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주의

幸福主義

〔라〕Eudaemonismus · 〔영〕Eudaem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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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에 있다는 사상. 따라서 윤리 적 법칙의 기준과 행위의 근거도 행복에 두는 학설이다. 인생의 행복은 최고선(summum bonum)이며, 동시에 모 든 인간 행동의 궁극적 목적일 뿐만 아니라 행동의 궁극 적인 동기가 된다는 것이다. 〔명칭과 의미〕 행복주의라는 명칭은 근세에 등장한 것 으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 기원전 384/383~ 322/321)가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ca Nicomachea)에서 '행복주의' 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에우다이모니스모스"('εὐδαιμονισμός)라는 표현을 되풀이하여 사용하였지만, 인간의 행복을 찬양하는 의미로 표현한 것일 뿐 윤리적 인 이론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칸트(I. Kant, 1724~ 1804)에 와서야 비로소 인간 행동 이론으로서의 행복주 의라는 의미로 문제시된 윤리적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을 가리켜 '행복주의자' (Eudämonist)라는 표현을 최초로 사 용함과 동시에 '행복주의' (Eudämonismu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후 이 개념은 윤 리학 이론의 한 명칭이 되었다. 그러나 행복주의는 몇 가지의 상이한 의미 로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다. 즉 최고선 내지 궁극적 목적이나 인간 행위 일반의 동기에 관 한 입장을 나타내는 행동 이론으로서 행복주 의를 말하기도 하고, 인생의 행복과 그 행복을 실현하는 요구가 윤리학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윤리학의 행복주의를 말하기도 한다. 또한 도 덕적으로 선한 행위의 동기에 관한 입장에서 도덕적 행위의 근거에 관한 이론 유형으로서 의 행복주의를 의미하기도 한다. 서양 윤리학 의 체계 내에서 이처럼 다양한 행복주의의 형 태들은 각양각색으로 결합되어 있다. 〔행복에 대한 상이한 견해〕 모든 인간이 행 복을 추구하지만, 무엇을 행복으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견해 차이가 있다. 그리스어 '에우 다이모니아'(εὐδαιμονία)는 본래 '영혼에 좋 은 것' 이란 의미였으나 차층 '행운' , '행복' 이 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리스의 윤리학에서 중심 개념 어인 행복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적이지만 직접 도달 할 수는 없고, 다만 선하게, 즉 인간으로서 충만한 덕 (ἀpɛτή)에 따라 살아갈 때 다가갈 수 있는 것으로 이해 되었다. 모든 고대 윤리학이 행복이라는 표제어로 시작하고는 있지만, 쾌락주의(hedonismus),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427~348/347) ,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스토아 학파 에 이르기까지 행복이라는 말의 뜻은 상이하게 나타난다. 플라톤에 따르면 충만한 덕은 사회나 개인의 질서가 잘 잡혀 있을 때, 즉 가능한 '선(善)의 이데아' 로 다가가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처지에서 의 무를 다해야 하고, 그것만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 와 신중, 절제, 경건 등은 현자에게는 '선의 이데아' 를 통찰함으로써, 일반인에게는 철학자 왕을 통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는 불행의 끝 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 행동의 의식적 목적은 선 을 지향하는 것인데, 이 선은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 이므로 바로 이러한 현존재의 행복이 인간의 근원적 목 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력해서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 선 을 규정하고 있다. 인간은 행위를 통하여 스스로에게 주 어진 고유한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데, 모든 노력은 궁극적으로는 그 자체를 위하여 얻고자 노력하는 선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단 하나의 선만이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선이 행복이며, 이 행복이 모든 인간 행동 의 최고선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 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행복을 영혼의 정화에서 찾았다면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는 마음의 내적인 독립성과 자유, 즉 깨끗한 평정심에서 찾고자 하였다. 또한 플라톤과 에피 쿠로스 학파 및 스토아 학파가 이런 부동심이 소수의 사 람들, 즉 철학자(플라톤)와 현자(에피쿠로스, 스토아)에게 만 허용된다고 하였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수의 사람 들에게도 개방된, 자유로운 도덕적 · 정치적 삶에서도 발 견하였다. 고대의 행복론에서 연유하는 그리스도교의 중심 개념 인 최고선은, 하느님이라고 하는 또 다른 내용을 포함한 다. 칸트는 다분히 주관적이던 영국 윤리학의 행복주의 에 반대하고, 고대와 중세의 윤리를 각각 물질 윤리와 목 적 윤리라고 평가 절하하였다. 도덕의 보편성을 구현하 기 위한 칸트의 사상은 어떠한 물질적인 것이나 애착도 배제하는 형식주의와 엄격주의로 발전되었다. 칸트가 의 무 의식에 의한 행위를 주장한 것도 행복을 저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행복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브렌타노(F.C. Brentano, 1838~1917)나 셀러(M. Scheler, 1874~1928)가 지적한 것처럼, 물질적 가치에 민감한 감 정이라고 해서 도덕의 객관성이나 선재성에 반대되는 것 은 아니다. 성서는 도덕적 · 종교적 동기로서의 행복이나 보상에 대해서 언급하지만, 고대의 행복론에 대해서는 전혀 언 급하지 않는다. 예수의 복음 선포에 따르면 행복과 보상 은 하느님의 선물과 은총으로 표현되고 있을 뿐, 인간적 업적과 원의에 기초하는 것은 아니다. 〔주요 형태들〕 행복주의는 다양한 윤리 학설들을 하나의 공통점으로 모으는, 상당히 부정확한 표현이다. 행복 해지는 것을 최고로 추구할 가치로 이해한다는 공통점마 저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리적 행복주의' 는 예를 들어 플라톤처럼 윤리적 덕 의 실현과 의무에 대한 충실에서 행복의 길을 찾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에게 의존하고 있는 철학자들의 존 재론적 행복주의' 는, 역사 안에서 대단히 다양하게 정의 되었지만, 인간의 종적(種的) 특성으로서의 가능성을 참 되게 행동할 수 있는 기준으로, 따라서 행복해지는 것의 조건으로 고찰하였다. 공리주의(utilitarianism)의 출발점 도 행복주의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벤담(J.Bentham, 1748~1832)의 '사회적 행복주의' 는 최대 다수 의 최대 행복을 옳은 행위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와 반대 로 '개인적 행복주의' 는, 예를 들어 그리스의 철학자인 에피쿠로스(Epicouros, 기원전 341~270)나 흡스의 경우처 럼, 행위자의 행복만을 옳은 행위의 기준으로 보았다. 또 한 행복주의는 경우에 따라 쾌락주의의 학설과 동일시되 기도 한다. 쾌락주의도 대단히 다양한 입장의 차이가 있 어서,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가 있는가 하면 그 순간 가 능한 최대의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것만을 행하라는 주장 도 있다. 그러나 칸트는 모든 형태의 행복주의적 윤리관 을 거부하였다. 왜냐하면 행복주의에서는 의지가 통찰을 통해서 스스로를 의무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애착을 통해서 타율적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 공리주의 ; 아리스토텔레스 ; 윤리학 ; 칸트, ; 쾌락주의 ; 플라톤) ※ 참고문헌  M. Heinze, Der Eudämonismus in der griechischen Philosophie, Leipzig, 1883/ J. Thyssen, Gliicseligkeiten und das Aquivokative des Ethischen, R. Wisser hg., Sinn und Sein, 1960/ H. Reiner, Die Philosophische Ethik, Heidelberg, 1964/ G. Bien hg., Die Frage nach dem Gliick, Stuttgart, 1978/ P. Engelhardt hg., Sein und Ethos, Mainz, 1963/ O. Höffe, Moral als Preis der Moderne, Frankfurt, 1993. 〔李敬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