당을 이전하기로 결정, 1938년 8월 거창 본당이 설립되자 합천 본당은 설립 6년 만에 거창 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이후 합천 공소는 한국 전쟁 당시 공소 건물이 전소되 어 강세현의 집으로 공소를 옮기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 었지만, 1960년대 접어들면서 본당 재건의 발판이 마련 되었다. 당시 합천 공소를 관할하던 부산교구는 '1군 1 본당 방침에 따라 본당 재건 계획을 실행하였는데, 때 마침 1962년에 합천 세무서가 거창 세무서에 편입됨에 따라 1963년 합천에 남겨진 세무서 건물을 성당으로 활 용하기 위해 매입하였다. 그리하여 공소로 격하된 지 20 여 년 만인 1964년 1월에 합천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 었다. 본당 재건 후 첫 번째로 본당에 부임한 4대 주임 장덕 범 신부는 1964년에 옛 세무서 건물을 성당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였고, 사제관(23평)과 강당(19평)을 신 축하였으며, 1965년 9월에는 공소 부지 70평과 공소 (17평) 등을 매입하였다. 1966년에는 새로 설정된 마산 교구로 편입되었다. 5대 주임 현기호 신부 재임기인 1969년 11월에는 교구청의 원조를 받아 부지 100평을 마련하여 야로 공소(17평)를 신축하였고, 6대 주임 이억 민 신부는 1971년 6월에 야로 공소의 부속 건물(10평) 을 세웠다. 7대 주임 정삼규 신부 재임기인 1973년 1월 에 쌍백 공소 건물이 전소되어 이듬해 6월에 이전 신축 하였으며, 8대 주임 유영봉 신부 재임기인 1976년 5월 에는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 교구의 도움을 받아 성모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6~9월에는 옛 사 제관을 철거하고 2층 건물을 세워 유치원(1층)과 사제관 (2층)으로 활용하였고, 9월에는 옛 식당 건물을 개조하 여 수녀원을 마련하였다. 10대 주임 신은근 신부 재임기인 1982~1983년경에 는 재정 사정이 어려워 거룩한 말씀의 시녀회 수녀들이 본당에서 철수하고 수녀원이 폐쇄되었다. 하지만 11대 주임 허성규 신부 재임기인 1986년 2월에 수녀원을 다 시 개원하여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들이 본당에 파견되었으며, 1987년에 는 수녀원을 증축하였다. 13대 주임 김병운 신부 재임기 인 1992년 10월에는 본당 설립 60주년 기념 미사와 성 당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였고, 1993년 7월에는 유아들 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학습할 수 있도록 유치원을 보수 하였다. 또한 같은 해 9월에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 의 성당을 완공하여 봉헌식을 거행하였으며, 12월에는 성모상을 제작하여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16대 주임 남 영철 신부 재임기인 2000년 8월에는 야로 공소의 옛 건 물을 철거하고 건물을 다시 신축하여 축복식을 거행하였 고, 2002년 2월에는 유치원 강당을 증축하였으며, 5월 에는 야로 공소를 증축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9월에는 삼가 공소에 피정이나 연수에 사용할 수 있는 교육관을 신축하여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12월에는 유치원 강 당을 준공하였다. 이어 17대 주임 김국진 신부 재임기인 2004년 5월에는 수녀원을 보수하는 등 본당 시설에 대 한 개선 작업에 진력하였다. 2005년 현재 합천 본당은 합천 지역 신앙의 못자리로 서 지역 사회의 복음화에 노력하고 있고, 40주년을 맞이 하는 마산교구의 실천 지침인 성서 읽기와 쓰기, 가정 성 화 운동과 환경 운동, 성체 조배 자주하기 등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 마산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회보> 1929년 12월 1일 자 · 1930년 1월 1일자/ <가톨릭신문> 1992년 10월 11일자 · 1993 년 10월 3일자 · 2002년 9월 29일자/ 《경향잡지》 734호(1932. 5)/ 《가톨릭 研究》 3권 7호(1936. 7)/ 김구정, 《천주교 경남 발전사》, 부 산교구, 1967/ 《교구 설정 10주년 기념 -교구 소사》, 천주교 마산 교구, 1976/ 《드망즈 주교 일기》, 가톨릭출판사, 1987/ 《안세화 주 교 공문집》, 대구가톨릭대학교 부설 영남교회사연구소, 2003. 〔梁仁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