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
君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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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사군자는 군자의 인품을 나타낸다.
군(君)이라는 글자는 갑골문(甲骨文)에서부터 보이는 데, '윤' (尹)과 '구' (口)가 합해 이루어졌다. 尹' 이란 주먹을 쥐고 있는 손의 형태로, 붓을 쥐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고 본다. 즉, 관리가 책을 펴 놓고 사무를 처리한 다는 뜻으로, 이로부터 위정자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甲骨文字集釋, p. 908). '口' 는 물론 입으로서, 호령하여 따르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말로 명령하여 사무 를 처리하는 통치자를 지칭했는데, 갑골문의 예를 분석 하면 아마도 은(殷)나라 관명(官名)의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동 p. 353). 한대(漢代)에 쓰여진 중국 최고(最古) 의 사전인 《설문》(說文)에서는 '군, 존세' (君, 尊世)라고 해서 군이란 존귀한 사람, 곧 지배 계급을 지칭하는 것으 로 정의하였다. 《설문》보다 오래 된 《시경》(詩經)과 《서 경》(書經)을 보면 군자와 소인(小人)이라는 말이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군자는 지배층의 남자를 지칭했고, 소인은 농공상에 종 사하는 자유인을 가리켰다. 다시 말해 주대(周代)에 군 자와 소인이란 용어는 일반적으로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였다. 단, 군자는 남자에 대한 동경이나 존경에 찬 칭호로 많이 사용되었다. 대표적 예 를 중국 최초의 시집인 《시경》 제1편에서 볼 수 있다. "사이좋게 우는 저 징경이, 하수가에 있네. 곱고 착한 숙 녀(淑女)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여기서 군자는 지배 층이라는 신분적 의미보다는 남자의 존칭으로 사용되었 다. 그러나 《시경》 제222편(<少雅>, <采菽>)과 같은 시 에서는 군자들이 천자(天子)를 뵈러 내조(來朝)하는 모 습을 그리고 있어, 군자란 관직을 지닌 통치자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군자와 소인에 대한 일반적 용법에 새로운 해석을 처음 시도한 인물이 공자였다. 〔《논어》에 나오는 군자〕 《논어》는 공자의 언행을 그의 제자들이 전승하여 기록한 언행록으로 공자의 사상을 정 확하게 전하는 유일한 사료이다. 《논어》의 중심 사상이 인간론에 있고, 공자의 인간론은 군자론(君子論)으로 요 약될 수 있으므로 군자의 의미를 파악하면 공자 사상의 핵을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주목해야 할 것은 <논어> 안 에서는 '군' 과 '군자' 가 구별되어 사용된다는 점이다. '군' 이란 임금을 뜻하는 것으로 신분적 의미로 쓰이는 데 비해, '군자' 는 인격자란 뜻으로 도덕적 의미를 갖는 다. 군자라는 용어는 《논어》 안에 모두 107번 나온다. 옛 격언(顔淵 편 19장 등)을 인용할 때나 후기 기록(季氏 편 6장 ; 陽貨 편 3장 등)에 속하는 9번에서만 예외적으로 사회 신분을 지칭하고, 나머지 98번의 예에서는 한결같 이 인격자를 지칭한다. 군자와 소인이 함께 비교되어 나 오는 경우도 19번이나 되는데, 천부적인 덕(德)을 키워 서 도량이 큰 사람과 덕을 닦지 않아서 그릇이 작은 사람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군자나 소인이 되는 것은 출생 신분이나 학벌, 또는 재산의 유무 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노력, 곧 일생 동안 어떤 인간이 되려고 추구하느냐에 따른다는 것이다.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신 안에 부여된 덕을 숭상하여 닦는〔崇德〕 항구한 노력이 있어야 하고, 그와 더불어 천(天)이 내게 주는 시대적 사명감과 인간 적 한계를 깨닫는 인식〔知天命〕이 겸비되어야 한다. 덕 을 닦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하는 능동적 수양의 부분이고, 천명을 이해하는 일은 수동적인 수양이다. 이 양면의 수 양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공자가 60세에 도달했다는 이 순(耳順 : 도를 자연스럽게 따름)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물론 지천명(知天命)이란 수동적인 깨달음으로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공자는 인간이 해야 할 숭덕 에 중점을 두었고 천명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하지 않았 다(公治長 편 12장 ; 子罕 편 1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 어》의 결어는 "하늘의 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공자가 제시한 군자는 덕을 숭상하여 인지도(仁 之道)를 구현함과 동시에 천명을 알아서 시(時)에 따른 사명을 다하고 운명적 요소를 수용할 수 있는 지혜를 겸 비한 인물이다. 이 두 요소를 현대적 표현으로 바꾼다면 인간의 삶은 능동적 영역과 수동적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활동 · 성공 · 발전의 능동적 영역과 죽음 · 실 패 · 병고 등의 수동적 영역을 조화시킬 수 있을 때 성숙 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공자 이후 유가의 군자론〕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전국 시대의 대표적 인물은 맹자와 순자이다. 맹자는 공자의 사상 안에서도 내면적인 덕〔質〕에 초점을 맞추어 심학(心學)을 체계화하였다. 맹자는 인성론에 관 심을 두어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 을 주장하였다. 인간 마음 안에 인 · 의 · 예 · 지(仁義禮 智)의 뿌리인 사단(四端)이 새겨져 있다는 것(告子 上편 21장)에 기초를 두고 맹자는 보편적 인간 이상으로 성인 (聖人)을 제시하였다. 《논어》에서 성인은 요순(堯舜)만 이 가까이 갈 수 있었던 도달하기 어려운 최고의 이상이 었는데, 《맹자》에서는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는 목표가 되 었다. 단, 《맹자》는 그 안에 성지청자(聖之淸者), 임자 (任者), 화자(和者), 시자(時者) 등 여러 가지 길과 등급 을 두었다(萬章 下편 1장). 따라서 《논어》에서 가장 중시 되던 군자상(君子(像)이 《맹자》에서는 성인상(聖人像)으 로 바뀌었다. 아마도 이런 변화는 맹자 당시에 위세를 떨 치던 묵가(墨家)의 성인관(聖人觀)에 대항하기 위해 필 요했던 조처였을 것이다. 맹자의 성인관 안에는 공자의 인격적 군자상과 성왕들의 정치적 이상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 한 예로 《논어》에서 인(仁)은 극기에 치중하는 경 향을 지닌 데 반하여 《맹자》에서 인(仁)은 주로 인정(仁 政)으로 부각된다. 인정이란 성왕(聖王)들이 베푸는 왕 도 정치이며, 맹자는 성왕이 500년마다 주기적으로 일 어난다는 역사적 순환관을 갖고 있었다(公孫표 下편 13장 ; 告子 上편 8장). 《맹자》에서 군자는 성인의 보조적인 이미지로 쓰인다. 군자가 나오는 81번의 용법 중에 22번은 지배층으로서 의 사회 신분을 가리키고, 6번은 남자의 존칭으로 쓰이 며, 52번은 군자지도(君子之道)를 따르는 인격자를 지 칭하였다. 이와 같이 《맹자》 안에서는 군자가 전과 같이 사회 신분을 지칭하는 데도 쓰이게 됨으로써, 《논어》에 서와 같은 인격자로서의 선명성을 상실하는 느낌이 있 다. 군자의 대비어인 소인(小人) 역시 공자 이전과 같은 사회적 호칭으로도 쓰이면서, 동시에 소인과 대인(大人) 을 대비시켜서 자기 안의 큰 것(大體 : 四端)을 키운 사람 과 자기 안에 있는 작은 것(小體 : 욕망)을 키운 사람으로 대조하기도 하였다(告子 上편 14-15장). 공자가 대중적 사 고를 완벽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재해석한 데 비해, 맹자는 성선설에 근거하여 자연적 애정을 높이 평가하고 인(仁)역시 부모 자식 간의 애정으로 보아 본성 안에 내재해 있는 효(孝)와 일치시켰다(告子 下편 2장 ; 萬章 上편 1장 등).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맹자의 군자론은 《논어》의 사상을 대체로 그대로계승하고 있다. 즉, 군자는 자신을 반성하여 잘못을 스스로 고치고, 이익이 아니라 인의(仁義)를 따르는 사람이다(公孫丑 下편 3장). 남과 조화를 이루고 살 수 있으며 타인의 장점을 키워 준다(盡心 上편 41장). 그리고 실제보다 자기 명성이 커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離)下편 18장), 바른 것을 실천하면서 명(命)을 기다리는(盡心 下편 33장) 인격자의 모습이다. 순자(荀子)는 공자의 사상 안에서 객관적 문화 전승에 기초를 둔 예학(禮學)을 발전시켜서, 한대(漢代) 이후로 의 예론(禮論)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순자가 제시한 인간론의 특성은 '성위지합' (性僞之合)으로서 욕망 자 체인 성(性)은 스스로는 완전해질 수가 없으므로 사리를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능(知能)의 안내를 받아야 선(善)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순자의 인성론을 성악설(性惡說)로 쉽게 단정하기보다는, 순자 가 인간 안에 성(性 ; 욕망)과 지(知 ; 사고력)와 능(能 ; 실천력)이 나누어져 있어 이 세 가지가 결합되어 도(道) 에 합치될 때 선에 나아갈 수 있다는 실용적 수양론을 제 시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인이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바를 먼저 이룬 사람이다. 따라서 성인이 가 르친 예(禮)는 우리 역시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객관적 길잡이가 된다. 순자는 예야말로 인간의 상도(常 道)로서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순 자가 "도는 천도(天道)도 아니요 지도(地道)도 아니며 인지상도(人之道)"라고(유효 편) 강조한 데에는 도가 (道家)의 상도 개념을 수용하여 유교화시킨 점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예를 인도(人道)의 극치로 내세움으로 써 예에 객관성을 부여한 강점도 있지만 《논어》에서 가 지던 시대적 변화에 따른 예의 변화를 어렵게 한 문제점 도 있다.
순자의 이상적 인간상 안에는 발전적 유형이 존재한다. 예법을 좋아해서 실천하기 시작한 초보자를 선비〔士〕라고 하였고, 배움을 열렬히 실천하여 그것을 자신의 행동 속에 구체화시킨 이를 군자라고 하였으며, 모든 범주를 이해하여 통찰력을 갖추고 관대하고 자비롭게 된 이를 성인이라고 하였다(修身 편). 순자가 만들어 놓은 단계적 유형은 후대에 그대로 계승되어 주자(周子)는 사(士) → 현인(賢人) → 성인(聖人)으로, 주자(朱子)는 사(士) → 현인(賢人) → 군자(君子) → 성인(聖人)으로 인 간의 성숙 단계를 발전적으로 그렸다.
〔조선의 군자론〕 주자학(朱子學)을 수용한 우리 나라 의 조선조에서는 도학(道學)에 뜻을 둔 사람을 보통 '선 비' 라고 불렀고, 도를 수호할 임무를 담당한 선비의 집 단을 통틀어 '사림' (士林)이라고 불렀는데, 대부분의 상 소문(上疏文)은 사림에서 올려졌다. 조선조의 유학을 대 표하는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읽어 보면, 성인 이 되는 것을 배움의 목표로 제시하였고, 군자는 덕을 닦 아 상서로움을 가져오는 반면에 소인은 덕을 거슬려서 흉함을 가져온다고 하였다. 여기서 대비되는 군자와 소 인의 상반된 모습은 논어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또한 군자라는 말과 더불어 현인(賢人)이나 학자(學者) 등이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금장태 교수는 《유교와 한국 사상》에서 정암 조광조 (靜庵 趙光祖)를 선비의 대표적 예로 들면서 조선 시대 의 선비 정신을 새롭게 조명하였다. 그는 '선비' 를 도학 정신을 구현하는 유교적 인격으로 보았다. 그리고 인 (仁)을 지향하여 사심을 버리고 의리의 길을 따르는 선 비의 모습을 오늘날 우리도 되찾아야 할 것을 주장하였 다. 선비라는 단어가 몽고어 및 만주어와 연결되어 어질 고 지식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분석되고 조선 시대의 유 자를 대표하는 말로 정착된 것도 사실이나, 학자라는 의 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다. 선비라는 용 어는 학문을 전공하지 않아도 인자(仁者)가 될 수 있다 고 본 공자 본래의 사상을 완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약점 을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보통 군자는 영어로 'the superior man' (Legge), 'the gentleman' (Waleg, Lau) 'the profound person' (Tu Wei-ming) 등으로 번역하는데, 마지막 번역어를 제외하고는 남성적 명칭이다. 사실 군자는 그 어원을 보 더라도 남성의 존칭이었다는 약점을 갖는다. 공자가 제 시했고 유가 전통에서 2,500년 동안 지향했던 보편적 인간 이상을 오늘날 현대어로 표현한다면 '인자한 사람' 〔仁者〕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 공자 ; 사서 오경 ; 유교) ※ 참고문헌 李孝定 編述, 《甲骨文字集釋》, 中央研究院 歷史言 語研究所/ 《聖學과 敬 : 退溪의 聖學十圖와 栗谷의 聖學輯要》, 양영 각, 1982/ 金谷治, 〈荀子の文獻學的研究〉, 《日本學士院紀要》, 1951/ 陳夢家, 〈西周文中的殷人 身分〉, 《歷史研究》, 1954, pp. 85~106/ 雫石 鑛吉, 〈君子小人論〉, 《東京支那學報》 9, 1963, pp. 116~118/ 김승혜, <유가적 인간상>, 《東亞文化》 19, 1981, pp. 171~196/ 琴章泰 ,《儒敎와 韓國思想》,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80/ -, <선비>, 《한국민족문 화대백과사전》 12, 1990, pp. 228~236/ Sung-Hae Kim, The Righteous and the Sage, Sogang Univ., 1985/ Bernard Karlgren, The Book of Odes, Museum of Far Eastern Antiquities, 1974/ Donald D. Munr, The Concept of Man in Early China, Stanford Univ., 1969. 〔金勝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