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계임 (1773~1839)

許季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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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모진 폭행에도 신앙을 굽히지 않은 허계임.

남편의 모진 폭행에도 신앙을 굽히지 않은 허계임.


기해박해(己亥迫害) 순교 성녀. 축일은 9월 20일. 세 례명 막달레나. 성녀 이정희(李貞喜, 바르바라) · 이영희 (李英喜, 막달레나) 자매의 모친이요 성녀 이 바르바라 의 외조모, 성녀 이매임(李梅任, 데레사)의 올케. 경기도 용인(龍仁)의 비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경기도 시흥 봉천 (奉天, 현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비신자인 이씨와 혼인 한 뒤, 중년에 이르러 시누이 이매임의 권면으로 두 딸과 함께 입교하였다. 그러나 천주교를 싫어하는 남편 때문 에 두 딸과 함께 비밀리에 신앙 생활을 해야만 하였고, 동정을 지키려는 이영희가 남편으로부터 받는 어려움을 함께 견디어야만 하였다. 그러던 중 비신자와의 결혼에 서 실패한 이정희, 동정을 지키던 이영희, 그리고 외손녀 이 바르바라 등이 서울에 집을 마련하여 함께 생활하자, 그 집을 자주 방문하여 성사를 받았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3월 말에 허계임은 다시 성사를 받기 위해 서울 집으로 갔고, 서로 를 권면하면서 순교를 다짐하였다. 당시 그 집에는 열심 한 신자 김성임(金成任, 마르타)과 김 루치아(金累時阿) 도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들은 남명혁(南明赫, 다미아노)과 이광헌(李光獻, 아우구스티노)의 어린 자녀 들이 혹형과 고문을 이겨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이들 일곱 여성들은 순교를 결심한 뒤 4월 11일에 남명혁의 집을 지키고 있 던 포졸들을 찾아가 묵주를 내보이면서 천주교 신자임을 자백하였다. 포도청으로 압송되어 갖은 문초와 형벌을 받는 와중에 허계임의 외손녀 바르바라가 먼저 옥사하였 고 이어 이매임 · 김성임 · 이영희 · 루치아 · 이정희가 차 례로 순교하였다. 마지막으로 허계임은 포도청과 형조의 갖은 형벌을 이겨내고 9월 26일(음력 8월 19일) 서소문 밖에서 66세의 나이로 동료 교우들과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순교 후 친척들이 허계임의 시신을 봉천에 안장하였 다. 성녀의 유해는 1938년 9월 27일 언구비(彥九碑, 현 서울 논현동)의 교회 묘역으로 이장되었다가, 1968년 다 시 절두산 순교 기념관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 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 기해박해 ; 이영희 ; 이정희 ; 한국 성인) ※ 참고문헌  St. A. Daveluy, vol. 4, Notes pour I'Histoire des Martyrs de Corée(1860년 필사 정리), M.E.P. 소장/ 《기해일기》/ 샤 를르 달레, 안응렬 · 최석우 역주, 《한국 천주교회사》 중, 한국교 회사연구소, 1980/ 《기해 · 병오박해 순교자 증언록》/ 《承政院 日 記》/ 최양업 신부 역, 《기해 · 병오 순교자들의 행적》, 천주교 청주 교구, 1997. 〔車基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