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본당

海雲臺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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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부산시 해운대구 중1동 1373-1 번지 소재. 1963년 1월 12일 해운대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 설정. 주보는 성 바오로. 관할 구역은 중1동 · 중2 동 전 지역과 우1동 일부 지역. 〔교 세〕 1963년 335명, 1968년 798명, 1972년 999명, 1977년 1,780명, 1982년 2,842명, 1987년 4,004명, 1993년 6,407명, 1999년 5,118명, 2003년 5,391명. 〔역대 신부〕 초대 김유재(金有宰) 그레고리오(1963. 2~1969. 4), 2대 김준 필(金俊弼) 아우구스티노(1969. 4~1971. 10), 3대 유창호 (劉昌鎬) 토마스(1971. 10~1972. 11), 4대 정재석(鄭在 石) 요셉(1972. 11~1975. 9), 5대 이영식(李永植) 히지노 (1975. 9~1978. 1), 6대 백응복(白應福) 스테파노(1978. 1~1989. 1), 7대 염봉덕(廉鳳德)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1989. 1~1991. 2), 8대 김두완(金斗玩) 아우구스티노 (1991. 2~1997.2 9대 권지호(權支浩) 프란치스코(1997. 2~2000. 1), 10대 윤경철(尹景哲) 바오로(2000. 1~2002. 12), 11대 심순보(沈淳輔) 스테파노(2002. 12~현재). 〔전 사〕 해운대 지역에서 첫 미사가 봉헌된 것은 1959 년 11월 8일이었다. 당시 수영(현 광안) 본당 3대 주임 정수길(鄭水吉, 요셉) 신부는 해운대 지역의 신앙 공동 체를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중동 139번지 호수 다방을 빌려 미사를 드리고 공소 발족을 논의하였다. 당시 이 지 역은 수영 본당과 거리가 멀었으나 인구 유입으로 신자 수가 늘어나면서 공소의 필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60년 3월 우1동 563-2번지를 매 입하여 이듬해 4월 15일 해운대 공소를 세웠다. 당시 해 운대 공소에는 해운대 지역 신자 외에도 기장 지방의 신 자들까지 와서 미사에 참례하고 교리를 배우는 등 활발 한 복음 전파 활동이 전개되었다. 공소는 1962년 2월 부산교구청 소속 직할 공소로 전 환되어 본격적인 본당 승격 준비를 시작하였다. 당시 교 구 경리부장이던 제찬규(諸璨奎, 시메온) 신부가 6월부 터 사목을 담당하여 현 본당 소재지에 29평 규모의 성당 을 지었고, 10월부터는 신임 경리부장 이영식 신부가 공 소를 담당하며 중동 1369번지에 성당을 완공하였다. 이 건물은 후에 유치원 건물로 전환되었다. 〔본당의 설립과 발전〕 부산 초대 교구장 최재선(崔再 善, 요한) 주교는 1963년 1월 12일 해운대 공소를 본당 으로 승격시키고 초대 주임으로 김유재 신부를 임명하였 다. 김 신부는 부임 직후 사제관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1월에 완공(58평, 2층)하였다. 또한 10월에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분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이듬해 수녀원(25 평)을 짓고 10월에 장병화(張炳華, 요셉) 부주교의 집전 으로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아울러 신자수가 날로 증가 하여 성당이 협소해지자 김 신부는 1963년 8월 신축 성 당 기공식을 가진 후 1966년 5월 29일 최재선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김 신부는 유아 교육에 도 관심을 가져 같은 해 3월 해운대 지역 최초의 유아 교 육 기관인 해성유치원을 설립하였다. 2대 주임 김준필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와 연령회를 조 직하여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본당 활동에 참여할 수 있 도록 유도하였으며, 유치원을 증설하여 유아 교육 시설 확충에 기여하였다. 3대 주임 유창호 신부는 1년여의 짧 은 재임 기간에도 불구하고 50%가 넘던 냉담자들 대부 분을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본당 부지를 넓히고 조경 사업에도 관심을 두어 본당의 외형적인 틀도 갖추어 갔다. 4대 주임 정재석 신부는 평 신도 사도직에 적극적인 관심을 쏟아 사목회를 세분화하 여 분과 활동을 중점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고, 5 대 주임 이영식 신부는 부임 직후인 1975년 9월 26일 기장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또한 신자들의 재교 육에도 관심을 기울여 교리 시험 · 성령 기도회 · 피정 등 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며 주일학교를 설립하여 청소 년 교육을 활성화시켰고, 1977년 5월에는 성모 동굴을 만들어 성모상을 마련하였다. 6대 주임 백응복 신부는 10여 년간 해운대 본당에서 사목 활동을 펼치며 본당의 기틀을 더욱 확고히 마련하 였다. 또한 본당 건물의 협소함을 해결하기 위하여 1981년 사제관(44평)을 신축하였으며 이듬해에는 본당 의 일치와 단결을 꾀하는 의미로 본당기를 제작하였다. 1988년까지 쁘레시디움을 60개까지 늘려 레지오 마리 애 운동을 활성화시켰으며, 자모회 · 빈천시오회 · 가브 리엘회 · 성가대 등 각종 신심 단체들을 발족하여 평신도 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7대 주임 염봉덕 신부는 새 성당 건립을 위한 부지 매 입을 추진하여 1990년 좌동에 새 부지(500평)를 매입하 였으며(1997년 2월 좌동 본당 설정 분리), 사무실 증축 공 사를 실시하여 보다 효율적인 업무가 이루어지도록 하였 다. 8대 주임 김두완 신부는 부임 초기 사목 협의회와 각 분과의 활성화를 통해 본당 사목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자 하였다. 본당 설정 30주년이 되는 1993년에는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유치원을 신축하여 유아 교육의 활성화 를 꾀하였으며, 이듬해에는 본당 사목 심리 상담실을 개 설하였다. 한편 김 신부는 우동 지역에 새 성당을 세우고 자 우동에 성당 부지를 매입한 뒤 1993년 9월 부지 축 성 미사를 봉헌하였다(1997년 2월 우동 본당 설정 · 분리). 9대 주임 권지호 신부는 해운대 구청의 요청을 받아 1998년 7월 해운대구 자원 봉사 센터를 운영하기 시작 하였다. 이 기관은 1964년부터 사회 복지 활동을 해 온 '해성회' 를 모태로 하여, 본당에서 1993년 여름부터 실 시해 온 해운대 해수욕장 청소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 다. 특히 호텔 요리사가 직접 복지 시설을 찾아가 음식을 해 주는 '사랑의 요리사', 차량 봉사 활동인 '사랑의 심 부름' , 벽화 봉사 등 다른 기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 특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어 지역 사회로 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10대 주임 윤경철 신부는 노 인들의 사회 참여와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하여 2002 년 5월 노인대학을 개설하였다. 11대 주임 심순보 신부 는 가정의 화목과 가정 공동체의 복음화를 최우선의 사 목 지침으로 설정하여 본당 운영에 내실을 기하고 있다. (→ 부산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부산교구사 편찬위원회 · 한국교 회사연구소, 《부산교구 30년사》, 천주교 부산교구, 1990/ 《해운대 성당 30년사》, 천주교 해운대 교회, 1993. 〔洪延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