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 본당
海岸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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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인천교구 소속 본당. 인천시 중구 선린동 26번지 소 재. 1960년 7월 17일 화교 성당으로 설립되었다가, 1972년 9월 답동 본당과 화수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정 식 한국인 본당이 되었다. 주보는 루르드의 성모. 관할 구역은 송학동 1~3가, 중앙동 1~3가, 항동 1~6가, 선린동, 해안동, 북성동 1~3가(월미도 전 지역), 송월동 1~3가. 〔교 세〕 1972년 1,228명, 1975년 1,400명, 1980년 1601명, 1986년 2,267명, 1990년 2,451명, 1995년 2,503명, 2000년 2,609명, 2005년 2,526명. 〔역대 신부〕 선린동 본당 : 초대 맥코막(J. P. McCormark, 高) 요셉(1960. 4~1969. 4), 2대 웨이스(E. Weis, 위) 에드 워드(1969. 4~1970. 1), 3대 릴리(R.A. Lilly, 李大虎) 야고 보(1970. 1~1971. 1), 4대 신인균(申麟均) 요셉(1971.1~1972. 2). 해안 본당 : 초대 파퀘트(F. Paquet, 朴) 요셉 (1972. 9~1980. 12), 2대 최기산(崔基山) 보니파시오 (1981. 2~1983. 5), 3대 유승문(柳承文) 바오로(1983. 5~1987. 1), 4대 안규도(安奎度) 도미니코(1987. 1~1990.2), 5대 박창목(朴昌穆) 바르톨로메오(1990. 2~1992. 9), 6대 전승진(全承振) 필립보(1993. 1~1996. 9), 7대 김현 수(金賢樹) 토마스(1996. 9~2002. 1), 8대 정연섭(鄭然 燮) 베드로(2002. 1~2004. 11), 9대 김성수(金星洙) 바오 로 (2004. 11~현재). 인천 지역은 1958년 인천 감목 대리구가 설정되면서 메리놀회에서 포교를 담당하였다. 당시 인천에는 선린동 을 중심으로 4,000여 명의 화교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에, 1960년 4월 맥코막 신부가 북성동 3가 10번지의 이 층집 2층에 성전을 마련하면서 이들에 대한 본격적인 전 교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해 7월 선린동 본당이 화교 성당으로 신설되었다. 당시 성전은 북성동에 있었지만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선린동의 이름을 따서 선린동 본 당이라 하였고, 맥코막 신부가 초대 주임 신부로 부임하 였다. 1961년에는 중국인 위희망(魏希望, 루가) 신부가 보좌 신부로 부임하여 맥코막 신부와 함께 사목을 담당 하였고, 1962년 12월 31일 현재의 성당 터인 선린동 26-1번지 소재 건물 2동을 구입, 1966년 6월 9일에 현 재의 성당 건물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1969년 4월 3일 인천항이 연안 부두로 이전하 면서 전출자들이 생겨났고 아울러 냉담자들도 증가하여 본당 유지가 어렵게 되었다. 이에 반해 일대의 한국인 신 자수는 날로 증가하였으나, 근처에 한국인 성당이 없어 거리가 먼 답동 본당이나 화수동 본당으로 미사를 드리 러 가야 했다. 이에 인천교구에서는 1972년 9월 선린동 본당을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 신자들을 위한 성 당으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10월에 본당명을 해안 본당 으로 개칭하였다. 해안 본당의 발족과 함께 파퀘트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답동 본당으로부터 송학동 1 · 2가, 관동 1~3가, 해안동, 항동, 선린동, 자월 공소를, 화수동 본 당으로부터 송월동 2 · 3가와 북성동 2개동을 이관받아 총 8개동 333세대 1,043명을 관할하게 되었다. 파퀘트 신부는 1972년 11월 10일에 본당 자문 위원회(현 사목 회)를 결성하고 구역장, 주일학교, 레지오, 본당 주보 등 을 만들었으며, 11월 12일에는 본당 창립 선포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리고 1973년 6월에는 화수동 본당으로부 터 월미도와 소월미도를 이관받았고, 1975년부터는 양 로원, 시립 아동 상담소 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봉사 활동을 펼쳤다. 1981년 1월 대기 신부로 잠시 머물던 박찬용(朴贊龍, 요한) 신부를 거쳐, 1981년 2월 최기산 신부가 2대 주 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외짝 교우들의 환영식과 단기 교리 교육을 실시하여, 한꺼번에 40명의 남자를 영세시 키는 성과를 올렸다. 게다가 1982년 1월에는 화수동 본 당 신자 88세대 292명이 편입되면서 본당의 교세가 크 게 확대되었다. 이에 최 신부는 천주 섭리 수녀회에서 수 도자를 초청하여 본당 사목을 돕도록 하는 한편, 3개의 쁘레시디움을 증설하여 신자들의 신심 활동을 장려하였다. 또한 1982년 3월에는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하여 지역 사회에 공헌하였으며, 1983년 2월에는 2년여의 공 사 끝에 교육관을 완공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그리고 1985년 4월에는 항동 1~7가와 자월 공소를 연안 본당 으로 이관하였다. 3대 주임 유승문 신부는 여름 성경학교와 울뜨레야, 신자 가정 방문과 구역 미사 봉헌을 통하여 신자 공동체 를 공고히 하는 한편, 본당 관할 구역을 재조정하여 3개 구역을 증설하였다. 4대 주임 안규도 신부 재임기에는 학생 성령 세미나가 실시되고 제대와 성당 안에 스테인 드 글라스가 설치되었으며, '순교자들의 모후' 꾸리아가 창립되었다. 그리고 1988년 11월에는 만석 2차 아파트 거주 신자들이 화수동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5대 주임 박창목 신부는 성모 신심을 강조하며 성체 조배회를 창설하였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1992년 9월 부터 약 4개월 동안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설리반 (M. Sullivan, 설영후) 신부가 박 신부를 대신하여 본당 사 목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6대 주임 전승진 신부는 1994 년에 성당 맞은편 건물을 매입하여 교리실 및 각 단체의 회합실을 만들었고, 7대 주임 김현수 신부는 지역 여건 상 독거 노인들이 많음을 감안하여 사회 복지분과를 결 성, 운영하였다. 아울러 1997년 4월에는 교육관을 개· 보수하면서 성당과 교육관 사이를 이어, 본당 내에서의 활동이 더욱 편리해졌다. 8대 주임 정연섭 신부는 소공동체를 체계화함은 물론 노인분과를 구성하여 노령화 시대에 부응하도록 하였고, 성당에 마당이 없는 점을 감안하여 실내 탁구장과 당구 장을 만들어 쉴 공간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2002년에는 해안 본당 설립(개칭) 30주년을 맞아 역대 신부님의 초 청 미사와 체육 대회, 사진 전시회 등을 개최하였으며, 9 대 주임 김성수 신부는 2004년 12월에 부임하여 냉담자 들과 조당자들을 찾아내어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 인천교구) ※ 참고문헌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자료로 본 천주교 인천교 구사 제4집-교세 통계표 · 부록 연표》, 한국교회사연구소, 1988/ 천주교 답동 교회 편, 《답동 대성당 100년사》, 천주교 답동 교회, 1989/ 인천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인천교구 사》, 천주교 인천교구, 1991. 〔金가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