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 본당
海美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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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312-8번지 소재. 1985년 4월 11일 본당으로 설정되었 으며 주보는 해미 무명 순교자. 관할 구역은 해미면과 고 북면 전 지역. 〔교 세〕 1985년 452명, 1990년 630명 , 1995년 777명, 2000년 592명, 2003년 650명. 〔역대 신부〕 초대 윤종관(尹鍾寬) 가브리엘(1985. 4~1990. 11), 2대 우희수(禹熙秀) 발타사르(1990. 11~1994. 8), 3대 김 종수(金宗壽) 아우구스티노(1994. 8~1997. 1), 4대 구일 모(具一謨) 베드로(1997. 1~1999. 2), 5대 안상길(安相 吉) 사도 요한(1999. 2~2001. 1), 6대 최효인(崔孝仁) 시 몬(2001. 1~2005. 1), 7대 강전민(姜銓民) 스테파노(2005. 1~현재). 〔전 사〕 해미 지역은 한국 천주교회 초기부터 복음이 전래된 곳으로, 1799년 박취득(朴取得, 라우렌시오)이 최초로 순교한 이래,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해미 진영에 서 처형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丙 寅迫害) 때에는 생매장 등 갖가지 방법으로 많은 신자들 이 희생되었는데, 이때 처형된 신자 중 김선양(바오로) 등 해미에 거주하였던 신자들도 다수 있다. 즉 병인박해 때까지 해미 지역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해미의 신앙 공동체는 병인박해로 큰 타격을 입고, 1880년대에 들어서야 다시 기록에 등장한다. 즉 1885년의 <교세 통계표>에 언급된 마새 공소(현 당진군 대호지면 마중리), 1887년 기록에 나타난 원마루 공소(현 서산시 운산면 수평리) 등이다. 이와 함께 현 해미 본당 관 할 구역인 해미면과 고북면에서의 신앙 공동체도 1889 년부터 그 존재가 확인된다. 1880년대 충청도 사목을 담당하던 두세(C.-E. Doucet, 丁加彌) 신부가 작성한 <교 세 통계표>에 따르면, 1889년 황소고개(현 해미면 대곡 리)에는 113명의 교우가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고, 1901년 송뜸(현 대곡리)에는 92명, 일락골(현 황락리)에 는 49명의 신자들이 살고 있었다. 이후 해미 지역은 1908년 수곡 본당이 설립되자 수곡 본당의 관할 아래 있다가 1917년 서산(현 서산 동문동) 본당이 설립된 후 서산 본당의 관할하에 놓였다. 1950년대 초까지 서산 본당의 고북면 신정리 공소에 서 신앙 생활을 하던 해미 지역의 신자들은 공소까지의 거리가 멀어 불편하였기 때문에, 1952년 30여 명의 신 자들이 조산리의 한 신자집에 모여 조산리 공소를 발족 하였다. 이후 1957년에는 해미읍성 안에 위치한 가옥을 매입하여 공소로 사용하였고, 1962년에는 해미읍성 내 옛 감옥이었던 호야나무 옆 순교 성지를 매입한 뒤 1966년에 공소 강당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1981년 7월 정부에서 해미읍성 복원화 사업을 시작하면서 읍성 내의 공소 건물이 철거되자 해미읍성의 관리소 건물을 빌려 임시 집회소로 사용하다가, 1983년 10월 현 본당 소재 지에 공소 건물을 짓고 이전하였다. 〔본당의 설립과 발전〕 1985년 4월 11일 해미 공소는 해미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신자수는 482명으로 미미하였으나, 성지 관리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교구장 경갑룡(景甲龍, 요셉) 주교가 본당 승격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해미 본당은 설립 직후인 1985년 6월 '해미 순교 선 열 현양 협의회' 를 조직하여 성지 성역화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우선 '성지 가꾸기 운동' 의 일환으로 해미 순교 성지 매입을 결정하고, 주보와 강론을 통하여 전국 의 신자들에게 '순교 성지 매입 봉헌하기 구좌' 를 개설 하도록 홍보하였다. 그리하여 1998년 말에는 해미읍성 주위 약 7,000평의 순교 성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본당 설립 직후부터 다양한 순교자 신심 행위를 통하여 무명 순교자들을 기리기 시작하였는데, 이 행사 들은 2001년 해미 성지 내에 성당이 건립될 때까지 계 속되었다. 대표적인 행사로는 1986년부터 거행된 상홍 리 순교자 묘소 한식 성묘와 그해 9월부터 매월 첫 주일 에 봉헌한 순교 선열 현양 월례 미사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1986년 10월에는 병인 순교 120주년 기념 대전교 구 신앙 대회를 해미읍성 내 순교 성지에서 거행하였다. 성지 관리와 더불어 해미 본당은 본당으로써의 면모도 차츰 갖추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즉 본당 설립과 함께 순 교자의 모후 꾸리아와 성모회를 창단하였고, 1987년 2 월에는 읍내리에 있는 연립 주택을 임대하여 천주의 섭 리 수녀회 수녀원을 설립하였다. 또한 1988년 10월에는 본당 옆에 사제관 · 수녀원 · 교육관이 있는 '한마음의 집' 을 기공하여 이듬해 6월 축복식을 거행하였으며 1991년 4월에는 조립식 판넬로 식당 겸 차고를 세웠다. 1992년에는 사목 협의회를 사목 평의회로 개칭하는 동 시에 해미 순교 선열 현양 협의회를 폐지하고 현양 협의 회와 관련된 모든 사업을 사목 평의회에서 인수하였다. 그리고 1995년에는 자모회와 노인회를 창단하였고, 6월 에는 조립식 컨테이너로 교리실 및 사무실을 건립하였으 며, 1998년부터는 울뜨레야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1999년에 부임한 안상길 신부는 해미 본당이 해 미 성지에서 떨어져 있어 순례객들이 미사를 봉헌하기에 불편하고 성지 관리도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해미 성 지에 성당을 신축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1999년 5월부터 1인당 100만 원을 후원하는 후원회원 3,000명 확보 사업을 시작하였고, 2000년 8월에는 해미읍성 서 문 앞 순교 성지에서 성당 기공식을 거행하였다. 2001 년 1월 성당 준공에 전념하기 위하여 안 신부가 성지 전 담 사제로 부임한 후, 2003년 6월 마침내 성당이 완공 되었다. 해미 본당에서 관할하던 성지 조성 사업 및 성지 관리는 해미 성지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이후 해미 본당 은 본당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하여 다양한 계획들 을 수립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2005년 3월 장년회를 결성하여 신자들이 본당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 였으며, 아울러 '가정 복음화' 를 사목 지침으로 정하고 그 실천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 동문 본당 ; 해미) ※ 참고문헌 천주교 대전교구 편, 《대전교구 30년》, 대전교구 홍보국, 1988/ 대전교구 홍보국 편, 《천주교 대전교구 통계 자료 집》, 천주교 대전교구, 1990/ <해미 본당 사목 보고서>, 대전교구 해미 본당, 2005. 〔金가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