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론
〔히〕חֶבְרוֹן · [그〕Χεβρων · [라 · 영〕Heb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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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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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조들의 시대에 가나안의 성읍이었던 헤브론.
구약성서에 총 73회 언급되며 그중 64회는 지명으로, 나머지는 인명으로 사용되는 용어. 〔지 명〕 이름과 위치 : 유다 산악 지대의 가장 높은 등 성이(해발 930m)에 자리잡은 중요한 도시로, 팔레스티나 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이다. 예루살렘에서 남 동쪽으로 32km, 브엘세바(Beersheba)에)에서 북동쪽으로 37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헤브론 자리에 앞서 있었던 가나안 성읍의 이름은 '키 럇-아르바' (קרית ארבּע)이다(창세 23, 2). 거인족 아낙인의 조상 혹은 아나김족(Anakim)에서 가장 큰 인물이었던 아르바의 이름을 팠거나(여호 14, 15 : 15, 13), 히브리어로 '아르바' (ארבּע)가 '넷' (4)을 뜻하므로 네 무리가 정착하여 세운 '네 성읍' (헤브론 주변의 마므레, 에스골, 아넬 등), 또는 네 개의 언덕 위에 건설된 성읍임을 뜻할 수도 있다(여호 15, 54 : 참조 : 2사무 2, 3). 이 지명은 고대에는 물론 비교적 늦은 시기까지 헤브론과 함께 사용되었다(느헤 11, 25). 그러나 638년에 무슬림이 점령한 뒤에는 '자비로우신 분(=하느님)의 사랑받는 이(=아브라 함)' 라는 의미로, '칼릴 알 라흐만 (Khalil al-Rahman)이라 불렀다. 헤브론은 위도는 낮지만 고도가 매우 높은 지역이기 에, 주변보다 기온이 낮고 비가 많이 온다. 그래서 포도 와 올리브를 재배하고 곡물을 경작할 수 있는 경계 지점으로, 유목민과 농경민이 물물 교환을 하는 시장이었으며, 유다 남부 지역의 경제 중심지였다. 또한 고대부터 북쪽의 예루살렘과 남쪽의 브엘세바를 잇는 유다 산지의 주요 교통로로,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헤브론은 유리와 가죽, 도자기 산업이 활발한 남부의 교역 중심지인 동시에 농산물과 목축 제품 집산지이다. 역사 : 처음에는 현재의 헤브론 남쪽 언덕(예벨 알 루마 이다)에 가나안 성읍이 건설되었는데, 기원전 1720년경 에 세워진 이집트의 소안(Zoan, 소스족의 수도로 그리스 이름은 타니스〔Τάνις〕보다 7년 먼저 건설되었다고 한다(민 수 13, 22). 성서에서 헤브론과 관련된 인물로는 먼저 이 부근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아브라함을 들 수 있다. 헤브론 북서쪽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던 마므레의 상수리나무(창세 13, 18)는 고대에 신성한 나무로 간주되었기에, 마므레는 여러 형태의 이방 제의가 행해지던 성소로 유명하였다. 후에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묻기 위해 히타이트 사람 에브론에게 은 사백 세겔을 주고 마므레 동쪽 아랫 계곡에 위치한 막벨라 동굴을 구입하였다(창 세 23장). 이 동굴에는 아브라함과 아들 이사악이 묻혔으 며(창세 25, 9-10 ; 35, 27-29), 야곱은 물론 리브가, 레아도 함께 묻혔다(창세 49, 31 : 50, 13). 성조들의 시대에 헤브론은 줄곧 가나안 성읍이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바란 광야에서 머무를 때,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으로 보냈다. 그들은 헤브론의 북쪽으로 추정되는 에스골 골짜기까지 정탐한 뒤 포도와 석류 등을 따 왔으며, 그곳을 몹시 푸르고 비옥한 땅으로 묘사하였다(민수 13장). 후에 헤브론 의 왕 호함은 예루살렘의 왕 아도니-세덱 등 다른 아모리 왕 네 명과 동맹을 맺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대항하였다가 아얄론 전투에서 패하였다(여호 10, 3-37), 여호수아는 함께 정탐하였던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헤브론을 유산으로 주었으나(여호 14, 5-14), 그는 후에 성 읍에 딸린 밭과 천막촌만 차지하였다(여호 21, 12). 성읍 자체는 레위 지파에 속한 아론의 후손 크핫 씨족에게 돌 아갔고(여호 21, 10-14), 살인자들의 도피성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여호 20, 7 ; 21, 13). 기원전 11세기 말 사울 왕이 다스릴 때, 다윗은 유다 남부 지역에 머물면서 헤브론의 장로 등 유다 지역의 장 로들에게 전리품을 보내 친밀한 관계를 쌓았다(1사무 30, 26-31).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헤브론으로 올라가 유다 가문의 왕이 되어 칠 년 육 개월 동안 다스리며(2사무 2, 1-11 : 5, 5), 여섯 아들을 얻었다 (1역대 3, 1-4). 그 뒤 그의 능력을 높이 본 이스라엘의 열 지파가 찾아와 조약을 맺고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2사무 5, 1-4 : 1역대 11, 1-3). 이에 다윗은 유다와 이스라엘 중간에 위치한 중립적인 예루살렘 성읍을 여부스족에게서 빼앗아 자신의 도성으로 삼았다(2사무 5, 7-12 : 1역대 11, 4-9). 몇 년 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헤브론에서 왕으로 즉위하면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2사무 15, 10-13). 전략적으로 여전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유다의 르호보암 왕이 예루살렘을 방어하기 위해 남부와 서부에 구축한 요새 중 하나가 행정 중심지였던 헤브론이었다(2역대 11, 5-12). 유대 왕국이 신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Ⅱ, 기원전 605~562)에게 멸망당한 뒤(기원전 586), 에돔(혹은 이두매아족)의 세력은 헤브론을 포함하여 북쪽 8km에 위치한 벳술까지 미쳤다. 한편 바빌로니아의 유배 생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도 소수 헤브론과 이두매아 의 여러 성읍에 흩어져 살았다(느헤 11, 25). 한때 유다 마카베오(Judas Maccabeus, 기원전 165~160)가 이 일대를 점령하였고(1마카 5, 65), 기원전 2세기 말에 요한 히르 카누스 1세(John Hyrcanus I, 기원전 134~104)가 이두매아 일대를 완전히 정복하고 강제로 개종시켜 유대인 정착지로 만들었다. 이 지방의 총독이었던 안티파테르(Antipater)의 아들이 자 로마로부터 '유대인의 왕' 으로 임명된 헤로데(Herodes Magnus, 기원전 37~4)는 막벨라 동굴 주위에 벽을 쌓고 동굴 위에 아름다운 대형 건물을 건축하였다. 외벽은 대형 마름돌로 쌓았는데(가장 큰 돌의 길이는 7m가 넘는다), 벽기둥 등 건축 형식이 그가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의 작은 복제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하다. 제1차 유대 독립 전쟁(66~70) 중에 젤롯당 지도자인 시몬 바르 기오라(Simon bar Giora)가 헤브론을 점령하고 저항하자, 로마 제국의 5군단장인 체레알리우스(Sextus Cerealius Vitelianus)는 성읍 전체를 불태워 버렸다. 비잔틴 시대에는 막벨라 동굴 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638년 무슬림이 점령한 뒤에는 교회가 이슬람 모스크로 바뀌었다. 이 모스크의 아랍어 이름은 '(하느님의) 친구 아브라함의 성소' 라는 뜻의 '알 하람 알 이브라히미 알 칼릴' (Al-Haram al-Ibrahimi al-Khalil)이었다. 이후 소수의 유대인들이 회당을 마련하여 살고 있었는데, 중세에 십자군이 한동안 점령하였을 때(1100~1260)에는 모스크와 주변의 회당이 다시 성당과 수도원으로 바뀌었다. 아랍의 맘루크(Mamlik, Mameluke) 왕조(1260~1517),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1517~1917),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위임 통치(1923~1948)를 거쳐 이스라엘이 독립한 후에 헤브론은 요르단에 병합되었다(1950) 그러나 서안 지역에 속하여 팔레스티나인들의 거주지였던 헤브론은 1967년-당시 인구 38 309명 중 그리스도인 106명을 제외한 대다수는 무슬림이었다-의 6일 전쟁 이후 이스 라엘이 점령하여 통제하고 있다. 1970년 이스라엘 정부는 이곳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700 년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선조들의 무덤을 공개하였다. 아브라함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공동 조 상으로 존경받고 있어 그의 무덤이 있는 헤브론은 각 종교마다 주요 성지로 인정하고 있다. 유대교에서는 헤브 론을 4대 성도(聖都 : 예루살렘, 헤브론, 티베리아, 제파트) 중 하나로, 또 아브라함을 유일신 사상의 창건자요 무함 마드(Muhammad, 571~632)의 선구자로 존경하는 이슬람 역시 이곳을 성지로 여긴다. 따라서 유대인과 팔레스티나 사람들 사이의 충돌과 함께 종교 갈등까지 겹쳐 헤브론은 날카로운 분쟁 지점으로 꼽힌다. 〔인 명〕 헤브론은 레위의 손자이며 크핫의 셋째 아들로, 레위인이다. 형제는 아므람, 이스할, 우찌엘이요 큰 조카는 아론과 모세이다(출애 6, 18-20 ; 민수 3, 19 ; 1역대 5, 28 ; 6, 3 : 23, 12). 헤브론의 후손인 지휘자 엘리엘과 그의 일족 팔십 명은 다윗의 명을 받아 다른 레위인들과 함께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왔다(1역대 15, 9-15). 그 뒤 헤브론 가문의 우두머리인 여리야, 아마리야, 야하지엘, 여카므암이 이끄는 일족은 아론의 후손을 도와 예루살렘 성전 일을 나누어 하였다(1역대 23, 19 ; 24, 23). 또 같은 가문의 하사비야는 동기 1,700명을 거느리고, 또 여리야 일족 가운데 2,700명 장사들이 이스라엘을 지키며 주님의 일과 왕을 섬기는 모든 일을 하였다(1역대 26, 23. 30-32). 이 내용은 유배 이후 제2 성전 시기에 있었던 레위인들의 활동을 다윗이 창안한 것으로 소급시킨 것이다. 그리고 유다 지파에도 헤브론이 있는데, 그는 유다의 손자인 헤스론의 셋째 아들 갈렙의 후손이다. 그의 아들은 코라, 다부아, 레겜, 세마이다(1역대 2, 42-43) . 그런데 이 구절은 히브리어 본문이 불분명하여 번역본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 아브라함) ※ 참고문헌 P.W. Ferris Jr., 《ABD《 3, pp. 106~108/ E. Orni, 《EJ》 8, pp. 226~236. 〔李鎔結〕
