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

虛榮

〔라〕vanitas · 〔영〕vainglory, v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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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욕구 충족을 삶의 최종 목적으로 삼는 것도 허영이다.

자신의 욕구 충족을 삶의 최종 목적으로 삼는 것도 허영이다.


어리석고 속이 비고 쓸모 없는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것. 즉 허풍, 뽐냄, 우쭐댐, 위선, 허세, 자기 선전, 자기 현시, 과장, 겉치레, 인기 관리와 명예, 명성, 타인의 호 평에 대한 무절제한 추구 등의 자기 애착, 자아 도취, 자 기 우상화의 경향성을 의미한다. 다른 이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욕망은 인간 의 기본 심성 중 하나이다. 인간이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본래 건강한 것이고 인간 정신의 가장 고결한 것 중에 하 나라고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창조주로부터 사랑받고 인 정받고자 하는 하느님의 모상성(模相性)에서 발로(發 露)되는 인간 존엄성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질서 안에서 주어지는 칭찬과 명예는 인간이 신(神) 중 심적으로 자아를 초월하도록 도와준다. 성서는 하느님에게 영광을 돌린 기적을 행한 예수에게 찬양과 존경을 드리는 장면을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 다. 또한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제는 인자가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인자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도 영 광스럽게 되셨습니다. (인자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영 광스럽게 되셨다면) 하느님께서도 당신 안에서 그를 영 광스럽게 하실 것이니,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 다" (요한 13, 31-32). 인간은 참된 영광을 추구하며, 참된 영광을 받기 위해 태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행위와 문화는 무질서한 영광의 추구 즉 근본적으로 인 간의 허영심에 기초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허영은 본능 의 한 부분이기에, 허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사람의 마 음을 붙잡는 경우 또한 많다. 사실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지 않는 인 류의 역사는 심층적으로 분석하면 허영의 역사라고도 말 할 수 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간은 스스로 하느님처럼 영광을 받고자 하 는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다른 사람보다 심지어는 하느님보다 더 찬양받고 싶어하는 고차원적인 동물적 본 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좌절되면 분노한다. 자 신을 돋보이고자 하는 이 허영심은 결과적으로 이웃과 더 나아가 하느님을 능가하려는 경향으로 발전하고 따라 서 갈등과 불화와 전쟁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창조의 질 서 안에서 창조주 하느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고 자신만의 영광을 추구하면서 서로 사랑해야 할 이웃과 반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죄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 랑"하여 진정한 영광을 누리라고 가르친다. 〔구약성서에서의 의미〕 구약의 전반적인 역사는 하느 님처럼 영광받고 싶고 왕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허영 을 고발하는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허영 은 항상 교만과 함께 존재한다. 하느님처럼 지혜롭게 되 겠다고 선악과를 따먹는 교만 속에 허영이 스며 있고, 하 늘에 닿고자 바벨탑을 쌓던 인간의 교만 속에 이미 하느 님처럼 영광받겠다는 허욕이 숨어 있다. 자신들보다 더 사랑받는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하였던 형제들의 시기하 는 마음 속에도, 지도자 모세를 대신하여 금송아지를 만 들어 숭배하던 우매함 속에도, 우리야의 아내를 취한 다 윗의 행위에도, 다른 신들을 숭배하여 하느님을 우습게 여긴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 속에도 이미 허영이 자리하 고 있었다. 자신의 영광과 칭찬과 돋보임을 위해 서로를 중상하고 죽이는 구약의 전 역사는 인간의 깊은 허영심 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인간이 이런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경향에 대해 코헬 렛의 저자는 설득력 있게 가르치고 있다. "허무로다, 허 무! ·나는 태양 아래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살펴보았 는데, 보라, 이 모든 것이 허무요 바람 잡는 일이다. ··· 나는 내 자신에게 말하였다. '자, 이제 너를 즐거움으로 시험해 보리니 행복을 누려 보아라!' 그러나 보라, 이 또 한 허무였다. ·나는 또 나를 위하여 은과 금, 임금들의 소유물과 영토를 모아 들였다. 나를 위하여 남녀 소리꾼 들과 인간의 아들들의 즐거움인 궁녀들을 더 많이 장만 하였다. 나는 나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던 모든 분 들보다 더 크게 되고 부유하게 되었으며···내 눈이 원하 는 것은 무엇이든 나 거절하지 않았고 내 마음에게 어떠 한 즐거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라, 이 모든 것이 바람 잡는 일···지혜로 이들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고 어리석은 자들의 마음은 잔칫집에 있다. 지혜로운 이의 꾸지람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자들의 칭송을 듣는 것보다 낫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들어보도록 하자. 하 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것이 모든 인간에게 지당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의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배경에 도 교만과 허영으로 타락한 인간의 역사가 드리워져 있 었다. 아기 예수의 이집트 피난 역시 모든 영광을 독점하 려는 인간의 허영심을 반영하고 있으며, 악마가 이처럼 허영을 추구하는 인간의 현실을 잘 알고 이용해 왔음이 예수의 광야 유혹 장면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여느 인간들처럼 예수도 허욕 때문에 하느님을 버리고 육신의 평안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리라 기대한 것이 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 고 해 보시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아래로 몸 을 던지시오. ··· 당신이 내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마태 4, 3-9). 그러나 예수의 단호한 대 응에, 허영을 부추기던 악마는 결국 굴복하고 물러갔다. 허영이 죄라는 것을 신약성서에서는 분명히 가르친다.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움을 행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에게서 보수를 받지 못합니다"(마태 6, 1). "과연 누가 그대를 잘났다고 쳐 줍니까? 그대가 가지 고 있는 것으로서 받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받았다면 왜 마치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1고린 4, 7) "무 슨 일이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 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시오"(필립 2, 3). 그 외에도 예수는 당신을 지도자로 모시려는 젤롯 당 원들을 슬기롭게 피하였고, 당신을 하느님 아버지의 뜻 위에 치켜세워 다가오는 수난을 막아보려는 베드로의 인 간적이고 근시안적인 충성을 호되게 야단쳤다. "내 뒤로 물러가라, 사탄아!"(마태 16, 23) 또한 예수의 행적을 보 고 감탄하여 "당신을 배신 태와 당신에게 젖먹인 가슴은 복됩니다!" (루가 11, 27)라는 여인의 찬양을 수용하지 않 고 오히려 모든 영광과 찬미는 하느님 아버지께 드려야 한다고 부드럽게 가르쳤다. 예수는 잔칫집에 가거든 낮 은 자리를 차지하라고 가르치고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 을 가지라고 하였다. 그리고 스승이라는 소리를 들으려 하지 말라고 가르쳤고 옷단에 술을 달아 거룩한 사람 행 세를 하지 말라고도 하였다. 자신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 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하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 어, 봉사하는 자세를 가르쳤다. 예수는 또한 기적을 베풀 되 자비하신 아버지를 알리고 그분께 영광을 돌렸다. 예 수는 은밀하게라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비쳐진 일이 없다.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만을 추구하고 수난하였기에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참된 영광은 하느님 아 버지의 영광을 위해 자신을 비워서 아버지와 일치할 때 주어지는 것이다. 〔영성 신학에서의 의미〕 어떤 신학자들은 허영을 또 하나의 죄원(罪原)이라고도 하나, 교회에서는 허영이 교 만(驕慢, superbia)과 욕정(欲情, concupiscentia)에서 나 온 결과라고 가르쳐 왔다. 교만, 인색, 음욕, 탐욕, 질투, 나태, 분노의 악덕인 칠죄종 중에서 허영은 교만과 가장 밀접하며, 다른 죄원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허영과 교만은 실제로 아주 닮아 있다. 하느님이 아닌 자 기 자신을 첫 근원이자 마지막 목표로 생각하는 자신에 대한 무질서한 사랑이자 자기 우상화인 교만에서부터 하 느님처럼 찬양받고 숭배되고 존경받기를 원하는 마음인 허영이 생기기 때문이다. 인간의 허영심이 항상 의식적인 것은 아니다. 유전적 으로 타고났으나 그리스도인의 삶과 부조화를 이루는 욕 구들, 즉 굴종의 욕구(abasement) 구원의 욕구(succorance), 공격의 욕구(aggression), 자기 과시의 욕구(exhibition), 상해 회피의 욕구(harm avoidance), , 비난이나 실패 회피의 욕구(avoiding censure or failure), 성 충족의 욕구 (sexual gratification)를 근간으로 인간들은 하느님을 잊어 버린 채 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욕구 충족을 삶 의 최종 목적으로 삼은 경우가 많다. 원죄로 인한 인간의 이러한 현실이 하느님과 이웃을 배제시킨 자기 중심성이 며 모든 악덕의 뿌리인 교만이다. 위에 나열한 사욕들은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니지만,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하 고 그들 세계에서 절대적인 충족을 추구할 때 자기라는 우상을 숭배하게 되고 인간의 모든 이성 작용 의지마저 이 목적에 종속되면, 명백히 죄가 된다. 인간이 본능적으 로 가지고 있는 자기 중심성인 교만에서 나오는 허영은 뽐내고 '척'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만보다 덜 악의적인 요소와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결국은 하느님과 이웃을 능가하고 돋보이려는 내적 역동 때문에 그들을 부정하고 무시하게 된다. 따라서 허영은 외면적인 선(가짜 선)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허영이라는 덫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우선 창조주 하 느님에 의한 피조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의식하고 하느 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상 순례의 여정을 가야 한 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지식과 태도(attitudes), 즉 마음 자세를 이해해야 한다.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움직임과, 실제로 행동하는 자신을 알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완전하게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자기 중심 성인 교만과 허영을 추구하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의식, 그러나 사랑받는 죄인이라는 의식이 일어나야 한다. 그 리고 하느님 대신 행위의 깊은 동기인 욕구를 선택하지 않기 위해 항구히 성찰하며 깊은 통찰력을 키우고 겸손 되이 하느님의 은총을 구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상처가 다 치유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한평생 유 전적인 자기 확장 경향인 사욕과 하느님 사이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성소의 성 장은 어느 한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여정이 므로, 인내와 겸손이 요구된다. 자신을 초라하게 또는 절망스럽게 느끼도록 만드는, 인간 내면에 깊이 숨어 있는 허무감인 굴종의 욕구에 끌 려다니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하느님 이 그러한 자신을 영광되게 쓰시고자 함에 성모 마리아 처럼 비천한 자신을 기꺼이 내어 드리고, 누구로부터 사 랑받아야 하고 채워져야 하고 뽐내고 찬양받아야 하는 구원의 욕구와 자기 과시의 욕구가 우리 존재와 애정의 원천인 하느님으로 채워지고 충만할 때,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우리 육신으로 기쁘게 헌신하고 또한 다른 욕구들마저도 그 동력으로 이용하여 그리스도처럼 하느 님의 영광을 위해 방향 전환을 할 때 욕구 충족이 최종 목적이 된 내면의 악순환은 깨어지며 인간의 고질적인 자기 중심성은 치유되고 허영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악 의에 찬 질투, 탐욕, 음욕, 인색, 나태, 분노 역시 사라지 게 된다.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한다면, 악덕들은 나무 잎사귀 에 비유할 수 있고 자신을 하느님처럼 생각하는 자기 중 심성인 교만은 허영과 밀접한 줄기에 비유되며 그리스도 를 따름에 부조화하는 욕구들은 뿌리에 비유할 수 있다. 지속적이고 근원적인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전체를 하나 로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외적 행동으로 드러난 심연의 동기들인 욕구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악덕을 근절할 수가 없게 된다. 욕구들은 하느님이 원래 허락하 신 목적대로 방향 전환되어야 하며, 인간 내면에서 분열 의 뿌리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에 대하여 깊은 지식을 갖게 되면 우리 안의 책임 있는 자유를 증가시켜 서 우리 존재의 근원인 하느님을 향하여, 그리고 하느님 의 자녀이고 우리의 형제 자매인 이웃을 향하여 자아 초 월적인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된다. 이것의 부수적 효과가 인간이 체험하게 되는 충만함이고 행복인 것이다. (⇦ 칠죄종 ; → 교만 ; 죄종) ※ 참고문헌  Adolphe Tanquerey, Precis de Theologie Ascetique et Mystique, 1923(정대식 역, (수덕신비신학 3, 정화의 길》, 크리스찬, 2000)/ R. Hennessey, 《NCE》 14, 2003, p. 366/ S. Gatto, Dizionario Enciclopedico di Spiritualita, 1992/ L.M. Rulla, S.J., Anthropology of the Christian Vocation, vol. 1, Interdisciplinary Bases, Rome, Gregorian Univ. Press, 1986/ L.M. Rulla et al, Anthropology of the Christian Vocation vol. II, Existential Confirmation, Rome, Gregorian Univ. Press, 1989. 〔金福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